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간의 세계일주 - 이 세상 모든 나라를 여행하다
앨버트 포델 지음, 이유경 옮김 / 처음북스 / 2015년 8월
평점 :
절판


쥘 베른의 고전 <80일간의 세계 일주> 덕분인지, 혹은 1 3일 밤도깨비 해외 여행까지 등장한 최근 항공기의 발달 덕분인지. 노인의 파란만장 모험담을 모은 <50년간의 세계일주>에서 '50'이란 시간이 유독 길게 느껴졌다. 하지만 책을 읽어보고 실제 모든 나라를 적어도 발도장이라도 찍고 왔다는 걸 보니 50년이란 세월을 이해할 수 있었다. <플레이보이>를 편집하기도 했던 괴팍한 노인 탐험가는 여행에 앞서 '세계일주'의 정의를 내렸다. (그래서인지 그의 여행기는 자극적이고 MSG가 잔뜩 뿌려져 있다.) UN에 가입 유무에 따라 국가로 인정하고 그는 193개국을 포함해 정치사회문화적인 이유로 UN 미가입국가인 대만,바티칸 시티, 코소보 등,  200국가가 넘는 모든 나라를 여행했다.
 
20대까지 여행이라곤 자신이 자란 미국, 나아가 옆동네 캐나다가 전부였던 그는 프랑스를 다녀온 이후 여행의 매력에 푹 빠졌다. 강박증에 가까운 여행중독자가 된 그는 남미, 아시아, 아프리카 가리지 않고 세계 방방곳곳을 누볐다. 무려 200개가 넘는 나라를 다녔지만 책의 대부분은 위험천만한 아프리카 여행기가 차지하고 있다. 우리에게 여행지로 잘 알려진 동남아나 파리, 런던 등 유명한 대도시는 언급조차 되지 않는다. AIDS 발발율 1, 내전으로 수백명이 목숨을 잃는 도시, 가난과 기아가 판치는 나라, 부패가 일상에 만연한 도시 등 그가 걸어온 여행지는 결코 안전과는 거리가 멀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적어도 살면서 절대 가보지 않은 곳들에 대한 동경과 호기심을 충족시켜주는 역할을 톡톡히 한다. 안전을 이유로 여행금지국가로 정해진 시리아같은 아중동 국가나, 통일이 되지 않는 이상 밟을 수 없는 북한에 대한 묘사는 생생하고 신기했다.
 
물론 그의 여행 방식을 절대 지지하고 싶지는 않다. 지뢰밭에서 야영을 한다거나, 식인 상어가 있는 강가에서 수영을 하는 짓은 돈을 준다고해도 하지 않을 일들이다. 게다가 영웅담처럼 내뱉는 불법적인 출입국과 위기탈출은 이야기로 들어서 웃어넘기지, 실제 지인이었다면 머리채를 잡고서라도 말렸을 일들 투성이다. 내게 여행기가 주는 매력은 크게 두 가지다. 내가 직접 체험하고 경험한 시공간에 대해 추억하고,타인이 느낀 감동을 공감하는 게 첫째다. 그리고 내가 가보지 못한 곳에 대한 기대와 호기심을 채워주는 게 둘째다. 그런 점에서 <50년간의 세계일주>는 두번째 요소에서 매력적이었다. 아울러 여행기는 특색이 있어야 손이 가는 편이다. 마치 대체 왜 여행을 가나 싶지만 투덜거리면서도 여행을 꿋꿋이 이어가는 빌 브라이슨처럼 말이다. 사진이나 영상이 클릭 한번이면 생동감 넘치게 나오는 시대인 만큼, 글에 저자만의 색다른 경험이나 매력이 있어야만 한다. 그런 점에서 위험한 상황을 더 아찔하고 긴박하게 풀어내는 데 일가견이 있는 저자는 합격이다.
 
스페인을 제외하면 아시아에서 벗어나지 못한 나는 여전히 공항에 가면 설렌다. 만남과 이별의 장인 공항에서는 언제나 애틋한 감정이 샘솟는다. (물론 인천공항의 깨끗하고 세련된 이미지 덕분일지도 모른다.)여름휴가로 다시 스페인을 찾기 전에 <50년간의 세계일주>를 읽었더니 더욱 여행에 대한 갈증이 커졌다. 지친 일상에서 잠시 한걸음 벗어나 떠나보면 깨닫는 게 참 많다. 단순히 일상에서 벗어났다는 해방감이 전부가 아니다. 그동안 잊고 지냈던 소중한 것들에 대한 고마움과 오롯이 나 자신만의 생각할 시간을 가질 수 있어서 좋다. 그리고 그 추억에 대한 힘으로 한 해를 또 버텨나가는 원동력을 얻는 법이다. 결코100% 만족스러운 이야기는 아니다. 여성 동행자를 중동 군인에게 넘겨줄 뻔한 걸 기지랍시도 허풍처럼 늘어놓는다거나, 49살 어린 부인을 만나 긴 여행의 종착역으로 결혼을 택한 것 등 불편한 것도 제법 보인다. 하지만 적어도 여행한 나라의 위험하고 비합리적인 상황에 대해 짜증을 내거나 미개하게 보는 것이 아니라, 최소한 그 사태의 원인이나 이유를 조목조목 살펴보는 건 칭찬할 일이다. 여행을 떠나기 전 제일 적절한 선택이었다. 해외여행에 대한 부푼 기대감과 위험에 대한 경각심을 적당한 비율로 선물해줬다. 이제 떠날 일만 남았다. 진짜 나를 위한 시간을 보내고 '안전하게' 돌아오자. 나의 소중한 일상이 살아숨쉬는 공간으로.

내 삶의 다른 많은 부분도 그랬다. 나는 모든 것을 시도해보려 했고, 모든 것을 흡수하려고 했고, 할 수 있는 모든 열정으로 일을 하려고 했다. 매우 즐겼던 여섯 개의 직업도 그렇다. 편집자, 작가, 광고회사 임원, 정부 로비스트, 변호사, 연극 제작자.
2000년 직후 나는 생각했다. 내가 얼마나 많은 나라를 가볼 수 있는지 한 번 알아보자. 재미있을 것 같았다.(천만의 말씀!) 그리고 변호사로 일하면서 기회가 될 때마다 나는 떠났다.
2003년 말까지 나는 최대 110개국을 갔다. 그때 나는 보험 수명 차트로 볼 때 남은 10~20년 여생 동안 ‘모든‘ 나라를 가보는 것이 가능하다고 깨달았다. 물론 흥미진진한 도전이었다. 그러한 위업을 달성 가능한 일이고, 할 수 있다고 깨달았다.

나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세계 모든 나라를 방문했는지 알아내려고 기네스북에서부터 위키피디아까지 조사했찌만, 그런 카테고리는 찾을 수 없었다. 모든 나라를 방문한 사람이 쓴, 혹은 그런 사람에 대해 쓴 책이나 기사도 발견할 수 없었다. 나는 국가가 되려면 어떤 조건을 충족해야 하는지 공부했고, 새로 생긴 나라들을 조사했다. 그리고 이렇게 하는 과정에서 나는 결심했다. 그렇다. 정말, 진정으로, 마침내 결심했다. 모든 나라를 가보겠다.
— 목표수정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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