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러 가자고요
김종광 지음 / 작가정신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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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 작가정신의 신간을 미리 읽어볼 수 있는 '작정단 2기'에 선정되고 나서 처음 받은 책이다. 한국 소설을 외국 소설보다 자주 읽는 편이지만 아직 깊이가 한참 얕은 탓에, 책을 받아볼 때만 해도 김종광 작가의 책은 이름도 글도 낯설었다. 허나 걱정이 무색할만큼 웃음을 머금고 재밌게 읽었다. '김유정의 반어, 채만식의 풍자, 이문구의 능청스런 입담을 갖춘 작가'라는 평에 공감하는 바다.


 <놀러 가자고요>는 김종광 작가가 8년 만에 출간하는 연작 소설집으로, 2011년에서 2017년까지 잡지 지면에 발표했던 소설들 중 9편을 수록했다. 단편의 배경 대부분이 작가가 실제 나고 자란 백호리 '범골'을 무대로 했기 때문에, 농촌소설의 카테고리에 넣을 수 있겠다. '노인과 아이'의 상반된 캐릭터성을 보여주며 소설집의 시작을 열고 끝을 마무리하는 [장기호랑이], [아홉 살배기의 한숨]을 제외한 모든 단편의 주인공은 농촌 '범골'의 삶과 문제에 직접 맞닿아있는 노인, (그나마 노인축에 안 드는) 지긋한 어른, 서울에서 제 한몸 살 곳 못 찾고 귀향한 젊은이다. 그들이 구수한 사투리와 담백한 말투로 혼자 투덜거리거나, 서로 이야기하며 쏟아내는 말 속에 작가는 넷바둑, 스카이라이프, 스마트폰 등의 소재를 집어 넣어 시대 변화를 표현한다. 또한 삼풍백화점 붕괴 사건, 세월호 침몰 사고, 천안함 피격사건 외 실제 역사적 사건들을 언급하여 에피소드의 결을 풍성하게 만들고 농촌의 모습을 실감나게 살린다.


 책에 덧붙여진 노태훈 문학평론가의 작품 해설 '무방비로 방심하게 만드는'을 보면, 평론가는 이런 말을 한다. '말년의 삶과 농촌이라는 공간이 드러내는 독특한 정서는 회한과 체념의 중간 정도에서 묘한 활력을 보여주는데, 그것은 흔히 연륜이라고 일컫는, 생을 통해 축적된 온갖 경험의 끝자락에 이르러야만 가능할 것이다. 삶에 대한 기대가 사라진 자리는 쓸쓸하지만 그 곁을 지키고 있는 여러 사람을 통해 그들은 때때로 편안해진다.'라고. 난 여기서 '회한과 체념의 중간 정도에서 묘한 활력을 보여준다'는 말만큼 이 책을 정확히 표현한 말이 또 있을까 싶었다. '자식이 자랑할 만큼 되기가 겁나 힘든 거'라고 인정하고, 언제까지 농사일을 할 수 있으려나 싶어 농기계에 돈쓰기 아까워하고, 똥파리가 사는 것마냥 윙윙대는 것 같아도 도통 깜깜절벽이니 보청기를 끼고 마는 '회한'과 '체념'. 허나, "놀러 가자고요" 말하며 전화 주는 노인회장 김사또 조강지처 오지랖이 있고, 논 백 마지기 김백논에서 마이카 시대의 시류를 탄 김견인까지 특징대로 불리는 별명부자가 있고, 서너 입 이상 모이기만 하면 그 자리에 있는 사람을 제외한 온 동네 사람을 골라 짚단처럼 엮어내 돌려대는 뒷담화 콤바인이 있는 '묘한 활력'. 당장 앞집 이웃이 무슨 일을 하는지, 어떤 취미와 특징을 가졌는지 전혀 모르고 사는 대도시의 일원으로서 '범골'에서만 느낄 수 있는 소속감과 생생한 동질감이 부러울 지경이었다.


 범골의 역사를 뒤적여볼 수 있는 단편 [『범골사』 해설], 범골의 캐릭터 강한 인물들이 톡톡 튀는 단편 [범골달인 열전], 노인회장 마누라의 고충을 엿볼 수 있는 표제작 [놀러 가자고요]도 재밌었지만, 가장 재밌게 읽은 단편은 첫 번째로 등장한 [장기호랑이]다. 열 한살을 눈앞에 둔 어린이가 노인네들만 득시글한 장기에 빠져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담았는데, 이 어린이가 훈수 두는 노인들과 만나 설전을 벌이고 난동을 피우는 장면이 백미다. 낄낄 웃음 터뜨리면서 읽었다. 가장 웃겼던 장면들을 사진으로 첨부하고 말을 줄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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