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광유년
옌롄커 지음, 김태성 옮김 / 자음과모음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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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문학읽기가 영미문학에 얼마나 치우쳐져 있었는지 새삼 다시 느낀다. [일광유년]의 작가 '옌롄커'는 나에게 생소한 작가였다. 내가 알고 있는 중국의 작가는 루쉰, 위화, 모옌 정도이다. 그나마도 그들의 문장이 이유도 없이 불편해 선호하지도 않았다. 아마 그 옛날 옌롄커의 작품을 만났다면 그의 작품 또한 나에게 온전히 다가오지는 않았을 것 같다. 하지만 그 사이 내가 조금은 다양한 읽기가 이루어져서인지, 아니면 세월의 유연함을 터득해서인지 [일광유년]은 거친 단어와 문장 속에서도 다양한 생각거리를 찾으며 읽을 수 있어 나에게 성큼 다가온 중국 작품이었다. 옌롄커는 문제적 글쓰기로 중국은 물론 세계적으로 명성을 떨치는 지식인으로 알려져 있다고 한다. 유수의 다양한 문학상을 수상하며 문단과 대중의 호응을 받는 '가장 폭발력 있는 작가'로 평가받고 있는 옌롄커. 중국의 유력한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꼽힌다하니 그의 작품을 좀 더 찾아서 읽어두어야겠다.

[일광유년]은 이름도 독특한 '목구멍병' 으로 인해 마흔을 넘기지 못하고 죽어나가는 기구한 운명을 가진 '산싱촌' 마을의 이야기이다. 대를 잇는 참혹한 세월과 다양한 이름의 욕망을 켜켜이 담아내고 있다. 지리적 요건으로 문명과 떨어져 있는 마을 산싱촌은 그들만의 방법으로 원인도 알지 못하는 병을 이겨내기 위해 촌장을 중심으로 발버둥친다.

산싱촌 사람들은 마흔이 되기 전에 목구멍이 부어 오르면서 병에 걸려 죽고만다. 그들 모두는 자신이 어떻게 죽을지 알고, 언제 죽을지도 알고 있는 것이다. 삶에 대한 강렬한 의지 때문인지 그들은 마을의 촌장을 중심으로 살 수 있는 방법을 위해 모두가 노력한다. 이런 상황에서 개인은 존재하지 않는다. 하나의 목표를 가지고 그들은 유채꽃을 재배하고, 땅을 갈아 엎고, 산 너머 링인거의 물을 끌어오기 위해 수로를 만드는 일을 함께 해나간다. 작업을 위한 노동력을 제공해야 함은 물론, 공사비 마련을 위해 피부를 팔고, 인육을 파는 것도 당연한 일처럼 강요받는다. 그들은 더 살겠다는 염원으로 현재의 시간을 낭비하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 태어난 날은 알지만 삶이 마감되는 날은 알지 못한다. 그래서 영원히 살 것처럼 지금을 허비한다. 산싱촌 사람들은 자신들이 살 수 있는 날들을 헤아릴 수 있다. 그렇다면 그 시간을 좀 더 의미있고 행복하게 살아갔어야 한다. 기약없는 희망에 매달리며 욕망하고, 질투하며, 경쟁하고, 강요받고, 상처받고, 불안에 떨며 죽음을 기다리지 말았어야 한다. 그래서 그들은 죽음을 목전에 두었을 때 비로소 하루하루 행복하고 의미있게 살지 못했음에 대한 후회로 비참했을 것이다. '메멘토모리' 그들은 자신들의 죽음을 올바르게 기억하지 못했기에 살아있는 날을 진창으로 보낸 것이다.

작품은 인간의 원초적인 욕망을 가감없이 표현하고 있다. 강렬하고 원색적이라고 느껴질테지만 모든 욕망이 존재하는 곳은 강렬하고 원색적이므로 사실적인 글이라 할 수 있겠다. 전체를 위한 개인의 희생을 강요하고, 살기 위해 식인까지 허용할 만큼 비도덕적이고, 종족번식이라는 이유만으로 성욕을 수치심없이 분출하고, 자신의 권력을 위해 약자를 이용하는 모습들은 결은 달라도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 속에서도 존재한다. 작품 속 산골마을 사람들의 죽음을 기억하며 , 살아가는 동안에 나에게 비쳐지는 '밝은 빛'을 직시하고, 그 너머를 위해 시간을 허비하지 않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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옌롄커 지음, 김태성 옮김 / 자음과모음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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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70
쓰마란은 사람이 영원히 사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다. 먹고 입는 것이 부실하고, 매일 괭이와 삽을 메고 일을 해야 하며, 광주리와 바구니마다 흙과 퇴비를 담아 날라야 한다고 해도 살아 있는 것이 죽는 것보다 낫다고 생각했다. 

● p. 938
이리하여 두 사람은 서로 알게 되었고, 사랑의 맨 처음 여정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는 그녀 엄마의 오른쪽 젖을 입에 머금고 있고 그녀는 엄마의 왼쪽 젖을 빨고 있었다.

✍ 젊은 육신으로 오래도록 살길 바랬던 쓰마란.  그런만큼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덩치가 커진다.  그런 그의 갈망과 두려움은 바러우산 맞은 편 노인의 흰 수염을 보고 욕망이 되어 버린다. 

산싱촌의 단명은 다산을 불러온다. 아이를 낳기 위한 부모의 성행위를 목격하는 쓰마란은 그곳의 숨결을 삼키자 목구멍이 간지러워진다.(p.889) 산신촌 남녀의 성행위를 묘사한 문장들은 섬뜩함이 느껴진다. 그들의 목구멍병은 어쩌면 상대방의 숨을 끊을 듯한 기관한 그들이 다양한 욕망이 불러온 것은 아닐까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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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856
"아내가 아기를 낳으려면 열 달이 걸려야 할 걸세. 품에 안긴 거우얼은 버리지 말고 양식 삼아 먹거나 까마귀를 잡을 때 미끼로 사용해도 좋을 걸세."

✍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걸까? 살아간다는 것은 숨만 쉬는 것은 아닐터인데 어떻게 저리 잔인하고, 냉정할 수 있단말인가. 용인된 비도덕성은 기회가 생길 때마다 생명력을 가질 것이며, 빈번하게 허용됨은 당연한 것이 될 수 있다. 그래서 애초에 우리는 지켜야 할 것에 대해서는 어떤 상황이더라도 지켜야 한다. 

쓰마샤오샤오는 목구멍병에 걸려 죽음을 목적에 두고도 자신이 아직 촌장임을 강조하며 유채를 심으려 한다.  란바이수이는 먼 훗날 쓰마란을 보며 이 날을 떠올렸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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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486
"어떻게든 마흔은 넘겨야 합니다! 마을의 농지에 흙을 한번 바꿔볼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그러면 열에 여덟아홉은 마흔을 넘겨 살게 될 겁니다.
마을 사람들은 아무도 그 말에 신경을 쓰지 않았다.  무리를 잃은 외로운 기러기처럼 쓸쓸한 모습이었다.

✍ 시간이 과거로 돌아간다.  목구멍이 막히는 병을 링거수로 없애려 마을의 모두를 희생시킨 쓰마란 이전부터 많은 촌장들이 목구멍병에 병적으로 집착했던 것이다.  쓰마란이 란쓰스를 사랑하면서도 쉽게 배신하고 이용했던 것도 자신이 배신과 이용을 당했던 경험이 있었기 때문인 것이다. 

쓰마란은 바러우산맥 저편의 물이 그들에게 생명연장의 꿈을 실현시켜 줄거라 믿었고, 란바이수이는 그들이 밟고 있는 땅이 바뀌면 오래오래 살 것이라 생각했다.  쓰마란이 젊은이의 기백으로 란바이수이가 이루지 못한 것을 자신이 이룰 수 있을거라 장담하듯 란바이수이도 쓰마란같은 기백이 온몸을 채웠을 때 쓰마란의 아버지 쓰마샤오샤오에게 장담했을 것이다. 죽음을 목전에 둔 마흔의 촌장들은 어리석은 젊은이의 기백을 한탄했을까? 자신이 광기를 가지고 몰두했던 것의 덧없음을 깨닫고 한탄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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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스트 프리퀀시 트리플 9
신종원 지음 / 자음과모음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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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트리플 시리즈는 어둡다. 또한 언제나 처럼 신선하고 기발하다. 하지만 다소 난해하고, 어렵다. 세 개의 단편 모두 제목부터 생소하다. 작가의 심오한 의도를 알고 싶은 욕구로 문장을 곱씹어 보지만 도통 다가가기 힘들다. 다소 불친절하지만 문장은 머리 속에 맴돈다. 누구가와의 '이별' '상실' 그리고 그 안에 숨겨진 '영원'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짐작해 본다.

【마그눔 오푸스】 '마그눔 오푸스'라는 용어는 중세 유럽의 연금술에서 유래한 낱말로 납과 같은 비금속을 금으로 변형하거나 철학자의 돌을 만드는 일을 성공적으로 완수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야기는 태몽에서 시작한다. 산모가 꾸어야 할 태몽을 할머니인 양계진 씨는 대신 꾸게 된다. 꿈 속에서 양계진 씨는 눈부시게 빛나는 비단 잉어를 손으로 잡는다. 잉어는 주인이 있었으나, 양계진 씨는 비단 잉어가 너무 예뻐서 팔에 꼭 끼고 도망 온다. 이쁘고 탐스러워 가져 온 비단잉어는 귀하고 귀한 손주로 태어난다. 너무 귀해서 쉽게 손대지도 못하고 바라만 보던 손주의 손바닥에 손가락을 넣어본 양계진 씨는 자신의 손가락을 꽉 움켜 쥐는 손주의 악력에 놀란다. 그 뜨거운 손아귀는 양계진 씨의 모든 유해한 악취를 우그러뜨리며 그녀를 사랑에 빠지게 한다. 자꾸 돌려달라며 꿈에 나타나는 잉어의 주인 거북에게 흥정하는 배짱 좋은 할머니 양계진 씨. 할머니의 흥정은 손자를 지키려는 그녀의 사랑이다. 하지만 말그대로 흥정은 내 것을 주고, 상대의 것을 가져오는 것이다. 그녀는 이미 거북의 것을 가져왔으니, 이번에는 그녀가 무언가를 내어 줄 차례인 것이다. 흥정은 성공하고 양계진 씨는 손주를 지킨다. 그녀의 사랑과 그녀의 믿음, 그녀의 애달픈 눈빛은 금을 만든다. 그녀는 마그눔 오푸스이다.

【아나톨리아의 눈】 '아나톨리아'는 아시아 대륙의 서쪽 끝에 돌출한 대반도이며 고대에는 '소아시아'라고 하였다. 독특한 구성으로 이루어진 단편이다. 독특한데 나에게는 도저히 이해부족이다. 단편 안에 초단편 9개가 배치되어 있다. 보드게임에 임하는 가상의 소설가가 주사위 두 개를 굴려 나온 수의 합과 연관된 이야기를 만든 것인데 너무 어렵다. 솔직히 이해하기를 포기하고 너는 글, 나는 독자라는 생각으로 그냥 '바라보기만 하며' 읽어나갔다. 이해되지 않는 문장을 보는 것이 세상 제일 큰 스트레스인데...이 짧은 글이 날 많이 힘들게 했다.

【고트스 프리퀀시】 '프리퀀시'는 잦은 빈도 혹은 소리, 전자파의 진동수로 해석된다. 놀랍다. 기발하다.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해내는 걸까? 독특한 자신의 상상력을 문장으로 엮어내고, 그 문장들로 타인의 사유를 이끌고, 이해 혹은 반감을 일으키는 물결들을 만드는 작가들은 정말 놀라운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다시 한 번 들었다. 일반적인 시선으로 본다면 남은 것 없는 빈집이지만 누군가에게는 많은 것들이 버려진 장소로 보이는 공간. 폐가에 떠도는 정령을 가두는 의식을 행하는 소설가. '무언가 픽션이 되면 그것은 사라진다 ' (p.98)는 전제를 가지고 소설가는 보이거나 들리지는 않지만 주파수로 존재를 알리는 무언가의 소리를 포획하여 한 글자, 한 글자 지면에 적어 놓으며 그 존재를 가두어 버린다. 그럼 정령은 우리 주위에서 사라진다. '무언가 픽션이 되면 그것은 사라진다' 라는 전제로 생각하면 기억하기 위해 흔적을 남겨 놓는 것은 기억하고 싶은 존재를 가두는 것이다. 혹은 외형이 없는 존재에게 모습을 부여해 주는 것이니 다시 태어나게 하는 것이다. 그럼 그 존재는 가두어져서 다시 태어나길 바랄까? 기억하되 남기지 않고, 소리내어 부르지 않음으로 자유를 주며, 기억하는 자가 기억을 다할 때 소멸하기를 존재들은 바랄까? 생각하게 하고, 질문하게 하고, 상상하게 하는 문장들이다.

매번 새로운 트리플 시리즈를 접할 때마다 뒷 면 출간 예정 목록을 보게 된다. 길게 길게 이름을 남긴 작가들의 나열 보면 신난다. 또 어떤 신선한 소재와 문장들로 나를 즐겁게 할지 기다려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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