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닥치는 대로 끌리는 대로 오직 재미있게 이동진 독서법
이동진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7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1시간에 1권 퀀텀 독서법', '1만권 독서법', '48분 기적의 독서법'.
시중에 널리 팔리고 있는 독서법 책들은 경쟁적이고 분석적이다. 마치 남보다 더 많이 읽어야 하는 게 핵심이고, 그렇기 위해서는 조금이라도 빨리 활자를 소화해야한다고 주입하는 느낌이다. 하지만 제목에 핵심을 모두 녹인, 그래서 너무 긴 <닥치는 대로 끌리는 대로 오직 재미있게 이동진 독서법>(이하 <이동진 독서법>)은 확실히 결을 달리 한다. 작가 이동진은 그저 '재미'란 요소가 가장 큰 독서의 목적이자 이유라고 편하게 이야기한다. 이동진은 믿고 보는 유명 영화 평론가이자, <빨간책방> 팟캐스트를 진행하는 '적'임자며, 북콘서트나 라디오 등에서 맹활약중인 DJ다. 하지만 그를 설명할 수 있는 본질적인 수식어는 '독서광'이다. 1만 7천 권의 책을 갖고 있고, 본인 스스로 책에 관한 한 많이 실패한 사람이라고 소개한다. 시행착오가 많았음을 인정하고, 시간과 돈을 무척 투자한만큼 책을 고르는 법, 읽는 법을 깨달았다는 말에 평소보다 더욱 신뢰할 수 있었다. 마치 독서에 대한 엄청난 비기를 전수해줄 것 같은 달콤한 꾐보다는 솔직하게 본인의 경험에 빗대어 해주는 조언이 훨씬 유익하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책을 읽는 내낸 책을 좋아하는 덕후의 심정이 가득하단 걸 느낄 수 있었다. 1부 <생각-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에서는 서재 꾸미기, 책을 고르는 세 가지 방법, 문학 독서의 이유, 읽고 쓰고 말하기의 가치 등을 짧은 호흡으로 가볍게 풀어낸다. 다른 독서법 책들이 실용서라면, <이동진 독서법>은 책을 너무나 사랑하는 덕후의 에세이같았다. 책을 통해 본인이 얻는 행복이 무척 즐거워서 타인에게도 추천하는 설레는 마음이랄까? 2부 <대화- 읽었고, 읽고, 읽을 것이다> 파트는 빨간책방 최고의 호흡을 자랑하는 씨네 21 이다혜 기자와의 인터뷰로 꾸며졌다. 독서에 대한 가치관, 오해, 노하우를 흥미진진하게 논하는 걸 보고 있으면 덩달아 책에 대한 애정이 커졌다. 몰래 전해주는 독서 비법의 결정체는 3부 <이동진 추천도서 500>이다. 감각과 감정, 대화와 독백, 법칙과 체제, 악과 부조리 등의 테마로 시, 소설, 예술, 우주, 법 등에 관한 책을 차근차근 정리해줬다. 독서의 숲에서 길을 잃었을 때 믿고 따라갈 북극성 같은 리스트였고, 한권씩 도전해볼 의욕에 불탔다.
결국 책에 대해서 ‘끝까지’ 책임을 지려고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겁니다. 그럴 필요가 없어요. 미안해할 것도 아니고 부끄러울 일도 아닙니다. 다 읽지 못한 책을 책장에 꽂아둔다고 큰일 나지도 않고요. 버리시거나 헌책방, 중고서점에 팔거나 그 책을 좋아할 것 같은 사람에게 선물해도 좋겠지요. 그저 안 읽힌다면, 흥미가 없다면 그 책을 포기하시면 됩니다. 굳이 완독하지 않아도 됩니다.
다시 한 번 누군가가 “이동진 씨, 왜 책을 읽으세요?”라고 묻는다면, 저는 이렇게 답을 합니다. 재미있으니까요. 사실 제게는 이게 가장 중요한 이유입니다.
공감 가는 부분이 많았지만, 책을 읽는 과정에서 한번도 슬럼프를 겪지 못했다는 말에 놀랐다. 본인의 관심사가 아닌 부분도 있을 수 있고, 재미없는 책이 걸릴 확률이 분명 존재할 텐데도. 하지만 그의 경험에서 비롯된 독서 비법을 엿보고 나니 이해가 가더라. 이동진은 책을 사랑하지만 숭배하진 않기 때문에 흥미를 잃지 않았다. 책에 대한 과도한 책임감과 주변의 조언에 휘둘리기 보다는 그저 '재미'를 가장 중요한 요소로 생각했다. 완독을 하지 않아도 되고, 책에 낙서는 물론 찢어도 상관 없다고 조언한다.
문득 나의 독서 습관을 돌이켜 봤다. 물론 책을 읽고, 팟캐스트로 생각을 공유하고, 블로그에 나의 생각과 감정을 정리하는 데 익숙하지만 어느 순간 독서가 버거웠던 적도 분명 있다. 빨리 책을 읽어야지 팟캐스트를 들을 수 있다며 진도를 못 따라가 초조하기도 했다. 야근과 출장에 치여 독서량이 줄면 내가 게으르다고 자책했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독서는 한번도 내게 강제성을 띈 업무인 적이 없다. 책을 느리게 읽는다고 혼이 나는 것도 아니고, 많이 읽는다고 돈을 주는 것도 아닌데. 그저 내 인생을 조금 더 윤택하게 만들어줄 유익한 취미활동인데 너무 진지하게 생각했던 것 같다. 그저 재밌으면 그만인 것을!
쌓는 독서라고 하면 내가 내 세계를 만들어가는, 내 관심사에 맞는 책들, 내가 되고 싶은 사람이 될 수 있게 해주는 책을 읽을 것 같고요. 허무는 독서는 내가 갖고 있던 고정관념을 깨거나 다른 생각을 받아들이게 하는 경우일 텐데요. 쌓는 독서를 게을리하면 '내 것'이 안 생기고, 허무는 독서를 안 하면 내 세계가 좁아지거든요. 이 두 가지의 균형을 어떻게 맞추시는지요. 새로 나온 책들을 살펴보실 때, '이건 내가 좋아하겠다' 생각해서 읽으시는 책이 있을 것 같고, '내가 모르는 거다' 싶어서 읽으시는 책이 있을 것 같거든요. 균형을 생각하시는 편인가요. - 이다혜
균형을 이성적으로 생각하는 것 같지는 않고요. 다만 본능적으로 넓이를 지향하는 부분이 있어요. - 이동진
3.49/500. 이동진의 추천 도서를 꼼꼼히 살펴보며 다음에 읽을 책을 골라봤다. 여전히 기록하고 줄세우고, 정리하는 나의 '준강박' 독서 습관은 바뀌지 않았다. 하지만 <이동진 독서법>을 읽고 분명 긍정적인 방향으로 바뀌었다. 독서를 더욱 사랑하게 되었으며, 갈팡질팡 흔들렸던 독서 철학도 조금 더 확고하게 자리잡았다. 이다혜 작가의 생각처럼 '쌓는 독서'와 '허무는 독서'의 비중도 조절해 보려고 다짐했다. 내 관심사에 맞는 책을 '깊이' 파는 게 '쌓는 독서'라면, 내가 갖고 있던 고정 관념을 깨거나 다른 생각을 '넓게' 받아들이는 '허무는 독서'다. 과학이나 예술처럼 무지한 분야를 처음 접할 때 오는 호기심, 신비로움은 제법 유쾌한 감정이다. 당연히 모든 책이 기억에 남고 인상적일 수 없다. 그럴 때는 과감히 포기하거나, 다른 책에 관심을 기울여도 된다. 독서의 주체는 타인의 시선이 아닌 나만의 취향이니 말이다.
회사/집/출퇴근길에 읽을 책을 나뉘어 고르는 순간부터 독서의 재미는 시작된다. 비록 두서없을지라도 책을 읽고 난 나만의 감정을 정리해보고, 인상깊은 구절은 스마트폰으로 촬영해보고, 독서리스트를 차곡차곡 쌓아가는 재미도 빼놓을 수 없다. 여전히 책을 고르는 순간은 즐겁고, 책을 펴면 설레고, 책을 다 읽으면 뿌듯하다. 먼훗날 나만의 서재가 생긴다면 작가순? 장르순? 흥미순? 어떻게 배열할지를 벌써 고민하는 김치국도 마셔본다. 그만큼 책은 나의 훌륭한 동반자이자, 쉽게 접할 수 있지만 그리 가볍지 않은 친구다. 가장 가성비가 좋고, 재미의 지속성이 높은 편에 속하는 '독서'를 취미로 이어갈 수 있어서 정말 행복하다. 어린 시절 머리맡에서 동화를 읽어주시며 책과의 첫만남을 주선해준 어머니께 새삼 고마움을 느낀다. 나도 언젠가 내 아이와 책이란 훌륭한 매개체를 통해 도란도란 수다를 떨고 싶은 꿈이 모락모락 피어난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특징을 보면 독서 행위만 좋아하는 게 아니고 책과 관련된 모든 것을 다 좋아하는 것 같아요. 예를 들어서 시간이 남는데 근처에 서점이 있다면 자연스럽게 들어가죠. 꼭 책을 사지 않아도 되고 표지만 보고 쓱 구경만 하고 나와도 그 사람은 마음이 흡족해집니다.
책과 관련된 모든 것은 곧 독서라고 저 역시 생각해요. 책을 꽂아두는 순간, 책을 빼서 보는 순간도 독서 행위라고 생각하는 겁니다. 그래서 서재를 자기만의 방식으로 만들고 꾸미는 것도 중요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