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디 수잔
제인 오스틴 지음, 김은화.박진수 옮김 / 바른번역(왓북)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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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명의 영화를 재밌게 봤다. 이어서 읽게 됐는데 과연 제인 오스틴이다! 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그것도 당시 열여덟살 즈음 어린 나이였던 제인 오스틴이 이렇게나 당차고 멋진 여성을 주인공으로 완성한 처녀작이다. 읽을 가치가 충분한데 역시 제인 오스틴의 소설답게 재미있기까지 하다.


 욕망하는 여성은 종종 터부시된다. 최근 종영한 드라마 <비밀의 숲>에는 영은수라는 여성 캐릭터가 등장한다. 영은수는 전 장관이었던 아버지가 입은 억울한 누명의 비밀을 밝히기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고 달려들어 '영은수 또라이'라는 의미의 '영또'라는 별명까지 얻은 '욕망하는 여성 캐릭터'였다. 시청자들은 욕망하는 영은수에게 여타 다른 여성 캐릭터와의 차별점을 느꼈다고 굉장히 매력있다고 평했다. 레이디 수잔은 그러한 '욕망하는 여성 캐릭터'와 궤를 같이 한다. 21세기 한국은 2017년이 되어서야 욕망하는 여성 캐릭터를 드러내기 시작했는데, 레이디 수잔은 무려 18세기 저 멀고 먼 옛날 어린 외국 작가에 의해 진작 쓰여졌던 것이다. 그 점이 나를 두고두고 놀라게 한다. 캐릭터와 주제 의식, 내러티브까지, 제인 오스틴이 살았던 시대 상황을 고려해보면 굉장히 미래적인 소설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욕망하는 남성 캐릭터는 발에 치일만큼 많은데 욕망하는 여성 캐릭터는 왜 등장할 수 없고 멸시되어야만 하는가. 문학작품의 수많은 남성들은 여성의 얼굴과 몸을 품평한다. 그리고 품평을 남자의 당연한 본능이라며 뭉뚱그려 표현한다. 그렇다면 그 당연한 본능, 여성도 마찬가지로 지니지 않았겠는가. 여성이 사유재산을 가질 수 없던 시대, 여성은 당연히 '돈 많은' 남자와의 결혼이 중요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거기에 얼굴까지 잘생겨주시면 좋다, 라는 속내를 레이디 수잔은 거리낌없이 표현하고 있으며 문어발식 연애로 실천까지 해주신다. 이러한 레이디 수잔의 행동은 문자 그대로 속물적이다. 하지만 레이디 수잔 같은 여성 캐릭터는 여태 드물었다. 그러니 같은 여성의 입장에선 쾌감이 느껴질만큼 멋져보이기만 한다.


 영화에서는 프레데리카와 레지날드의 결혼 그리고 레이디 수잔 본인과 제임스 마틴의 결혼(맨워링 경은 애인으로 두고)이라는 해피 엔딩을 그녀의 빅픽처였던 것처럼 그려내서 즐거움에 물개박수를 쳤던 기억이 난다. 헌데 원작을 보니 레지날드와의 결혼(맨워링 경은 그대로 애인으로 두고)이 최선책이었고 제임스 경과의 결혼이 차선책이었던 것이 확실하다. 프레데리카와 레지날드의 연애를 가능성만 남겨둔 채 끝내버리고 결혼 장면은 없는 것도 그렇고, 레이디 수잔의 뜻대로 모든 작전이 수월하게 이뤄지진 않았던 셈이다. 어찌됐든 그녀의 최종 목적은 사교계 생활을 유지하고 말년을 즐거이 할 수 있는 돈이었으니, 역자의 말대로 레이디 수잔은 계획을 훌륭하게 달성해버렸다.


 완독 후 영화를 한 번 더 보고싶었다. 새삼, 케이트 베킨세일이 레이디 수잔을 굉장히 잘 연기해냈다는 생각이다. 친구 알리시아에게 존슨 경의 중풍이 더 악화되었으면 좋겠다고 태연히 농담하는 그 목소리를 다시 한번 듣고 싶다. 키득키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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