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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
피천득 지음 / 샘터사 / 1996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수필은 청자연적이다. 수필은 난이요, 학이요, 청초하고 몸맵시 날렵한 여인이다.' 교과서에서도 봤겠지만 너무나도 유명한 구절이다. 너무나도 유명한 수필이기도 하다. 수필은 필자에 따라 분위기가 달라진다. 이 책의 저자 피천득의 수필에서는 딸깍발이 선비 정신이 너무나도 깊게 베어있다. 추운 겨울에도 딸깍발이를 신고, 산을 오르내리는 그 선비의 뒷모습을 상상하면 할수록, 저자의 수필들은 고결하고 청결한 선비 정신을 짙게 풍긴다. 안분지족의 삶 속에 물질이란 한 낱 껍데기에 불과해 고답적 자세를 유지케 한다. 삶이란 정신의 풍요 속에 있는 것, 물질의 풍요란 욕망 덩어리 일뿐이다.
어린 시절의 순수함을 생각해봐라. 푸른 자연과 하나되기엔 너무 작은 뒷동산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뒷동산의 향긋한 공기는 대자연과 나를 연결시켜주는 좋은 매개자였다. 이런 추억은 언제나 나에게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도시 속에 찌든 인간에게 산림이 없더라도 산림욕을 한 것처럼 몸을 가뿐케 한다.
그 만큼 이 책에서 풍기는 정서는 순수 그 자체다. 교과서에 실려 유명한 '은전 한 닢'이란 수필은 아마도 이 책의 정서를 잘 나타내주는 듯하다. 동냥하는 거지의 은전 한 닢, 그것은 어린 시절 꿈에 부푼 희망의 집합체였을 것이다. 실리를 추구하기 위해서도, 물질을 위해서도, 누군가를 이기기 위해서도 아닌 단지 은전 한 닢을 소유하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자본주의 사회에 익숙한 우리에게 희망은 사라진지 오래인 것 같다. 물질의 수단에 불과한 정신, 희망, 마음 등은 이미 대가성 짙은 뇌물에 불과하다. 이익을 좇는 사회 속에 정이 사라진지는 오래다.
수필들을 읽으면 읽을수록 깊이 빠져 들어가는 마음을 낚아 챌 수 없다. 수필에 흠뻑 취하자 어느새 무대는 푸른 초원이고, 나는 줄어든 키를 보고 놀란다. 회상의 공간이었던 것들이 어느새 바로 앞에 있다. 무대 위의 주연들은 사라지고 나 자신이 주연이고 모두가 나를 위한 것으로 바뀐다. 이 책에서는 바로 세상이란 때론 살만한 곳이다라고 생각하게끔 만든다. 또 아련한 기억 속의 편린들을 퍼즐 맞추듯이 맞추게 하여 독자 앞에 나타나게 한다. 수필이란 이런 것이라고 말하는 것 같다. 자신의 생각과 감정에 의해 시공간은 변하고, 유유히 흐르는 글줄기는 풍성한 희망의 과실을 낳게 한다. 만끽함이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