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거절을 거절하는 방식 - 2021 한경신춘문예 당선작
허남훈 지음 / 은행나무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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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거절을 거절하는 방식>

-허남훈

-은행나무




'거절' 하면 생각나는 문학 작품이 있다. 허먼 멜빌의 <필경사 바틀비> 이다.   복기하는 것에 대해 안하는 것을 선택하겠다던 용감한 바틀비보다 더 강한 녀석이 나타났다. 거절 당하는 것만도 속상하고 상처받을 터인데 거절하는 당신의 거절을 거절하겠다고 말하다니....대단하다.  



작품의 표지 디자인이 굉장히 독특하고 기억에 남았었는데 책을 읽고 찾아본 작가님의 얼굴이 표지 이모티콘과 중첩된다. 온화한듯 부드러우면서도,  만만하거나 쉽지는 않아보이는  사람이란 느낌이 들며  작품 속 수영과 용수의 모습과도 닮아 보였다.



우리는 벤치에 앉아 코앞까지 내려온 안개를 말없이 바라보았다. 바로 옆에 앉은 사카이의 모습조차 희미하게 보일 정도로 심한 안개였다.  하지만 우리가 안개 속으로 완전히 들어갈 수는 없었다. 한 발 다가서면 안개도 한 발 뒤로 물러섰다. 안개는 그저  시야를 흐릿하게 지우기만 할 뿐 완벽한 어둠을 선사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어둠은 언제나 안개 너머에 숨죽이고 엎드려 있었다.  <우리가 거절을 거절하는 방법/p.28>



신문사를 그만두고 삼진생명 보험설계사 일을 시작하게 될 수영과  공무원 시험 준비를 그만두고 건설현장 노가다 일을 시작하려는 용수는 벤치에 함께 앉아 있다. 안개가 자욱한 그날은 두 농익은 청춘의 상황처럼 느껴진다. 내가 서있는 곳이  안개 자욱하고  흐릿하여 답답하지만,  파헤치고 나가면 햇빛을 맞이할지, 어둠의 낭떠러지로 떨어질지 모르니 더 힘든 상황. 과연 자신에게 다가올 것에 자신감을 갖고 힘차게 나갈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들의 축처진 어깨가 이해가 된다. 게다가 그들은 안개 속에서 방향을 잡아 한 발 나아갔건만 그마저도 상황은 뿌옇다.  앉아서 공부하는 것  외엔 해본적이 없는 용수는 몸으로 하는 일도 제대로 못해내는 자신이 한심스럽고,  지인을 팔아 영업하지 않으면 실적을 내기 힘든 보험일을 하면서 절대 지인영업은 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수영은 힘겹다.  



우리는 서로를, 연대의 힘을, 무엇보다 세상의 변화를 믿고자 했다. 아니, 믿고 싶었다. <우리가 거절을 거절하는 방법/p.338>



거절을 거절했건만 그들이 뜻하는 대로 세상은 쉽게 돌아가지 않는다. 그래도 그들이 거절을 거절했다는 것, 그것이 개인적인 욕심과 이기심 때문만은 아니라는 것, 그리고 혼자가 아닌 함께 라는 것은 큰 의미가 있다. 길고 지루한 싸움이지만 무모하게 계속 부딪쳐 얻은 사회의 작은 '인정' 은 결국 그들을 웃음짓게 한다. 잘못된 것에 대해 당당하게 거절할 수 있는 그들은 그래서 언제나 청춘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 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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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눈동자 안의 지옥 - 모성과 광기에 대하여
캐서린 조 지음, 김수민 옮김 / 창비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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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눈동자 안의 지옥>

-캐서린 조

-창비


자신의 실제 이야기를 모티브로 작가가 가부장제의 문제점과 여성을 대하는 폭력성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네 눈동자 안의 지옥>은 2017년 산후정신증을 겪은 저자 캐서린 조가 정신병원에 2주간 입원하며 겪은 일, 그리고 현실을 되찾기 위해 자신의 과거를 되짚는 내용을 솔직하게 담은 책이다. 캐서린 조는 이 생생한 회고로 주목받는 젊은 작가로 떠오르며 2021년 잘락 상 후보에 오르고 『가디언』 『라이브러리 저널』 등 유수의 매체에서 '올해의 책'으로 꼽히며 찬사를 받았다.

저자는 아이를 낳은 후 3개월이 지났을 무렵 망상과 환각을 동반한 산후정신증을 경험했다. 현실을 감각하기 위해 정신병원에서의 하루하루를 기록하고 지난날을 회상하며 진실을 찾아 나선다. 한국계 미국인으로서 서로 다른 두 문화 사이에서 느낀 혼란을 이야기하며 사랑과 희생의 의미를 질문하기도 하고, 여성의 출산 경험이 신체뿐 아니라 정신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환기한다.

🔖화가 났다. 나는 내가 '매 맞는 여자'가 되리라고는 꿈에고 생각한 적이 없었고, 나를 그런 여자라고 여기지도 않았다. 그저 우리 관계가 복잡하다고만 생각했다. 84p

이야기는 자신을 올바르게 인지하지 못하는 '나'가 현실 속에서 자신을 찾으려고 발버둥치며 과거를 회상한다. 그녀의 회상 속 과거는 폭력적이다. 그녀의 이야기 속에서 가장 화가 나는 건 상대의 폭력을 자신의 대한 사랑이라고 합리화시키는 부분이다. 부당함을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덮으려하는 여자들은 스스로가 자신의 권리를 포기하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그녀의 산후우울증은 사회 속에서 겪었던 다양한 폭력과 약자로서의 울분이 응집되었다가 폭발한 것이 아닐까 싶다. 폭력은 나도 모르는 사이에 학습이 되고, 내몸에 흔적을 남기며 다양한 방법으로 표현된다. 그녀의 광기가 그녀 자신에게서 나온 것이 아닌 그녀가 겪은 폭력에서 발화된 것이기에 더 마음이 아프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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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고의 꼬리 VivaVivo (비바비보) 44
하유지 지음 / 뜨인돌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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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고의 꼬리>

-하유지

-뜨인돌


예상치 못한 설정과 소재를 매끄럽고 가독성 있게 풀어나가는 글을 볼 때면 너무 신난다. <독고의 꼬리>는 그런 신나는 작품이었다. 나의 신남을 이 작품이 대상으로 하는 아이들도 느끼길 바란다. 긴 호흡이 아닌 짧은 호흡과 간단한 설정만으로 전하고자 하는 작가의 주제를 표현할 수 있는 단편들이 대세인가보다. 그건 긴 글에 대한 부담을 아이들이 많이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독고의 꼬리>에 실린 여러 단편들은 모두 긴 글이 되어도 멋졌을 만큼 기발하고 독특했다. 더 긴호흡으로 다시 써져도 좋을 것 같다.

작품의 표제작인 <독고의 꼬리>는 나를 돌아보게 한다. 나를 대표하고, 나로 표현되는 것은 과연 무엇일지 궁금해진다. 모두가 자신만의 꼬리를 가지고 태어나는 세상에서 나만의 꼬리가 없는 아이는 위축된다. 독고는 다양한 꼬리 대체품을 소유하고 있지만 모두 가짜이다. 아이는 죽어가는 또다른 아이, 진해나의 꼬리를 이식받을 수 있게 된다. 그렇다면 그건 나의 꼬리일까? 해나의 꼬리일까? 아니면 내가 꼬리의 부속품이 되는 걸까? 작품 속에서 '꼬리'는 그걸 달고 있는 사람의 환경, 성적, 외모를 대변한다. 타인은 상대의 꼬리로 상대를 평가한다. 그런데 독고는 타인이 평가할 무언가를 가지지 못함으로 사회 속에서 소외된다. 과연 독고 뿐일까? 꼬리를 갖지 못해서 소외되고 외로웠던 아이들이 아픔이 너무 커서 작품 속 독고처럼 꼬리의 부속품이 될까 걱정스럽다.

작가가 표현하는 단편 속 아이들을 통해 우리 아이들이 지금 자신이 서있는 자리에서 자신의 위치에 대해서 생각해 보길 바란다. 많은 아이들이 다양한 글들을 통해 '서로 다르고 다양하게' 성장하길 바래본다. 작품 속 첫 번째 단편 <나도 모르게 그만>의 유쾌한 세 친구처럼 자신의 행운을 누군가의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던 배려와 기회로 얻어진 것임을 잊지 않고 무언가를 살리는 책임을 다하는 아이들이 되길 바란다. 사회가 생각하는 것 보다 우리의 아이들이 멋지다는 걸 믿기에 나는 기대도 크다.


★출판사로 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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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은 건 볼품없지만 트리플 3
배기정 지음 / 자음과모음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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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은 건 볼품 없지만>

-배기정

-자음과 모음


찌질하고, 볼품 없다. 그렇지만 다채로운 그들의 한 부분이 누군가에게는 희망이  되고, 위로가 될 수도 있다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배기정의 <남은 건 볼품없지만>은 다양한 예술인들의 웃픈 이야기들의 향연이다. 불쾌감을 자아내는 인물들 조차 안쓰럽고 쓰다듬어 주고 싶음을 느끼게 되는 건 작가 자신의 모습도 스며들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p.35

예술 하는 아저씨들은 싫었다. 등단 후 엄마 때리는 거 말고는 하는 일이 없었던 아빠, 변태 현학자 같던 영화감독. 나는 찰스를 빤히 보며 예술 하는 아저씨 주제에, 라고 속으로 비웃었다.



그 멋스러운 외모와 분위기는 사람을 현혹시키지만, 실체는 정말 별볼일 없는 그들. 하지만 그들에게 매혹되는 마음을 어쩔 수 없다고 느끼며 포기해 버리는 건 그들이  아름다워서가 아니라 그들에게 매혹되었던 '나'의 감정과 '나'의 열정이 아름답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들의 실체는 볼 품 없지만, 그들에게 향했던  감정의 찬람함은 빛난다.



 🔖40쪽

(...) 내가 그런 말 했어? 게임하다가 그런 말 했잖아. 아, 기억난다. 그냥 그런 거 있잖아.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는 게 있으니까. 그니까 너도 너무 열심히 살지 마. 해도 안 되는 게 널리고 널렸어. 세상에 노력해서 되는 건 그나마 게임 정도일걸. 그마저도 엄청 허무해. 엔딩 보면 끝이잖아. 같은 엔딩 보려고 다시 한번 뼈 빠지게 노력하고 싶지도 않고. 찰스의 무기력한 말투에 나도 힘이 빠졌다. 역시 예술 하는 나부랭이들하고는 몸은 섞어도 말은 섞으면 안 되는 건데.



후재와 가끔 잠자리를 같이하는 '나'는 의식없이 병원에 누워있는 후재를 생각하며 그 자리, 그 곳에 후재가 없었다면 지금처럼 되진 않았을텐데 라는 생각으로 지난 날을 아파한다.  그런 그녀는 오래 전 외국에서 만나 함께 했었던 찰스와의 대화를 떠올리며 가벼워지고 싶어한다.  찰스의 말은 모든 지난 날을 후회하고, 아파하는 사람들에게 위로가 되어 줄 것이다.  또한 미래를 예측하지도 못하는 주제에 오늘을 쓸데없이 힘주며 힘겹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힘을 빼라고 말해주고 있다. 왜 모든 것에 내일 죽을 것처럼 우리는 열심히 살려고 하는 걸까? 노력해도 안 되는거 천지라면 그냥 힘 빼고, 밍기적 밍기적 살아가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아 보인다.  



배기정 작가의 독특한 세 개의 단편은 모두 가볍게 읽히지만, 지금 이 자리에 있는 나를 다시 한 번 돌아보게 만든다. 내가 보고 있는 것이 삶의 전부는 아니며, 다양한 방식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진심도 깨우치게 한다.  우리 모두 지금 나에게 '남은 건 볼품없지만' 그래도 어떠랴....앞으로 살아갈 즐거울 날도 있고, 지나간 날도 나에게 무언가를 남겼음은 확실한 터이다.  


★출판사로 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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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린의 심장 - 교유서가 소설
이상욱 지음 / 교유서가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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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린의 심장>

-이상욱

-교유서가

-가제본

 

독특하다. 그리고 멋지다. 작가 '이상욱'을 기억해야 할 것 같다. 그는 퇴근을 하고 밤 9시부터 자정까지 서재에 틀어박혀 쓰기 시작한 후 7년 뒤 지면을 얻어 단편을 발표했고, 다시 8년이 지나 미발표 원고와 묶어서 처음으로 소설집 <기린의 심장> 을 세상에 내놓았다. 그의 앞으로가 기대된다. 또한 이런 독특하고 멋진 글을 쓸 수 있는 작가의 작품을 기다릴 수 있음에 설렌다.

 

 

<기린의 심장>은 표제작을 포함 총 9편의 단편이 실린 소설집이다. 공통적으로 향하고 있는 주제는 '불행' 이다. 모든 단편이 독특하고 많은 해석이 가능한 매력을 가지고 있어 우리를 깊게 사유하게 한다.

 

 

작품의 첫 단편 <어느 시인의 죽음>은 허버트 조지 웰스의 <우주전쟁>을 연상 시킨다. 우주인 '가브'족의 식재료가 된 인류. 그리고 '가브'족을 물리치기 위한 묘안으로 개발한 #3. 하지만 그 모든 것이 '가브' 족을 위한 만찬이었다. 결국은 강자와 약자 그리고 비열한 기회주의자들의 이야기이다. '불행'이라는 이름은 결국 작고 힘없는 사람들의 꼬리표이며, 이름표이다. 엄마의 수면제를 발견하고 먹어버린 아이 용천, 그 아이의 그 마음이 너무 아프다. 지키고 싶은 누군가를 위해 했던 행동은 다시 아이의 발목을 잡는다. 헤어나오려 해도 헤어나오지 못하는 불행의 늪에 빠질 사람들은 정해져 있다는 느낌이 든다. 짧은 단편인데도 그 답답함과 막막함이 느껴져 읽는 내내 안타깝고, 숨이 막힐 것 같았다.

 

 

출판사의 가제본으로 먼저 접한 작품이라 정식 발행본의 압도할 만한 멋진 표지를 직접 보지는 못해 아쉬웠다. 멋진 코발트 색 배경에 새빨간 잎으로 이루어진 슬픈 나무가 정면을 차지하는 표지는 오랜 세월 작품을 위해 펜을 들었을 작가님의 마음에도 흡족함을 선사했을 것 같다. 나또한 오랜만에 신선하고 독특하며 기발하고 , 풍부한 상상력으로 채워진 무려 9가지의 다양한 이야기를 접할 수 있어서 흡족했으며, 다음 작품을 기대할 나의 작가 목록에 '이상욱'이라는 이름을 적어보았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하였습니다.

 

#기린의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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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제본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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