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코의 미소
최은영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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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대학시절 전공과 교양의 필수 학점을 채운 뒤 남았던 학점 대부분을 국어국문학 수업에 할애했다. 전공 수업에서 얻지 못했던 감성과 배움을 평소 선망해오던 학과 수업에서 채우고 싶었다. 현대문학 강의였나, 그 수업에서 젊은 작가를 주제로 발표를 했다. 이때 최은영 작가의 《쇼코의 미소》와 김금희 작가의 《너무 한낮의 연애》를 읽게 됐다. 마침 읽고 싶어 벼르고 있던 소설집들이었다.


 발표 준비를 하면서 틈틈히 책을 읽었다. 수업을 들으러 가는 지하철에서, 학내 도서관 벤치에서, 집 근처 아스팔트에서 단편을 차근차근 섭렵했다. <쇼코의 미소>를 읽는 동안 배개에 얼굴을 묻고 엉엉 울었고, <씬짜오, 씬짜오>와 <언니, 나의 작은, 순애 언니>를 읽을 땐 사람 가득한 지하철에서 눈물을 삼켰다. 내내 말레나 엔딩 타이틀을 들었는데 그래선지 이 단편집을 떠올리면 최은영의 가감없이 담백하고 순한 문체만큼이나 따뜻하고 애달프게 녹아들었던 그 음악이 저절로 귓가에 들려오는 듯하다.


 최은영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맺음에서 포착되는 애증을 '끌어안을 수밖에 없는 나의 모든 즐거운 결점들'마냥 착하게 그려내는 작가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쇼코를, 한지를, 응웬 아줌마를, 순애 언니, 미진 선배, 사람들 각각을 이해하게 하고 사랑하게 하고 내가 품은 누군가와 겹쳐보이게 했다. 그 점이 참 신기했다. 내가 타인과 친해지면서, 관계가 깊어지고 속을 털어놓으면서, 어쩔 때는 서운했고 때로는 미안했던 그 수많은 복잡미묘한 감정들을 최은영이 '너 이랬었지?' 하고 술술 풀어내 써준 기분이었다. 그래선지 왈칵 눈물이 차오르고 또 차올랐나 보다.


 정말 기억에 오래도록 남을, 좋은 단편집이었다. 보통 소설집은 아주 인상적이었던 단편 한 두개의 문장이 선명하게 기억에 남고 나머지는 흐릿하게 사라져버리곤 하는데, 이 소설집은 정말 모든 단편이 좋았다. 굳이 내 마음 속 순위를 매겨보자면, <씬짜오, 씬짜오>와 <쇼코의 미소>가 최고를 가를 수 없을 정도로 제일 좋았고 다음으로 <한지와 영주>가 참 좋았다. 아래 적어 놓은 <씬짜오, 씬짜오>의 문장은 내가 가장 많이 운 대목 중에 하나다. 고인 눈물을 어쩔 줄 모르고 흘려 보냈었다. 최은영 작가의 다음 작품은 내게서 또 어떤 눈물을 흘리게 할까, 어떤 마음을 씻기게 할까. 그녀가 앞으로 나를 얼마나 많이 두근거리게 하고 떨리게 만들지 진심으로 기대된다.

어떤 연애는 우정 같고, 어떤 우정은 연애 같다. 쇼코를 생각하면 그애가 나를 더이상 좋아하지 않을까봐 두려웠었다.
_<쇼코의 미소>

아줌마는 엄마의 인간적인 약점을 모두 다 알아보고도 있는 그대로의 엄마에게 곁을 줬다. 아줌마가 준 마음의 한 조각을 엄마는 얼마나 소중하게 돌보았을까. 그것이 엄마의 잘못도 아닌 일로 부서져버렸을 때 엄마가 느꼈던 절망은 얼마나 깊은 것이었을까. 내가 아는 한, 엄마는 그 이후로도 마음을 나눌 친구를 쉽게 사귀지 못했었다. 그리웠을 것이다. 말로는 그때의 일들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고 했지만, 엄마를 엄마 자신으로 사랑해준 응웬 아줌마를 엄마는 오래 그리워했을 것이다.
_<씬짜오, 씬짜오>

(...) 나이에 걸맞는 옷과 표정을 걸치고서 누구와도 불화하지 않으려고 애를 쓰면서 아주 가끔씩, 지금의 시간들을 떠올리게 될 거야. 내가 가장 나다울 수 있었던 시간을. 그 시간 속의 너와 나를 기억할 거야.
내 적막한 마음에 함께 있어줘서 고마웠어.
한지,
네가 앞으로 살아갈 시간에 축복이 가득하길.
망각의 축복을, 순간순간마다 존재할 수 있는 힘을 낼 수 있기를.
_<한지와 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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