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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보람 따위 됐으니 야근수당이나 주세요
히노 에이타로 지음, 이소담 옮김, 양경수 그림 / 오우아 / 2016년 5월
평점 :
품절
[아, 보람 따위 됐으니 야근 수당이나 주세요]
[★★★☆]
[당신은 무엇을 위해 살고 있나요?]
[2017. 1. 12 ~ 2017. 1. 14 완독]
삶은 남들과 똑같이 가는 것이 아니라 '내게 가장 어울리게'가는 것이니까!
앞으로 이루고 싶은 꿈은 꼭 직업을 통해 실현해야 하는가?
p98
정말 신성한 거죠. 인간에게 삶이란 결국 노동을 통해 가능해지는 거니까요. 하지만 누군가 "노동은 신성한 것이니 우리는 죽을때 까지 최선을 다해 노동을 해야한다."라고 말한다면, 그는 신성한 노동을 노예 노동으로 바꾸어 버리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모두 예술가다 中 p18>
어떻게 보면 대한 민국의 슬픈 클리셰라고 할 수 있겠다. 그냥 돈을 더 달라는 것도 아니고 일을 한 만큼만 달라는, 무려 법에 상세하게 적혀있는 의무를 다해달라는 의미인데 슬프게도 현실은 그렇지 않다. 삶을 지탱하는 신성한 노동의 보상이 '내 삶을 풍족하기 위한 재화'를 벌기 위한 것이 아니라 '노동의 보람을 찾자'라는 구호 아래 교묘하게 획책되어 왔다.
이러한 점을 고치기 위해 전태일과 같은 수많은 노동자가 피와 땀을 흘렸고 현재에 다다르게 되었다. 어떤 어른은 얘기 한다. 예전에는 인건비가 저렴해서 사업을 일으키기가 좋았는데 요즘은 비싸서 사업을 하기 쉽지 않다고 말이다. 가만히 듣다보면 '아~ 예전에는 사업을 할만했구나...'라는 생각 와중에 '그러면 예전에는 노동자 지금보다 올바른 대우를 더 받지 못했다는 소리가 아닌가?'를 깨달았다.
정당한 일에 대한 댓가를 주고 받는 것을 생각하지 않고, 그저 어떻게던 자신은 일을 하지 않고 사람을 갈아넣어 돈을 벌 궁리만 하고 있으니 이러한 인식은 분명 잘못되었다. 요즘은 외국인 노동자가 정당한 댓가를 받지 못하고 (아마 불법체류나 서류상의 문제로 인해 현실적으로 해결하기 힘든 분들이) 저렴한 노동 시장을 형성하고 있는 것을 쉽게 접할 수 있는데, 분명 이러한 점도 문제가 있다.
대부분의 회사는 야근을 '당연'한 것으로 여긴다.
p19
'일하면 정당한 댓가를 받는다.'는 지극히 당연한 소리를 지극히 당연하게 한 것에 불과하다. (p18)는 작가의 말에는 이러한 문제에 대해 개개인이 나서서 고치기에는 한계가 있음을 지적한다. '내가 돈을 주지 않으면 어디서 니가 돈을 벌거야?'라는 고압적인 자세의 (일부?) 사용자와 추가적인 업무를 당연하게 여기는 시스템에 물들어 버린 주위 고용자(노동자)로 인해 우리는 매일 매일 야근에 시달리고 시간에 허덕인다.
잠깐 생각해봐도 개개인의 힘이 미치기 힘든 큰 문제이다. 당연하게 되어야 할 퇴근 시간이 칼같이 제시간에 퇴근하는 칼퇴근이 되어 주변 동료의 따가운 시선을 받아야 되고, 이전에 며칠안에 끝나지 않을 일을 퇴근 시간이나 마감 하루 전날에 던져주면 당연히 시간에 쫓길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여기에 두사람, 세사람이 해야할 일을 한사람에게 몰아주는 '사람을 갈아넣는' 비정상적인 노동의 구조, '절이 싫으면 절을 떠나라!'는 고압적인 자세의 사용자와 일은 그만 둬서 막상 이직할 길이 막막한 유연하지 않은 노동 시장, 고용 안정성 등은 야근에 어떠한 반박도 할 수 없게 만든다.
인생의 레일이 딱 하나 뿐이고, 그 레일을 벗어났다고 해서 갑자기 삶이 어려워 진다면 이 사회가 잘못된 것이다.
대부분 달력에 평일이라고 표시된 날에는 예외 없이 전부 출근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말도 안되는 상황을 전제로 계획을 세운다.
p28
여기에 목소리를 내기 위해 만들어진 '노동조합'은 만드는 과정부터 순탄지 않을 것이고 노동자의 목소리를 내는 대표는 분명 인사에서 불리한 입장에 처해질 것이다. (아 여기서 노동조합에 폐해는 다루지 않겠다.) 상부가 하부를 쥐어짜내어 것은 '성과'라는 이름 아래 감춰지고 이러한 일을 감독해야 할 국가는 침묵하거나 동조한다. (사실 사명감을 가지고 불합리를 해결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분도 많지만 한계가 있다.)
그래서 우리는 이러한 불합리를 자신의 몸 속 깊숙하게 받아들이는 의식을 '사회인'이라는 이름으로 만들어 놓았다. "사회인으로 상식이 없어!"라는 말은 왜 이러한 일에 니가 뭔데 의문을 가지지? 불합리 하면 다른 일을 찾아! 라는 말을 하고는 하는데, 그럼 당신이 한달에 갑자기 100만원만 받고 '회사 시스템이 바껴서 이제 이렇게 줄거야'라고 하면 가만히 있을 것인가? (오 ~ 그래 능력이 출중해서 서로 모셔 가려고 할테지?) 대부분 아닐 것이다.
매일같이 '선진국은 이렇게 한다.'라며 좋아보이는 시스템은 모두 도입하려고 하면서, 진짜로 필요한 노동에 관한 공부는 아무것도 설명해주지 않는다. 급여 담당자도 헷갈려하는 월급 계산 방식을 시스템에 맡겨 버리고 '회사를 믿어라!'라는 말은 틀렸다. 당연히 계약서에 명시된대로 월급을 깔끔하게 줘야하고 의문을 가지면 답해 주어야 한다. 그리고 불합리한 노동은 법을 뜯어 고쳐 더 좋게 만들어야 하는 것이 진짜 '선진국'이고 '사회'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전부 반대로 하고 있다는게 문제지만...)
쩝... 슬프다. 실업률은 매년 최고치를 갱신하고 있고, 일을 하고 있는 사람도 안정성은 떨어지며, 그 일도 비정규직/ 인턴으로 싸게 부려지고 있으며, 이 모든 정글을 지나 삶의 내리막에 와서도 할 수 있는 일은 없다싶이 하니 어디서 부터 손을 대야 할까?
'야근'은 이러한 현실적인 문제와 동시에 벌어지는 노동 폭력이라고 해야겠다. 제발, 모두가 이러한 문제를 인식하고 고치려고 했으면 좋겠다. 우리가 정치에 관심을 가져하는 이유가 이러한 법을 만들고 고치고 하는 일에 밀접한 관련이 있는 사람들이 그들이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는 모두 리더가 될 수 없다. 소수의 사람 빼고는 모두 어딘가에 고용되어야 하기 때문에 '노동법'에 대한 교육도 알아야 하지 않을까? 아무리 복잡하더라고 기본은 알고 있어야지...
높은 서비스 수준을 유지하기 위해서 종업원이 지나치게 무리하고 있어 문제야.
책은 노동에 대한 인식 뿐만 아니라 우리가 가진 이상한 의식도 지적하고 있다. 물론 장사를 하는 사람이 손님을 끌어모으기 위해 친절한 것은 영업 전략이자 상도덕이다. 하지만 하루 종일 일에 시달리는 사람이 '항상' 친절하기는 힘들 수도 있다는 점을 기억해 줬으면 싶다. 백화점에서 하루 종일 미소짓는 노동자가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는지는 근래에 들어 '감정 노동'이라며 논의가 되고 있다.
쉽게 말하자면 서로간의 예의를 어느 정도 지켜주자는 말이다. 적당한 선을 지키면 서로간에 감정이 상할 일도 없다고 생각하거든. 노동에 대한 다양하지만 당연한 측면에 대해 '현실에서는 일어나기 힘든' 쿨함을 장착한 <아, 보람 따위 됐으니 야근 수당이나 주세요>는 슬픈 우리의 자회상이라 하겠다.
당신에게 묻는다.
일을 위해 사는 삶이 옳은가?
중요한 것은 세상의 평가 기준이 아니라 나의 평가 기준이다. (중략)
내게 가치관을 강요하는 회사도 상사도 동료도 어차피 타인이다. 타인의 삶을 사는 행위는 인새의 최대 낭비다. 자신의 가치관에 솔직해지자. 좀 더 나 자신을 위해 살자.
p166
'무이야, 다 뻔한 소리 잖아'라고 생각할 사람도 있으리라. 그렇다면 이 세상을 아주 올바르게 인식한 사람이다.
p1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