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호의 꽃 1
최정원 지음 / 황금가지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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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판의 아들로 태어나 젊은 나이에 무과 장원급제하며 승승장구 했으나, 북방 오랑캐가 쳐들어 왔을 때 하나뿐인 누이를 잃고 오른팔을 다쳐 그 뒤로 한량처럼 기루에 처박혀 지내는 민훈. 그는 밤이 되면 검은 옷을 입고 세상을 어지럽히는 삿된 무리의 뒤를 홀로 쫓는 일명 ‘저승사자’다. 한편 수도 잘 놓고 전도 잘 부치고 빨래도 잘하는 동네 재주꾼 솔이에게는 남에게 말하지 않은 비밀이 있다. 그녀는 새와 같은 동물들과 의사소통을 할 수 있어 가끔씩 그들의 부탁을 들어주기도 하고, 사람을 찾거나 하는 일을 위해 그들에게 부탁을 하기도 한다. 솔이는 저승사자 민훈과 뜻하지 않게 자꾸만 얽히고, 두 사람은 티격태격하면서도 은근 서로에게 호감을 품는다. 민훈은 그녀의 신묘한 능력을 이용해서 자신이 쫓는 거대한 음모를 좀 더 파헤칠 계획을 짜게 되는데…….


 <묵호의 꽃>은 '황금가지의 편집진이 기획부터 운영까지 참여하는' 온라인 플랫폼 브릿G에서 연재됐던 장르소설로 최근 전 2권 출간된 상태다. 서평단으로서 1권만 우선 읽어본 지금, 너무 감칠맛나게 끊겨버려 서둘러 2권을 읽고 싶다는 생각뿐이다! 하필, 민훈이 의문의 인물에게(윤시백으로 추정된다.) 독화살을 맞고 이현의 집에 쓰러진 지금 1권이 마무리되다니!


 제목 '묵호'는 남자 주인공 서민훈을 뜻한다. 묵호(默湖)는 어린시절 유랑하다가 딴 호수의 이름을 뜻하는 호였지만, 흉흉한 기세와 날카로운 무인의 실력 탓에 백성들 사이에서 그는 묵호(墨虎)로 통한다. 그런 그의 '꽃'은, 동식물과 이야기할 수 있는 재주를 지닌 이솔을 가리키는 게다. <묵호의 꽃>은 간지러운 제목만큼이나 발랄하고 달달한 로맨스 사극이다. 그밖에도 진중한 매력을 지닌 캐릭터들의 등장과, 서민훈과 이솔의 만남 기저에 깔린 역도의 음모로 아슬아슬한 서스펜스까지 찾아볼 수 있는 작품이다.


 사교 '자하원'은 새 나라를 세우자는 책을 배포하고 교원들을 포섭하여 백성들을 혼란에 빠뜨리고 있는데, 서민훈은 검은 옷과 검은 갓을 쓰고 저승사자로 분해 그런 자하원의 꼬리를 쫓고 있는 중이다. (양반집 자제의 기이한 행동은 북방에서 오랑캐들의 습격으로 목숨을 잃은 누이의 죽음과 연관된 모양이지만, 아직 그에 대해 정확히 밝혀진 것은 없다.) 저승사자 서민훈의 잠행에 밤길을 지나던 솔이 우연찮게 엮이고, 솔의 재주가 민훈에게 도움이 되면서 둘은 서로를 서서히 알아가게 된다. 무뚝뚝하다 못해 살기가 느껴지는 민훈이 똑부러지는 솔 앞에서는 자꾸만 위엄을 잃고 휘말리는 모습이 참 귀엽다. 지금까지는, 충이라는 자로 인해 물에 빠져 죽을 뻔한 솔에게 민훈이 더 이상 만나지 말자고 통보한 뒤 계속 솔을 신경쓰게 되고 생각에 잠기는 그를 채란(민훈의 일을 돕고 있는 기녀.)이 눈치 채는 것 정도로 러브라인이 진행된 상태다. 물에 빠진 솔을 민훈이 인공호흡을 해줌으로써 겨우 죽음에서 건졌기 때문에 솔이 그와 벌어졌던 일을 의식하고 있으나, 솔은 아직 민훈과 저승사자가 동일 인물임을 모른다. 그렇기에 그의 정체를 솔이 언제쯤 알게될지 지켜보는 것도 감상 포인트 중 하나라고 할 수 있겠다.


 개인적으로, 서민훈과 솔을 아끼는 '오라버니' 이현이 솔을 사이에 두고 마주치는 장면들이 참 흐뭇했다. 날카로운 카리스마가 돋보이는 민훈과 부드러운 카리스마로 맞대응하는 이현이 서로 주고받는 적의는 두고보는 독자에겐 웃음을 선사해줬다. 솔을 괴롭히는 시호(민훈의 정혼자. 좌의정 안익태의 딸.)에게 현이 끼어들며 시호에게 잡힌 솔의 손목을 구해내고, 그런 현에게 다가서서 일부러 시호를 제 등 뒤에 숨기는 민훈, 이 넷이 만나는 장면이 대표적으로 재밌는 장면이었다. 단순히 연적일 거라고 예상했던 민훈과 현의 관계는, 현이 알고보니 폐세자였다는 정체가 밝혀지며 1권 막바지에 전환점을 맞았다. 어쩌면 둘은 연적이자 자하원을 물리치기 위한 동지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2권에서는 민훈과 솔의 나라가 한바탕 난리통 속으로 뒤집힐 것이다. 윤시백이 비밀리에 원주로 자리하고 있는 '자하원'도 움직이고 있고, 이현의 정체도 밝혀졌으며, '저승사자' 민훈이 위험에 처한 데다, '엄마가 어쩌면 자하원의 시조였을지도 모른다'는 출생의 비밀을 알아버린 솔까지, 모든 인물이 가만히 있지는 않을 테다. 더욱 위험천만한 사건들이 펼쳐지고 알콩달콩한 러브라인이 진행될 거라 기대 중이다. 아직은 다정하고 친절하고 옆집 오빠같은 이현이 더 마음에 든다면, 내가 줄곧 앓아본 서브병에 낫지 못해서 그런 것이겠지?


 근래 본 젊은 원빈의 사진에 헤어나오지 못해서ㅋㅋㅋ 서민훈은 원빈을, 이솔은 채수빈을, 이현은 귀양다리 임주환을 상상하며 읽었다. 그밖에 윤시백은 연우진, 안시호는 황승언, 채란은 김민서로 혼자 가상캐스팅 완료하고 읽었는데 즐거움이 배가됐다. 민훈과 현의 대사도 내가 광대를 추켜올릴 만큼 웃음 지었거나, 설렜던 장면들로 각각 모아보았다. 2권도 빨리 읽어야겠다.


"오라버니."
솔은 사람 좋게 헤헤 웃었다. 현은 어떨 때 솔이 저런 표정을 짓는지 알고 있었다. 그녀는 화가 나 있었다. 그것도 아주 많이.
"저는 어린애가 아니에요."
"……."
"도와주셔서 감사해요. 무엇보다, 걱정해 주셔서 감사해요. 하지만 무얼 하고 안 할지는 제가 결정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저한텐 그게 아주 중요해요."
또렷한 목소리였다. 현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이러려던 것이 아니었다. 모든 것은 솔을 위해, 그저 이 아이를 지켜야 한다는 마음으로 한 일이었는데…….
너는 어째서 나를 그런 눈으로 보느냐.

"근래에 병판집을 오가고 있으니 마침 잘 알겠군. 그 집 장남을 보내지."
" ……."
뭐요! 왜 하필! 아니, 됐거든요.사양할게요?
소리가 튀어나오려다 혀끝에 걸렸다. 그게 문제가 아니었다. 솔은 더듬더듬 말을 만들었다.
"차사님은 어떻게 병판 댁 장남을 막 오라 가라 하시는? 그 나리는 뭣 하는 분이기에 저승사자를 다 알아요? 시키는 대로 다 하고? 죽을 죄라도 졌던 거예요? 아니면 죽었다 살아나기라도 한 건가?"
"넌 뭐 하는 애길래 날 알고 내가 시키는 대로 하고 있냐."
할 말이 없었다. 솔은 크게 헛기침을 하며 시선을 피했다.
"꼭 그 나리여야 해요? 저 그분 좀 힘들어서……."
"그쪽도 딱히 네가 마음에 들진 않을 테니 신경 쓰지 마라."

솔의 얼굴이 이번엔 새빨갛게 변했다. 부들부들 떨기 시작하는 그녀를 보며 민훈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 사람, 자기 입으로 외간 처자 입술 빼앗고 옷 벗긴 것까지 남한테 다 말했다구요?!"
"그런 것 아니었잖냐!"
내가 뭘 어떻……! 그런 것 아니었잖아! 숨 넘어 갈 뻔한 걸 살려줬더니 무슨 소리야, 이 여자. 그리고 그걸 왜 자기 입으로 말해?
"아니긴요! 나리께서 어떻게 그렇게 잘 아신다고!"
"나니까……! 내가 너보다 더 잘 알고 있는 것 같은데 말이다!
목 끝까지 올라온 말마디를 이를 악물고 삼켰다.
안 돼. 또 휘말리고 있다.
(……)
"아니라면 아닌 것이다. 착각하나 본데, 네가 저승사자 눈에 들만큼 대단한 줄 아느냐. 정신 차려라."
"그……!"
솔은 어금니를 뿌득 갈았다.
"제가 생각보단 볼거리가 좀 있습니다?!"
"더 크게 소리 질러야지. 그 정도로 외쳐서야 시전 바닥에 소문이 나겠느냐."
"으윽."

"지나던 과객입니다."
"그럼 마저 지나가시면 되겠습니다."
현이 부드럽게 웃었다.
"그럴 수가 있나요. 제 사람이 곤란해 하고 있는데."
그는 솔의 손목을 잡고 휙 끌어당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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