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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이 온다
한강 지음 / 창비 / 2014년 5월
평점 :
품절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다. 시간이 지나면 기억은 희미해지고, 사실이 아닌 것들이 진실인양 혼동하기도 한다. 1980년 5월 18일 광주. 그 시공간의 기억은 절대로 잊을 수 없는 역사다. 하지만 대한민국 근현대사의 가장 큰 아픔이자 자랑마저도 희미해지고, 상처를 입기도 한다. 자유민주주의에 무임승차한 모자란 인간들은 그것을 '폭동'이라 부른다. 수많은 이를 살인한 대머리 살인자는 멀쩡히도 잘 살아있다. "나한테 당해 보지도 않고."란 최악의 막말을 남기며. 잊을 수 없는, 그리고 잊어서도 안 되는 기억이 이렇게 희미해져서는 안 된다. 그래서 문학과 예술이란 콘텐츠의 역할이 중요한 법이다. 때론 딱딱한 보고서와 역사적 기록보다 소설, 영화, 시, 노래, 만화 등 각종 예술이 그 날의 아픔과 슬픔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강풀의 웹툰 <26년> 속 마지막 총성이 그러하고, 광주 시민 5,000명이 재연한 영화 <꽃잎>, 43.1%란 경이로운 시청률을 기록한 <모래시계>가 그랬듯이 말이다. 한강 장편 소설 <소년이 온다>도 마찬가지다. 나긋나긋하고 덤덤할수록 그 아픔과 후폭풍은 강렬하다.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은 아니지만, 그러므로 반드시 읽어야 한다. 소설 속 문구 '인간은 무엇인가, 인간이 무엇이지 않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하는가.'를 생각한다면.
예전에 5.18 민주화 운동을 떠올리면 죽은 아비의 영정 사진을 들고 멍하니 눈을 뜨고 있는 아이가 제일 먼저 떠올랐다. 하지만 <소년이 온다>를 읽고 나니 꽃 핀 쪽으로 가자는 아이의 손짓에 끌려가던 엄마가 떠오를 것 같다. 6장으로 이루어진 소설은 모두 다른 화자가 등장한다. 모두가 직간접적으로 5.18 민주화 운동의 영향에 살고 있다. 혹은 이미 죽었거나. 떠난 이의 죽은 혼도 슬퍼하고, 죽은 혼을 그리는 남은 이도 괴로워한다. 살아남았다는 부채감 역시 쉽게 지울 수 없는 상처기 때문이다. 단춧구멍 같은 눈에 콧잔등이 번번한 정대, 스물세 살의 교대 복학생, 검열과에서 한없이 뺨을 맞아야 하는 은숙, 하루하루 불면과 악몽, 진통제와 수면유도제 속에서 늙어가는 진수.어린 피붙이를 떠올리며 일생을 그리움과 후회로 살아가는 엄마. 가해자는 떳떳하게 골프도 치고 새해 인사를 받으며 잘살고 있는데, 피해자들이 오히려 고개를 숙이고 고통을 받으며 살아가고 있다. 한강은 이런 부조리함을 조근조근 까발리고 있다.
총 피해자 7,200명. (사망 218명. 행방불명 363명. 상해 5,088명. 기타 1,520명) - 참여정부 조사 결과
고문을 당해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학생, 먼저 아이를 떠나보낸 부모, 눈앞에서 머리가 빠개지고 피가 철철 흐르는 장면에서 두려움에 떠는 군인. 한강은 단순히 7,200명이란 거시적인 숫자로 표현할 수 없는 미시적인 개개인의 아픔과 고통을 천천히 곱씹는다. 내면적인 아픔과 슬픔을 담담하게 털어놓는 한강의 주옥같은 문장들은 읽는 내내 몰입하기 싫을 정도였다. 그만큼 비극적이고 고통스러운 역사이기 때문이다.
자기보다 깨끗한 시체를 부러워하는 혼이 화자로 등장하는 2장 <검은 숨>도 인상적이었지만, 개인적으로 6장 <꽃 핀 쪽으로>가 가장 울림이 컸다. 광주 사투리로 천천히 읊조리는 어머니의 단어, 문장 하나하나에 자식에 대한 그리움이 가득했기 때문이다. 부모 입장에서 자식은 또 하나의 세계나 다름없다. 사소한 행동 하나, 불명확한 말 한마디도 모두 그들에겐 단순한 행동 그 이상의 소중한 추억이다. 5월 18일 지옥 같은 순간은 화목한 가정도 깨트렸다. 압지의 삼우제 때 형제는 뒤엉켜 싸우며 외친다. "그 쪼그만 것 손 잡아서 끌고 오면 되지, 몇날 며칠 거기 있도록 너는 뭘 하고 있었냐고!" "형이 뭘 안다고.... 서울에 있었음스로...형이 뭘 안다고..." 그들은 짐승처럼 울부짖으며 어린 피붙이를 그리워하고 고통스러워한다.
'어떤 기억은 아물지 않습니다. 시간이 흘러 기억이 흐릿해지는 게 아니라, 오히려 어떤 기억만 남기고 다른 모든 것이 서서히 마모됩니다.'
특히 어머니에게 막둥이의 기억은 흐릿해지지 않는다. 오히려 다른 모든 아픈 기억은 마모되고 행복한 추억이 선명해질 뿐이지. 젖먹이 시절 유난히 방긋 웃기를 잘했던 너, 손뼉 치는 어머니를 향해 한발 두발 걸음마를 떼었던 너, 여름밤 마당 평상에서 수박을 먹을 적에, 수박물을 혀로 더듬어 핥던 너. 어머니의 세계 속에 동호는 언제나 까까머리 앳된 중학생이다. 행복하고 따뜻하게 흘러가야 할 또 하나의 세계가 누군가의 폭력과 비인간성 때문에 무너져 버렸다.
"네가 여섯살, 일곱살 묵었을 적에, 한시도 가만히 안 있을 적에, 느이 형들이 다 학교 가버리먼 너는 심심해서 어쩔 줄을 몰랐제. 너하고 나하고 둘이서, 느이 아부지가 있는 가게까지 날마다 천변길로 걸어갔제. 나무 그늘이 햇빛을 가리는 것을 너는 싫어했제. 조그만 것이 힘도 시고 고집고 시어서, 힘껏 내 손목을 밝은 쪽으로 끌었제. 숱이 적고 가늘디가는 머리카락 속까장 땀이 나서 반짝반짝함스로. 아픈 것맨이로 쌕쌕 숨을 몰아쉼스로. 엄마, 저쪽으로 가아, 기왕이면 햇빛 있는 데로. 못 이기는 척 나는 한없이 네 손에 끌려 걸어갔제. 엄마아, 저기 밝은 데는 꽃도 많이 폈네. 왜 캄캄한 데로 가아, 저쪽으로 가, 꽃 핀 쪽으로."
엄마와 아이의 행복한 추억은 여기서 끝났다. 나머지는 고통과 후회, 그리움 따위의 감정들만 가득할 뿐이다. 피지 못한 아이들의 영혼을 위해서라도 우린 언제나 기억하고 또 기억해야 한다. 우리가 딛고 있는 이 땅의 정의는 거저 얻은 게 아니란 것을. 그리고 또다시 반복되는 역사를 위해서라도 이젠 우리가 나서야 할 차례다. 비정상과 비이성으로 가득했던 2014년도 1980년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으니.
비가 올 것 같아.
너는 소리 내어 중얼거린다.
정말 비가 쏟아지면 어떡하지.
너는 눈을 가늘게 뜨고 도청 앞 은행나무들을 지켜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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