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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려라, 아비
김애란 지음 / 창비 / 2005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2012년 가장 인기 있는 젊은 작가 김애란. 그녀의 글, 특히 단편에는 누구나 공감 가능 한 소재가 절절하게 녹아있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묘한 매력을 느끼며 이 조그마한 글 뭉치에 끌리나보다. 간결한 활자 안에 사람들의 추억과 연민이 스며들어있어 있는 내내 웃음이 끊이질 않았다. 비록 그것이 조소일지라도 '아버지'와 '자취방'이라는 두 가지 키워드로 요약되는 <달려라 아비>는 끊임없이 달렸다. 9편의 단편을 묶은 이 책은 신기하게도 닮았다. 숨기고 싶은 아픔과 숨길 수 없는 외로움을 애써 외면하지 않고 작가는 당당하게 맞선다. "그래서 어쩌라고?" 세상에 태어나 겪는 감정들에 솔직한 모습을 보이는 주인공은 제 나름대로 방식을 찾아 나선다. 벽면에 정직하게 포스트잇을 덕지덕지 덧붙여 나가거나, 수족관 안에서 끊임없이 잠수를 하거나, 잠 못 드는 수만 가지 이유를 떠올리거나, 아니면 스카이 콩콩을 타거나!
"내겐 아버지가 없다. 하지만 여기 없다는 것뿐이다. 아버지는 계속 뛰고 계신다. 나는 분홍색 야광 반바지 차림의 아버지가 지금 막 후꾸오까를 지나고, 보루네오섬을 거쳐, 그리니치 천문대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 모습을 본다. 나는 아버지가 지금 막 스핑크스의 왼쪽 발등을 돌아,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의 백십번째 화장실에 들러, 이베리아반도의 과다라마산맥을 넘고 있는 모습을 본다. 나는 깜깜한 어둼속에서도 아버지의 모습을 잘 식별할 수 있는데, 그것은 아버지의 야광 바지가 언제나 반짝이고 있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뛴다. 물론 아무도 박수 쳐주지는 않았을 것이다."
<달려라 아비> 中
김애란 소설 속 아버지는 전형적인 대한민국 중년 남성의 모습이다. 세상에서 가장 나쁘면서 불행한 사람이기도 하고, 직장이 아니라 공원에 나가 있기도 한다. 텔레비전 앞에 앉아 아무런 목적 없이 앉아계시기도 하고 아들을 위해 끊임없이 썰을 풀어내시기도 한다. 물론 '넌 인마, 문장이 안돼!'라는 독설을 함께 날리시며 말이다. 우리 시대 아버지들은 항상 외롭다. 가장이라는 무거운 짐을 어깨에 홀로 짊어지고 '남자'라는 하나의 굴레에 얽매여 끙끙 앓는 것마저 독고다이다. 그 무거움에 질려 누군가는 도망가고 다른 누군가는 도망가지 못해 버틴다. 가족이라는 하나의 신념을 가슴에 품고. 물론 그것도 아닌 비겁한 남자들도 많은 게 현실이지만 말이다.
문득 아버지와 단둘이 술을 마신 적이 언제인가 기억이 나지 않는 내 모습도 부끄러웠다. 아버지는 소주 한 잔을 하고 싶어 외식하러 가는 길엔 항상 걸어가신다. 물론 혹시나 몸에 좋지 않은 술을 아들에게 권하기 미안하신지, 아니면 부끄러우신지 당당하게 권하지도 못하신다.
"한잔할래?", "몸 생각해서 술은 적당히 마셔야 한다."
그렇게도 밖에선 술을 마시며 원샷을 외쳐대는 나도 뭐가 부끄러운지 아버지, 아니 아빠 앞에서는 홀짝홀짝 잔에 입만 대곤 말았다. 왜 나는 아버지의 수줍은 대화 신청을 더 수줍게 거부하고 도망쳤던 것일까? 아버지는 내게 '사내 대 사내'로 소통하고 싶어하셨다. 비록 사내답지 못한 방식이긴 하지만.
이제는 내가 아버지를 피해 달리고 있다. 바쁘다는 핑계로 애써 자위하면서 나는 부지런히도 달리다. 멀어진다. 아니 사실 아버지와 가까워지고 싶어 나는 제자리 뛰기를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버지의 허연 매리어스가 더 늘어나기 전에 포장마차에서 소주를 한 잔 꼭 마셔야겠다. 너무 TV 속 이상적인 모습일까? 차라리 안방에서 나란히 쥐포와 오징어를 구워서 질겅질겅 씹으며 이야기를 나눠야겠다. 항상 소나무처럼 커 보였던 아버지가 더 이상 작아지시기 전에. TV 드라마를 보며 엄마보다 더 울컥해서 애써 담배를 핑계로 자리를 뜨는 아버지의 눈물이 마르기 전에!
"당신이 만약 편의점에 간다면 주위를 잘 살펴라. 당신 옆의 한 여자가 편의점에서 물을 살 때, 그것은 약을 먹기 위함이며, 당신 뒤의 남자가 편의점에서 면도날을 살 때, 그것은 손을 긋기 위함이며, 당신 앞의 소년이 휴지를 살 때, 그것은 병든 노모의 밑을 닦기 위함인지도 모른다는 것을. 당신은 이따금 상기해도 좋고 아니래도 좋다. 큐마트, 세븐일레븐, 패밀리마트는 모른다. 편의점의 관심은 내가 아니라 물이다. 휴지다. 면도날이다. 그리하여 나는 편의점에 간다. 많게는 하루에 몇번, 적게는 일주일에 한번 정도 나는 편의점에 간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그 사이, 내겐 반드시 무언가 필요해진다."
<나는 편의점에 간다> 中
대학교 신입생 시절 나는 공을 차고 술을 마셨다. 문득 내가 돌아가야 할 수원은 신촌에서 원주보다 더 멀게 느껴지는 기이한 경험을 했다. 어렵사리 데이트하러 간 친구에게 부탁해 고시원에서 하루를 보내기로 했다. 설렜다. 편안하지만 익숙함에 질린 집이 아닌 공간에서 하룻밤을 보낼 수 있다는 생각에 기뻤다. 술기운이었나 보다. 발도 편하게 못 뻗고 누워야 하는 (아쉽게도 내 친구의 경험이다. 나는 쭉 뻗을 수 있었다.) 좁디좁은 방 안에 들어가는 순간 나는 어지럽혀진 내 방이 그리웠다. 공동 샤워실 사용은 박태환의 수영 경기 스타트보다 눈치 싸움이 치열했고 암묵적인 룰이 존재하는 것 같았다. 조용했지만 조용하지 않았다. 적막 속에도 건너편 방의 사생활은 여과 없이 벽면을 타고 흘러 넘어왔고 나도 모르게 귀를 기울였다.
어느덧 대학교 3학년. 군대를 다녀오고 전공 수업을 핑계로 가까운 거리에 자취방을 구했다. 할머니가 살다가 돌아가신(돌아가신 그곳이 고향인지, 하늘나라인지 옆집 할머니의 수다로 얼마 전에 알았지만.) 15평짜리 원룸이었다. 대구 기온을 뛰어넘는 섭씨 38도의 찜질방 수준의 바닥, 곰팡이가 하얗고 까맣게 알록달록 피어나는 천장, 악 소리가 나게 뜨겁거나 혹은 헉 소리가 나게 차가운 물만 나오는 샤워기. 시간이 흐를수록 단점들은 보였지만 나는 꿋꿋이 버티고 적응해나갔다. 신선이 된 기분이랄까? 요리에 취미가 없는 20대 중반 남성에게 식사는 생존이었다. 자연스레 3분 요리에 내 건강한 몸을 맡기고 나는 아직 돌도 씹어먹을 나이라며 합리화를 시켰다. 무엇보다 힘든 것은 의식주가 아니라 외로움이었다. 여자친구도 있고 친구들과 바쁘게 살아갔지만 조용한 방에서 눈을 감고 뜨는 순간 나는 혼자였다. 문득 고시원의 시끄러움, 번잡함이 그리워지기까지 했다.
그래서일까? 편의점은 내게 일상적인, 아니 필수적인 공간이 되어버렸다. 자연스럽게 GS25 문을 열고 들어가 삼각김밥 코너를 지나간다. 몸에 좋지 않은 불량 쌀덩어리란 뉴스를 스마트폰에서 본 지 얼마 안 돼서 내려놓는다. 1+1 초코 우유를 집어들었다가 145Kcal라는 글자가 '접근금지'로 느껴져 손을 뗀다. 깔깔거리며 라면에 밥을 말아 먹는 고등학생 무리를 보며 컵라면도 유심히 살펴본다. 수많은 종류 탓에 우유부단한 나는 결국 고르지 못한다. '수입 맥주 특별전!' 광고에 눈이 번쩍 뜨이지만 혼자 궁상맞게 무슨 술이냐는 생각과 함께 아직 냉장고에 따지도 않은 막걸리도 생각났다. 자연스레 나는 다시 빙빙 돈다. 같은 공간을 멍하게. 쓰지도 않을 애물단지 콘돔, 집에 하나 있지만 꼭 사두어야 할 것 같은 칫솔, 달지 않고 딱딱해만 보이는 초록색 바나나 덩어리도 지나간다.
연금복권을 고르며 일확천금을 1초간 꿈꿔보지만, 현금결제만 되는 한계로 꿈마저 거기서 그친다. 결국, 맥반석 계란 두 알과 옥수수 수염차를 계산한다.
"천팔백 원입니다. 포인트카드 있으세요?"
얼마 전 여자친구에게 받은 포인트카드에 쥐꼬리만 한 1,2점을 축적하고 나는 기분 좋게 돌아선다. 나는 목 막히는 계란과 그걸 뚫어줄 물을 산 게 아니었다. <나는 편의점에 간다>에서 나왔듯이 '물건이 아니라 일상을 구매하게 된다는 마음'에 안도감이 든다. 대신동인지 봉원동인지 아직도 정확히 주소를 모르는 15평 공간에 사는 칙칙한 남학생이 아니라 평범한 소비자이자 서울시민이라는 느낌을 받으며 말이다. 편의점에 필요한 것이 있어서 가는 걸까? 편의점에 가니 필요한 것이 생기는 것일까? 내가 산 것은 외로움을 달래줄, 아니 잠시나마 잊게 해줄 마취제였다. 문득 엄마, 아빠와 함께 홈플러스라는 거대한 공간에서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자연스레 먹었던 빨강 어묵 꼬치들이 떠올랐다. 마취가 이제는 더 이상 소용없나 보다.
나는 수면 위로 올라오자마자 물안경을 벗어던졌다. 말도, 울음도 아닌 숨소리가 정신없이 쏟아졌다. 휘파람을 처음 배워보는 아이처럼, 온전한 음(音)이 되지 못한 서툰 쇳소리가 목구멍 위로 쏟아졌다. 나의 몸은 삐걱거렸다. 나는 정신을 차리려 수조 안에 얼굴을 박았다. 내 얼굴은 물에 뜬 가면처럼 뒤집어져 있었다. 나는 그 안에서 한참 동안 눈을 감고 있었다. 그런데 어디선가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물속에서 눈을 번쩍 떴다. 수조 안의 물고기들이 일제히 입을 열었다 닫았다 하며 ‘아빠, 아빠, 아빠, 아빠‘하고 있었다. 물고기의 입에서 튀어나온 ‘아빠‘들이 수천개의 공깃방울이 되어 보글보글 올라왔다. 나는 허둥대며 상체를 들어올렸다. 얼굴 아래로, 물방울들이 뚝뚝 떨어져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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