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안녕 주정뱅이
권여선 지음 / 창비 / 2016년 5월
평점 :
많은 사람들은 술을 마신다. 자의든 타의든, 살아가면서 술을 접하지 않고는 자라기 어려운 게 한국 사회다. 무언가를 잊기 위해서, 아니면 무언가를 기억하기 위해서 부어라 마셔라 소리친다. 대학교에 들어가도, (혹은 고등학교 수학여행따위의 단체 여행에서가 먼저일지도.) 회사에 들어가도 환영은 언제나 똑같다. 술을 마시며 다같이 하나됨을 외치고, 누가 먼저 나가떨어질지 내기라도 하듯 강권하고 잔을 돌린다. 개인적으로 술을 즐기는 타입은 아니지만, 어떻게든 버티고 지내고 있다. 때론 친한 친구들, 가족과의 편한 한두잔으로 기분 좋은 대화를 이어가기도 한다. (그래서일까? 기분 좋고 편한 분위기에서 오히려 잔뜩 취하는 편이다.) 결국 문제는 '술'이 아니라 '술자리'다. 수직적이고 강압적인 분위기가 술이 더해지니 가속도가 붙는 것이지, 결국 스트레스를 주는 것은 사람들이다.
권여선 작가의 소설집 <안녕 주정뱅이>에도 술 마시는 장면이 빠짐없이 등장한다. 이들은 각자 다른 이유로 술을 마시고, 취하며, 후회하고, 그리워한다. 아이를 빼앗기고 술을 마시는 사람, 동창을 만나 학창시절을 추억하며 섞어 마시는 사람들, 식사 후 커피잔에 소주를 마시는 작가. 다양한 이들의 내면을 드러내는 데 술은 빠질 수 없다. 결국 그들이 처한 비극적인 상황때문에 그들은 주정뱅이가 된다. 술이 아니라 주위를 둘러싼 아슬아슬한 위기와 불행들이 그들을 주정뱅이로 만든다. 과연 소설속에서 벌어지는, 하지만 실제로도 충분히 잃어날 수 있는 상실과 이별을 상상해본다면, 나도 어쩌면 '주정뱅이'가 될 수 있겠구나 싶더라. 산다는 게 그만큼 끔찍하지만, 그래서 역설적으로 아름다울 수 있다는 걸 엿볼 수 있는 소설이었다. 언젠가는 나도 소주가 쓴 게 아니라 달 게 느껴질 수 있을까 모르겠다. 적어도 고독하고 괴로울 때 술의 힘을 아예 빌리지 않겠다고는 다짐할 수 없지만, 함께 술을 마셔줄 누군가가 있으리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