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고 향기롭게 - 법정 대표산문선집
법정(法頂) 지음 / 조화로운삶(위즈덤하우스) / 2006년 5월
평점 :
절판


전 언제부터인지는 몰라도 개인적으로 시보다 소설이나 에세이 등 산문을 더 좋아해 왔습니다. 왜냐하면 아무래도 시는 비유와 묘사가 많기 때문에 글이 아무리 좋아도 작가에 대해 알 수 있는 게 제한적이기 때문입니다.

 

이에 비해 산문은 작가가 글 뒤에 마무리 숨으려고 해도 한계가 있어 드러날 수밖에 없고, 특히 에세이는 고스란히 표면에 나타나게 됩니다.

 

그동안 살아오면서 다양한 장르의 많은 책과 저자를 접하며 살아왔습니다. 그중에 국내 산문 작가로 오래 전부터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법정스님, 이윤기, 장영희 이렇게 세 분입니다. 더 많은 작가들이 내가 사랑하는 사람 속에 들어가길 바라지만 안타깝게도 아직까지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모든 것이 진중하고 깊이가 있질 못하고 가벼워지고 찰나적으로 변해만 가는 세상입니다. 산문도 예외가 아니어서 설익은 생각들, 본인이 직접 경험하고 느끼지 않은 것들을 얼기설기 엮은 책들이 시중에 난무하고 있습니다.

 

책을 오랫동안 사랑해온 독자의 한사람으로서 이런 현실을 볼 때면 마음이 참 아픕니다.

 

법정 스님의 팬이 된 것이 언제인지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좋아한지는 오래 되었고, 사상이나 가치관 등이 비슷한 점이 많아서 실천은 잘 못하지만 인생의 멘토로 삼고 지내왔습니다.

 

스님의 입적 소식을 접한 날 아침엔 몽둥이로 머리를 강하게 얻어맞은 듯 유난히 기분이 우울하고, 마음이 허허로웠던 기억이 납니다.

 

스님은 6.25 전쟁을 보면서 삶에 회의를 느껴 출가한 다음, 국산 정권 시절에는 사회 참여를 위해 일하신 적도 있고, 불교계를 위해 여러 일을 하시다가 40대 후반부터 암자에 칩거하며 글로서 세상과 소통하며 지내신 분입니다.

 

스스로 난 괴팍한 사람‘, ’고약한 사람이라고 하신 것처럼 직접 뵌 적은 없지만,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꼬장꼬장하게 자기 스타일을 고집하며 사신 분입니다. 사회생활을 하셨다면 그런 성격으로는 참 살아내기가 힘드셨겠지만 구도자로서는 적합하니 어찌 보면 직업 선택을 아주 잘하신 게 아닌가 생각됩니다.

 

산속 암자에 홀로 사셨지만 스님은 클래식 음악과 책을 좋아하셨습니다. 이들이 좋은 친구가 되어준 셈입니다. 스님은 단순하고 간소하게 사시는 것이 유일한 소망이며, 오두막에 살면서는 자신을 찾게 된 것이 가장 감사하다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맑고 향기롭게1973년 첫 책 영혼의 모음부터 2004홀로 사는 즐거움까지 총 10권의 책에서 스님이 직접 가려 뽑은 산문 선집입니다. 한마디로 엑기스중의 엑기스인 셈이죠.

 

스님은 자연 속에서 참된 구도자의 삶을 사시고 사회의 큰 어른으로서 큰 족적을 남기고 떠나셨습니다. 그분의 글들은 무더위로 지친 여름날 마시는 한 잔의 시원한 물처럼 당신의 삶에도 시원한 생명수가 되어 줄 것이라 확신합니다.

 

 

<책속 구절>

 

반드시 어떤 만남에 의해서만 인간은 성장하고 또 형성된다. 그것이 사람이든 책이든 혹은 사상이든 간에 만남에 의해서 거듭거듭 형성되어 간다.

 

오늘의 교회나 사원은 건물만 하더라도 얼마나 호화롭고 비대해졌는가. 건물과 기구가 비대해진 만큼 그 종교가 지닌 본래의 기능이 순수하게 이행되고 있을까.

 

자연만큼 뛰어난 스승은 그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사람의 말이란 자연에서 치면 한낱 파리나 모기 소리와 같이 시끄러움일 뿐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함께하는 이웃을 생각하지 않고 저마다 자기 몫을 더 차지하고 채우려고만 하기 때문에 갈등과 모순과 비리로 얽혀 있다.

 

젊어 있을 동안 삶을 알기 시작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황폐한 내면을 지닌 채 늙어갈 것이다.

 

이 세상에 살아 있는 모든 생명체는 주고받는 관계 속에서 그 생명을 유지해 간다. 받기만 하고 주지 않으면 그 생명을 지속할 수가 없는 것이 우주의 질서요, 순환의 법칙이다.

 

 

말이 많은 사람은 누구를 막론하고 그가 경탄할 만한 것을 말한다 할지라도 그의 내부는 비어 있다.

 

누구와 함께 자리를 같이할 것인가. 유유상종. 살아 있는 것들은 끼리끼리 어울린다. 그러니 자리를 같이하는 그 상대가 그의 한 분신임을 알아야 한다.

 

어떤 직종에서 무슨 일에 종사하건 간에 자신이 하는 일을 낱낱이 지켜보고 자신의 역할을 자각하는 것이 곧 명상이다.

 

산다는 것은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창조하는 일이다. 그 누구도 아닌 자신이 자신에게 자신을 만들어 준다. 이 창조의 노력이 멎을 때 나무건 사람이건 늙음과 질병과 죽음이 온다.

 

넘쳐나는 각종 정보와 소식을 통제하지 않으면 그 곳에 매몰되어 삶이 생기를 잃는다. 보지 않고, 듣지 않고, 알지 않아도 될 일들에 우리는 얼마나 많은 시간과 정력을 낭비하고 있는가.

 

성에 차지 않는 이상에서 벗어나 삶을 다시 시작하고 싶을 때, 우선해야 할 일은 소유와 관계를 정리 정돈하는 작업이다.

 

사람은 본질적으로 홀로될 수밖에 없는 존재다. 이 세상에 올 때도 홀로 왔고 살 만큼 살다가 떠날 때도 홀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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