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뒤바꾼 아이디어 100 100 IDEAS 시리즈 6
데이비드 파킨슨 지음, 이시은 옮김 / 시드포스트(SEEDPOST) / 2015년 10월
평점 :
절판


영국 디자인 및 예술 전문 출판사 로런스 킹(Lawrence King)은 시리즈로 핵심 개념을 정리한 책을 줄줄이 펴냈다. 혁신적인 아이디어 100가지를 총망라한 시리즈물은 이론을 탄탄히 쌓기 딱 좋아보였다. (아울러 표지 디자인도 매우 매력적!) 건축, 광고, 사진, 예술, 패션. 관심은 있지만 너무나 얕은 지식에 진입장벽을 느꼈지만, 영화만큼은 조금 달랐다. 나름 대학교 교양 강의로 몇몇 개념을 배웠고, 가장 흔하게 시간을 떼우는 취미 생활이 영화인만큼 조금은 덜 부담스러운 마음으로 책을 읽었다. 120년 영화사를 고작 100개의 키워드로 빠르게 이해한다는 건 오만에 가까운 일이다. 하지만 천만 관객 돌파 영화가 심심찮게 등장하고, 대표적인 취미생활이자 일상으로 다가온 영화를 조금 더 깊이 즐길 수 있는 길잡이 정도는 될 것 같았다. (물론 배경지식이 없는 상태에선 조금 이해할 수 없는 전문적인 용어들이 자주 등장해 아쉬웠다.)

1895년 50초짜리 활동사진은 이제 3D 입체영상을 넘어 4D 블록버스터를 함께 체험하는 수준까지 발전했다. 미국과 유럽으로 양분되던 영화계 힘의 논리는 다양한 제3세계 영역으로까지 다양화되었다. 아카데미 시상식부터 소규모 독립영화제까지 다양한 시각으로 영화는 대중화되었고, 2017년 오늘도 여전히 수많은 걸작과 망작이 쏟아지고 있다. 환등기, 잔상효과, 키네토스코프에서 시작해 멀티플렉스, 디지털비디오, 컴퓨터 합성영상까지 이어지는 수많은 아이디어를 따라가다보면 짧지만 폭발적인 영화의 진일보를 엿볼 수 있다. 게다가 다양한 사례와 생생한 사진들도 가득 담겨 있어 지루하지 않았다. 시각, 청각, 후각, 촉각, 미각(영화관 팝콘을 생각하면.) 오감을 자극하는 영화의 본질은 특히 이미지다. 움직이는 사진을 보는 원초적인 영화의 정의를 떠올리면 이렇게 다양한 사진 자료의 첨부는 책을 더욱 다채롭게 꾸몄다.

책을 읽으며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었지만 새록새록 영화에 얽힌 추억들이 떠올랐다. 어린 시절 책으로만 읽던 신비한 해리포터를 거대한 단오극장 스크린에서 처음 봤을 때 느꼈던 위압감과 신비함은 잊을 수 없다. 어찌나 기대를 했으면 개봉 날짜를 당시 버디버디인가, 라이코스인가 비밀번호로 설정해둘 정도였다. 대학교 교양수업 <영화의 이해>에서 발랄한 러시아 교수님이 흥미진진하게 <라쇼몽>을 해설해 주던 것도 생생히 기억난다. (그때 이 책을 읽었더라면 시험 공부가 더 편했을 텐데.) 한주간의 고된 회사일, 집안일을 마치고 나서인지 꾸벅꾸벅 졸던 심야 영화에도 부모님은 싫지 않은 분위기였다. 지금 생각하면 단순히 영화가 재밌고, 흥미로운 걸 떠나서 그저 같이 취미생활을 즐긴다는 것 자체가 의미있고 즐거우셨나보다. 지금은 나란히 푹신한 쇼파에 기대어 극장 동시개봉 IPTV 영화를 보며 야식을 먹는 사소한 시간이 무척 행복하다.

영화만큼 부담없고 가성비가 좋은 취미생활도 없다. 만원 언저리에 2시간 넘게 집중할 수 있게 도와주는 오락거리는 딱히 떠오르지 않는다. 게다가 간혹 만나는 인생을 바꿀만한 명작을 만나는 재미는 놓칠 수 없다. 물론 영화 자체의 질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그 영화를 볼 때의 상황, 같이 본 사람, 여러가지가 뒤섞인 추억은 그것만으로도 양질의 추억으로 남는다. 마치 용두사미 반전 영화 <클로버필드 10번지>가 인생을 뒤바꾼 가슴 떨리는 영화로 기억되는 것처럼. 시험을 봐야해서 달달 외우는 입장이 아니라 그저 취미생활로 영화를 맞이하니 편하게 읽고 즐기기 좋은 책이었다. 알면 알수록 더 즐거움이 커지는 건 모든 콘텐츠에 적용되는 말이니, 사소한 촬영 기법, 편집 테크닉, 장르 등을 알아두니 든든하다. 다음에 만날 영화가 어떨지 모르지만 적어도 2%는 더 재밌게 다가올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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