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드 인 공장 - 소설가 김중혁의 입체적인 공장 산책기
김중혁 글.그림 / 한겨레출판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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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지 공장, 콘돔 공장, 브래지어 공장, 간장 공장, 가방 공장, 김중혁 글 공장, 지구본 공장, 초콜릿 공장, 도자기 공장, 엘피 공장, 악기 공장, 대장간, 화장품 공장, 맥주 공장, 라면 공장. 식품부터 공산품, 심지어 글까지. 다양한 공장이 등장한다. <메이드 인 공장>은 김중혁 글 공장에서 만든 수필집이다. 궁금증이 많고 엉뚱한 김중혁 작가가 1년간 <한겨레>에 연재한 글을 모은 결과물이다. 곳곳에 삽화와 짤막하지만 깊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문구도 공장과 공장 사이에 섞여 있다. 책장, 만년필, 온도계, 깔때기 등 쉽게 접할 수 있는 평범한 사물을 관찰하며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는 데 탁월한 작가다. 무겁지 않아서 좋은 책이다. 실제 책의 무게도 물론이거니와, 심오한 철학을 대놓고 드러내지 않는다. 가볍게 읽을 수 있어 좋고, 오래 곱씹을 수 있어 좋다.


단순한 딱딱한 공장 소개가 아니라 자신의 체험과 미처 몰랐던 사실을 절묘하게 섞은 재밌는 글이다. 예를 들면 너구리 라면의 다시마는 수작업한다든가, 초콜릿에 하얗게 피는 건 곰팡이가 아니라 초콜릿과 기름이 분리되는 블룸(Bloom) 현상이라든가. 국산 맥주가 맥아 함량이 턱없이 낮다거나 홉의 품질이 떨어진다는 건 오해란 것처럼 잘못 알고 있던 상식을 바로잡아주는 역할도 한다. 하지만 그런 정보 전달 역할은 7대3 비율의 3정도 될까? 나머지는 평소대로 유쾌하고 재치 넘치는 발상으로 이어진다. '간장 공장 공장장'에게 간장 공장 공장장 유머를 조심스레 날리고, 브래지어 공장에서 어린 시절 '브라자'에 대한 추억을 떠올린다. 재치가 넘치고 유쾌한 잡담이 이어지다 보면 어느샌가 공장의 역사와 고충, 과거와 미래까지 함께 전해 듣는 신기한 경험을 할 수 있다. 소설처럼 유쾌하고 입체적인 수필도 나름 매력적이다.


김중혁은 '성인이 되었을 때 외할머니를 좋아하면서도 송구스러웠던 마음'을 느꼈다고 고백한다. 어느덧 철없는 성인이 된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나도 어린 시절엔 마산 촌구석 진전면 외할머니댁이 마냥 싫었다. 시골은 하나부터 열까지 불편했기 때문이었다. 사촌 형 어깨너머로 구경할 수 있는 486 PC도 없었고, 화장실도 생소한 푸세식이었다. (내 기억이 맞는다면 큰맘 먹고 외삼촌이 산 486 PC는 오래 쓰지 못했다. 이유는 다름 아닌 쥐였다. 열기가 나오는 CPU 주변에 집을 짓고 쥐새끼를 낳아서 컴퓨터가 먹통이 되었다. 지금 생각해도 징그럽네.) 치토스를 사먹고 따조를 모으는 게 중요했던 어린 시절엔 잔뜩 쌓여있는 양갱과 유과가 무척 싫었다. (물론 유과는 아직도 별로 안 좋아한다. 분명 단맛인데 희한하다.) 어김없이 나오는 TV속 설날 천하장사 씨름 대회도 지루했다. (그러면서도 재밌게 봤다. 이태현, 박광덕, 김영현, 최홍만. 와 기억나는 게 신기하다!) 철없던 시절 지루한 티를 팍팍 내던 꼬맹이를 달래려고 외할머니는 부단히도 애쓰셨다. 왜 나는 더 살갑게 굴지 못했을까? 이제는그리운 추억이 된 그 시간이 빨리 흐르길 바랐을까? 


이젠 얼른 시골에 가고 싶다. 많은 게 달라졌다. 혀를 날름거리는 황소도, 마당을 뛰어노는 커다란 수탉도 없다. (여전히 닭 모가지를 비트는 장면은 충격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삼계탕도 못 먹은 건 아니었지만.) 무려(!) 스카이라이프를 설치했기에 옛날처럼 화장식 옥상에 올라가 안테나를 이리저리 조심스럽게 돌릴 필요도 없다. 안마 의자가 안방 한가운데를 차지하고 있어서 지루할 틈이 없다. 많은 게 사라졌지만 외할머니, 외할아버지는 그대로 계신다. 모든 게 달라졌지만, 시골에 가고 싶은 '모든 이유'는 그대로다. 얼른 가서 푸근한 인상의 외할머니와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고, 나물에 밥을 비벼 한 그릇 뚝딱 비우고 싶다. 살이 찌든, 빠지든 언제나 나를 보면 '와 이리 얘빘노?" ('왜 이리 말랐느냐?'의 경상도 사투리)라 하시며 머슴 밥을 주신다. 배가 불러도 그런 외할머니 앞에선 배가 고픈 것이다. 내 사소한 행동이 그들에겐 행복이고 즐거움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책을 읽는 내내 공장과 비교되는 시골이 생각났다.


'공장'에 대한 오해도 <메이드 인 공장>을 보며 많이 풀렸다. 항상 '생산성', '효율성' 두 마리 토끼만을 쫓으며 시끄럽게 달리는 줄로만 알았다. 뚝딱을 넘어 쿵쾅거리는 공장의 소음을 들으면 왠지 (제대로 본 적도 없지만) <모던 타임즈>의 메시지 '기계 시대의 인간소외'가 떠올랐다. '기계적이다'란 표현은 인간적이지 못하다, 즉 정이 없고 딱딱하다는 방식을 연상했다. 하지만 직접 공장을 가보고, <메이드 인 공장>을 읽어 보니 그건 오해란 걸 깨달았다. 현대제철 당진 공장, 기아자동차 화성 공장, 동희오토 서산공장. 유독 올해 공장에 갈 일이 많았는데 어마어마한 규모에 일단 압도되었고,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돌아가는 기계들의 분주함에 놀랐다. 서로서로 돕고 있었고, 혼자가 하는 게 아니라 함께 하는 일들이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역시 사람이 있었다. 공장 벽면을 메운 시와 명화 그림에 놀랐다. 그건 단순히 한 대를 더 빠르고, 더 많이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람이 즐겁게 '노동'할 수 있도록 선택한 배려였다. 규칙적인 일과를 좋아하는 나에겐 '공장'이 새로운 쉼터로 다가왔다.


책 속에 공장들은 제법 실용적이지 않은 면이 있었다. 요즘 세대는 직접 본 적도 없는 LP라든지, 장인의 숨결이 아직 살아 숨 쉬는 악기 등이 인상적인 소재였다. (어린 시절 금성 전축에 LP 턴테이블이 있었다. 어떻게 작동하는지 몰라서 마냥 한번 손으로 휙 돌려보고 말았던 기계였다.) ,MP3로 공유되는 음원 파일을 손쉽게 휴대폰으로 들을 수 있는 21세기에 무겁고 보관도 어려운 LP가 웬 말이랴? 심지어 피아노 연주도 휴대폰 버튼으로 뚝딱뚝딱 가능한 시대다.효율성, 생산성만 생각한다면 애초에 사라졌을 공간들이다. 대량생산, 대량판매가 목표가 아니라 신념이 담긴 제품을 하나라도 '제대로' 만드는 게 그들의 목표다. 때론 느리게 걷는 게 빠르게 걷는 것보다 중요할 때가 있다는 말에 공감했다. (물론 그렇다고 '빠르다'란 개념이 나쁘다는 건 아니다.) 빠르면 빠른 대로, 느리면 느린 대로 중요한 법이다. 우리 인생이 그러하듯이. 삶이란 공장을 돌아가게 하는 부속품 중 하나인 나도, 내 몫을 하며 열심히 살아야겠다. 그러다 보면 누군가에게 또 다른 기쁨과 추억으로 남겠지. 마치 내 기억 속 외할머니처럼.


<인상깊은 문장>


회사 대표님과 경영진은 결국 신진 아티스트 그룹과 힘을 모아 공장 전체를 작품으로 만들어버렸다. 고양이 그림도 있고, 산수화도 있고, 콩을 닮은 예쁜 동그라미도 있고, 정체불명의 형상도 있다. 이런 식의 낭비라면, 괜찮을 것 같다. 생산과 효율을 강조하는 공장의 외벽을 울긋불긋하고 파릇파릇하게 만든 낭비의 마음이 좋다. 사람의 마음을 위해 낭비하는 공장이 마음에 든다. 무엇보다 식품을 만드는 공장이라서 더 그렇다. 누군가를 위해 요리를 할 때면 그 사람을 향한 사랑이 음식에 배어들게 마련이다. 공장에서도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

-간장 공장 산책기


외할머니가 사준 초콜릿 역시 관리 소홀로 인한 블룸 현상이 발생한 제품이었을 것이다. 지금 그때의 일을 생각하면 먹다 버린 초콜릿이 아깝기도 하고, 하얀색 반점을 더럽다고 생각한 게 부끄럽기도 하다. 초콜릿을 버리게 된 데에는 외갓집의 모든 것이 촌스럽고 비위생적이라고 생각한 나의 마음도 큰 작용을 했을 것이다. 시골길을 걷던 어린 시절의 내 앞에 초콜릿 전문가가 나타나서는 "완제품 상태에서의 유톧기간은 1년입니다. 보관 온도만 잘 지키면 갓 만든 초콜릿과 비교해도 풍미에 큰 차이가 없습니다. 드셔도 됩니다."라고 말해봤자 그 말을 믿지 않았을 것이다. 성인이 되었을 때 외할머니를 좋아하면서도 송구스러웠던 것은 그런 마음 때문이었을 것이다.

- 초콜릿 공장 산책기


나는 '섹스와 초콜릿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한 미국의 조사가 잘못됐다고 생각한다. 그건 마치 '친구와 휴대전화 중 하나를 선택하라'는 말과 비슷한 것이다. (어쩌면 많은 사람들이 친구 대신 휴대전화를 선택할지도 모르겠지만.) 인간이 휴대전화를 발명한 것은 더 많은 친구를 사귀기 위한 거였다. 인간과 인간을 잇는 것이 휴대전화다. 초콜릿을 만든 것이 더 많은 섹스를 하기 위한 것은 아니었지만 (설마 그랬나?) 초콜릿은 인간들을 더 행복하게 해줄 수 있는 물질이다. 윌리 윙카가 초콜릿을 통해 가족과 친구를 얻었듯 '사랑받는다는 느낌을 갖게 해주는 엔돌핀을 분비하게 해주는 물질'인 초콜릿을 통해 우리 주위에 있는 사람들과 함께 좀 더 행복한 사람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 초콜릿 공장 산책기


작업장의 크기는 작지만 가장 바쁘게 움직이는 곳이 바로 '수필 공장'이다. '메이드 인 공장'을 생산하는 곳이기도 하다. 연간 수십 개의 글을 생산할 정도로 생산량과 수익성이 높은 곳이며 '김중혁 글 공장'을 먹여 살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곳이다. 수필 공장은 대체로 '주문 생산' 방식으로 이뤄지는데, 주문이 들어오면 그때부터 생산 라인이 가동된다. 주문을 받은 수필 공장 자료 수집원들은 '글감 분류실'과 '숙성 창고'를 뒤져서 적당한 소재를 찾아낸 다음, 생산 라인으로 보낸다. 생산 라인에서는 자료 수집원들이 보내온 자료를 검토하고 보충 취재를 추가하여 마감에 늦지 않도록 물건을 생산하게 된다. '수필 공장'에서는 마감일, 즉 물건 납기일이 무척 중요하다. 소설의 경우에는 제작이 늦어져도 이해해주는 경우가 많지만 수필의 경우는 거래처와의 신뢰가 무너질 수도 있다. 주문자의 요구에 맞추되 생산 마감 시간을 어기지 않으며 품질도 유지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수필 공장의 핵심이다.

-  김중혁 글 공장 산책기


도자기 공장에 쓰여진 표어는 이런 내용이었다. '전사, 화공 능률 100% 향상으로 회사 발전, 나의 행복'. 표어 전문가의 눈으로 평가해보건대 운이 좀 맞지 않는다. 표어란 하이쿠처럼 압축되어 딱 맞아떨어지는 맛이 있어야 하는데, 이건 좀 늘어진다. '전사, 화공력 십퍼 향상, 회사 발전 나의 행복'쯤으로 줄여보는 게 어떨까. (농담입니다. 저 때문에 고치지 마세요!)

- 도자기 공장 산책기


엘피가 갑자기 많이 팔려서 시디나 음우너 판매를 앞지르는 일은 앞으로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예전처럼 많은 사람들이 엘피의 먼지를 닦으며 음악을 듣는 일도 없을 것이다. 꼭 그래야 하는 것도 아니고, 그게 옳은 것도 아니다. 하지만 엘피가 끝까지 살아남아서 계속 우리에게 질문을 던지게 만들 수는 있을 것이다. 우리가 뭐 잊고 있는 건 없는지, 너무 많은 걸 줄이고 압축하는 바람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까지 줄인 것은 아닌지, 우리가 한때 진심으로 사랑했던 음악을 무덤덤하게 바라보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런 질문을 던지게 할 수는 있을 것이다. 끝내 엘피가 사라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 엘피 공장 산책기


다시마 기계화에 반대하는 가장 큰 이유는 의외성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너구리 라면을 자주 먹는 사람은 봉지를 열었을 때 두 개의 다시마가 짝 달라붙어 있는 '로토'를 경험한 적이 한 번쯤은 있을 것이다. (나는 한 번 경험했다.) 대단한 행운은 아니지만 어쩐지 기분이 좋아진다. 이게 다 수작업 때문에 생기는 즐거움이다. 공장 입장에서는 작은 손실이 어마어마한 손실로 이어진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이런 식의 소소한 재미를 놓치고 싶지 않다. 누군가의 실수가 누군가의 기쁨으로 이어지는 일은 많지 않다.

- 라면 공장 산책기

 




고속버스는 최대한 빨리 목적지로 데려다 주지만, 많은 정류장을 생략할 수밖에 없다. 생전 이름도 처음 듣는(이거 봐, 벌써 정류장 이름 잊어버렸다) 작은 정류장에서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웃고 떠들며 버스에 오르는 장면을 절대 볼 수 없으며, 작은 동네의 세탁소 앞에서 고풍스러운 양복을 찾아 들고 환하게 웃던 아저씨의 표정 같은 것도 놓칠 수밖에 없다. 빠른 건 빠른 대로 중요하고, 느릿느릿 돌아가는 건 또 그것대로 필요하다. 어떤 게 더 낫다는 주장이 아니라 둘 다 필요하고, 둘 사이의 균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 악기 공장 산책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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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이 온다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한강 지음 / 창비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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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다. 시간이 지나면 기억은 희미해지고, 사실이 아닌 것들이 진실인양 혼동하기도 한다. 1980년 5월 18일 광주. 그 시공간의 기억은 절대로 잊을 수 없는 역사다. 하지만 대한민국 근현대사의 가장 큰 아픔이자 자랑마저도 희미해지고, 상처를 입기도 한다. 자유민주주의에 무임승차한 모자란 인간들은 그것을 '폭동'이라 부른다. 수많은 이를 살인한 대머리 살인자는 멀쩡히도 잘 살아있다. "나한테 당해 보지도 않고."란 최악의 막말을 남기며. 잊을 수 없는, 그리고 잊어서도 안 되는 기억이 이렇게 희미해져서는 안 된다. 그래서 문학과 예술이란 콘텐츠의 역할이 중요한 법이다. 때론 딱딱한 보고서와 역사적 기록보다 소설, 영화, 시, 노래, 만화 등 각종 예술이 그 날의 아픔과 슬픔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강풀의 웹툰 <26년> 속 마지막 총성이 그러하고, 광주 시민 5,000명이 재연한 영화 <꽃잎>, 43.1%란 경이로운 시청률을 기록한 <모래시계>가 그랬듯이 말이다. 한강 장편 소설 <소년이 온다>도 마찬가지다. 나긋나긋하고 덤덤할수록 그 아픔과 후폭풍은 강렬하다.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은 아니지만, 그러므로 반드시 읽어야 한다. 소설 속 문구 '인간은 무엇인가, 인간이 무엇이지 않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하는가.'를 생각한다면. 


예전에 5.18 민주화 운동을 떠올리면 죽은 아비의 영정 사진을 들고 멍하니 눈을 뜨고 있는 아이가 제일 먼저 떠올랐다. 하지만 <소년이 온다>를 읽고 나니 꽃 핀 쪽으로 가자는 아이의 손짓에 끌려가던 엄마가 떠오를 것 같다. 6장으로 이루어진 소설은 모두 다른 화자가 등장한다. 모두가 직간접적으로 5.18 민주화 운동의 영향에 살고 있다. 혹은 이미 죽었거나. 떠난 이의 죽은 혼도 슬퍼하고, 죽은 혼을 그리는 남은 이도 괴로워한다. 살아남았다는 부채감 역시 쉽게 지울 수 없는 상처기 때문이다. 단춧구멍 같은 눈에 콧잔등이 번번한 정대, 스물세 살의 교대 복학생, 검열과에서 한없이 뺨을 맞아야 하는 은숙, 하루하루 불면과 악몽, 진통제와 수면유도제 속에서 늙어가는 진수.어린 피붙이를 떠올리며 일생을 그리움과 후회로 살아가는 엄마. 가해자는 떳떳하게 골프도 치고 새해 인사를 받으며 잘살고 있는데, 피해자들이 오히려 고개를 숙이고 고통을 받으며 살아가고 있다. 한강은 이런 부조리함을 조근조근 까발리고 있다. 


총 피해자 7,200명. (사망 218명. 행방불명 363명. 상해 5,088명. 기타 1,520명) - 참여정부 조사 결과


고문을 당해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학생, 먼저 아이를 떠나보낸 부모, 눈앞에서 머리가 빠개지고 피가 철철 흐르는 장면에서 두려움에 떠는 군인. 한강은 단순히 7,200명이란 거시적인 숫자로 표현할 수 없는 미시적인 개개인의 아픔과 고통을 천천히 곱씹는다. 내면적인 아픔과 슬픔을 담담하게 털어놓는 한강의 주옥같은 문장들은 읽는 내내 몰입하기 싫을 정도였다. 그만큼 비극적이고 고통스러운 역사이기 때문이다.


자기보다 깨끗한 시체를 부러워하는 혼이 화자로 등장하는 2장 <검은 숨>도 인상적이었지만, 개인적으로 6장 <꽃 핀 쪽으로>가 가장 울림이 컸다. 광주 사투리로 천천히 읊조리는 어머니의 단어, 문장 하나하나에 자식에 대한 그리움이 가득했기 때문이다. 부모 입장에서 자식은 또 하나의 세계나 다름없다. 사소한 행동 하나, 불명확한 말 한마디도 모두 그들에겐 단순한 행동 그 이상의 소중한 추억이다. 5월 18일 지옥 같은 순간은 화목한 가정도 깨트렸다. 압지의 삼우제 때 형제는 뒤엉켜 싸우며 외친다. "그 쪼그만 것 손 잡아서 끌고 오면 되지, 몇날 며칠 거기 있도록 너는 뭘 하고 있었냐고!" "형이 뭘 안다고.... 서울에 있었음스로...형이 뭘 안다고..." 그들은 짐승처럼 울부짖으며 어린 피붙이를 그리워하고 고통스러워한다. 


'어떤 기억은 아물지 않습니다. 시간이 흘러 기억이 흐릿해지는 게 아니라, 오히려 어떤 기억만 남기고 다른 모든 것이 서서히 마모됩니다.'


특히 어머니에게 막둥이의 기억은 흐릿해지지 않는다. 오히려 다른 모든 아픈 기억은 마모되고 행복한 추억이 선명해질 뿐이지. 젖먹이 시절 유난히 방긋 웃기를 잘했던 너, 손뼉 치는 어머니를 향해 한발 두발 걸음마를 떼었던 너, 여름밤 마당 평상에서 수박을 먹을 적에, 수박물을 혀로 더듬어 핥던 너. 어머니의 세계 속에 동호는 언제나 까까머리 앳된 중학생이다. 행복하고 따뜻하게 흘러가야 할 또 하나의 세계가 누군가의 폭력과 비인간성 때문에 무너져 버렸다. 


"네가 여섯살, 일곱살 묵었을 적에, 한시도 가만히 안 있을 적에, 느이 형들이 다 학교 가버리먼 너는 심심해서 어쩔 줄을 몰랐제. 너하고 나하고 둘이서, 느이 아부지가 있는 가게까지 날마다 천변길로 걸어갔제. 나무 그늘이 햇빛을 가리는 것을 너는 싫어했제. 조그만 것이 힘도 시고 고집고 시어서, 힘껏 내 손목을 밝은 쪽으로 끌었제. 숱이 적고 가늘디가는 머리카락 속까장 땀이 나서 반짝반짝함스로. 아픈 것맨이로 쌕쌕 숨을 몰아쉼스로. 엄마, 저쪽으로 가아, 기왕이면 햇빛 있는 데로. 못 이기는 척 나는 한없이 네 손에 끌려 걸어갔제. 엄마아, 저기 밝은 데는 꽃도 많이 폈네. 왜 캄캄한 데로 가아, 저쪽으로 가, 꽃 핀 쪽으로."


엄마와 아이의 행복한 추억은 여기서 끝났다. 나머지는 고통과 후회, 그리움 따위의 감정들만 가득할 뿐이다. 피지 못한 아이들의 영혼을 위해서라도 우린 언제나 기억하고 또 기억해야 한다. 우리가 딛고 있는 이 땅의 정의는 거저 얻은 게 아니란 것을. 그리고 또다시 반복되는 역사를 위해서라도 이젠 우리가 나서야 할 차례다. 비정상과 비이성으로 가득했던 2014년도 1980년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으니.

 

 

<인상 깊은 구절>


1.

여섯시에 여기 문 닫는대요 엄마.

행렬 사이로 너와 눈을 맞추려고 엄마가 깨금발을 디딘다. 우는 아이처럼 힘껏 찡그린 그녀의 이마를 향해 너는 목소리를 높인다.

문 닫으면 나도 들어갈라고요.

엄마의 얼굴이 그제야 퍼진다.

꼭 그래라이, 그녀가 말한다.

해 지기 전에 와라이. 다 같이 저녁밥 묵게.


2.

그들이 트럭에 시동을 거는 동안 나는 어른어른 그 몸들에게 다가갔어. 나뿐 아니라 다른 혼의 그림자들도 다가와 그 몸들을 에워싸는 게 느껴졌어. 두개골이 함몰된 남자와 여자들의 옷에선 아직 연한 핏물이 떨어지고 있었어. 머리 쪽에서부터 물을 끼얹었는지, 얼굴들만은 대강 씻겨 이목구비가 깨끗하게 드러나 있었어. 그들 중에서 가장 특별한 존재는 환자복을 입은 젊은 남자였는데, 가마니를 가슴에 덮고 누운 그는 누구보다도 청결했어. 그의 몸을 누군가가 씻어주었어. 환부를 꿰매고 약을 발라주었어. 그의 머리에 친친 둘러진 붕대가 어둠속에 하얗게 빛났어. 똑같은 죽은 몸인데, 누군가의 손길이 남아 있는 그 몸이 한없이 고귀해 보여서 나는 이상한 슬픔과 질투를 느꼈어. 몸들의 높은 탑 아래 짐승처럼 끼여 있는 내 몸이 부끄럽고 증오스러웠어.


3.

평범한 볼펜이었습니다. 모나미 검정 볼펜, 그걸 손가락 사이에 교차시켜 끼우게 했습니다.

그야 왼손이죠. 오른손으론 조서를 써야 하니까.

예, 그렇게 비틀었습니다. 이 방향으로도 이렇게.

처음에는 견딜 만했습니다. 하지만 날마다 같은 곳에 그렇게 하니깐 상처가 깊어졋어요. 피와 진물이 섞여 흘렀습니다. 나중엔 이 자리에 하얀 뼈가 들여다보였습니다. 뼈가 드러나니까 알코올에 적신 약솜을 끼워주더군요.


4.

가끔은 말이다이, 내가 뭣한다고 문간채에다 사람을 들였을까... 생각한다이. 그까짓 사글세 몇푼 받겄다고... 정대가 이 집으로 안 들어왔으면 네가 정대 찾는다고 그리 애를 쓰지 않았을 것인디... 그라다가 느이 둘이 배드민턴 침스로 웃던 소리가 생각나먼, 죄 받제...죄 받아, 그람스로 고개를 흔들어야. 그라제, 내가 그 불쌍한 남매를 원망하먼 큰 죄를 받제.


5.

무섭지 않았어야.

죽어도 좋다는 마음인디, 무서울 것이 어디 있겄냐. 다 같이 소복을 입고 그 살인자가 탄 승용차가 오기를 기다렸다이. 정말로 아침 일찍 그놈이 나타났다이. 소리를 맞춰서 구호를 외칠라던 계획은 엉망이 됐다이. 다들 울부짖고 졸도하고, 머리는 헝클어지고 소복은 찢어졌다이. 현수막은 펼쳤다가 바로 뺏겼다이. 경찰서에 다 같이 끌려가 넋을 잃고 앉아 있는디, 우리하고 다른 곳에서 시위하기로 했던 부상자회 청년들이 잡혀들어왔다이. 시무룩이 줄을 서서 들어오다가 우리하고 눈이 마주쳤는디, 한 청년이 갑자기 울면서 소리쳤다이.

엄마들, 여기서 왜 이러고 있소? 엄마들이 무슨 죄를 지었소?

그 순간 내 머릿속이 멍해졌어야. 하얗게. 온 세상이 하얗게 보였어야. 찢어진 소복 치마를 걷고 탁자 위로 올라갔다이. 더듬더듬 조그만 소리로 중얼거렸어야.

맞아, 내가 무슨 죄를 지었단가.

 




비가 올 것 같아.

너는 소리 내어 중얼거린다.

정말 비가 쏟아지면 어떡하지.

너는 눈을 가늘게 뜨고 도청 앞 은행나무들을 지켜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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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박사는 누구인가?
이기호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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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 : (이제 다들 아셨죠. 김 박사가 누구인지? 자, 그럼 어서 빈칸을 채워주세요.)

김 박사입니다. 최소연 씨의 상황에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습니다. 고통스럽고 혼란스러운 마음 누구보다 잘 이해합니다. 한번도 만나보지 않아도 저 역시 당신에게 오랜 친구같은 느낌을 받고 있으니 말이죠. 어머님은 아마 누군가를 크게 원망하고 있었을 겁니다. 그게 아버님인지, 아니면 타인일지는 밝혀내야할 문제이지만, 그 응어리가 심각하게 단단해진 상태입니다. 아버지 역시 어머니에 대한 배신감이 내재화된 상태에서 다시 발현되신 것 같네요. 둘 사이의 문제가, 아니 어쩌면 최소연 씨를 포함한 세 사람의 문제가, 혹은 또 다른 누군가의 존재가 복잡하게 꼬인 실타래의 시작일 겁니다. 최소연 씨의 잘못이 아닙니다. 더 본질에 다가가십시오. 죄책감은 결국 책임을 져야할 사람이 짊어져야할 몫입니다. 욕이 나오면 하세요. 비난하고 싶으면 강하게 내뱉으세요. 그럴수록 사태는 투명해지고, 본질은 한 걸음 다가와있을 겁니다. 거의 다 왔습니다. 당신은 강한 사람입니다. 하나를 얻으려면 하나를 잃는 수밖에 없지요. 울컥 밀려오는 두려움을 이겨내야 합니다. 어머니에게 말하세요. 그리고 아버지에게 말하세요. 가족이란 결국 이어지는 존재가 아닐까요? 김 박사였습니다.

 

그리고 다시 Q

Q : 김 박사님, 김 박사님.... 김 박사님께서 해주신 이야기 잘 들었어요. 하지만 김 박사님... 이 개새끼야, 정말 네 이야기를 하라고! 남의 이야기를 하지 말고, 네 이야기, 어디에 배치해도 변하지 않는 네 이야기 말이야! 나에겐 지금 그게 필요하단 말이야, 김 박사, 이 개새끼야.


A : 

김 박사입니다. 아니, 당신의 탄원서를 읽은 P입니다. 아르바이트 그만두고 어디론가 숨으면 모를 거라 생각했어? 나한테 그렇게 모든 걸 뒤집어 씌우고, 내 인생을 산산조각냈는데. 나도 똑같이 만들어줄게. 아니 이미 거의 다 끝나가지만. 혓바닥으로 시작된 악연은 혓바닥으로 끝내줄게. 기다려.

 

 

 

"한데 그거 아슈? 이 차는 그래서 지금까지 굴러가게 된 거라우. 후진이 안 되니까. 원래 잡다한 기능들 때문에 제 기능들이 망가지는 법이라우. 사람들이 그걸 몰라서 그렇지."

 

- 밀수록 다시 가까워지는 中 

 

 나는 차를 밀면서 할머니한테 물었다.

- 할머니, 아직도 손주보다 자동차가 더 좋아?

할머니는 내 질문엔 대답하지 않고, 가만히 조수석 등받이에 기대앉아 있었다. 할머니는 몇 번 마른기침을 하기도 했다. 그러곤 한참 후에 이런 말을 했다.

- 야, 야, 이러니까 꼭 옛날 생각난다. 옛날에 네 삼촌도 나랑 논일 끝내고 집으로 돌아올 때면 꼭 리어카를 이렇게 밀었거든. 끌지 않고. 꼭 뒤에서 밀었어. 이 할미 얼굴 계속 바라보면서 말이야....

나는 허리를 더 아래로 깊숙이 숙인 채, 프라이드를 밀었다. 나는 할머니의 얼굴을 보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그러면서 또 생각했다. 삼촌은 이렇게 직접 민 것 또한 노트에 적어놓은 것일까, 그렇다면 그 거리는 과연 어떻게 잴 수 있는 것일까.

 

- 밀수록 다시 가까워지는 中

 

 

퉤. 소리와 함께 별안간 그의 눈에 차가운 이물질이 와 닿았다. 그것은 그의 눈에서부터 천천히 뺨 위로 흘러내렸다.

"어머, 어머, 얘가 왜 이래!"

"송이야, 왜 그러는 거야!"

그의 주변이 갑자기 소란스러워졌다. 발소리가 들렸고, 누군가가 소리 내어 우는 소리, 누군가가 누군가의 팔을 힘겹게 잡아끄는 소리도 들려왔다. 그는 놀라지 않았다. 그는 움직이지도 않았다. 그저 가만히 침이 뺨을 타고 흘러내리는 것을 기다렸을 뿐이었다. 누군가 그의 팔짱을 끼고 뒤를 돌아 서둘러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의 뺨 위에선 계속 비린내가, 우유 냄새가 났지만, 그는 그것을 닦아내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무작정 따라가기만 했다. 나무처럼 딱딱하게.

 

- 저기 사람이 나무처럼 걸어간다 中

 

저는 이 글을 쓰기 위해서 1심 판견문을 읽고 읽고 또 읽어보았습니다. 제가 쓸 수 있는 것이라곤 오직 그 안에 있는 것들, 거기에 기록된 사실들뿐이라고 생각했으니까요. 하지만 판결문을 읽으면 읽을수록, 저에겐 한 가지 의문이 사라지지 않고 계속 맴돌았습니다. 그것 때문에 저는 해남까지 내려가게 된 것이지요. 바로 그 여학생이 한 말, '이 선배가 왜이렇게 자꾸 술만 따라 주실까?'라는 말. 그 말이 저를 계속 괴롭혔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저를 괴롭힌 것은 '술' 뒤에 붙은 '만'이라는 보조사가 아니었습니다. 그것보다는 왜 이 아이는 '선배'라는 단어 앞에 '이'라는 지시관형사를 붙였을까? 그것들이 궁금했던 것이지요. 만약 그것이 제 추측이나 의심처럼 쓰인 것이 맞다면, 그러면 사건은 도대체 어떻게 되는 것일까요? 그 아이에게 P가 그냥 선배가 아닌 '이' 선배로 다가왔다면, 혼자만 그렇게 생각한 날들이 많았다면, 그렇다면 그날 그때 그 아이 앞에 놓인 술잔은 또 어떻게 달라지게 되는 것일까요? 저는 그것을 확인하러 해남으로 내려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저 또한 그 '이'가 단순한 '이'가 아닌 하나의 커다란 고유명사로 다가와, 그 안에 붙들려,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시절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 탄원의 문장 中

 

"언젠가 수환 학생이 이정 선생의 이름을 처음 말하면서 그게 '고무래가 되겠다'라는 뜻 아니냐고 물어왔던 적이 있소. 나는 그때 그런 뜻도 있지만 그건 그냥 글자 모양 그대로 보는 게 맞을 거라고 말해주었소. 그러니까 쇠스랑(而)과 망치(丁)가 맞을 거라고...우린 해석하기보단, 보이는 그대로 믿는 사람들이었으니까."

 

- 이정(而丁) - 저기 사람이 나무처럼 걸어간다 2 中

 

한참 동안 소파에 앉아 있다가, 나는 다시 느릿느릿 욕실로 걸어 들어갔다. 그리고 그곳 좌변기에 옷을 입은 채 그대로 앉아보았다. 눈 앞엔 바로 두루마리 휴지가 매달려 있었다. 나는 오랫동안 그것을 바라보다가 잠깐 고개를 숙였다. 그러다가 다시 그것을 쳐다보았다. 나는 무언가를 참아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또 계속 무서운 마음이 들었다. 그것이 무서워 나는 자칫 소리 내어 울 뻔했다. 나는 팔뚝으로 입을 가린 채 계속 두루마리 휴지를 쳐다보았다. 끅끅, 소리가 났지만, 나는 그때마다 좌변기 레버를 눌렀다. 다행히...소리는 새어 나가지 않았다.

 

- 화라지송침 中

 

세월이 지나 나 또한 트렁크 팬티라는 것을 입고 살게 되었지만, 그 반바지가 트렁크 팬티인지 아닌지는 지금도 잘 분간되지 않는다. 그래서 그냥 분간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다만 그 반바지는 철저히 집에서만 입었다. 몇 년 전 여름에는 하도 더워서 팬티도 벗어버리고 그 반바지만 입고 지내기도 했다. 그제야 그 반바지는 내게 팬티가 되었다.

그러나, 나는 지금도 궁금하다. 그날 오후, 나를 ‘씩씩‘거리게 만들어, 도시가스관을 타고 올라가게 만든 것은 무엇일까? 그것이 반바지일까, 팬티일까, 김 주석일까? 십수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야기를 다 끝낸 지금까지도, 나는 그것을 잘 모르겠다. 혹시, 니코틴 때문은 아닐까?



- 내겐 너무 윤리적인 팬티 한 장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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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싫은 사람 마스다 미리 만화 시리즈
마스다 미리 지음, 박정임 옮김 / 이봄 / 2013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모든 사람이 나와 잘 맞을 수는 없다. 그런 걸 바라지도 않을뿐더러.

정말 아무리 좋게 생각하려 해도 맞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학교, 직장, 군대, 동호회. 두 명 이상 사람이 모이면 분명 나와 코드가 다른 사람이 생기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런 사람들이 '아무래도 싫어지지'는 않는다.

코드가 안 맞으면 적당히 거리를 두고 지내면 그만이고, 친한 사람들과 재밌는 추억을 만들면 되니깐.

 

하지만 학교와 직장은 다르다.

꼴 보기 싫은 사람에게도 웃으며 인사해야 하고, 같이 있기 답답한 사람과도 함께 일해야 한다.

피하고 싶다고 피할 수 있는 게 아니란 점이 학교와 무척 다르다.

그렇다고 어쩌겠나. 마음가짐을 달리하는 수밖에! 

 

 

 

나도 늘 한 번에 주문하려 하지만, 워낙 먹는 부분에서 우유부단한 편이라...
직원을 난처하게 하지 않으려 멀쩍이 서서 메뉴판을 보곤 한다.
나의 커피 취향은 언제나 오락 가락이라. 언제나 쉽지 않다.

 

한 정거장 걷기까지는 아니더라도, 계단으로 올라가기로 다짐했다.
하지만 퇴근하고 파김치가 된 상태로 1층에 도착하면 나도 모르게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른다.
싫증과 귀찮음은 한 끗 차이다. 그리고 피곤한 건 핑계일 테고.


나도 내 감을 믿을 수 있는 나이가 되고 싶다.
아니, 감을 믿더라도 그대로 행동할 수 있는 나이가 되고 싶다.
그리고 '엄마'란 단어는 가장 뭉클한 두 글자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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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대로 괜찮은 걸까? 마스다 미리 만화 시리즈
마스다 미리 지음, 박정임 옮김 / 이봄 / 2013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국적이 꼭 그 사람을 규정하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내가 가진 편견에 따르면 이 책은 일본인 특유의 정서가 많이 담겨 있다. 

불같이 화를 내기보단 속에서 꾹 참는 담담함, 남에게 폐끼치지 않으려는 조심스러움. 

술술 읽기 쉬운 만화책인데 인생의 진리를 많이 담고 있다.

"가볍게 살고 싶다, 아무렇게나 라는 것은 아니다."

이런 정서가 책 가득 스며들어있어서 좋다.

내가 20대 남성이라 100% 공감할 수 있진 못하지만, 그래도 어떤 부분은 격하게 고개가 끄덕여진다. 

 

 

건널목을 건너는 유치원 꼬맹이들이 손을 바짝 들고 있으면 마냥 기분 좋은 웃음이 난다.
하나부터 열까지 아이들은 어른 행동을 배운다.
나쁜 짓을 하면 못된 짓을, 착한 일을 하면 좋은 일을.
아이들에게 더 나은 세상을 물려 주고 싶다.
요즘같이 어지러운 세상이 아니라.

 

 

 

지금 내 모습이 누군가의 이정표가 될 수 있을까?

 

 

 

요즘은 아침 식사를 포기하고 쪽잠을 선택한다.
40분 가까이 회사 셔틀 버스에서 잠을 청하지만 여전히 부족하단 느낌이 들어서다.
서관 지하 1층 혹은 동관 1층 화장실.
비데가 설치되어 있지만, 공간도 넓고 사람도 없다. 뒤로 머리를 젖힐 수 있는 공간이 있어서 최적의 자세가 완성된다.
10분이지만 1시간 이상의 효과를 지닌 비밀 휴식처다. 
직급이 높으면 마음 편히 늦게 나오거나 사우나에서 쉬다 오겠지만, 신입사원에겐 꿈도 못 꿀 사치다.
새벽부터 토악질하는 옆칸의 불쾌한 소리에 잠을 깨는 것만큼 싫은 일은 없지만. 
노래 2~3곡과 함께 보내는 휴식 시간은 나름 나쁘지 않다.

 

 

 

문득 좋다는 느낌보다 나쁘지 않다는 느낌이 더 괜찮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아,
더 나아지고 있다는 느낌이 더 좋지 않을가? 아니 더 나쁘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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