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지내니
톤 텔레헨 지음, 김소라 그림, 정유정 옮김 / arte(아르테)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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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잘 지내니》는 여러 개의 에피소드로 묶인 우화 소설이다. 한국에서 《고슴도치의 소원》, 《코끼리의 마음》 등으로 알려진 네덜란드 동화작가 톤 텔레헨의 신작이다. 나는 일전에 《고슴도치의 소원》을 읽은 적 있었고, 이 작가가 그리는 동화 속 동물들의 고독과 배려는 아이들보단 어른들에게 더 깊이 있게 다가갈 거라고 생각했다. 이번 소설 《잘 지내니》도 어른들에게 위로를 전해줄 수 있는 소설이다.


 톤 텔레헨의 이야기 속 동물들은 대다수 외로워하고, 우울해하고, 절망에 빠져있다. 이를 테면 다람쥐는 아무도 자기 생각을 해주지 않아서 우울하다. 사자는 귀뚜라미의 실수로 슬픔이 가득 담긴 상자를 생일 선물로 받아 펑펑 눈물 흘린다. 생일 케이크를 굽다가 망친 큰개미핥기는 아무도 만나고 싶지 않다. 고슴도치는 절망에 빠져 자기의 가시를 모두 뽑아버렸다. 이렇게 각자 다른 방식으로 우울하고 절망에 빠진 동물들을, 다른 동물들은 절대 혼자 두지 않는다. 다람쥐에게는 날개 안에 긴 편지를 적어 온 부엉이가 있었고, 사자에게는 슬픔이 가득 담긴 상자를 처분해야겠다고 마음 먹은 귀뚜라미가 있었다. 그리고 큰개미핥기의 집 앞에는 다른 동물들이 놓고 간 '용기를 주는 선물'이 있었으며, 고슴도치에게는 가시를 하나하나 다시 심어준 다람쥐가 있었다. 결국 동물 친구들의 사랑과 관심이 부정적인 상황을 타개하는 특효약으로 작용한다.


 나는 여섯 번째 에피소드와 열세 번째 에피소드가 가장 좋았다. 여섯 번째 에피소드는 누구든 자신에게 편지를 써줬으면 하고 바란 고슴도치가 자작나무 껍질을 긁어 메세지를 남기고, 이 메세지를 본 다람쥐가 고슴도치에게 편지를 써주는 내용이다. 《잘 지내니》의 책 뒤표지에 적혀 있는 문장 역시 이 여섯 번째 이야기에서 나왔다. 자꾸 편지 내용을 고치는 고슴도치의 변덕이 귀엽고, '사랑하는 고슴도치야'라는 문장이 커다란 울림을 선사하는 우화다. 열세 번째 에피소드는 자기 자신이 불만스러워 동물들에게 스스로를 잊어주길 부탁한 큰개미핥기의 이야기. 동물들은 큰개미핥기가 쓴 편지 속 부탁대로 큰개미핥기를 잊어보려 노력하지만, 이내 다시 그를 떠올리고 만다. 결국 큰개미핥기에게 너를 잊지 못한다고 동물들이 답신하고, 큰개미핥기가 답신을 보며 눈물 흘리는 내용이다. 그러고보니 여섯 번째 에피소드와 열세 번째 에피소드 모두 혼자만의 세계에 갇힌 누군가를 편지 한 장으로 구원하는 이야기였다. 앞서 언급한 사랑과 관심이 극대화된 이야기이기도 하다. 독서록을 쓰기 위해 다시 한 번 이야기 속 문장들을 읽어봤는데, 다시 봐도 왠지 울컥 가슴이 찡해졌다.


 이 책에는 그밖에도 하마와 메뚜기가 몸을 바꾼 이야기, 숲 속 웅덩이 가장자리에서 코끼리와 다람쥐, 거북이가 모여 행복한 상상을 하는 이야기 등 귀여운 에피소드도 읽을 수 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톤 텔레헨의 장기를 엿볼 수 있는 에피소드는 내가 가장 인상깊게 읽었던 여섯 번째, 열세 번째 에피소드 같은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 참고로, 톤 텔레헨의 국내 출간 작품에서 계속 함께 해온 김소라 일러스트레이터가 이번 작품에도 함께해 작가의 글을 이백 퍼센트 맑고 따뜻하고 사랑스럽게 살려주었다. 김소라 일러스트레이터의 그림은 이제 톤 텔레헨 작품에서 없어서는 안 될 중요 요소로 보인다.


 차근차근 우화를 읽고 나니, 왠지 소중한 사람에게 톡이나 전화라도 하고싶은 기분이 들었다. 이 책 출간 시에 출판사 아르테에서 톤 텔레헨의 《잘 다녀와》도 동시 출간되는 걸 보았다. 《잘 다녀와》도 꼭 읽어보고 싶다.


편지를 읽자마자 눈물이 흘렀다. "사랑하는 고슴도치"를 읽고 또 읽었다. 사랑하는 고슴도치, 사랑하는 고슴도치. 그래 나는 사랑하는 고슴도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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