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파이
파울로 코엘료 지음, 오진영 옮김 / 문학동네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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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지연 주연의 뮤지컬 <마타하리>를 본 적이 있다. 뮤지컬 감상 이후, 파울로 코엘료의 <스파이>는 오랫동안 꼭 읽으리라 벼르던 소설이다. 책을 완독하고 나니 뮤지컬 <마타하리>가 실화라는 명목 하에 얼마나 아름다운 러브스토리로 곱게 치장을 했었나 알게 되어 씁쓸함이 많이 남는다.


 실화와 가깝게 그려졌다는 책 속 마타하리는 내가 여태 알던 것보다 훨씬 더 안쓰러운, 유일한 사랑에 배신 당한, 친구와 인간관계 그리고 직업 모두를 잃은, 돈이 그저 필요했을 뿐인 댄서였다. '자신은 스파이가 아니다' 끝까지 결백을 주장하면서 차라리 창부라 불러달라고 했을 정도로 대담했던 동시에, 자유를 옥죄는 남편과 수동적인 삶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었을 뿐인 보통의 여성 마타하리. 뮤지컬 <마타하리>를 너무나 재밌게 봤던 사람의 입장에서 가장 안타까웠던 점은, 마타하리의 사랑이자 마지막까지 마타하리를 위해 목숨을 바쳤던 아르망이라는 캐릭터는 정말 철저하게 허구의 인물이었다는 것이다. 더불어 라두 대령은 마타하리를 이용해 승진할 기회만 노린 악덕한 땅딸보라는 것, 그리고 마타하리가 기소됐을 당시 마타하리는 자신의 유명세를 이미 이용할 수 없을 지경으로 하락세의 길을 걷는 예술가였다는 것. 마흔 한 살의 댄서는 시들어가는 젊음과 프랑스 내 좁아진 입지로 불안했고, 당장의 결백보다 대중으로부터의 사랑과 무대를 원했다. 그러한 상황에서 발로된 그녀의 진술이 결국 그녀를 죽음으로까지 몰고 갔지만, 그녀의 시점에서 밝힌 유년시절과 재판이 진행됐던 전시의 혼란을 두루 살펴본 독자라면 결국 최종 책임은 정부와 강대국이 일으킨 전쟁 그 자체에 있음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구체적인 증거 없이, 오직 추측성 정황 증거만으로 살해된 마타하리는 역사적 사건에 휘말린 비운의 인물이라 할 만하다.


 뮤지컬을 볼 때에는 마타하리와 아르망의 러브스토리에 집중하느라 뒤로 갈수록 흥미진진하게 감상했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이 책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인도네시아 거주 장교와 불행한 결혼생활을 하던 과거의 마타하리가 자신과 비슷한 처지인 안드레아스 부인을 만나는 장면이다. 안드레아스 부인은 마타하리로 하여금 본인의 불합리한 처지를 깨닫게 하고, 그 처지를 뒤엎도록 감화하는 인물이다. 결국 스스로 자살을 선택한 안드레아스 부인에게서 용기를 얻은 마타하리는 새로운 신분을 선택하고 제 2의 인생을 살게 된다. '마타하리'라는 이름 또한 안드레아스 부인의 본명이었다. 처음으로 남편과 가족 그리고 세상의 속박으로부터 자유로워진 마타하리를 볼 때, 독자인 나도 함께 자유로워지는 기분을 느꼈다.


 마타하리는 감옥 안에서 변호사에게 보내는 편지에 이렇게 쓴다. '나는 내가 저지른 죄로부터 도망쳤고, 나의 가장 큰 죄는 남자들이 지배하는 이 세상에서 자유롭고 독립적인 여성이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어쩌면 그녀가 가장 정확하게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그녀는 주체적인 삶을 꿈꿨고, 그에 세상은 그녀에게 형벌을 내렸다.


 인상 깊은 부분만 사진으로 추렸고, 그 중 마지막이 가장 마음에 와닿았던 문장이 담긴 사진이다. 책은 교보문고 전자도서관을 통해 읽었다.

"죄악은 신이 창조한 게 아니고, 우리가 절대적인 것을 어떤 상대적인 것으로 변형시키려 할 때 만들어졌어요. 우리는 전체를 보지 못하고 일부만 보게 된 겁니다. 그리고 그 일부가 죄와 규칙, 악에 맞서 싸우는 선울 결정하다보니 결국은 각자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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