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는 허벅지 다나베 세이코 에세이 선집 1
다나베 세이코 지음, 조찬희 옮김 / 바다출판사 / 2016년 3월
평점 :
절판




 '남자와 여자에 관한 유쾌한 담론', "여자라는 동물을 그렇게 몰라?"라는 홍보문구에 이끌려 책을 집어 들었다. <여자는 허벅지>라는 다소 성적대상화적인 제목도 반어법적인 비꼬기 방식인가보다 생각했다. 기성세대 작가에 속하지만 솔직하고 대담한 담론으로 알려져 있다는 다나베 세이코라는 일본 여성 작가가 이 에세이를 통해 기존 이론들을 비판하고 그에 대응할 만한 유쾌통쾌한 돌파구를 제시해 줄거라고 기대했었다. 완전무결한 페미니스트 작가의 이야기를 바랬다는 것이 아니라, 적어도 색다른 관점의 새로운 이야기를 해주겠지 기대했다는 뜻이다. 허나 기대와는 달리 보는 내내 속 터져 죽는 줄 알았다. 더 깊게 작가에 대해 조사해보니  그녀는 무려 전후 세대를 거친 1928년생 할머니 작가이며, 이 에세이 자체가 이미 70년대에 쓰여졌고 한국에서는 뒤늦게야 출간된 거라고 한다. 따라서 70년대 할머님 세대에서 보면 다나베 세이코의 담론이 주체적인 여성의 의견이었을지 몰라도 지금 시선으로는 현 시대에 뒤처지며 변화를 미처 따라가지 못해 한참 모자란 주장으로 느껴졌던 것이다. 가끔 '내던지고 싶은 잡소리'라고 여겨질 정도였다. 애초에 <여자는 허벅지> 출판사에서는 이런 구식 에세이를 한참이나 늦은 지금에서야! 왜! 한국에 소개해야겠다 결정하고 출간한 걸까. 서점가의 페미니즘 열풍에 숟가락을 얹어보고자, 그럴 듯해 보이는 책을 급히 선정하고 급하게 한국에 들여온 것이 아닐까 추측해 본다.


 책에 등장하는 '가모카 아저씨'라는 캐릭터가 있다. 다나베 세이코는 늘상 그를 옆집 아저씨 혹은 일종의 남사친인 것처럼 '가모카 아저씨'라고 칭하지만, 실은 다나베 세이코의 남편이다. 가모카 아저씨와 다나베 세이코가 서로 이야기하는 부분에서 윽, 하고 놀랄 부분이 많이 있었는데 예를 들면 이렇다. 마누라는 안아주기도 싫지만 젊은 아가씨를 품평하는 건 모든 남자의 본능이라고? 젊은 여자를 팔아넘기는 불량배 호색한 역할을 일생에서 한번쯤 하고픈 건 모든 남자의 잠재적 소망이라고? 남자가 섹스에서 필요한 준비는 (당연히 미혼의 젊은 여자와 할 거니까) 마누라에게 댈 핑계와 지갑이 전부라고? 젊은 여자는 분별력이 없고 모자란 부분이 있어 편하고 좋다고? 성적대상화가 버릇인 자신을 합리화하는 아재의 변명은 어쩜 70년대나 지금이나 지독히도 똑같은지. 난 가모카 아저씨의 이런 변명들을 들으며 근 오십 년 전과 현재 전혀 달라진 게 없구나 싶어 안타까운 마음이 컸는데, 다나베 세이코가 이 에세이를 연재할 당시 일본에서는 '가모카 아저씨'가 꽤 인기 있는 캐릭터였다는 비하인드를 듣고 정말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저 놀라울 뿐이었다. 일본 미디어가 퍽이나 부둥부둥해줬나 보지만, 21세기를 살아가고 있는 내게는 가모카 아저씨의 그 사상 좀 많이 역겨웠으니 재간둥이인 척은 이제 그만해줬으면 좋겠다.


그리고 책의 저자인 다나베 세이코도 옆에서 계속 가모카 아저씨의 편을 들거나, 답답한 주장을 펼칠 때가 많았다. 여자는 아이를 낳고 기르다 보면 빨리 상하기 때문에 잘 변할 수밖에 없다고, 여자는 배 나온 남자를 대부분 좋아한다고, 남자가 아이 이야기를 하며 가정에 신경 쓰는 모습은 영 별로라서 아내와 아이는 뒷전에 두고 살아야 한다고. 그럼에도, 가끔은 할머님의 옳은 말이 보인다. 역자의 말처럼 다나베 세이코는 주체적이고자 노력했고, 그 산물로 보수적이고 남성중심적이었던 일본 사회에서 이 정도의 분별력을 얻은 것이라고 판단된다. 문장 몇 개로 작가의 삶을 단정 짓는 건 굉장히 위험한 자세이긴 하다. 여러모로 실망한 부분도 많았지만, 또 그만큼 큼 한숨 푹푹 쉬며 여러가지 생각을 했던 에세이였다. 하지만, 거듭 말하지만, 가모카 아저씨는 싫다. 싫은 걸로 단정 짓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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