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조 원의 사나이들 - 자수성가로 부자의 꿈을 이룬 25인의 마법 같은 이야기
정창원 지음 / 매일경제신문사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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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손으로 시작해 1조원의 꿈을 이미 이뤘거나 그 꿈을 향해 달리는 사람들의 현재 진행형 성공기가 본 책에 담겨 있다. 그렇다면 누구나 맨손으로 시작해 1조 원을 벌 수 있을까?

 

사람들 대부분은 옛날이나 가능했지, 지금은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개천에서 용 나는 시절은 끝났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요즘 젊은이들은 흙수저 논란에 절망한다. “열심히 공부해 대학가서 결국은 치킨집 사장, 고등학교 다닐 때 놀다가 결국은 치킨집 사장”이라는 자조적인 이야기까지 나온다.

 

자수성가해서 매출액 1조 원이라는 큰 성공을 거둔 사람들은 이런 상황을 어떻게 생각할까. 그들은 요즘 젊은이들이 힘든 것은 맞지만 과연 진정으로 깊은 절망에 빠져본 적이 있느냐고 반문한다. 그러면서 흙수저 논란에 대해 자신은 흙수저는커녕 밥 먹을 수저조차 없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한 번도 자신을 흙수저라고 생각하지 않았다며 스스로를 흙수저라고 표현하면 정말로 흙수저가 된다고 조언했다.

 

필자가 이 글을 쓰게 된 계기는 1997년 외환위기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기자로서 부동산 분야를 취재하게 되었는데 외환위기로 부동산 사업 대부분이 좌초되거나 중단된 상태였다. 그러다 보니 취재할 거리가 없어서 부동산 사업자들과 삼겹살이나 김치찌개에 소주 한잔하는 것이 유일한 낙이었다. 그들은 “언젠가는 성공할 거야”라고 외쳤지만 현실은 초라했다. 서로 술값을 나눠내면서 그렇게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어려운 시절이 지나고 2000년대 초반 부동산 시장이 살아나자 어려운시절을 겪었던 사업자들이 기지개를 펴기 시작했다. 부동산 프로젝트1건을 할 때마다 많은 돈을 벌어들이면서 큰 기업으로 쑥쑥 성장했다.

 

그런 과정을 지켜보면서 큰돈을 번 기업인이라도 초창기에는 단돈 만원이 없어 김치찌개에 소주 한잔하던 평범한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알게되었다. 또한 현실이 아무리 초라하더라도 반드시 성공하겠다는 강한 신념으로 도전하면 누구나 성공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후 자수성가한 CEO들과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는 기회에 그들의 이야기에 담긴 땀과 눈물, 성취감등은 더 많은 사람들과 나누기 위해 이 글을 쓰게 되었다.

 

그런데 필자는 그들의 이야기 속에서 공통점을 발견할 수가 있었다.

 

먼저 그들에겐 꿈이 있었다. 물론 꿈은 상황에 따라 변하기 마련이다. 꿈을 향해 뛰다 보면 때로는 그 꿈을 수정하기도 하고 때로는 또 다른 꿈이 생겨나기도 한다. 결국 꿈은 자신이 처한 위치에서 최선을 다해야 하는 목표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고 커다란 꿈만이 정답은 아니다. 일단 작은 꿈부터 최선을 다하고 그 다음에 조금 더 큰 꿈을 꾸면서 전진해야한다. 중요한 것은 멈추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고 핑계를 대기보다는 항상 새로운 꿈을 꾸면서 쉬지 않고 도전하는 자세가 중요하다.

 

두 번째 그들은 그 꿈을 반드시 실현시키겠다는 간절함이 있었다. 꿈이 있다고 모두가 성공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들은 실패하더라도 포기하지 않았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라는 격언을 항상 마음속에 간직하고 성공할 때까지 수십 번씩 다시 도전했다.

 

세 번쩨 그들은 자신이 최고라는 마음을 갖고 스스로를 믿었다. 그들 대부분은 회사 내에서 독불장군이란 애칭을 갖고 있었다. 사업 아이템부터 진행 여부와 진행 과정까지 최종적으로 그 스스로 판단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누구에게나 선택은 어려운 것이다. 하지만 자신의 모든 역량을 동원해 주어진 상황을 판단하고 일단 결론을 내리면 흔들리지 않고 도전해야 한다. 비록 실패하더라도 값진 경험을 얻을 것이고 이를 토대로 뚝심있게 밀고 나가면 언젠가는 성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네 번째 그들의 시선은 미래를 향해 있었다. 그들은 가끔 정상적인 사람의 눈으로 보면 말도 안 되는 몽상가적인 기질을 갖고 있었다. 그들은 5년, 10년 뒤에 열릴 시장을 미리 보면서 자기 혼자 미소를 짓고 있기 때문이다. 발은 현실에 딛고 시선은 미래를 향해 있었던 것이다. 이와 함께 관심 있는 분야는 호기심에 머물지 말고 완벽하게 파악하려고 노력해야한다. 그러면 틈새가 보이고 실천으로 옮길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

 

마지막으로 그들은 주변의 신뢰를 얻고 있었다. 전인미답의 길을 걷다 보니 그들은 실수도 많이 했다. 자칫 회사가 망해버리기도 했다. 그때 그들은 다시 일으켜 세운 힘은 바로 주변 사람들의 신뢰였다. 모든 성공의 밑바탕에는 신뢰가 있다. 성공할수록 초심을 잃지 않고 주변 사람들에게 신뢰를 쌓아야 하는 것이 아주 중요하며 이렇게 신화를 만든 그들의 실례를 다음 과 같이 소개한다

 

1.1,000원짜리로 신화를 만든 박정부 다이소 아성산업 회장

2.수백조 원 바이오 시장을 점령한 서정진 셀트리온 회장

3.생갉 먹는 치킨의 제왕 윤흥근 제너시스 BBQ 회장

4.세계 화장품 시장의 숨은 실세 이경수 코스맥스 회장

5.대한민국 부동산 시장 내 손안에 있다 문주현 한국자산신탁 회장

6.글로벌 기업을 삼켜버린 월급쟁이 윤윤수 FILA회장

7.유럽 최고의 한국인 거상 박종범 영산그룹 회장

8.스크린골프 세상을 만들다 감영찬 골프존 회장

9.시골 촌놈, 항공사 사장이 되다 이상직 이스타 항공 회장

10.테이크아웃 커피 문화를 만든 커피 왕 문창기 이디아 회장

11.컬러볼로 세계 골프 시장을 정복하다 문경안 볼빅 회장

12.가누다 베게로 세로운 세상을 열다 유영호 티앤아이 대표

13.주차 왕이 된 노조위원장 윤형관 하이이노베이션 회장

14.틈새시장을 개척한 금융계의 이단아 최윤 이프로서비스그룹 회장

15.동네 선술집에서 시작된 건설신화 오병환 우성건영 회장

16.세상을 바꿔버린 괴짜 디벨로퍼 배병복 원마운트 회장

17.사람들의 마음을 이어주다 조웅래 맥키스컴퍼니 회장

18.분식집으로 재벌을 꿈꾸다 나성균 죠스푸드 대표

19.만화 속 전국 맛집을 한자리에 모으다 서대경 식객촌 대표

20.맨손으로 패션의 전설이 되다 박순호 세정그룹 회장

21.광장시장의 신화가 된 사나이 최병오 패션그룹형지 회장

22.토종 아웃도어의 자존심 강태선 불랙야크 회장

23.구로공단에 패션 왕국을 건설하다 홍성열 마리오 아울렛 회장

24.노점상에서 일군 패션몰 신화 전상용 오렌지팩토리 대표

25.해외시장 개척만이 살길이다 강덕영 한국유나이티드제약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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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는 부동산의 법칙 - 문재인 트럼프 시대, 폭등하는 부동산
조현철 지음 / 매일경제신문사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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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상승장이 오지 않을 가능성도 있을까? 물론 있다.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있다’는 뻔한 예측으로 들릴지 모른다. 하지만 이 책에서 한 것은 예언이 아니라 예측이다. 예언은 뭔가 뚜렷한 근거는 없지만 확신을 가지고 하는 것이 예언이다. ‘신의 말씀’이나 “꿈 속 계시‘ ’육감‘등을 말한다. 반면 예측은 각자의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특정 근거를 가지고 하는 것이다. 이 근거 자체가 흔들린다면 예측은 바뀔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어떤 근거가 흔들릴 수 있다는 말인가? 우선 경기회복이나 금리의 제한적 인상 부분은 크게 달라질 가능성이 낮다. 미,중 간 전면적인 무역전쟁이나 중국 발 금융위기. 북핵 같은 극단적인 돌발변수가 아니라면 말이다. 반면 정책 변수는 언제든지 극단적으로 흐를 수 있다.

한국의 부동산 정책은 간혹 그런 면을 보여왔다.

마치 특정성향의 정권을 비판적으로 기술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도 안다. 하지만 이런 극단적인 부동산 정책은 반드시 진보 정권에서만 나온 것은 아니다. 우리가 아는 가장 극단적인 부동산 정책은 ‘보수’도 모자라 ‘극우’라고 불려도 할 말이 없을 군사정권 하에서 나왔다.

타임머신을 타고1980년대 후반으로 갔다고 해보자. 지금 가지고 있는 모든 지식과 경험을 가지고 1990년대 한국 부동산시장을 예측하라고 한다면? 분명 폭등한다고 대세 상승의 시점이라고 예측했을 것이다.

근거는 역시나 경제성장에 있다.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 단군 이래 유례없는 호황을 누리고 있었다. 유가는 1990년대 초반 일시적인 상승을 제외하고는 낮은 가격을 유지했고 금리는 1990년대 후반 외환위기가 올 때까지 지속적으로 우하향 곡선을 유지하고 있었다. 플라자합의로 타격을 받은 엔화와 마르크화에 비해 원화 경쟁력은 지속되고 있어 계속되는 수출호황으로 나라 전체에 돈이 돌고 있던 시기다. 당연히 부동산도 폭등해야 했고 1980년대 후반 이미 폭등을 거듭하고 있었다. 집값이 떨어질 이유가 없어 보였다.

부동산 하락은 극단적인 정책에서 시작되었다. 앞서 설명했듯 부동산이 급등하면 여기서 소외된 서민, 샐러리맨 층이 동요해 가뜩이나 취약한 정권기반이 흔들릴 수 있다는 불안감이 있었다. 때문에 주택 200만호 건설이라는 극약처방을 내린 것이다. 이게 왜 그토록 극약처방일까? 내가 만약 1989년으로 돌아가 ‘주택 200만호 건설’이라는 정책을 언론에서 접했어도 여전히 부동산은 상승할 것이라는 견해를 유지했을 것이다. 이미 불가능한 계획이라고 한 번 결론이 났던 정책이기 때문이다.

노태우 대통령의 주택 200만호 건설은 하늘 아래 새로운 내용이 아니었다. 박정희 시대에도 250만호 건설 정책이 있었고 노태우 대통령의 동지이자 전임 대통령이었던 전두환 대통령은 한 술 더 떠 주택 500만호 정책을 추진했었다. 역시나 주택가격이 급등하자 취약한 정권기반이 흔들릴 것을 우려해 생각해냈던 정책이다.

그럼 5공화국 시절에 주택 500만 채가 지어졌을까? 결론적으로 말해 아니다. 6년 동안 약 100만호 남짓 짓고 끝났다. 애초에 무리한 정책이었기 때문이다. 경제부처를 비롯해 모든 관련 부처와 장관들이 반대해 결국 무산되고 말았다. 박정희의 250만호 건설도 마찬가지로 중도 포기했다.

그렇다면 200만 호는 500만 호에 비해 상대적으로 용이했기 때문에 가능했을까? 200만 호 건설 역시 엄청난 정부 내부와 사회적 반대에 부딪혔다. 아이러니한 것은 부동산 가격을 잡겠다는 보수 정부의 정책을 당시 야당이었던 진보세력(DJ의 평화민주당)에서 반대한 것이다. 이유는 신도시가 들어설 분당과 일산 농부들의 생존권이 걱정된다는 이유에서였다. 정치란 이런 것이다.

정치 공세는 둘째치고 정말로 ‘현실적으로’ 실현 불가능한 정책이었다. ‘건축자재가 부족해 세척하지 않은 바다모래로 신도시를 지었다’ 정도가 아니다. 당시 평촌과 산본의 일부 아파트는 멀쩡히 짓던 아파트를 중간에 부수고 다시 지어야만 했다. 시멘트 품귀현상이 극심해 정도가 심해도 너무 심한 불량 레미콘이 납품된 것이다. 공사를 하는 와중에 양생이 끝난 콘크리트가 부스러지기 시작해 도저히 공사를 진행할 수 없었다고 한다.

건축자재만 부족한 것이 아니었다. 집을 지을 사람 자체가 부족했다. 지금처럼 조선족이나 동남아 노동자를 들여올 상황도 아니었다. 중국과는 국교 자체가 수립되기 전이라 사람이 왕래할 수조차 없었다. 숙련공은 고사하고 단순노무인력도 부족해 180만 명이 필요하다고 추산된신도시 건설현장에 실제로는 120만 명만 투입되었다는 조사도 있다.

건설현장에서 비롯된 극심한 인력부족 현상은 제조업으로까지 확산되어 사회 전체적으로 임금을 폭등시켰다. 당시만 해도 그리 부자집이 아니더라도 다 입주식모를 두던 시절인데 1990년을 전후해 사회 전반적으로 임금이 폭등하자 입주식모는 일부 정말 부유한 계층을 제외하고 는 자취를 감췄다. 1980년대 주택에 기본으로 있던 부엌 안의 식모방이 1990년대 초반 평면부터는 없어진 이유이기도 하다.

결국 주택 200만 호 건설은 그 위력을 발휘했고 온 나라가 경제호황에 취한 1990년대 초중반 부동산시장만은 홀로 하락세를 면치 못했다.

그렇다면 타임머신을 타고 당시로 돌아간다면 이런 상황을 예측할 수 있었을까? 전혀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예상치 못한 극단적인 정책의 실행을 눈으로 보며 매우 당황해 했을 것이다.

역대 정권들의 정책을 비교하며 하나의 귀중한 교훈을 얻었다. 바로 ‘정책이라는 것은 이렇듯 사람의 머릿속에서 나오는 것이고 사람마다 그 생각의 방향과 의지의 강도가 달라 방향성을 예측하기 힘들기 때문에 매우 극단적인 형태를 띌 수도 있다’는 것이다.

앞서 집값이 오르는 이유는 크게 ‘공급 부족’과 ‘과잉유동성’ 두가지라고 했다. 반대로 말하면 공급이 과도하거나 유동성이 부족하면 집값이 떨어진다. 1990년대 초반에는 분명 경제호황에 따른 과잉유동성이 존재했다. 하지만 주택 200만 호 건설이라는 극단적인 정책을 밀어붙여 공급 과잉을 만들어냈고 결국 이 공급 과잉이 과잉유동성을 압도한 것이다. 사람의 머리에서 나오는 극단적인 정책 앞에 경제전망은 한없이 작아질 수 있다. 이는 보수와 진보를 가리지 않는다. 정치에 뛰어든 이상 정권을 잡는 것이 우선이고 그러기 위해서는 정권 기반이 흔들려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내가 정권을 잡아야 국민을 위한 나의 진정한 정책을 실행할 기회가 있지 않을까? 모든 정치인은 이렇게 생각하며 대부분의 시간과 열정을 ‘진정한 정책을 실행하는 것’ 보다는 진정한 정책을 실행할 기회를 잡는 데‘ 투자하며 보낸다.

이번 정권 역시 부동산 정책이라는 면에서 극단적인 정책을 실행할 개연성이 매우 높다. 이번 정권 주역 대다수가 함께했던 지난 정권의 정책에서도 이미 확인된 바 있고 성격이 전혀 다른 정권에서도 얼마든지 유사한 선택을 했기 때문이다. 이미 정책의 방향성은 정해졌다. 이 틀 안에서 존재감을 나타낼 방법은 하나밖에 없다. 더 세게 하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 출범후 눈치를 보면서도 여기저기서 부동산 시장이 조금씩 들썩이고 있다. 제일 먼저 두드러지는 쪽이 시범 케이스로 매우 강한 규제를 맞을 공산이 크다. 새 정부가 시장과 마주하는 첫 정책인데 적당히 할 리도 없고 하는 입장에선 그리 해서도 안 될 것이다. 첫 정책부터 시장의 기선을 제압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노태우 정권이 주택 200만 호 건설이라는 극단적인 공급정책을 써서 주택가격을 잡는 데 성공했지만 이번 정권에서 유사한 공급확대 정책을 쓸 가능성은극히 낮다. 인구가 늘고 수도권이 확대되던 당시 상황과 다르게 이미 인구가 정체되어 있고 지난 정부에서조차 신규택지지구 개발 포기를 선언할 만큼 재정적인 여력이 없기 때문이다. 이번 정권이 택할 가능성이 있는 정책은 수요억제정책으로 이미 DSR (Debt Service Ratio 총부채원리금 상환비율)을 도입 예고 했다. 이 DSR 규제는 주택담보대출 외에 모든 대출에 대해 적용한다는 점에서 기존의 DTI보다 한층 더 강화된 대출규제 정책이다. 쉽게 말해 같은 연소득일 때 대출받을 수 있는 금액이 줄어든다는 말이다.

물론 현재 예고한 DSR 규제는 150%내외로 그리 강력하진 않다. 하지만 시장 상황에 따라 언제든 강화되고 대출총량 규제까지 더해지면 그야말로 현금 있는 사람 외에는 집 사기 힘든 상황까지 올 수 있다. 이렇게 제한된 주택구입 수요는 이미 도입이 예고된 ‘전월세 상한제도’와 ‘임차권 갱신제도’를 통해 전월세 시장으로 유도될 것이다. 주택구입 목적의 대출을 죄는 정책과 세입자에게 극단적으로 유리한 전월세 상한제도 및 임차권 갱신제도가 동시에 시행되면 주택 수요를 극단적으로 차단해 일시적으로나마 부동산시장이 냉각되는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물론 공급이 제한된 상황에서 수요를 억눌러 인위적으로 하락시킨 자산 가격은 물꼬만 트이면 언제고 용수철처럼 튀어 오르며 폭등장세를 연출할 것이다. 앞사 말하지 않았던가? 주택시장에서 공급이 중요한 이유는 ‘수요란 것이 정말 예측 불가능한 영역이기 때문’이라고 노태우 정부의 극단적인 정책이 먹힌 것은 예측 가능한 공급을 늘렸기 때문이다. 반면 참여정부와 마찬가지로 이번 정부는 공급을 늘리는 것이 아닌 수요를 억누르는 방식으로 부동산 가격을 잡으려고 할 것이다. 이 예측 불가능한 수요를 컨트롤하기 위해 여기저기 틈만 보이면 튀어 오르는 수요를 뒤쫓아 다니며 대책을 남발하다가 시간을 보낼 공산이 크다.

다만 이번 정권에서 예고하는 강력한 수요억제 정책은 적어도 단기적으로는 그 위력을 발휘할 수 있다. 이번 정권의 정책의 변화를 그 어느때보다 유심히 지켜보고 그 맥락을 이해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한 가지 위안이 되는 것은 이번 정권의 제1정책목표가 부동산은 아닐것이라는 사실이다. 참여정부는 집값 안정을 정권의 제1목표로 삼고 이미 노태우 정부에서 시도했다가 헌법재판소에서 위헌 판정을 받고 유명무실해진 ‘토지공개념’에 기반한 정책을 강하게 밀어붙였다. 토지공개념을 신봉하는 실무진을 청와대 정책실장에 임명한 것도 부동산이 정부의 최우선 관심사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정부에서는 부동산이 아닌 재벌개혁 더 정확히는 기업지배구조의 선진화를 최우선 정책으로 삼고 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는 조직과 인선이 매듭된 점이다.

부동산에 정부의 운명을 걸었던 참여정부와 달리 문재인 정부는 부동산 정책은 사회수석 선에 맡겨두고 기업지배구조를 중심으로 한 재벌개혁과 임금상승을 통한 사회 격차해소에 정책 역량을 집중할 것이다. 모든 정책 역량을 부동산에 집중하다시피 한 참여정부에 비해 그 강도는 약할 것이라고 기대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지금 집을 사라는 거냐 말라는 거냐?” 이쯤에서 이렇게 반문하는 독자가 태반일 것이라고 생각된다. 결론을 단순하게 표현하면 ‘이번 정부는 정책 변수가 많아 주의가 필요하지만 일단 시장 상황은 폭등을 예고하고 있으니 상승에 베팅하라. 다만 정책의 변화에 따라 치고 빠지는 단타 전략을 구사해야 한다’다. 현재 상황은 우선 공급 부족이 예상된다. 아니 예상할 것도 없이 눈으로 보인다. 택지지구를 통한 신규공급이 막힌 상황에서 서울시내 유일 한 아파트 부지 공급원인 재건축까지 막혔다. 2017년 내에 관리처분 인가를 못 받은 재건축 단지는 다음 정권을 기약하는 수밖에 없다. 그럼재개발을 통해서 공급을 해야 하는데 문재인 대통령과 박원순 시장이 함께 추진하는 도시재생의 핵심은 ‘부수고 대규모로 새로 짓는’ 게 아니라 ‘기존 노후주택 개보수와 도로정비’등이다. 즉 공급은 늘지 않는다. 왜 공급을 늘리지 못하는지는 역시 앞에서 설명했듯이 정치의 핵심은 정권을 잡는 것이다. 트럼프가 미국의 고질병을 고치기 위해 어느 정도의 인플레이션은 용납하듯 한국의 이번 정부도 서울과 특히 강남권을 장악하기 위해 어느 정도의 부동산 상승은 감내하거나 수요억제 같은 다른 방법으로 잡으려고 할 것이다.

그렇다면 남은 방법은 하나 과잉유동성이 해소되어야 한다. 즉 금리를 올려 유동성을 흡수해야 한다. 하지만 이 책이 부동산을 주제로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 IT산업과 트럼프 얘기에 많은 부분을 할애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지금 미국은 금리를 올려야 하는데 국제부담과 무역적자를 줄이기 위해 금리를 제한적으로 올릴 수밖에 없다. 더구나 지금 상황은 2004년처럼 이미 벌어진 인플레이션을 막기 위해 급속히 금리를 인상해야 하는 게 아니다. 디플레이션을 막기 위해 오랜 기간 초저금리 상태를 유지했던 금리를 ‘정상화’해야 하는 시점인 것이다. 오히려 한국에서는 이 유동성이 더 늘어날 조짐까지 보인다. 미국의 경기 호황뿐 아니라 트럼프의 무역정책에 따라서도 한국은 피해가 아닌 수혜가 기대되기 떄문이다. 1980년대 후반 3저 호황도 미국이 대미 무역 흑자국인 독일과 일본을 견제하기 위해 펼친 환율 정책 덕에 한국이 어부지리를 얻은 결과이다. 지금 상황도 당시와 유사하다. 독일과 일본에 더해 새롭게 등장한 중국까지 함께 견제해야 하는 미국의 환율정책에 따라 한국은 경상수지 흑자에 따른 유동성까지 넘쳐날 것이다. 이미 전고점을 가볍게 뛰어넘은 코스피 지수가 이를 말해주고 있다. 그렇다면 해소되지 못한 과잉유동성과 서울지역의 공급 부족이 함께 만나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폭등이다. 경제적 이유로는 금리를 올리지 못하고 정치적 이유로는 서울 시내 공급을 늘릴 수가 없다. 이쯤해서 극단적인 수요 억제 정책이 나올 것이라고 예상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돈줄을 죄거나 집을 사는 사람을 범죄자로 몰아 가격을 억누르려 하겠지만 그때마다 멈칫멈칫 약간의 조정을 거쳐 결국 다시 튀어 오를 것이다.

음악이 계속되는 한 춤을 춰야 한다고 하지 않았던가? 이제 막 음악이 시작되려 하고 있다. 어느 때보다 빠르고 신나는 음악이 연주될 것이다. ‘이 또한 언젠가는 멈추리라’ 하면서 한 쪽 구석에 심드렁한 표정으로 팔장을 끼고 있어 봐야 인생에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신나는 음악이 나오는 동안은 각자 자신 있는 스텝으로 춤 추기바란다. 자신이 가장 잘 출 수 있는 것을 추면 된다. 요즘 유행하는 춤을 춰보겠다고 잘 알지도 못하는 남들 춤을 따라 하다 괜히 스텝이 꼬여서 넘아지지만 않으면 된다. 지금은 얼마든지 산나게 춤 출 타이밍인 것이다.한 가지 명심할 점은 클러버들의 흥분이 지나쳐 자칫 사고라도 발생할 수 있다고 판단하면 언제든지 음악을 확 꺼버릴 수 있다는 점이다. 서서히 분위기가 고조되다 음악이 클라이맥스에 이르러 모두들 양팔을 높이 쳐들고 환호성을 지르다 보면 서서히 조용한 음악으로 바뀌며 흥분이 정리되는 게 아니다. 순식간에 음악이 멈출 수 있다. DJ의 손이 전원 코드를 확 뽑아버리려는 움직임이 보이면 바로 스텝을 멈출 준비를 하고 있어야만 한다. 나 역시 DJ를 예의주시하다가 이상한 낌새가 보이면 다시금 경고 메시지를 보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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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밀 - 쉽게 읽고 되새기는 고전 ㅣ 클래식 브라운 시리즈 6
장 자크 루소 원작, 문경자 지음 / 생각정거장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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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밀》은 敎育(교육) 理論書(이론서)라기보다 인간의 身體的(신체적)· 知的(지적)· 精神的(정신적)· 感情的(감정적) 능력의 형성과 발전 과정을 總體的(총체적)으로 보여 주는 일종의 성장소설이다. 동시에 인간을 모든 측면에서 探究(탐구)하고 省察(성찰)하는 人間學(인간학)이다. 루소는 언제나 자신의 경험과 내적 성찰에서 출발하여 사회의 모든 문제에 접근한다. 《학문예술론》에서 《고독한 산책자의 몽상》에 이르기까지 그의 모든 글은 主觀的(주관적)이면서도 具體的(구체적)이고 緻密(치밀)하며 통찰력 깊은 사유를 펼쳐보인다. 그렇기 때문에 《애밀》에는 우리에게 나 자신을, 또 아이를 키우고 교육하는 일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게 하는 힘이 있다.

루소는 교육이 인간의 신성한 의무임을 강조한다. 이 말은 인간이기를 포기하지 않는 한, 자식을 키우고 교육시키는 일을 그만 두어서는 안 된다는 의미일 것이다. “자식을 키우고 교육시키는 일에서는 가난도 일도 체면도 핑계가 될 수 없고 누구도 면제될 수 없다. 고 루소는 말한다. 또한 교육에는 적절한 시기와 순서가 있음을 강조하며 ”자연은 어린아이가 어른이 되기 전까지는 어린아이로 있기를 願(원)한다. 만약 우리가 이 순서를 뒤바꾸려고 한다면 다 익지 않아 아무 맛도없고 곧 썩어버릴 설익은 열매를 맺게 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이를 위해서 특히 12세까지는 지식이나 기술을 가르치지 말고 肉體的(육체적), 精神的(정신적)으로 자기 존재를 확인하는 敎育(교육)에 집중할 것을 권유한다. 이는 자연을 체험하는 중에 가장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수 있다.

루소가 이 방식을 강력히 권고하는 것은 이것이 각자가 가진 본성을 최대한 毁損(훼손)시키지 않음으로써 ‘인간의 본성과 무관한 惡德(악덕)과 誤謬(오류)가 어떻게 우리 외부로부터 침법해 들어와서 눈에 보이지 않게 인간의 본성을 변화시키는지’ 깨닫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깨달음이 다른 사람을 존중하고 正義(정의)와 不義(불의)를 가늠하는 올바른 판단력의 바탕이 될 것이다.

《에밀》이 교육에 관한 不朽(불후)의 古典(고전)이라는 사실을 否認(부인)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그런데도 선뜻 《에밀》을 읽으려 하지 않는 것은 700쪽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이 독서 의지를 꺾기 때문이다. 게다가 루소가 정작 자신의 아이들을 고아원에 버렸다는 사실도 영향을 미친다. 루소가 처음 교육론을 쓴 것은 바블리가의 가정교사로 있으면서 <생트마리를 위한 교육인>을 썼던 1740년이다. 그리고 하숙집 세탁부 테레즈를 만나 둘 사이에 태어난 첫 아이를 고아원으로 보낸 것은 1746년이다. 루소는 1758년경부터 《에밀》을 쓰기 시작한 것으로 推定(추정)된다. 이 시기들로 미루어볼 때 아이를 키워본적도 없이 사십 대의 루소가 이토록 진지한 교육론을 쓴 것은 성공적이지 못했던 가정교사의 경험과 자신이 어린 시절에 받은 적절치 못했던 교육, 또한 나이가 들수록 점점 더 悔恨(회한)이 깊어진 아이 遺棄(유기)의 경험 때문이었을 것이다. 루소는 《에밀》을 執筆(집필)하던 중인 1760년에 한 지인에게 보낸 편지에서 ‘나에게는 책을 써서 贖罪(속죄)해야 할 오래된 죄가 아직 있습니다’라는 말로 慘憺(참담)한 후회의 심경을 표현했다.

루소가 살았던 18세기 프랑스의 사교계에서는 ‘외도하는 아내에게 속은 남편들, 유혹에빠진 여인들, 떳떳하지못한 출산이 일상적인 화젯거리였고 고아원에 아이를 가장 많이 맡긴 사람이 갈채를 받는’雰圍氣(분위기)였다. 루소는 ‘그것이 이 나라의 관습인 만큼 여기서 사는 동안에는 그것을 따르기로’ 마음먹었다고 辨明(변명)을 하기도 했다.

물론 그런 慣習(관습)을 별다른 반성 없이 따랐다는 것은 교육론을 쓰려고 오래전부터 계획했다는 사람에게 결코 변명이 될 수 없다. 어쨌든 루소는 인생 중반에 접어들며 자신이 스스로 추구하는 價値(가치)와 美德(미덕)에 일치하는 사람이 되지 못했다는 후회와 반성을 한 것 같다. 특히 아이들을 고아원에 버린 자책감은 매우 컸다.

루소는 태어난 지 9일 만에 어머니를 잃고 10살이 되었을 때 아버지로부터 버림받았다. 그 뒤 孤兒(고아)로 여기저기를 떠돌며 세상과 사람들을 관찰하고 사회의 모순과 온갖 불행들을 목격했다. 루소의 독특한 사상 체계는 순전히 독학으로 이룬 것이었다. 루소는 불우한 어린 시절과 청년기를 보내고 파리라는 사회에 첫발을 들여놓았을 시기에 의도치 않게 아이를 갖게 되자 두려움을 느꼈을 것이다. 그렇게 아이를 버린 죄를 贖罪(속죄)해야 했기 때문에 루소는 자신이 저작중“최종적이고 가장 유용하며 가장 중요한 책”이라고 스스로 평가한 《에밀》을 쓸 수 있었다. 《에밀》은 “인간의 原初的(원초적) 선함에 대한 논문이며 인간 본연의 모습에 맞지 않는 惡(악)과 誤謬(오류)가 어떻게 외부에서 들어와 어떻게 인간의 本性(본성)을 슬그머니 변회시키는지”를 보여주는 루소 사상의 원리를 밝히는 작품이다.

오늘날 아무리 전문성과 창의성을 강조한다 하더라도 인간 교육은 부분적이고 단편적일 수 없다. 또한 인간은 일관된 체계와 논리만으로 해명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인간은 각자가 자유로우면서도 자연과 사회 나아가 세계와 연관된 총체적인 存在(존재)이기 때문이다. 교육은 한 순간도 ‘全人的(전인적)’이지 않을 수 없다. 인간에 대해 자기 자신에 대해 그리고 인생과 관련해 교육이 놓쳐서는 안 될 것이 무엇인지 깊게 새겨보고 싶다면 《에밀》을 읽어보라, 루소의 글은 中層的(중층적)이어서 천천히 그리고 찬찬히 읽지 않으면 그 깊이를 놓치기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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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의 도서관 - 호메로스에서 케인스까지 99권으로 읽는 3,000년 세계사
올리버 티얼 지음, 정유선 옮김 / 생각정거장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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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의 도서관>은 우리 삶과 연관된 많은 질문을 던지고 답을 찾아간다. 이 여정에는 두 가지 방법이 쓰였다. 첫 번째는 잘 알려진 책의 덜 알려진 면을 밝히는 것이고 두 번째는 잘 알려지지 않은 책들이 우리 주변의 세계와 놀라운 연관성을 지니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부터 익숙한 것에서 낯선 것을, 낯선 것에서 익숙한 것을 찾아갈 豫定(예정)이다. 즉 이제까지 기록되거나 타이핑되고 어딘가에 새겨지고 말이 글로 옮겨진 수많은 책과 관련된 ‘알려지지 않은’眞實(진실)을 밝히고자 하는 것이다.

책의 세계를 조금 더 깊이 파 내려가면 우리 앞에 온갖 이야기가 펼쳐진다. 누구나 古代(고대) 그리스 시인 호메르스Homeros의 이름은 들어보았겠지만 그의 작품을 패러디한 작가에 관해서는 알지 못한다. 恐怖小說(공포소설)의 대가 에드거 앨런 포Edgar Allan Poe의 短篇(단편)소설들은 당연히 널리 알려졌지만 그의 생전에 唯一(유일)하게 잘 팔렸던 책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우리는 월리엄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가 <햄릿>의 劇本(극본)을 썼다고 알고 있지만 그는 사실 <햄릿>을 쓴 최초의 劇作家(극작가)가 아니다. 이 책에서 특히 관심을 쏟는 것은 그렇게 看過(간과)된 책들 도서관 책장 뒤로 넘어가 대체로 잊힌 책들이다. 하지만 때로는 많은 이들의 손때가 묻은 묵직한 책에도 주목한다. 단테의 <신곡>이 잘 알려지지 않은 책이라고 주장하지는 않겠지만 실제로 몇 명이나 그 책을 읽었을까 의문은 지니고 있다. 읽은 사람이 많지 않기에 이 책에 방귀를 아주 세게 내뿜는 惡魔(악마)가 등장한다는 사실은 中世文學(중세문학)에서 가장 잘 숨겨진 秘密(비밀) 중 하나다.

이 책은 ‘세상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책 99권’이나 ‘꼭 읽어야 하는 책 99권’ 모음집을 만들려는 게 아니다. 특히 필자가 言及(언급)한 책 중 여러 권이 현재 남아 있지 않으며 그중 하나는 아마 애초에 존재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호기심의 잡동사니이며 익숙하거나 망각된 책들로 가득 찬 상상의 도서관을 돌다가 잠깐식 멈춰서 구경하는 旅行(여행)이라고 할 수 있다. 각각의 책들은 시대의 이야기를 우리에게 들려주며 또한 필자가 제시한 질문에도 대체로 아주 興味(흥미)로운 대답을 제공한다.

이 책은 아홉 개의 장으로 구성됐으며 과거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중요한 역사적, 문화적 사건을 槪略的(개략적)으로 다룬다. 17세기 중반 이후 모든 게 조금 더 흥미롭고 복잡해졌다. 미국으로 알려진 신대륙에서 이때부터 책을 펴냈기 때문이다. 17세기부터 19세기에 걸쳐 미국이 이룬 문학 성장의 역사도 별도의 장에서 살펴본다. 유사한 성장을 이룬 유럽 대륙도 마찬가지로 따로 다룬다. 마지막 장은 서양의 근대성을 상징하는 20세기를 重點(중점)으로 삼는다.

도서관 투어를 떠나기 전에 알아둘 게 하나 더 있다. 아홉 개의 장의 모든 項目(항목)이 이전 항목과 어떻게든 連結(연결)되어 있다. 때로는 두 책 사이의 연결고리가 명확하겠지만 알아보는 데 조금 시간이 걸릴 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분명 그 안에 역사와 역사, 그리고 책과 책을 잇는 고리가 存在(존재)하므로 필자가 그랬던 것처럼 여러분도 意味(의미)와 聯關性(연관성)을 찾ㅁ는 즐거움을 느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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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뱅에서 인류의 미래까지 빅 히스토리
이언 크로프턴 & 제러미 블랙 지음, 이정민 옮김 / 생각정거장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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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100년간 일어났던 변화가 1년 만에 이뤄지는 속도의 시대다. 에너지, 자원, 환경오염, 경제적 불평등, 정치 등 多方面(다방면)에서 여러 가지 사건이 동시에 발생하고 있다. 인류가 직면한 문제를 정확히 직시하고 미래를 예측하기 위해선 분야간의 경계를 허물고 인류와 우주의 역사를 統合的(통합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필요하다. 이를 연구하는 분야가 바로 빅 히스토리다.

만약 6,600만 년 전 지구를 향해 날아온 소행성이 5분만 늦게 혹은 빠르게 날아왔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여전히 지구에 공룡이 걸어 다녔을지 모른다. 14세기페스트의 창궐은 宗敎改革(종교개혁)의 단초가 되었고 아인슈타인의 이론은 현대 과학의 혁명이었지만 동시에 核武器(핵무기) 開發(개발)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이처럼 역사는 정치, 경제, 종교, 예술, 과학이 끊임없이 영향을 주고 받으며 진행되어 왔다. 경계를 허물고 138억 년 역사를 總體的(총체적)으로 살펴보는 일은 역사를 보는 시각과 統合的(통합적)으로 사고하는 힘을 길러줄 것이다.

빅뱅에서 인류의 미래까지 138억 년 역사를 CONTENTS별로 살펴보면

1.우주의 탄생

우리는 어떻게 지금에 이르렀는가? 우주가 탄생하고 인류의 역사가 시작되기 전까지의 시간은 결코 짧지 않다. 물리적 장소 없이는 인간의 역사는 펼쳐질 수 없다. 우리들 자신을 진정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주가 어떻게 존재하게 되었는지 별과 행성이 어떻게 생겨났는지, 우리의 행성 지구가 생명이 출현하기에 적합한 여건을 갖춘 이유는 무엇인지 이해해야 한다. 또한 살아있는 것들이 어떻게 작용하고 進化(진화)했으며 어떻게 결국 우리가 살아남게 되었는지 알아야 한다.

2.공룡의 번성과 포유류의 등장

가장 단순한 형태의 동물이 최초로 지구에 등장하기 시작한 건 약 5억 년 전이다. 지난 수억 년간 엄청나게 다양한 찬조물이 그 수만큼이나 다양한 구조의 몸으로 다채로운 삶의 방식을 누려 왔다. 그중 불가사리와 성게와 같은 일부 초기 동물들은 성공적으로 살어남은 반면 1억 6,500만 년 동안 지구를 장악했던 恐龍(공룡)은 멸종했다.

현대적 인간이 등장한 건 불과 20만 년 전으로 지구 역사에서 동물이 지구를 지배했던 시간에 비하면 인간이 지배한 가간은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3.지구의 지배자로 등극한 인간

초기 인류가 아프리카에 최초로 등장한 이래 호모 사피엔스 Homo Sapiens가 지구를 지배하기까지 많은 일이 벌어졌다. 두뇌 능력 발달은 인간을 어떤 환경에서도 적응할 수 있도록 해주었는데 무엇보다 도구를 만들고 불을 다스릴 수 있게 된 것이 인간의 삶에 핵심적인 기여를 했다. 적응력 덕분에 특정 인간 종, 특히 ‘호모 사피엔스’가 열대지방부터 사막, 대초원 및 산악지대에 이르는 다양한 지형에서부터 심지어 지구에서 가장 차갑거나 뜨거운 극단적 기후 지역에서까지 살아남아 번영할 수 있게 되었다.

4.문명

농경으로 인해 다양한 지역에서 잉여 농산물이 생산되면서 거래가 가능해졌다. 덕분에 인류는 전문 기술을 갖고 종교 조직에 참여 하는 등 이전보다 더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잉여 농산물로 생긴 자금은 도시 건축을 비롯 주로 전쟁을 통해 국가와 제국의 탄생에 일조했다. 인간 사회가 한층 더 복잡해지면서 글과 법이 정부의 핵심 도구로 자리 잡은 한편 갈수록 세분화된 권력 계급은 무력으로 유지되기 시작했다.

5.서구 세계의 부상

500년 전까지만 해도 유럽은 일종의 후미 지역에 불과 했다. 1,000년 전, 로마가 멸망한 이래 유럽 대륙은 국가 간에 벌인 전쟁으로 영토마저 조각조각 나뉘어 있었다. 당시 지식과 기술, 무역 면에서 진정한 강대국은 다른 곳에 있었으니 바로 중국과 인도, 그리고 이슬람 세계였다. 대서양 건너편의 아메리카 대륙에서도 유럽인들은 꿈도 꾸지 못한 문명이 繁昌(번창)하고 있었다. 하지만 1450년경 유럽이 세계 무대에서 자신을 드러내기 시작하면서 힘의 균형은 유럽 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6.현대, 그리고 인류의 미래

지난 100년간 역사상 전례 없이 빠른 속도로 사회가 변화했다. 도시화의 산업화가 대규모로 진행됐고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과학기술은 눈부시게 발전했다.

그 과정에서 인류는 역사상 가장 殘酷(잔혹)했던 두 번의 전쟁을 겪었고 갈등을 종식시켜 줄 다양한 국제기구를 탄생시켰다. 이 작은 행성은 전 인류가 공유하는 집이며 인류는 지구 생물권 안에 존재하는 한 가지 구성 요소에 지나지 않는다는 인식도 커져갔다.

인류의 미래는 인류는 스스로의 궁금증 때문이든 자식과 손주들에 대한 걱정 때문이든 미래가 어떻게 펼쳐질지 알고 싶어 한다. 전 세계의 종교들은 다양한 해답들을 제시한다. 힌두교는 존재란 시간의 광대한 주기를 넘어 무한정 확장되는 것으로 개인의 영혼이 끝없이 환생한다고 여긴다. 기독교와 같은 다른 신앙들은 지구상에서 인간은 한정되었지만 알 수는 없는 기간 혹은 시간을 살다 종말론적 끝을 맞이하며 이후 시간이 존재하지 않는 영원의 세계가 이어지면서 선한 이는 천국으로 올라가고 사악한 이는 지옥으로 떨어지게 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과학자들의 예측이나 모델들을 들여다봄으로써 인류와 지구가 맞닥뜨릴 법한 미래를 상상하고 있다. 지구 온난화, 그리고 온난화가 지구 생명체에 미칠 영향들을 둘러싼 논란은 미음을 모으는 데 도움이 되었다. 2015년 11월, 세계기상기구는 그 해가 기록이 시닥된 이래 최고로 더운 해가 될 것이라고 예측하면서 인간이 배출한 가스들을 원인으로 지목했다. 2016년 2월 세계 평균 기온은 1951∼1980년 사이 2월의 평균 기온보다 1.35도 더 높았다. 2015년의 기온 상승은 엘니뇨에서 기인한 측면도 있는데 엘니뇨는 태평양 해수면의 온도 상승이 특징으로 나타나는 기상 현상이다. 사실, 그해는 엘니뇨가 관측사상 가장 강력하게 나타난 해 중 하나였다.

세계의 국가와 인구들 간에 충돌하는 수많은 이해관계들 때문에 기후 변화뿐 아니라 다른 중요한 문제들에 있어서도 국제 협의에 이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인구 증가는 많은 지역에서 환경적 압박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석유 등의 자원을 향한 경쟁은 이미 광범위한 갈등을 일으키고 있다. 화석 연료를 연소시키는 게 지구 온난화를 일으키고 있음에도 석유는 여전히 세계 경제의 큰 부문을 담당할 뿐 아니라 수백만 사람들의 생활방식 또한 지원하고 있다. 지속 가능한 새로운 에너지원을 개발하는 데 더 많은 노력을 쏟아 붓지 않는다면 결국 석유가 고갈돼 인류가 살아가는 데 엄청나게 파괴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미래에는 신선한 물과 같은 다른 天然資源(천연자원)을 둘러싼 분쟁도 일어날 수 있다. 예를 들어 중동에서는 티그리스 강과 유프라테스 강이 이라크와 시리아에 핵심적인 수원이지만 터키가 상류에 관개와 수력발전을 위한 댐을 건설하면서 끌어 쓸 수 있는 물의 양이 제한되었다. 관련국들은 아직 물 공유에 관한 협정을 체결하지 못했으며 각국 내에서도 물 소비가 늘면서 자연 대수층이 대폭 감소했다. 인도의 경우 1960년대부터 펀자브 지역에서 쌀 재배 호황이 일어 지하수면이 크게 하락했다. 제조업체들이 지하수를 끌어올려 사용하는 것도 인도 및 다른 지역들에서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다. 1990년대 오스트레일리아 머레이 달링 유역에서는 관개를 이용해 목화와 쌀을 재배했는데 이로 인해 소금 동원운동이 일어나는가 하면 경작지가 상당히 줄어들었다. 수세기 전 고대 메소포타미아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인류가 세계적 규모로 더 효율적으로 협력하지 않으면 줄어드는 자원을 둘러싼 경쟁과 갈등이 더 많은 분쟁으로 이어질 것이다. 지구 온난화 가 이대로 진행될 경우 지구의 수많은 지역이 예를 들어 홍수나 사막화로 인해 거주가 불가능해질 테고 결국 난민들이 대거 양산될 것이다. 따라서 결과에 대처하려 하기 보다는 사전에 원인을 차단하는 게 중요하다.

지구 온난화가 계속된다면 농업 생산량이 크게 감소하면서 식량이 부족해져 지구상의 인류가 멸종될 수도 있다. 이보다 가능성은 좀 더 적지만 인류가 멸망에 이를 수 있는 다른 방식들도 존재한다. 좀 더 극적인 시나리오는 대규모핵전쟁으로 이는 순식간에 수많은 인구를 전멸시킬 수 있다. 만약 어떤 생명체가 核爆發(핵폭발)과 放射線(방사선)을 버텨 살아남았다고 해도 그들은 이어지는 핵겨울을 버티지 못할 것이다. 폭발 잔해들이 대기에 퍼져 나가면서 햇빛이 수년씩 차단돼 먹이사슬의 밑바닥에 있는 식물들이 살아남지 못할 테니 말이다. 핵 겨울과 비슷한 현상이 유성이나 혜성, 혹은 옐로스톤의 칼데라 같은 초화산 폭발에 의해서도 발생할 수 있다.

좀 더 기이한 형태의 종말로 과학 소설에는 지구가 적대적인 외계 생명체의 공격을 받는 상황이 종종 들장한다. 하지만 이제 다른 행성을 관찰할 수 있는 능력이 상당히 발전하고 태양계 안에서 물이 있는 다른 행성을 발견했다고 해도 그런 상황이 발생할 가능성은 극히 낮다. 적은 오히려 더 가까운 곳에 존재할 확률이 높다. 인류를 멸종시킬 정도의 파급력을 가진 전염병처럼 말이다. 그 후보로는 새로운 종류의 독감, 에볼라 바이러스, 페스트의 재발, HIV/AIDS바이러스의 변종, 극단적 내성을 가진 결핵, 생물전 무기고의 누설, 그리고 아직 들어본 적 없는 또 다른 질병의 출현 등을 들 수 있다. 동물의 수많은 종들이 이미 멸종했고 이제 인류가 멸종을 맞이할 차례라고 해도 전혀 이상할 게 없다. 우리가 그동안 수십억 년이나 되는 긴 시간을 살아남았지만 앞으로 태양은 점점 더 뜨거워져서 지구상의 물이 더 이상 액체로 존재하기 힘들어질 것이다. 결과적으로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가 소멸될 것이다.

宇宙旅行(우주여행)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지금으로서는 향후 태양계 사이를 여행할 수 있을지 확실히 알 수 없다. 하지만 태양이 더 커지고 뜨거워지기 시작하는데 인류는 아직 멸종되지 않았다면 다는 태양계로 가는 것만이 인류가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될 것이다.

우리가 宇宙(우주)와 地球(지구)의 歷史(역사)에 대해 이만큼이나 알게 된 것도 일종의 성과라 할 수 있겠지만 중요한 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의 모든 이야기를 우리는 결코 알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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