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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막의 게르니카
하라다 마하 지음, 김완 옮김 / 인디페이퍼 / 2017년 9월
평점 :
절판
북이 핵을 실험하고, 끊임없이 미사일을 쏜다. UN에 자신들도 핵을 보유한 국가로 인정해 달라는 무력 시위이다. 언제나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해왔던 방식 그대로 말이다. 세계각국은 김정은이라는 어린지도자의 포악함에 걱정이 앞서고, 미국의 트럼프는 이 사태를 두고 크게 비난하며, 한반도 사드배치와 전술핵재배치를 언급한다. 결국 문재인대통령은 국민의 안보를 위해 사드 임시 배치라는 결정을 내린다. 중국은 이 사드 배치에 대해 자신의 영토를 감시하는 용도가 아니냐면서 반기를 든다. 현재, 한반도를 둘러싼 신냉전체제의 기운이 감돌고 있다. 이렇게 국가 안보와 전쟁에 대한 걱정이 앞선 시점에 '아트 서스펜스' <암막의 게르니카>가 출간되었다. 이 이야기는 화려하고 아름다운 '아트'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반전의 심벌인 피카소의 역작 <게르니카>라는 '무기'를 두고 벌이는 치열한 싸움이자, 전쟁이 아닌 평화를 염원하는 작가의 처절한 울림이다.
이것은 검이 아니다. 그 어떤 병기도 아니다.
노골적으로 말하자면 어두운 색의 그림물감을 칠한 캔버스. 단순한 그림 한 장일 뿐이다.
하지만 검보다도, 그 어떤 병기보다도 강하게, 예리하게, 깊게 인간의 마음을 도려내는.
세계를 바꿀 힘을 가진 한 장의 그림.
- “우리는 단연코 싸울 것이다. 전쟁과. 테러리즘과. 어둠의 연쇄와.”
피카소는 왜 <게르니카>를 그리게 되었는가? 한편 9.11 이후 누가 <게르니카>에 암막을 쳤는가?
반전의 상징 <게르니카>를 두고 벌어지는 '과거의 역사'와 '현재의 음모'
과거: 피카소의 고향 스페인은 내전 중이다. 피카소는 당시 슬럼프로 붓을 놓기 직전이었고, 자신은 '예술가' 이기 때문에 어떤 정치적 성향을 내세우지도 않는다. 하지만 스페인 내전이 시작된 이래 가장 비참한 폭격이 발생하고, 그의 생각은 바뀌게 된다. 히틀러와 무솔리니의 공군이 투하한 수천 발의 소이탄이 전선과 멀리 떨어진 무방비 소도시 게르니카를 무참히 파괴한다. 1654명 사망, 889명 부상, 일반시민을 표적으로한 인류사상 최초의 무차별 폭격이 벌어진 것이다. 그 당시 프랑스에 머물던 피카소에게 공화국 정부는 '파리만국박람회'에 전시할 벽화를 그려달라고 제안하고, 피카소는 게르니카 공습 소식을 듣자, 피가 역류할 정도로 분노를 느끼며, 자신의 이념을 화폭에 담기로 결심한다. 그리하여 스페인 내전의 상처와 고통을 담은, 강력한 반전 메세지를 표현한, 피카소 최대이자 비운의 작품 <게르니카>가 탄생하게 된다.
현재: 큐레이터인 야가미 요코는 어릴적 피카소의 <게르니카>를 보고 매료된다. 결국 미술계에서 일하게 되고, 아트 컨설턴트인 남편 이든을 만나게 된다. 이든은 결혼반지 대신 요코가 가장 사랑하는 화가 피카소의 비둘기 드로잉을 선물로 주고, 순백의 비둘기가 상징하는 '평화'는 이 부부의 신념이 된다. 그러던 어느날, 2001년 9월 11일 아침. 이든은 평소와는 달리 아침식사로 토르티야를 가져온다. 언젠가 '최후의 만찬'으로 뭘 먹고 싶냐고 물었을 때 대답한 요리였다. 그리고 그 농담같은 식사는 정말 '최후의 만찬'이 되고 만다. 세계무역센터는 비행기 자살 테러로 무너지게 되고, 이든이 그 사고로 죽게 된다. 그리고 요코의 삶도 처참히 무너지게 된다. 2년후, 요코는 피카소에 대한 열정과 남편의 신념인 평화로 다시 일어서게 된다. 새로운 전시회 <피카소의 전쟁: 게르니카를 통한 항의와 저항 전>을 기획하게 된 것이다. 그 와중에 9.11 테러에 대한 보복을 명목으로 전운이 감돌게 되고, 결국 UN안보리는 미국의 이라크에 대한 무력행사를 용인하게 된다. 그리고 그 날, 뉴욕 UN 본부에 걸려있던 <게르니카>의 태피스트리(원작을 천에 복재한것)가 암막에 가려지는 사건이 발생한다. 그리고 그 범인으로 피카소 전시회를 기획중인 요코가 지목된다. 박물관 관장인 루스는 요코와 자신들에게 범행을 뒤집어 씌운 범인에게 분노하고, 요코에게 스페인에 가서 진짜 게르니카를 가져오라고 지시하게 되는데... 게르니카를 두고 벌이는 싸움, 숨기고 강탈하고 쫓는 싸움, 과연 게르니카는 본래의 의미를 되찾을 수 있을까?
- '신냉전'이란 전운이 감도는 지금, 이 이야기는 단순 추리소설이 아니다.
과거의 불운한 역사와 현재의 서스펜스 가득한 음모가 전하는 작가와 피카소의 '평화'를 향한 염원.
'아트 서스펜스'라는 하라다 마하만이 구현할 수 있는 미와 역사 그리고 추리의 영역.
이 소설은 예술과 역사 그리고 추리가 함께하는 '아트 서스펜스'이다. 작가 하라다 마하는 미술을 전공하고, 뉴욕현대미술관에서 근무한 경력을 활용해 그녀만이 구현할 수 있는 새로운 추리의 영역을 구축했다.
이야기는 피카소의 역작 '게르니카'를 두 개의 시간으로 나눠 교차진행 하는데, 20세기 일어난 게르니카 폭격과 21세기 일어난 이라크 폭격, 전혀 다른 시대의 폭력을 '게르니카'라는 반전의 심볼인 예술품으로 이어 놓는다. 즉 피카소가 게르니카를 만들면서 발생하는 갈등과 UN본부에 걸려있던 게르니카 태피스트리가 암막에 가려진 사건의 배후로 누명을 쓰게된 요코의 이야기가 번갈아 진행된다. 그러다보니 과거의 이야기는 피카소라는 거장의 인생과 예술가로써의 고뇌, 전쟁이 가져오는 상처와 아픔을 예술로 치유하는 스토리를 담은 미술사학적인 역사소설 같고, 현재의 이야기는 누명을 벗기위해 고군분투하며, 진짜 게르니카를 가져와 전시하려는 요코와 그 것을 막으려는 거대한 음모간의 치열한 싸움으로 서스펜스가 농후한 추리소설 같다.
이 소설은 하라다 마하만이 만들어 낼 수 있는 '특허품'이나 다름없다. 픽션과 논픽션을 오가며 역사소설과 추리소설을 섞어내 피카소라는 거장의 유언인 자유와 평화에 대한 염원과 전쟁의 폭력을 거세게 비난하며, 예술의 역할에 대한 또 다른 시선을 보여준다. 이 책은 말한다. 예술은 단지 '아름다움'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처절한 항쟁이 될수도, 누군가를 위로하는 치유가 될수도 있다는 것을. 그리고 신냉전이라는 전운이 감도는 지금, 이 이야기는 또 다른 예술품이자 무기를 탄생시킬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