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의 밤을 떠나지 않는다 프랑스 여성작가 소설 1
아니 에르노 지음, 김선희 옮김 / 열림원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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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에는 아니 에르노의 장편소설이라고 적혀 있지만, 이 책은 그의 에세이에 가깝다. 실제로 치매에 걸린 그의 어머니를 지켜보며 그가 ‘경악과 혼란을 겪는 가운데’ 쓴 글이며, ‘고통의 잔재’를 옮긴 글이다. 아니 에르노는 이 글을 쓴 뒤 십 년이 지난 1996년 작가의 말에서, “나는 추호도 어머니 곁에 있었던 순간들을 수정해서 옮겨 적고 싶지 않았다”고 했다. 그 말 그대로 그가 무의식적으로 적어 내려간 글은 점점 쇠약해져 가는 어머니의 모습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고 아니 에르노가 순간마다 느꼈던 공포와 두려움을 가감 없이 담고 있다.

[이제는 모든 것이 뒤바뀌었다. 어머니가 나의 어린 딸이 된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녀의 어머니가 될 수는 없다.]

어린 날의 자신은 학교 기숙사 운동장 계단 꼭대기에 앉아 있다가 멀리서 어머니를 알아보면 몸을 우뚝 일으켜 세우곤 했다, 고 그는 회상한다. 이제는 어머니가 식당 문 앞에 나타난 딸을 알아보면 어릴 적의 자신처럼 식탁에서 벌떡 일어나 딸을 반긴다. 아니 에르노는 딸 같은 기쁨과 반가움을 느끼는 어머니를, 사랑을 요구하는 어머니를, 벽의 꽃무늬만 봐도 자신의 원피스를 떠올리는 어머니를 보며 자주 울고 싶어지고 죄책감을 느낀다. 어머니는 딸이 되었지만 더 이상 성장하지 않기에, 뽐내던 건장한 체력은 날이 갈수록 바래고 이목구비도 점차 변하기에, 아니 에르노는 어머니와 연관된 추억을 복기하고 현재를 마주하면서 기록을 이어갈 뿐이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전날에도 아니 에르노는 요양원에 들러 어머니의 모습을 기록했다. 어머니의 죽음 이후 이어진 일기를 보면, 그때의 기록이 어머니의 마지막이 될 줄은 그 또한 몰랐기에 두고두고 괴로워하고 아파하고 있다.

제 어머니의 여위고 노쇠하고 나약한 신체에 끊임없이 자신의 노화한 미래를 겹쳐보는 아니 에르노. 할머니의 장례식을 치른 뒤 이 책을 읽으니 더욱 이상하고 절절한 기분이 되었다. 젊음만 강조하는 TV광고의 편파적인 시선처럼(“하지만 텔레비전에서는 마치 인생이 아름다움, 젊음, 모험만으로 이루어진 듯 항상 변함없는 이미지만을 부각시킨다.”) 우리는 생에 젊음만 있는 것이 아니며 세월의 여정이고 축적임을 종종 잊고 사는 것(혹은 잊고 싶은 것) 같다. 노화와 죽음이 멀지 않고 언제나 주변에 있음을 새삼 인지하게 되는 일기들이었다. 글쓰기가 작가 아니 에르노에게 큰 위로이자 원동력, 밑거름이 되어주었음을 책을 통해 체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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