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키호테 1 - 재치 있는 시골귀족 돈키호테 데 라만차, 개정판
미겔 데 세르반테스 지음, 박철 옮김 / 시공사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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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출판 시장은 인구에 비해 작은 편이고, 출판사-단행본-도 상위 일부 업체를 제외하면 영세합니다. 21세기의 요체는 창조력이고, 이를 위해 독서가 가장 중요하다고 소리 높여 외치고는 있지만 변죽만 요란할 뿐, 구체적인 대안은 사실 전혀 없는 실정입니다.

 

책을 안 읽어도 학교 시험 보는데 아무 지장이 없고, 대학교 가는 데도 별 문제 없고, 좋은 곳에 취업하는데도 걸림돌이 안 되니, 굳이 시간과 돈을 들여 볼 필요가 있겠는지요?

 

일본만 해도 다양한 분야의 작가들이 많고, 책뿐만 아니라 관련 산업까지 아직 활발해서 작가도 얼마든지 글을 써 생활이 가능하고, 유명 작가의 경우 수입이 상상을 초월합니다. 반면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아주 극소수 유명 작가를 제외하고는 본업인 글로는 생활을 할 수가 없어 투잡, 쓰리 잡을 뛰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이게 왜 문제가 되느냐하면 시간이 지날수록 서서히 문화적으로 예속이 되기 때문입니다. 소설만 해도 일본 소설이 우리나라에 판매되는 양과 우리나라 소설이 일본에 판매되는 양은 제가 정확히 알지는 못하지만 적어도 10배는 넘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비디오 시대에, 손안의 휴대폰으로 모든 것이 가능한 시대에, 인간은 점점 생각을 하기 싫어하고 모든 것은 단순화, 파편화 되어 가고 있습니다. 이걸 막는 유일한 방법은 독서뿐입니다.

 

출판 시장이 작다보니 여러 문제가 생기는데 그중 하나가, 다른 언어로 한 번 번역된 것을 또 다시 번역해 펴내는 것입니다. 번역은 새로운 창작이라고 할 정도로 전혀 새로운 작품을 만들어 내는 것인데, 이 작업이 두 번씩 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처음의 모습과는 당연히 많이 달라질 수밖에 없겠죠. 그래도 요즘 뜻있는 출판사들에서 완역본이 출간되고 있는 것은 정말 다행스런 일입니다.

 

또 하나 양이 많은 소설의 경우 독자들이 안보니, 완역본이 아닌 임의대로 양을 대폭 줄여 책을 펴내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원래의 책과는 전혀 다른 줄어든 책이 원래 책의 전부인 줄 착각하게 됩니다.

 

이런 대표적인 사례가 5권짜리 빅토르 위고의 레 미제라블을 줄여서장발장으로, 파리의 노트르담을 줄여노틀담의 꼽추1,600 페이지가 넘는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를 확 줄여 얇은 책 하나로 펴내는 일 등입니다.

 

희곡에서 셰익스피어가 차지하는 위치는 누구나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소설에서 돈키호테를 쓴 세르반테스의 비중은 근대 소설의 효시라고 불릴 정도로 막대합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냥 정신 나간 기사와 종자인 산초 판사가 나오는 우스개 이야기 정도로 알고 있습니다. 과연 그럴까요?

 

세르반테스는 당시 유행하던 통속적인 기사 소설에 대항하기 위해 이 소설을 썼습니다. 토마스 모어의 유토피아에 크게 감명 받았던 그는 반종교 개혁 운동과 합스부르크 절대 왕조의 지배하에 있던 스페인 왕국에서 자유롭게 글을 쓸 수가 없어, 기사 소설 형식을 빌어 돈키호테의 광기를 이용해 당시 사회를 비판한 것입니다.

 

실상 기사도 얘기만 제외하면 돈키호테는 시집을 비롯해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익은 교양인이자 지성인으로 아주 분별력 있는 인물입니다. 산초 판사는 머리가 약간 아둔한 농부라고 나오지만, 지혜로운 말도 종종 하고, 사리 판단이 아주 빠른 인물입니다.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돈키호테는 이상주의자요, 산초 판사는 현실주의자인 셈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이 두 가지 면들을 다 갖고 있기 때문에, 책을 읽으면서 우리가 그만큼 더 감정이입해서 읽을 수 있는 것입니다.

 

지와 사랑을 대변하는 헤르만 헤세의 나르치스와 골드문트처럼 둘은 멋진 콤비인 셈입니다.

 

여러 이야기들이 나오고 다양한 계층의 수많은 인물들이 등장하는데, 엄격한 신분제 사회였음에도 인간은 평등하고 사람들의 능력에는 차이가 없다는 얘기들이 자주 등장합니다. 이 얼마나 혁명적인 사고입니까?

 

그래서 세르반테스는 자기의 책이 문제가 되어 종교 재판에 회부될까 두려워 12부부터 자기의 글이 아니고 아랍 역사학자의 글이라고 수차례 밝혀 만일의 경우를 대비하고 있습니다.

 

2권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1권만 700페이지가 넘습니다. 하지만 유머와 위트가 넘치고 사건마다 메시지가 분명하고 흥미로워, 아주 재미나게 읽을 수 있습니다.

 

세르반테스와 셰익스피어의 공통점이 두 가지 있습니다. 하나는 이 둘이 1616423일 공교롭게도 같은 날 사망했다는 겁니다. 우연치고는 참 대단한 우연입니다.

 

다른 하나는 두 사람 다 정규 교육을 조금밖에 받지 못하고 독학을 했는데, 너무 뛰어난 글을 쓰다 보니 후대 사람들이 이런 뛰어난 글을 저런 형편없는 교육을 받은 사람이 절대 쓸 수 없다. 분명 숨은 실제 저자가 따로 있을 것이다.”라고해서 위작 논란이 벌어진 작가라는 것입니다.

 

이제 타고난 천재 이야기꾼 돈키호테속으로 힘차게 발을 들여놓아 보시겠습니까?

 

 

<책속 구절>

 

더구나 다른 책들을 보면, 암만 황당무계하고 조잡한 것이라도, 아리스토텔레스나 플라톤, 기타 온갖 철학자들로부터 인용을 해서 독자들의 감탄을 자아내고 해박한 독서와 지식과 구변이 있다는 명성을 가져다주고 있으니 말이야. 더욱이 성경을 인용할 때는 정말 놀랍지!

 

그대가 돈이 많을 때에는 많은 친구를 헤아릴 수 있으나, 시절이 암담해지면 그대는 홀로 남으리라.

 

남의 인생에 대해 논하려고도 알려고도 하지 마라.

 

역사는 진실의 어머니이며 시간의 그림자이자 해위의 축적이다. 그리고 과거의 증인, 현재의 본보기이자 반영, 미래에 대한 예고인 것이다.

 

편력 기사도에 대해 말하자면 흔히 사랑을 말하는 것과 똑같이 말할 수 있다. 즉 만물은 평등하다는 것이다.

 

진정한 사랑은 깨지지 않으며 스스로의 마음에서 우러나야지 강요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명예와 정절은 영혼을 더욱 더 아름답게 꾸며주는 것이니, 이런 것이 없는 육체는 비록 아름답더라도 아름답게 보일 수 없는 법입니다.

 

저는 처자식들을 먹여 살려야 하기 때문에 어떠한 모욕이라도 모른 체하고 넘어갈 수 있습니다.

 

시간이 지우지 못할 기억이란 없는 법이며, 또한 죽음이 희석시키지 못할 고통도 없다.

 

행운이라는 것은 숱한 불행 속에서도 빠져나갈 여지를 주기 위해 한 쪽 문을 열어놓고 있는 법이란다.

 

두려움의 효력이 바로 마음을 혼란스럽게 하고, 사물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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