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당연한 것들의 흑역사 - 온갖 혹평과 조롱을 받았던 혁신에 얽힌 뒷이야기
앨버트 잭 지음, 김아림 옮김 / 리얼부커스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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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봤을 때 전 세계 컴퓨터의 수요는 기껏해야 5대가 전부일 것이다."
"이제 컴퓨터로 가능한 일들은 한계에 부딪혔다."

2016년 지금 우리가 돌이켜 보면 아무 것도 모르는 바보가 한 말이 아니냐고 묻겠지만, 이들은 모두 당시 최고의 지성이자 전문가였다.  첫번 째 망언은 1943년 IBM의 회장 토머스 왓슨이 한 말이며, 두번째 실언은 애드박의 창시자 폰 노이만이 1949년 자신있게 한 말이다. 이렇듯 우리가 지금 주변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혁신의 출발은 모두 비판, 아니 그보다 심한 혹평과 조롱에 시달렸다. 모두가 아니라고 할 때 묵묵히 연구를 계속했던 이들은 자기 분야에서 눈부신 성과를 거두었고, 시대가 흐른 지금 위인으로 칭송받는다. (물론 사후에 재평가되어 돈을 후손이 챙긴 경우도 있었다.)

<시대가 비웃었던 상상>, <혁신을 불러온 집념>, <우연히 탄생한 것들의 역사>, <당대의 혹평을 들었던 문화상품>, <지금은 당연한 것들의 탄생>, <우스꽝스럽거나 황당하거나>. 총 6개의 챕터에는 온갖 실패와 좌절, 그리고 마침내 성공하는 이들의 이야기가 다양하게 담겨 있다. 우리가 모두 알고 있는 갈릴레오의 지동설을 시작으로 다양한 분야를 총망랑하고 있다. 라디오, 컴퓨터, 제트 엔진, 낙하산, 자동차같은 기기는 물론 비틀즈, 엘비스 프레슬리, 마를린 먼로 같은 문화 스타까지 익숙한 모든 것들을 나열한다. 마치 '신비한TV 서프라이즈'에서 좋아할만한 소재들이 가득한 책이었다. 혁신을 위해 고군분투한 이들의 이야기가 재밌는 이유는 독자 입장에서 당연히 성공이란 결과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비루한 안목으로 이들을 비난하고 실패할 거라 당연시했던 이들은 사실 매우 객관적이고 이성적이었다. 그들 역시 충분한 지식이 있었고, 다수의 지지를 받아 생긴 규칙에 따라 이들을 저지한 것이다. 하지만 혁신은 결국 남들과 다른 길을 확신을 가지고 걷는 이들에 의해 탄생하는 법이다. 이 책을 읽고 보면 자신의 신념에 목숨까지 거는(특히 낙하산의 경우에!) 과학자들의 열정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었다. 우스터소스, 고양이 배설용 점토 등 뭔지 갈피를 잡지 못하는 소재들을 제외하고는 부담없이 가볍게 읽어나갈 수 있었다. 원래 숨겨진 비화가 더욱 재밌는 법이며, 서문에서부터 은근히 유머러스한 저자 앨버트 잭의 문체덕분에 유쾌한 시간을 보냈다. (그의 서문은 아래와 같다. "마지막으로, 실은 제일 처음 언급했어야 하는 사람은 조디 와이스너이다. 그는 나와 대화를 나누던 도중에 자기도 모르게 이 책에 대한 아이디어를 제공해 주었다. 그러니 여러분이 이 책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그것은 조디의 탓이다.)

과연 나라면 혁신을 위해 노력하는 이들을 '바보'라고 조롱하지 않았을까? 현재의 기준에 맞춰 그저 안정을 추구하는 타입이기에 아마 그들의 기약 없는 노력, 비이성적인 신념을 비웃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안전한 노선은 잘하면 평균은 해도, 평균 이상을 할 수는 없다. 그러니 타인의 노력과 신념을 함부로 속단하고, 비웃거나 하찮게 여기지 말아야한다. 이들은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해서, 명예를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아이디어가 맞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한편 아이디어의 가치를 쉽게 판단할 수 없다는 점과 역시 기술이 힘이다(=공대가 답이다)란 웃지 못할 교훈을 얻으며 책장을 덮었다. 그러니 남에게 상처주는 말은 막 내뱉는 게 아니다. 그 사람의 성공을 가장 배아파할 사람이 바로 그런 사람들일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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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근두근 내 인생
김애란 지음 / 창비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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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여행을 떠나며 챙긴 소설책은 김애란 작가의 <두근두근 내 인생>였다. 9월말에 토크콘서트를 가기전 그녀의 책을 다시 한번 읽고 싶기도 했는데 눈에 들어온 게 이 책이었다. 워낙 <달려라 아비>, <침이 고인다> 같은 강렬한 단편에 감명을 받았고, <눈먼 자들의 국가(세월호를 바라보는 작가의 눈)>에서 담긴 가슴 먹먹한 글이 기억에 남았기에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였다. <두근두근 내 인생>을 사고도 이렇게 묵혀뒀던 이유는 아마 망한 영화때문일 것이다. 송혜교의 탈세 사건이 터지면서 이미지는 최악으로 떨어졌고, 영화는 빠르게 VOD로 안방에 퍼졌다. 물론 악평들만으로 편견이 생긴 것일 수도 있지만, 책을 읽기 전 상상의 나래를 펼친 공간이 제한적이란 점이 내 흥미를 반감시켰다. 우유부단 얼렁뚱땅 아빠 대수 의 헛발질을 보고 있으면 강동원이 생각났고, 욕을 내뱉으며 억척스러운 엄마로 커가는 미라를 보면 송혜교가 먼저 떠올랐다. 이미 정해진 이미지가 번지듯이 이어지는 탓에 사실 소설을 읽을 때도 흥미 요소 중 하나를 빼앗긴 기분이었다.  

하지만 스페인으로 떠나는 중간 두바이 공항에서 책장을 넘기기 시작하면서, 아니 정확히 말하면 프롤로그를 읽자마자 천천히 읽어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새로운 책을 읽을 수 없는 여행의 특성상 스페인에서 읽을 거리는 <두근두근 내 인생>이 전부였고, 이런 몰입력이라면 하루만에 뚝딱 다 읽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이것은 가장 어린 부모와 가장 늙은 자식의 이야기다."
어리고 철없는 소년소녀는 17살에 아름이를 낳으면서 아무런 준비 없이 훌쩍 부모가 되었다. 결혼이 새로운 인생의 전환점이라면, 육아는 그 인생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또 다른 힘이다. 점차 어른스러워지는 이 대수와 미라는 더 이상 꼬맹이가 아닌 조로증 소년 아름이의 '엄마, 아빠'다. 16살 아름이는 신체나이 80살이 되어버린 조숙한 아이다. 대부분의 시간을 병원에서 보낸 아름이는 책읽기와 글쓰기를 좋아하는 아이다. 처음으로 설렘을 경험하는 것도 역시 '글'을 통해서며, 부모님을 위한 마지막 선물 역시 본인이 쓴 '글'이다. 책을 읽고 나니 왜 영화가 실패했는지 알 수 있었다. 그저 신파로 흘러갈 수 있는 난치병 어린이, 그리고 해줄 수 없는 것에 슬퍼하는 부모님, 이들을 돕기 위한 감동과 슬픔의 콜라보레이션 성금 모금 방송까지. 이런 뻔한 장치들을 유쾌하고 가슴 먹먹하게 만들어 주는 건 오롯이 '글'이 지닌 강력한 힘이었다.

단편에 강한 김애란은 첫 장편인 <두근두근 내 인생>에서도 재기발랄함을 잃지 않았다. 게다가 마지막 <두근두근 그 여름> / 한아름은 또 하나의 단편이 아닌가? 애늙은이라 놀림받지만 너무나 사랑스럽고 아이같은 아름이에게 책은 더할 나위 없는 삶의 원동력이었다. (비록 거짓이었지만) 사랑하는 이에게 전하는 이메일, 세상에 남겨진 부모님에게 그들의 이야기를 '적당히' 각색한 소설. 아름이가 떠났어도 아름이가 쓴 글은 영원히 남아있을 것이다. 어린 시절 아파서 울면서 속을 게워내는 나를 보며 차라리 당신이 대신 아팠으면 좋겠다고 슬퍼하던 엄마.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정성스레 고심하며 썼다 지우다를 반복하며 편지를 쓰는 나. 여러모로 공감가는 장면이 많아 더욱 애착이 가는 소설이었다. 과묵하고 표현에 서툰 내가 유일하게 전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진심은 역시 글이기 때문이다. 적어도 부끄럽고 쑥쓰러운 감정의 파동이 조금은 덜 휘몰아치고, 그리고 조금 더 따뜻하니깐.

아름이가 좋아한 Antifreeze를 다시 한 번 들어보니 아름이의 글이 아른거리는구나.

우린 오래 전부터 어쩔 수 없는 거였어 우주 속을 홀로 떠돌며 많이 외로워하다가 어느 순간 태양과 달이 겹치게 될 때면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을 거야 하늘에선 비만 내렸어 뼈 속까지 다 젖었어 얼마 있다 비가 그쳤어 대신 눈이 내리더니 영화서도 볼 수 없던 눈보라가 불 때 너는 내가 처음 봤던 눈동자야 낯 익은 거리들이 거울처럼 반짝여도 니가 건네주는 커피 위에 살얼음이 떠도 우리 둘은 얼어붙지 않을 거야 바다 속의 모래까지 녹일 거야 춤을 추며 절망이랑 싸울 거야 얼어붙은 아스팔트 도시 위로 숨이 막힐 거 같이 차가웠던 공기 속에 너의 체온이 내게 스며들어 오고 있어 우리 둘은 얼어붙지 않을 거야 바다 속의 모래까지 녹일 거야 춤을 추며 절망이랑 싸울 거야 얼어 붙은 아스팔트 도시 위로 너와 나의 세대가 마지막이면 어떡해 또 다른 빙하기가 찾아오면 어떡해 긴 세월에 변하지 않을 그런 사랑은 없겠지만 그 사랑을 기다려줄 그런 사람을 찾는 거야. - Antifreeze / 검정치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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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간의 세계일주 - 이 세상 모든 나라를 여행하다
앨버트 포델 지음, 이유경 옮김 / 처음북스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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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쥘 베른의 고전 <80일간의 세계 일주> 덕분인지, 혹은 1 3일 밤도깨비 해외 여행까지 등장한 최근 항공기의 발달 덕분인지. 노인의 파란만장 모험담을 모은 <50년간의 세계일주>에서 '50'이란 시간이 유독 길게 느껴졌다. 하지만 책을 읽어보고 실제 모든 나라를 적어도 발도장이라도 찍고 왔다는 걸 보니 50년이란 세월을 이해할 수 있었다. <플레이보이>를 편집하기도 했던 괴팍한 노인 탐험가는 여행에 앞서 '세계일주'의 정의를 내렸다. (그래서인지 그의 여행기는 자극적이고 MSG가 잔뜩 뿌려져 있다.) UN에 가입 유무에 따라 국가로 인정하고 그는 193개국을 포함해 정치사회문화적인 이유로 UN 미가입국가인 대만,바티칸 시티, 코소보 등,  200국가가 넘는 모든 나라를 여행했다.
 
20대까지 여행이라곤 자신이 자란 미국, 나아가 옆동네 캐나다가 전부였던 그는 프랑스를 다녀온 이후 여행의 매력에 푹 빠졌다. 강박증에 가까운 여행중독자가 된 그는 남미, 아시아, 아프리카 가리지 않고 세계 방방곳곳을 누볐다. 무려 200개가 넘는 나라를 다녔지만 책의 대부분은 위험천만한 아프리카 여행기가 차지하고 있다. 우리에게 여행지로 잘 알려진 동남아나 파리, 런던 등 유명한 대도시는 언급조차 되지 않는다. AIDS 발발율 1, 내전으로 수백명이 목숨을 잃는 도시, 가난과 기아가 판치는 나라, 부패가 일상에 만연한 도시 등 그가 걸어온 여행지는 결코 안전과는 거리가 멀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적어도 살면서 절대 가보지 않은 곳들에 대한 동경과 호기심을 충족시켜주는 역할을 톡톡히 한다. 안전을 이유로 여행금지국가로 정해진 시리아같은 아중동 국가나, 통일이 되지 않는 이상 밟을 수 없는 북한에 대한 묘사는 생생하고 신기했다.
 
물론 그의 여행 방식을 절대 지지하고 싶지는 않다. 지뢰밭에서 야영을 한다거나, 식인 상어가 있는 강가에서 수영을 하는 짓은 돈을 준다고해도 하지 않을 일들이다. 게다가 영웅담처럼 내뱉는 불법적인 출입국과 위기탈출은 이야기로 들어서 웃어넘기지, 실제 지인이었다면 머리채를 잡고서라도 말렸을 일들 투성이다. 내게 여행기가 주는 매력은 크게 두 가지다. 내가 직접 체험하고 경험한 시공간에 대해 추억하고,타인이 느낀 감동을 공감하는 게 첫째다. 그리고 내가 가보지 못한 곳에 대한 기대와 호기심을 채워주는 게 둘째다. 그런 점에서 <50년간의 세계일주>는 두번째 요소에서 매력적이었다. 아울러 여행기는 특색이 있어야 손이 가는 편이다. 마치 대체 왜 여행을 가나 싶지만 투덜거리면서도 여행을 꿋꿋이 이어가는 빌 브라이슨처럼 말이다. 사진이나 영상이 클릭 한번이면 생동감 넘치게 나오는 시대인 만큼, 글에 저자만의 색다른 경험이나 매력이 있어야만 한다. 그런 점에서 위험한 상황을 더 아찔하고 긴박하게 풀어내는 데 일가견이 있는 저자는 합격이다.
 
스페인을 제외하면 아시아에서 벗어나지 못한 나는 여전히 공항에 가면 설렌다. 만남과 이별의 장인 공항에서는 언제나 애틋한 감정이 샘솟는다. (물론 인천공항의 깨끗하고 세련된 이미지 덕분일지도 모른다.)여름휴가로 다시 스페인을 찾기 전에 <50년간의 세계일주>를 읽었더니 더욱 여행에 대한 갈증이 커졌다. 지친 일상에서 잠시 한걸음 벗어나 떠나보면 깨닫는 게 참 많다. 단순히 일상에서 벗어났다는 해방감이 전부가 아니다. 그동안 잊고 지냈던 소중한 것들에 대한 고마움과 오롯이 나 자신만의 생각할 시간을 가질 수 있어서 좋다. 그리고 그 추억에 대한 힘으로 한 해를 또 버텨나가는 원동력을 얻는 법이다. 결코100% 만족스러운 이야기는 아니다. 여성 동행자를 중동 군인에게 넘겨줄 뻔한 걸 기지랍시도 허풍처럼 늘어놓는다거나, 49살 어린 부인을 만나 긴 여행의 종착역으로 결혼을 택한 것 등 불편한 것도 제법 보인다. 하지만 적어도 여행한 나라의 위험하고 비합리적인 상황에 대해 짜증을 내거나 미개하게 보는 것이 아니라, 최소한 그 사태의 원인이나 이유를 조목조목 살펴보는 건 칭찬할 일이다. 여행을 떠나기 전 제일 적절한 선택이었다. 해외여행에 대한 부푼 기대감과 위험에 대한 경각심을 적당한 비율로 선물해줬다. 이제 떠날 일만 남았다. 진짜 나를 위한 시간을 보내고 '안전하게' 돌아오자. 나의 소중한 일상이 살아숨쉬는 공간으로.

내 삶의 다른 많은 부분도 그랬다. 나는 모든 것을 시도해보려 했고, 모든 것을 흡수하려고 했고, 할 수 있는 모든 열정으로 일을 하려고 했다. 매우 즐겼던 여섯 개의 직업도 그렇다. 편집자, 작가, 광고회사 임원, 정부 로비스트, 변호사, 연극 제작자.
2000년 직후 나는 생각했다. 내가 얼마나 많은 나라를 가볼 수 있는지 한 번 알아보자. 재미있을 것 같았다.(천만의 말씀!) 그리고 변호사로 일하면서 기회가 될 때마다 나는 떠났다.
2003년 말까지 나는 최대 110개국을 갔다. 그때 나는 보험 수명 차트로 볼 때 남은 10~20년 여생 동안 ‘모든‘ 나라를 가보는 것이 가능하다고 깨달았다. 물론 흥미진진한 도전이었다. 그러한 위업을 달성 가능한 일이고, 할 수 있다고 깨달았다.

나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세계 모든 나라를 방문했는지 알아내려고 기네스북에서부터 위키피디아까지 조사했찌만, 그런 카테고리는 찾을 수 없었다. 모든 나라를 방문한 사람이 쓴, 혹은 그런 사람에 대해 쓴 책이나 기사도 발견할 수 없었다. 나는 국가가 되려면 어떤 조건을 충족해야 하는지 공부했고, 새로 생긴 나라들을 조사했다. 그리고 이렇게 하는 과정에서 나는 결심했다. 그렇다. 정말, 진정으로, 마침내 결심했다. 모든 나라를 가보겠다.
— 목표수정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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쌤통의 심리학 - 타인의 고통을 즐기는 은밀한 본성에 관하여
리처드 H. 스미스 지음, 이영아 옮김 / 현암사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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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간단히 말해, 쌤통 심리는 남의 불행이 우리에게 이런저런 이득을 가져다주기 때문에 발생한다. 경쟁 상황에서 자기 이익부터 챙기고 열등함보다는 우월함을 훨씬 더 좋아하는 우리 인간은 쌤통 심리라는 감정을 버릴 수 없다. 우리는 정의감도 갖고 있지만 공교롭게도 많은 불행이 자업자득으로 보인다. 특히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이 고통받을 대 우리는 고소해하며 그 고통이 마땅하다고 여기는 경향이 있는데, 이 중요한 연관성의 근거도 이 책에서 다룰 것이다.

-<들어가는 글>


자기 자신에 대한 감정은 변하기도 한다. 혼자 있는 상태에서는 배부르고 눈비를 피할 집이 있고 건강하기만 하다면 아무 불만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 사이에 산다면 사정이 달라진다. 남들보다 더 잘나고 싶고 또 그렇게 인정받고 싶은 욕망이 새롭게 생기면서, 일종의 자존심인 '자기애'가 더 중요해진다. 루소는 상대적인 차이로 인해 자신에 대한 감정이 어떻게 변화할 수 있는지를 알려준다. 자신이 열등하면 수치심과 질투를, 우월하면 허영심과 교만을 느낀다.

- <우월감은 황홀하다>

 


원제 <The Joy of Pain>보다는 <쌤통의 심리학>이 훨씬 더 이 책을 잘 설명하는 제목같다물론 최고의 풀이는 전통적인 한국 속담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겠지만. (한국인 아내의 영향인지 실제 이 속담은 책에도 등장한다.) 리처드 H. 스미스는 타인의 고통에서 느끼는 즐거움을 뜻하는 독일어 ‘샤덴프로이데(Schadenfreude)’ ‘쌤통 심리는 낱낱이 파헤친다우리 사회에 만연한 '샤덴프로이데' TV 프로그램부터 스포츠대선은 물론 홀로코스트까지 이어지는 자연스러운 감정이다대중은 본인과 전혀 상관없는 누군가의 실수와 실패에도 잔인하게도 즐거워한다네이버 포탈에는 수많은 사건 사고가 검색어 순위를 오르내리고댓글 혹은 악플로 네티즌은 기사를 재해석재생산한다미처 내보이지 못하는 은밀한 즐거움은 어떤 방법으로든 우리에게 반사이익을 주기 때문에 생겨나는 인간 본연의 감정이다내 자신의 안전함을 자위하고시기하던 연예인의 몰락에 속 시원해하며차마 공공연하게 드러낼 수 없는 본연의 감정을 저자는 다양한 사례를 들어가며 증명했다책을 읽는 독자도 충분히 공감할 수 있을만하게 말이다.


그루너의 주장에 따르면 승리할 때 느끼는 이런 기분은 경쟁에서 이기는 것이 생존에 확실히 도움이 되었던 진화적 과거를 떠올리게 한다. 특히 고투 끝에 갑작스런 승리를 얻었을 때 기쁨을 감추지 못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내 손가락이 칼에 베이면 비극, 남이 뚜껑 열린 하수구에 빠져 죽으면 코미디"라는 코미디언 멜 브룩스의 과장된 말이 비상식적인 소리처럼 들리지만은 않는다.

- <남의 열등함은 나의 자양 강장제>

 


책을 읽다 보면 유튜브 영상과 곁들여 보면 좋을만한 에피소드가 무척이나 많다오바마의 대선 토론 당시 대처법이나 미성년자 성매매 몰카쇼타이거 우즈의 스캔들 등글로는 차마 채워지지 않는 생생함은 짧은 영상만으로도 채워가는 재미가 있다특히 스포츠팬인 나는 '샤덴프로이데'에 너무나 익숙하다스포츠만큼 이러한 감정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이런 감정이 용인되는 경우는 많지 않다개인적 경쟁보다 집단 경쟁의 경우 치열하게 경쟁심이 유발되며집단이란 옷을 입고 광기를 내뿜을 가능성이 높아진다우리 팀의 경기도 아닌데 라이벌 팀이 결승에서 아쉽게 지면 "꼬시다"(사투리인가하지만 "잘 됐다."란 말보다 이 단어가 더 와닿는다.)란 감정이 제일 먼저 든다그들의 패배가 우리팀에 전혀 득이 될 게 없지만적어도 그들이 기뻐하는 모습을 보지 않는다는 점에선 반사이익이다이렇듯 다소 쪼잔해 보일 수 있는 이러한 감정이 누구나 자연스러운 감정이며 인정해야한다는 게 <쌤통의 심리학>의 주된 논조다.




하지만 심리학적으로 보면 정의감과 복수를 따로 떼어놓고 생각하는 건 이상한 일이다. 누군가가 우리에게 잘못을 했을 때 우리는 복수하고픈 충동을 느낀다. 우리에게 나쁜 짓을 한 사람이 '딱' 우리만큼 고통받기를 원한다. 이것이 바로 복수의 핵심이다. 우리는 부당하고 불공정한 피해를 당했다고 느낀다. 가끔은 이기적이고 주관적인 생각에서 원한이 생기기도 하지만 그럴 때조차 우리는 부당한 일을 당했다며 억울해한다. 또한 이기적인 동기가 있든 없든 간에 복수심은 정의감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으며 거기에는 분노, 증오, 울분 같은 감정들이 뒤섞여 있다. 그리고 이 모든 감정은 악행을 저지른 자에게 집중적으로 향한다.

-<원수의 고통은 더 달콤하다>

 

하지만 인간이 이러한 감정을 숨기기 위해 혐오증오분노로 표출되고집단화가 된다면 문제가 터져나온다남의 불행을 바라보며 즐거움을 얻는데서 그치는 게 아니라나아가 불행을 직접 유발한다는 방식이다저자는 인류 역사상 최악의 폭력으로 손꼽히는 반유대주의와 나치즘이 이런 집단적 광기의 표출이라고 분석한다. TV쇼 프로그램이나 스포츠에서는 공감 가는 부분이 많았지만 '나치즘'까지 확장되니 조금 무리한다는 느낌도 받았다단순히 유대인이 고위 공직을 더 많이 차지했다고돈을 더 번다고 해서 인간성을 말살한 채 그들을 학살했다고 단순하게 보기 어렵지 않은가물론 분노슬픔기쁨처럼 질투란 감정도 애써 지나치기 보다는 솔직하게 받아들이며 조절하는 게 긍정적이란 말에는 적극 공감한다그 감정이 피어나는 것 자체를 틀어막으려고 시도하는 것은 무의미하고 무력한 일이다.


<아메리칸 아이돌>과 <성범죄자를 잡아라>를 보는 시청자들은 출연자들에 비해 자신이 더 높은 지위에 있다고 느끼고 그래서 자부심도 높아진다. (중략) "인간 본성에 대한 귀중한 통찰이라도 얻자고 리얼리티 프로그램을 시청하는가? 말도 안 된다. 우리가 그 민망한 장면들을 보는 건, 촬영되지 않는 우리의 소소한 삶이 조금이나마 더 낫구나, 하고 느끼게 해주기 때문이다.

-<남의 망신은 나의 즐거움> 


인간이란 쌤통 심리만큼이나 '공감'의 능력 또한 존재한다누군가의 행동의 원인을 무조건 그 사람 책임으로 돌리기 보다는 침착하고 차분하게 한걸음 물러나서 바라보는 시도가 필요하다단순히 성격이 나빠서 소리를 지른다고 단정짓지 말고그에게 닥쳤을 수도 있는 불행한 상황에 주목하는 것이다. <아메리칸 아이돌>까지 안 가더라도 자극적인 편집은 그 이상인 <슈퍼스타 K>나 기타 오디션 프로그램만 봐도 알 수 있다그들의 실수나 모자란 실력을 비웃으며 상대적으로 나은 자신을 바라보고 행복해하는 건 너무나 소모적인 행복 아닌가연예인 가쉽거리나 루머에 희희덕거리는 상대적 우월감은 언제든지 새로운 상대에 의해 부서질 수 있기 때문이다. <쌤통의 심리학>은 무겁고 다소 불편한 주제일 수 있지만사례 중심으로 무척 재밌고 말랑말랑하게 접근하는 책이다비슷한 사례가 다소 반복되고(스탠리 밀그램의 실험은 대체 안 나오는 심리학 책이 있을까?), 조금 더 발전된 알맹이가 느껴지지는 않았다.  그래도 책을 읽는 동안 나를 돌아보고불편한 감정에 조금 더 솔직해질 수 있는 시간이었으니 그쯤으로도 충분하다.



세상의 공정함을 믿으려다 보면 어떤 불행이 응당한가 아닌가를 공정하게 판단하기 어려워질 수 있고, 이는 편견이라는 전반적인 문제를 일으키며 그 편견은 판단력을 왜곡하여 쌤통 심리를 만들어낼 수도 있다. 사회심리학자 마크 앨리크의 연구가 증명해 보였듯이, 우리는 남들에게 나쁜 일이 생겼을 대 그들이 태만하지 않았다면 그런 일을 예방할 수 있었을 거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그들을 괘씸하게 생각하고 그들의 고통을 더 통쾌하게 여긴다. 우리의 이런 성향을 앨리크는 '결과 편향(outcome bias)'이라고 부른다. 누군가를 부정적으로 평가하고 싶을 때 마침 부정적인 사건이 일어나면, 우리는 드러난 사실로는 알 수 없는 고의성을 확신하면서 "그럴 줄 알았다"라고 말한다. 쌤통 심리 자체가 이런 과정을 더욱 부추길 수도 있다. 누군가의 고통이 통쾌하게 느껴지면 우리는 그 사람이 비난받을 만한 인간이라고 결론지어버린다.

-<원수의 고통은 더 달콤하다>


질투에 폭력성이 잠재된 적대적이고 극단적인 성질이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겉으로는 상냥하게 들리는 농담을 하며 웃는 것과, 다른 사람들이 고통당할 때 통쾌한 기분으로 방관하는 것, 심지어 피해까지 끼치는 것은 서로 엄연히 다르다. 대개 사회 규범은 적대적인 행동을 저지한다. 하지만 질투는 아주 추악하면서도 또한 정당한 감정일 수 있기 때문에, 그리고 질투의 감정을 솔직히 털어놓으면 자존감이 흔들릴 수도 있기 때문에, 순전한 분노와 원망 같은 좀 더 구미에 맞는 감정으로 변화하기 쉽다. 그렇게 질투가 다른 감정으로 변하고 나면, 이젠 질투 대상에게 불행이 일어나기를 좌절감 속에서 기다릴 필요가 없어진다.

- <질투의 추악한 얼굴>

우리의 이런 성향을 알고 있으면, 적어도 누군가의 행동을 보자마자 아무 죄책감없이 ‘쌤통이다!‘라고 외치기 전에 좀 더 복합적인 이유를 찾을 수 있게 될 것이다. 근본적 귀인 오류를 저지르는 우리의 성향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다른 사람에게 불행이 닥쳤을 때 종합적인 상황을 판단하기 위해 의식적인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상황적 요인과 기질적 요인을 동등하게 놓고 고려한다면 남의 불행에 아무 생각 없이 웃음을 터뜨리거나 미소 짓는 일은 줄어들 것이다.

- <누구에게도 악의를 품지 말고, 모두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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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과 피아노 곰과 피아노 1
데이비드 리치필드 글.그림, 김경미 옮김 / JEI재능교육(재능출판)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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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상한 소리를 내던 물건은 아기 곰을 만나 아름다운 악기로 거듭났다.

숲속의 아기 곰은 피아노를 만나 도시의 화려한 피아니스트로 자랐다.

부푼 꿈을 안고 떠난 곰은 넓은 세상에서 마음껏 재능을 뽐내며 성공했다.

하지만마음 한 구석에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피어올랐다평화로운 숲 속에서 친구와 가족을 관객 삼아 건반을 치던 때가 행복했다는 걸 기억해냈다그리고 곧장 고향으로 돌아가지만 내심 불안하고 두려웠다.오래전 나를 잊어버렸으면 어떡하지떠난 나를 미워하면 어떡하지?

 

"곰은 결코 잊혀진 게 아니었어요.

그의 친구들은 화가 난 게 아니라 오히려 자랑스러워했지요.


곰은 자기가 어디에 있든 무엇을 하든

언제까지나 친구들이 그곳에 있으리라는 걸 깨달았어요.


친구들은 곰이 돌아올 날을 위해

곰의 피아노를 그늘 아래 고이 놓아두기까지 했답니다."

 

아기 곰의 걱정은 한낱 기우였다그들은 언제 어디서나 조용히 응원하고 있었고기다리고 있었다아기 곰의 성공을 기꺼이 자기 일처럼 함께 기뻐해줬다고향이란 그런 법이다그리고 가족과 친구란 마찬가지다어떤 조건이나 이유 없이 그저 온전히 내 편이 되어줄 수 있는 존재들이다성공을 꿈꾸며 고향을 떠나온 사람들이 많다힘들고 지치더라도 그들의 사랑을 기억하고내가 그들의 자긍심이란 생각을 떠올리면 좋겠다아무리 거칠고 힘든 세상이더라도무조건 내 편이 되어줄 이가 한 명이라도 있다면 어떻게든 버텨내고 행복할 수 있는 곳이 세상이니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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