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단발머리 소녀 ㅣ 일본 추리소설 시리즈 2
오카모토 기도 외 지음, 신주혜 옮김 / 이상미디어 / 2018년 12월
평점 :
품절
얼마 전, 구로이와 루이코의 <세 가닥의 머리카락>을 읽었다. 이 책은 이상출판사에서 발간한 ‘일본 추리소설 시리즈’의 1권이다. ‘일본 추리소설 시리즈’는 일본 추리소설의 고전을 발굴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 시리즈는 1880년대 후반 일본에 처음 서양 추리소설이 유입되었을 당시부터 1945년 제2차 세계대전 직후까지의 추리소설을 연대순으로 출간해, 일본 추리소설의 역사와 경향을 한 눈에 파악할 수 있다. 시리즈 1권은 한 작품을 제외하면 전부 유명 서양 작가들의 추리소설을 번역한 작품이 실려있다. 그래서 다소 아쉬움이 남았다면, 지금 소개할 시리즈 2권인 <단발머리 소녀>는 그런 아쉬움을 단번에 날려준다. 번역, 번안이 아닌 진짜 일본 추리 소설의 태동기에 해당하는 작품들이 수록되어 있다. 일본 최초의 체포물 ‘한시치’의 등장과 몽환적이고 그로테스크한 일본 특유의 분위기가 담긴 고전추리소설 단편집 <단발머리 소녀>를 소개한다.
‘사람을 저주하면 무덤이 둘,
즉 남을 해치면 반드시 죗값을 받는다는 말은 꼭 이일을 두고 하는 말인 듯합니다.’
- 일본 추리소설의 태동기의 시작을 바라본다.
미야베 미유키가 책이 해질 정도로 읽었다는 ‘한시치 시리즈’는?
[단발머리소녀: 한시치시리즈] 1858년 여름, 에도시대에는 무시무시한 콜레라가 유행한다. 아직 의학이 발전하지 못한 시대, 그저 신의 구원을 비는 수밖에 없다. 때문에 모든 신사와 절은 참배하러 온 사람들로 북적이고, 묘진산의 신사 역시 예외는 아니였다. 묘진산의 절에는 한 전설이 있다. 그 산에는 ‘단발뱀’이라는 괴물이 살고 있고, 그 뱀은 몸통이 푸르고 머리가 까맣기 때문에 마치 옛날 아이들의 단발머리와 비슷해서 단발뱀이라 한다. 그리고 이 뱀의 화신인 단발머리의 여자아이를 본 사람은 3일 안에 죽는다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배객은 넘쳐났다. 전설 속의 단발뱀보다 눈앞의 콜레라가 더 무서웠기 때문이다.
한 담뱃가게 세키구치야의 딸인 오소데와 어머니인 오코토, 하녀 오요시는 함께 신사에 참배를 하러간다. 예법에 따라 일가의 무사 안녕을 비는 사이 하늘은 점점 어두워지고, 어느 샌가 매미 울음소리도 그쳐 기분 나쁠 정도로 잠잠해진다. 차갑고 무거운 공기를 뚫고 산을 내려가는 여인들. 그때 일행은 걸음을 멈춘다. 삼나무 사이에 창백한 낯빛의 단발머리 소녀가 서있었기 때문이다. 들킬까봐 조심히 걸음을 옮기지만, 그만 오소데가 넘어지고, 두 여인은 오소데를 일으켜 세워 미친 듯이 뛰어 산을 내려간다. 오코토는 그날의 일이 불길해, 딸과 하녀에게 단단히 입단속을 시킨다. 그들이 본 ‘그것’에 대해.
후일 뒤, 콜레라 역병신을 쫓기 위해서는 처마에 팔손이나무 잎을 매달아 놓으면 좋다는 말에 가게 처마 끝에 팔손이나무 잎을 매달고, 그 잎이 시들자 오코토는 잎을 새 잎으로 바꾸려 한다. 그런데 시든 나뭇잎에 벌레 먹은 자국이 있다. 자세히 보니 ‘오소데 죽는다.’라는 글자이다. 그리고 얼마 후, 하녀 오요시는 흰색 기모토를 입은 여자 아이가 집안을 들여다보고 있다는 말을 하며 두려움에 떨고, 그날 밤, ‘뱀...’이라는 말을 남기고 의문의 죽음을 맞이하는데...
- 각양각생의 추리소설의 향연 체포소설, 범죄문학, 기이소설, 환상소설까지,..
일본추리소설의 여명기의 작품들을 입맛대로 골라 읽기!
<단발머리소녀>는 1889년부터 1930년 후반에 이르기까지의 다양한 추리소설이 망라되어 있다. 수록된 작품은 오카모토 기도의 [단발머리 소녀], [오후미의 혼], [맹인의 강]. 사토 하루오의 [지문], [불의 침대], [여계선기담], [어머니], [무기력한 기록]. 고다 로한의 [이상하도다]가 실려있다.
‘일본 추리소설 시리즈’ 1권이 번역, 번안 추리소설 위주의 작품이었다면, 2권인 <단발머리 소녀>는 일본 ‘창작’ 추리소설 초반의 작품들이 수록되어 있다. 1권과 마찬가지로 작품들은 고전인 만큼 전형적인 탐정소설의 요소와 권선징악적인 결말이 뚜렷하다. 하지만 다른것이 있다면, 각 단편은 다양한 장르적 요소를 가지고 있고, 특히나 일본 특유의 그로테스크한 기괴함이 묻어나는 토속적인 괴담이나 전설을 소재로 쓴 추리소설이라는 점이다.
그 중 일본추리소설의 대모 미야베 미유키가 ‘시대물을 쓰기 전에는 반드시 ’한시치 체포록‘을 읽는다. 책이 망가질 정도로 읽고 또 읽은, 성전 같은 작품이다’라고 칭송한 한시치가 등장하는 [단발머리소녀]와 [오후미의 혼]은 일본 최초의 체포물이라는 점에서 의의를 가진다.(이 작품 이후로 시대소설과 탐정소설을 융합한 ‘체포물’이라는 형식이 정착돤다.) 재밌는 건 ‘한시치 체포록’을 쓴 오카모토 기도는 중국 및 서양의 괴담에 관심과 지식이 있어, 이야기는 초자연적인 괴담이나 비현실적인 환상문학 같아 보이지만, 그 추리를 풀어내는 건 사람인 탐정이라는 것과 사건의 원인은 인간의 욕정과 탐욕, 질투에 기인한다는 것이다. 몽환적인 소재로 접근하지만, 결말은 고전적인 권선징악적 풀이이다.
여기, 생생한 일본의 에도시대와 근대를 배경으로한 고전추리소설을 읽어보자. 미쓰다 신조처럼 토속적인 괴담의 음습함과 미야베 미유키처럼 인간과 사회를 비판하는 날선 시선이 어떻게 탄생되었는지, 현대 일본추리소설의 그 시작점을 탐미하는 것에서 이 의문들이 해소될 수 있으니.
+@미쓰다 신조의 토속적 괴담, 미야베 미유키의 에도 시리즈를 좋아한다면 읽어보자. 그 대가들의 '참고자료'이니
일본추리소설의 여명기의 작품들, 번안이 아닌 진짜 초기 '창작' 일본추리소설들이 담겨있다.
고전추리소설이지만 가독성을 중시한 번역으로 쉽게 읽힌다.(시리즈1권보다 쉽게 읽히고 재밌다)
작품해설과 작가연혁으로 재미 뿐 아니라 역사적 이해에도 도움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