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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 - 무엇이 가치를 결정하는가
마이클 샌델 지음, 안기순 옮김, 김선욱 감수 / 와이즈베리 / 2012년 4월
평점 :
73.8%. 씁쓸한 수치다. 세계 최강국, 자본주의의 화려한 나라, 자유의 상징 성조기가 휘날리는 미국보다 높다고 좋아만 할 것이 아니다. 바로 '사회 정의 인식'에서 10명 중 7명이 한국 사회는 불공정, 부조리하다고 느꼈다는 객관적인 지표이기 때문이다. 현재 한국 사회는 과연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을까? 개인의 성공에 박수를 보내기보다는 시샘 어린 눈초리와 배가 먼저 아픈 우리는 '왜'라는 질문을 차분하게 던져야 할 필요가 있다. 오로지 '속도'에만 몰두한 나머지 '방향성'은 상실한 2012년 대한민국에 새로운 기회가 찾아왔다. <정의란 무엇인가?>로 한국 사회에 폭발적인 담론을 형성한 마이클 샌델이 신간과 함께 동양의 작지만 강한 나라 한국에 방문했기 때문이다. 대규모, 소규모 강연, TV 토론, 심지어 프로 야구 시구까지 하며 (그것도 인피니트 자동차를 후원받으면서!) 일약 스타덤에 오른 롤즈의 제자! 샌델,산델,샌들...이름을 뭐라 불러야 할지 모르던 초기와는 달리 엄청난 인기와 유명세를 누리는 그가 한국 사회에 새로운 물결을 불러일으킬 수 있을까?
신작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은 전작과 비슷하게 사례 위주와 논증 단계로 이어진다. 2012년 하버드 봄 학기 <MARKETS & MORALS> 강의의 내용을 다룬 책인데 시장에서 도덕의 역할에 대해 조금은 다른 시각으로 토론의 장을 펼친다. 돈이면 모든 것이 해결되는 세상에서 새치기, 인센티브, 명명권처럼 차가운 경제학 이론이 과연 따뜻한 도덕의 영역을 침범하는 것이 옳은 것이냐는 근본적 회의와 물음이 주된 내용이다. 책에서는 미국의 경우를 대부분 다루고 있지만, 이는 한국을 비롯한 자본주의 국가와 일정 부분 공통분모를 가진다. 우리는 흔히 돈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데 불쾌함을 느끼며 이를 금기시하는데 최근 시장경제의 주된 관심거리는 이와 다르다. 진료 예약권을 사고팔고, 놀이공원부터 의회 공청회까지 줄서기 도우미는 성행한다. 나아가 생명을 담보로 말기 환금이라는 독특한 유형의 보험도 등장했으며 진심이 담긴 사과나 축사도 대행업체가 존재하는 현실이다. 바로 효율적이라는 단어로 요약되면서 말이다.
불평등과 부패. 두 가지 근본이념이 이제는 '돈'이라는 하나의 재화로 천편일률적으로 서서히 이해 가능한 가치로 변질되고 있다. 윤리와 도덕이라는 모두에게 공평하게 적용되는 가치마저 자본에 의해 가치의 우위가 정해지고, 이를 당연한 지불 대가로 생각하는 흐름 자체가 매우 위험하다는 샌델의 논리에 동감한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인간은 무뎌지고 쉽게 잊어버리기 마련이다. 10년 전만 해도 야구 중계를 보면서 수많은 광고가 쉴 새 없이 브라운관을 뛰어다니리라 생각한 적이 있는가? 최근에는 단순히 스트라이크, 볼, 아웃만 표시하던 점수판만 있다면 오히려 어색하게 느낄 지경이다. 이러한 불평등, 부패에 대한 복종, 무감각은 스포츠를 넘어 인간 자체의 본질에까지 침투한다면 그저 웃어넘길 수는 없을 것이다. 이미 인간의 죽음을 담보로 한 상품까지 나온 마당에 서서히 인간 의식에 침투하는 '도덕, 윤리의 현금화'는 상상 속의 이야기는 아니다.
물론 지나치게 경제 인센티브에 대해 비약적으로 비판의 의식을 가한 면도 있어 보인다. 어차피 자아를 지니고 다양한 욕구를 가진 인간은 사회 속에서 충돌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인간은 감성적 끌림과 이성적 판단의 조화를 통해 개인적으로 가장 합리적인 선택을 하는 존재기 마련이다. 한정된 재화, 욕구의 유사성, 인간 자체의 선호도라는 불가피한 조건 속에서 어떻게 보면 '돈'을 통한 지불은 가장 공정하고 (물론 기득권층이 아닌 입장에서는 가장 불공정하기도 하지만) 합리적인 의사선택으로 어느 정도 가치를 지닐 수 있다. 또 이러한 교환 가치를 지니는 돈이 적법하고 공정한 절차를 밟아 획득한 것이라면 이를 비난할 이유는 아무것도 없다. 개인의 노력과 정당한 가치 지불에 대한 시샘과 질투는 무의미하며 오히려 불평등한 것이다.
하지만 샌델의 말처럼 최소한의 마지노선, 인간 사회의 유지를 위한 저지 장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특히 한국 사회에서 삶을 살아가는 데 절대적인 역할을 하는 의료, 교육과 같은 영역은 보호가 필요하다. 단순히 빈부 격차로 서비스에 우위를 가르고 차별적인 대우를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절대적 결과의 평등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위한 기회의 평등을 위해 우리는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을 보호하고 지켜나가야 한다. 무상의료, 무상교육이 이와 일맥상통하지 않을까? 책의 마지막 장까지 샌델은 항상 교묘하게 자신의 주장을 토론 속에 숨기고 있다. 물론 이를 간파하고 깊이 있게 받아들이는 현명한 독자들이 많아지는 것을 그는 바랄 것이다. 공화정에 적합한 열린 토론을 즐기는 시민을 배양하는 그의 노력은 2012년 한국에서도 서서히 빛을 발하고 있다.
민주주의는 완벽한 평등을 필요로 하지는 않지만 시민에게 공동체적 생활을 공유할 것을 요구한다. 그러려면 배경,사회적 위치, 태도, 신념이 서로 다른 사람들이 매일 생활하며 서로 마주하고 부딪치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야 서로의 차이를 견뎌내고 이를 놓고 협상하고 공공선에 관심을 쏟는 법을 배울 수 있다.
따라서 결국 시장의 문제는 사실상 우리가 어떻게 함께 살아가고 싶은가에 관한 문제다. 모든 것을 사고팔 수 있는 사회에서 살고 싶은가? 시장에서 거래되지 않고 돈으로도 살 수 없는 도덕적, 시민적 재화는 존재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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