핏빛 자오선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78
코맥 매카시 지음, 김시현 옮김 / 민음사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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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 180
전직 신부는 설레설레 고개를 저었다. 아니면 학식이라는게 별거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 주기 위한 주님의 뜻인지도 모르지. 세상에 모르는 것이 없는 사람이 있다니. 주님의 의중을 무슨 수로 짐작하겠어. 하느님은 평범한 사람에게 비범한 사랑을 나누어 주시고, 주님의 지혜는 하찮은 미물에도 깃들어 있어 말없는 생명체를 통해서도 더없이 심오한 말씀을 하시잖아.

● p.212
하느님께서 인류의 타락을 막으려 하셨다면 벌써 막지 않았을까? (...) 인간은 쇠락이라는 것을 모르지. 인간은 한밤중에도 정오의 한낮이라는 깃발을 올리네.(...) 야만인 부족이 폐허를 보고 경탄하는 일이 미래에는 또 없을 것 같나? 전혀, 있고 말고. 다른 사람들과 다른 후손들이 그런 일을 겪겠지.

● p.257
글랜턴은 말에 살짝 박차를 가하며 권총을 뽑아 들었다. 나른했던 푸에블로 마을이 당장 휘청휘청 무너져 내렸다.  수많은 사람이 교회로 달려가 제단 앞에 무릎을 꿇었지만, 그 결과 한 명씩 한 명씩 울부짖으며 성단으로 끌려나와 도상달하고 머리 가죽이 벗겨졌다.

 소년은 어느 순간 이야기의 바깥으로 밀려난다. 이야기는 기괴한 판사와 잔인한 글랜턴을 중심으로 서술된다. 물론 소년이 그들 부대의 일원이지만 거의 언급되지 않는다.  무지막지한 백인들의 인디언 사냥은 문장 문장이 끔찍하다.  표현되는 메마른 사막의 모습은 읽어나가는 나의 감정까지도 메마르게 한다. 인디언들의 머릿 가죽을 벗기는 미국인들과 백인들의 머릿가죽을 벗기는 인디언들, 인디언의 짓으로 위장하여 여행객을 덮치는 백인들, 백인들을 증오하는 멕시코인들. 서부의 숨막히는 상황 속 인물들은 알알이 따로 떨어져 있는 모래알과 같다. 

판사와 글랜턴의 부대는 비정하다.  갓난 아이의 머리를 돌부리로 쳐 죽이고,  악취 나는 머리 가죽을 장식인 양 주렁주렁 걸치고 다니며, 식량이 떨어지면  다니던 말을 죽여 말고기로 연명하고,  뒤처지는 부상자는 가차없이 버려진다. 그들에겐 자비나 동정이 없다. 소년은 언급되지 않았으나 소년도 부대의 일원이다. 소년은 이 모든 것을 함께 하는 부대의 일원이다. 소년은 아마 바삭바삭 메말라 버렸을 것이다. 아니면 애초에 메말라 있었을 수도 있다. 이 모든 끔찍한 상황을 함께 하니 말이다.

부대의 인디언 무리 소탕으로 보상금 협정은 해제되었지만 , 그들이 도시를 떠나자 글랜턴의 머리에 현상금이 걸린다. 이젠 그들의 도망자가 되는 것일까?


★네이버 독서카페 '리딩투데이'에서 지원받은 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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