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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한낮의 연애
김금희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5월
평점 :

'KBS 드라마 스페셜'이 오랜만에 안방 극장을 찾아온다. 9월부터 방영 예정인, 'KBS 드라마 스페셜 2018'은 2017년 KBS 단막극 극본공모 최우수상 수상작 <나의 흑역사 오답노트>부터 웹툰 원작 <참치와 돌고래> 등 총 10편의 작품을 선보인다고 한다. 개중 김금희 작가의 <너무 한낮의 연애>도 KBS 드라마 스페셜 목록에 있었다. 주인공 '양희' 역은 최강희가 맡았다. 최강희의 캐스팅 소식을 듣고 어쩜 이렇게 찰떡 캐스팅이 있나 좋아했던 기억이 난다. 양희의 독특한 캐릭터를 최강희가 얼마나 잘 살려낼까 기대하며, 대학 재학 시절에 읽었던 <너무 한낮의 연애> 속 문장을 돌이켜 본다.
<너무 한낮의 연애>는 리디북스나 알라딘 등을 통해 이북을 처음 접하고 전자책 읽기에 막 가속도가 붙던 때 구매했다. 구매한 지는 오래됐는데, 병렬식 읽기의 폐해(?)로 인해 여러 책과 함께 읽다보니 독파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내가 읽은 김금희 작가의 첫 소설이었고, 당시 최은영 작가의 <쇼코의 미소>와 더불어 예쁜 표지로 내 마음 속에 쏙 들어온 책이었다. 국어국문학과 수업에서 <쇼코의 미소>와 이 책을 묶어 젊은 작가들의 경향을 비교하는 발표도 했을만큼 참 아끼는 책이기도 하다. 그때도 최은영 작가와 김금희 작가 둘 다 참 좋은 작품을 쓰는 작가들이구나 느꼈지만 책을 완독하고 한참이 지난 지금도 책을 통해 느꼈던 뚜렷한 인상과 감정들이 이따금씩 내 마음을 물들인다.
<너무 한낮의 연애>는 김금희의 두 번째 소설집으로 표제작 [너무 한낮의 연애]를 포함하여 [조중균의 세계] 및 총 9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다. [너무 한낮의 연애]는 2016년 젊은작가상 대상을 수상했고, [조중균의 세계]는 2015년 젊은작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 책에서 가장 좋았던 단편을 꼽으라면 나 역시도 '평생 잊지 못할 캐릭터' 양희가 존재하는 [너무 한낮의 연애]를 꼽을 테다. 수상 여부를 떠나서 말이다. 그리고 [조중균의 세계], [세실리아]를 연달아 꼽을 것 같다. 개인적으로 가장 애착이 가는 단편은 독서 내내 괜스레 추악하고 어리숙했던 나의 대학 시절 편린을 보는 듯했던 [세실리아].
<쇼코의 미소>를 읽은 직후 이 책을 읽었기 때문에 본의 아니게 많이 비교를 하게 됐다. 최은영 작가의 순하고 무구한 문체에 비해 김금희 작가의 문체는 '착하지 않았다'. 인간의 속물적 특성을 종종 뒤집어 까발리면서 [세실리아] 속 '빙산이 녹고 녹아 무너져내릴 때까지 술을 마시는' 그때의 학생들처럼 아무렇지 않게 본질을 꿰뚫어 보고 그 본질을 조롱하고 때로는 하하 쓴웃음을 짓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그 건조하다 못해 때로는 무덤덤한 문체의 끝마다 오롯이 서서 자아를 내뿜는 캐릭터들이 돋보였다. 양희, 조중균씨, 세실리아, 이모가 그랬다. 이 캐릭터들이 좋았기에 김금희의 소설이 더 좋아진 기분을 부정할 수 없다.
지금은 김금희 작가의 첫 소설집 <센티멘털도 하루 이틀>을 읽고 있다. 첫 소설집을 독파하고 그녀의 신간도 서둘러 읽고 싶다. 감동받고 싶다.
"미안하다. 심한 말 해서." 필용이 사과했다. "선배, 사과 같은 거 하지 말고 그냥 이런 나무 같은 거나 봐요." 양희가 돌아서서 동네 어귀의 나무를 가리켰다. 거대한 느티나무였다. 수피가 벗겨지고 벗겨져 저렇게 한없이 벗겨져도 더 벗겨질 수피가 있다는 게 새삼스러운 느티나무였다. "언제 봐도 나무 앞에서는 부끄럽질 않으니까, 비웃질 않으니까 나무나 보라고요." _[너무 한낮의 연애] 중에서
시간이 지나도 어떤 것은 아주 없음이 되는 게 아니라 있지 않음의 상태로 잠겨 있을 뿐이라는 생각이 남았다. 하지만 그건 실제일까. _[너무 한낮의 연애] 중에서
세실리아는 바닥을 높인 다음, 얼음송곳으로 구덩이를 팠다. 밤에만 작업하고 그 과정을 동영상으로 찍는다고 했다. 세실리아가 한밤중에 부스스하게 일어나 구덩이 앞에서 바닥을 콕콕 찍는 장면을 상상했다. 으스스했다. "그러면 어떤 게 예술인 거야?" "어떤 거라니?" "여기 있는 구덩이야, 동영상이야?" "어차피 상관없어, 어떤 작품은 자신만을 위해서 만들기도 하니까." _[세실리아] 중에서
"설명하기 좀 애매한데, 구덩이였어." 그랬구나, 하는데 갑자기 눈물이 흘렀다. 나는 왜 우는지도 모르면서 울었다. 어쩌면 아주 오래전부터 이렇게 울고 싶었는지 모르겠다고 생각하면서. 찬호가 내 어깨를 흔들면서 왜 그래, 왜, 하고 물었다. 세실리아는 그렇게 파고 또 파고 들어가서 어디까지 파들어가고 싶었을까. 그곳은 어떤 고통의 바닥, 말로도 이미지로도 전할 수 없고 오직 행위로만 드러낼 수 있는 상처들이 엉겨 있는 바닥이겠지. 여기가 바닥인가 싶다가도 또다시 바닥이 열리는, 그렇게 만화경처럼 계속 열리는 바닥이겠지. _[세실리아]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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