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폴의 하루
임재희 지음 / 작가정신 / 2018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추석 연휴가 끝나고 어느새 작정단2기 새 도서의 서평을 쓸 때가 왔다. 평소보다 가족의 품을 체감할 수 있는 연휴에 읽은 이 책은 아이러니하게도, 어느 누구를 가족으로 칭해야할지 모르거나 정체성 안에서 헤매는 이들이 많이 등장하는 소설집이었다. 임재희 작가의 첫 소설집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폴의 하루>다.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폴의 하루>는 표제작을 포함하여 총 9편의 단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소설집을 평소에도 많이 읽는 편이라 쉴 틈 없이 금세 읽어내렸는데, 생각보다 단편의 길이가 짧은 편이라 더 읽기 쉬웠던 기억이 난다. 소설집에 모인 단편들은 이주자 혹은 귀환자의 정체성이라는 측면, 소설에서 다뤄지는 주인공이 이방인이라는 측면에서 공통점을 가진다. 임재희 작가 또한 1985년 하와이로 이민을 갔던 이주자 출신이라고 한다. 따라서 소설집에 등장하는 세레나, 압시드, 동희, 폴 등의 캐릭터와 그들이 겪는 이야기는 필연적으로 작가의 자전적인 경험이 물씬 묻어난 가상 세계일 것이라고 짐작했다.


 소설의 주인공들은 우연찮게 한국에 하루 더 머물게 된 폴의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하루'처럼 한국과 미국의 주변을 맴돈다. [히어 앤 데어]의 동희는 출입국관리사무소를 드나들며 국적 선택의 기로에 놓이고, [라스트 북스토어]의 화자는 엘에이 헌책방에서 부러 한국적인 것에 심취하고, [천천히 초록]의 화자는 어정쩡한 이주자의 삶에 우울감을 느끼고 한국 내 출생지를 찾아간다. 또한 [로사의 연못]에서 로사와 남편은 꿈에 그리던 집을 소유했음에도 완전한 가정으로 이국 사회에 편입되지 못한다는 불안을 느끼고, [분홍에 대하여]의 세레나는 '다른 언어'를 쓰고자 미국에 왔으나 '다른 언어'에 익숙해지지 못한 채 볼품없는 몰에서 조화를 만든다. 동양인의 얼굴에 어울리지 않는 이름을 가진 입양아 [압시드]의 압시드도, 미국에서 정착했지만 엄마의 흔적을 쫓는 [로드]의 삼남매도 모두 국적이라는 경계에 놓여 있다. [동국]의 동국처럼 이주자나 귀환자의 위치를 가지지 않은 캐릭터가 등장하기도 하지만, 그녀의 이야기는 지독히도 불행한 삶 때문에 늘상 주변인 취급을 받기에 여타 소설들과 비슷한 질감을 지닌다.


 정착하지 못하고, 결정하지 못하고, 헤매는 이들의 이야기를 보고 있자니 내내 쓸쓸했다. 마치 이국에서 즐거운 마음으로 시작한 여행 도중 여권도 현금도 카드도 없이 길을 잃어버린 기분이었다. 더욱이 이주자나 귀환자의 위치만으로도 충분히 소수자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그들이 그 위치에서 벗어나려 발버둥칠수록 더욱 소수자로 전락하는 듯했다. [라스트 북스토어]의 동생 부부가 겪는 경제적 · 정신적 문제가 그렇고, [로사의 연못]의 부부가 끝내 조성하지 못하고 썩어버리는 연못이 그랬다. 이방인의 삶은 도무지 나아지지 않는 거구나 하고 절망감에 사로잡힐 즈음, 생각을 전환하게 되었다. 특히 허희 문학평론가가 쓴 해설 [사이-공간을 상상하는 지도]의 도움이 컸다. 소설의 마지막 단락마다 놓여 있었던 희망의 메타포를 그제야 발견하고 건져올리게 됐다고나 할까.


 해설은 임재희 작가의 장편작 <당신의 파라다이스>를 함께 언급하며 작가의 소설에서 일관된 테마가 '낙원으로 가는 길 위에서의 삶이 곧 낙원이라는 통찰'이라고 말한다. 즉, 한국이나 미국 특정 국가에서의 정주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주변에서 머물며 어디를 택할지 고뇌하는 일정 전부가 낙원이라는 것이다. [로드]의 삼남매가 엄마가 일러준 댈러스의 집을 향해 시답잖은 미스터리와 질문들을 공유하며 사막의 도로를 달렸듯이, 임재희 소설 속 인물들은 로드무비의 주인공들이었던 것이다. 이렇게 보면, 그들 모두는 낙원에 있는 셈이었다. [히어 앤 데어]의 동희는 분명한 의식으로 다짐한다. '한국도 미국도 아닌 현재 서 있는 곳이 그녀가 존재하는 곳'이라고. [동국]의 최동국은 '겨울 국화'라는 뜻의 제 이름의 향기를 뒤늦게나마 향유하려고 한다. [분홍에 대하여]의 화자는 '핑크'와 '분홍'의 차이를 알았고, [압시드]의 압시드는 특이한 제 이름에 얽힌 사연과 아버지의 사랑을 알았다. [천천히 초록]의 화자는 제 삶엔 총소리뿐만 아니라 노랫소리도 존재했음을 깨달으며 '이제 여기 오지 말자'는 그의 말에 동의한다. 그리고 선선히 인정한다. '묻지 않아도 될 것과 알지 않아도 될 것들 속에서도 삶은 충분히 완전체'라고.


 나는 줄곧 한국에서 살았고 해외에서 오래 체류해본 적도 없어 이주자나 귀환자가 느끼는 '배타적인 감정'에 백퍼센트 공감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허나 이것 또한 나의 편견이었을 뿐이다. 이주자나 귀환자로 특정 짓기 전에 그들 역시 나처럼 정체성을 고민하는 사람들이었다. 나도 낙원으로 가는 길 위에서의 삶 속에 있고 바로 이 삶이 내가 가진 낙원이다. 어떤 고통이 나를 더욱 소수자로 전락시킬지라도, [천천히 초록]의 화자가 마지막 문장에서 다짐했듯 함께 다짐하기로 한다. 삶은 충분히 완전체다.


 독서를 끝마치고 나니, 개인적으로 [천천히 초록]과 [분홍에 대하여], [압시드]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사랑한다는 말 따위 믿지 않으려고 해."
"그래도 믿어야 해. 우리를 구원하는 건 그래도 사랑일 거야. 그것마저 버리면 삭막해서 어찌 사니."
_[천천히 초록] 중에서.

묻지 않아도 될 것과 알지 않아도 될 것들 속에서도 삶은 충분히 완전체로 흘러갈 거였다.
_[천천히 초록]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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