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
리베카 솔닛 지음, 김명남 옮김 / 창비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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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처음 읽은 페미니즘 도서는 우에노 치즈코의 《여성 혐오를 혐오한다》였다. (그전에 읽었던 《월경의 정치학》은 페미니즘을 배워야겠다는 생각으로 읽었던 책은 아니었다. 하지만, 여성의 월경 억압 역사를 다루기 때문에 페미니즘 운동에 익숙지 않은 분들도 읽기 좋은 페미니즘 책이다.) 다음으로 읽었던 책은 《빨래하는 페미니즘》, 《그 남자는 왜 이상해졌을까?》였고 그 다음이 이 책이었다. 


 페미니즘을 이야기할 때 종종 인용되는 혁명적인 단어 '맨스플레인'. 맨스플레인(mansplain)은 남자(man)와 설명하다(explain)를 결합한 단어다. 리베카 솔닛은 '맨스플레인'을 정의한 사람 중 한 명으로, 이 책에서 유명한 맨스플레인 에피소드를 소개하기도 한다. (리베카 솔닛에게 리베카 솔닛 책을 맨스플레인했던 그 남자!) '맨스플레인'은 2010년 <뉴욕 타임스>에서 '올해의 단어' 중 하나로 선정됐고, 2012년 미국 언어 연구회의 '가장 창조적인 단어' 후보에도 올랐다. 또한 2014년온라인 <옥스퍼드 사전>에 등재되기도 했다. 


 책은 맨스플레인 에피소드를 담은 표제작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를 포함하여 산문 9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나는 이 지긋지긋한 가부장 한국을 벗어나면 내가 여성으로서 조금 더 인간다워질 수 있을 거라고 희망했지만, 어쩌면 그건 일종의 망상에 가까웠던 것 같다. 리베카 솔닛이 통계로 설명해주는 미국 역시 여성에겐 지독히도 폭력적이고 암울하기 짝이 없었다. (물론 페미니즘에 대한 논의가 한국보다 몇 십년은 앞섰고 그에 대해 올바르게 자각하고 있는 사람도 한국보다 많으니 현재 대한민국보단 그나마 나은 '허랜드'란 건 변함없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리베카 솔닛 같은 작가를 통해 끊임없이 여성의 이야기가 화두에 오르고 전해지는 양상 자체가 우선 중요하다고 본다. 저술가이자 비평가, 역사가, 여권운동가인 리베카 솔닛은 뛰어난 통찰을 지닌 작가이자 뜨거운 문장을 쓸 줄 아는 작가다. 덧붙여, 재밌는 글을 쓰는 작가다. 산문을 차례차례 읽다보면 저절로 느낄 수 있다. 따라서 이 책은 페미니즘 입문서로도 좋지만, 재밌게 읽기도 좋은 인문 책이다. 


 리베카 솔닛은 여자들의 입을 막고, 여자들을 가르치려 들고, 신뢰하지 않고 종국에 여자들에게서 자유를 뺏는 남성 중심 사회에 대해 일갈한다. '지성은 자지에 있는 게 아닌데' 말이다. 하지만 타인을 통제할 권리가 자신에게 있다고 믿는 사람에게는 안타깝게도, 여태 약자 위치에서 눈 감고 귀 막고 버텼던 우리는 마침내 판도라의 상자를 열었고 지니의 호리병에서 빠져나왔다. 그러므로 수많은 장애물을 넘느라 다소 느리게 걸어갈지언정 이상을 향하는 발걸음을 되돌리진 않을 것이다. 나는 나의 권리를 알게 되었다. 나는 정체성을 잃는 과정에서 내 정체성을 찾고 싶어졌다. 나는 방이 필요하고 돈이 필요하고 밤이 필요하다. 그것들을 내게 안전하게 확보해줄 평등 사회가 필요하다. 그러므로 더 이상 침묵하지 않는다.

물론 이따금 불쑥 아무 상관없는 일들이나 음모론을 늘어놓는 사람 중에는 남자도 있고 여자도 있지만, 내 경험 상 아무것도 모르는 주제에 자신감이 넘쳐서 정면 대결을 일삼는 사람은 유독 한쪽 성에 많다. 남자들은 자꾸 나를, 그리고 다른 여자들을 가르치려 든다. 자기가 무슨 소리를 하는지 알든 모르든 어떤 남자들은 그렇다.
여자라면 누구나 내 말을 이해할 것이다. 이런 현상 때문에 여자들은 어느 분야에서든 종종 괴로움을 겪는다. 이런 현상 때문에 여자들은 나서서 말하기를 주저하고, 용감하게 나서서 말하더라도 경청되지 않는다. 이런 현상은 길거리 성희롱과 마찬가지로 젊은 여자들에게 이 세상은 당신들의 것이 아님을 넌지시 암시함으로써 여자들을 침묵으로 몰아넣는다. 이런 현상 때문에 여자들은 자기불신과 자기절제를 익히게 되는 데 비해 남자들은 근거 없는 과잉확신을 키운다.

폭력에는 인종도 계급도 종교도 국적도 없다. 그러나 젠더는 있다.

1986년에 작가 마리 시어(Marie Shear)가 말했듯이, 페미니즘은 "여자도 사람이라는 급진적 개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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