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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마타, 이탈리아
이금이 지음 / 사계절 / 2021년 9월
평점 :
<페르마타, 이탈리아>
이금이 작가의 등단한 지 38년만의 첫 에세이.
환갑을 앞두고 친구와 이탈리아로 떠나 한달동안 지낸 시간들을 이금이 작가 특유의 따뜻한 문체로 엮은 책이다.
책을 읽으면 작가와 친구가 다녀온 이탈리아의 주요 도시부터 소도시들까지 그들의 발자욱을 쫓아 함께 여행할 수 있다. 호텔이 오버부킹되고 소매치기 당할까봐 자물쇠를 달고 다니고, 친구끼리 여행스타일이 맞지 않아 겪는 일들도 있다. 모든 계획이 완벽하고 순탄하게 흘러가지만은 않는 여행이지만 그래서 더 공감가는 내용들이다.
내가 짠 계획이 틀어질때 느껴지는 조바심과 답답함, 그리고 괜히 옆사람에게 부리는 짜증들. 그 이후 느끼는 미안함. 그걸보면서 나는 역시 사람 다 똑같구나 싶고 그런 사소한 일들도 이제 와서 보니 모두 그리운 마음이 든다.
책을 읽는 내내 내가 갔던 곳들의 풍경이 떠올랐다.
흔한 관광지가 아닌 로컬 뒷골목들, 해지는 하늘, 캐리어를 끌고 다녔던 돌길들, 우리나라와는 다른 가로수들, 선선하게 불어오는 바람들. 여행을 하면서 느낀 모든 감정들이 아직도 생생하기에 더 우울한 ‘이 시국’이다. 우울함을 달래기 위해 사진첩을 뒤져 오래된 이탈리아 여행들의 사진을 꺼내봤다. 그리고 그 사진들을 보며 다시 여행을 꿈꾼다.
언젠가 코로나가 끝나면 사진이 아닌 진짜 그곳에 내가 있기를.
지나간 시간 속에 있는 여행은 수정할 수 없다. 그래서 한 번 살면 그뿐인 인생과 닮은 부분이 있다. 다행인 건 그 여행에서 얻은 깨달음을 삶이나 다음 여행에 반영할 기회가 남아 있다는 거다. 사람들이 여행을 떠나고 싶어 하는 까닭은 결코 다시 살 수 없는 삶을 잠시 멈춰놓고, 인생의 축소판 같은 여행으로 예행연습을 해보고 싶어서일지 모른다. (p.187)
긴 여행을 떠나기까지의 과정은 장편소설을 시작할 때와 다르지 않다. 오랜 기간 여행을 꿈꾸었던 것처럼 작품을 쓰기 위해서는 내용을 구상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이야기가 무르익어 세상에 꺼내놓을 때가 되면 보다 구체적인 준비를 해야한다. 항공권을 구매하고 호텔과 기차표를 예약하듯 내 이야기를 제대로 펼쳐놓기 위해 세부적인 플롯을 짠다. 마침내 미지의 세계로 떠나듯 설레면서도 두려운 마음으로 쓰기를 시작한다. 멋진 작품이 될 거라는, 구상할 때의 자신만만함과 호기로움은 슬그머니 꼬리를 감추고 그저 내 마음속에 있는 것들을 제대로 꺼내놓고 무사히 마무리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된다. (p.16)
갔던 곳을 또 여행하노라면 같은 책을 반복해서 읽을 때와 비슷한 느낌이 든다. 처음 읽을 때는 글쓴이의 의도를 따라가기에 급급하지만 두 번 세 번 읽다보면 전에는 미처 몰랐던 것도 보이고 나만의 시선으로 재해석할 여력이 생긴다. (p.30)
-누구는 다른데 가기도 바쁜데 갔던 곳을 왜 또 가냐고 하지만 나는 모든 여행지를 또 가보는 스타일이다. (이탈리아도 다섯번다녀왔다,,) 그래서 이 문장이 내 마음을 대변해주는 거 같아 기쁘다.
사진도 그 순간을 소유하려는 욕심에서 비롯된 게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 순간을 가지려고 나는 그 멋진 공간과 시간을 온전히 즐기는 대신 뷰파인더만 보고 있었다. (p.62)
-여행지에서 주위를 둘러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사진찍기 급급해 하고 있다. 물론 나도. 그래서 사진을 보면 그 순간의 느낌이 떠오르긴 하지만 한 편으로는 내가 제대로 그곳을 탐미하고 왔는가 의문이 들때도 있다. 좋은 풍경을 보고 사진을 찍는것이 아니라 사진을 찍기 위해서 좋은곳에 가는 상황도 생긴다. 다음에 여행을 간다면 사진의 구속에서 조금 벗어나 그 풍경을 온전히 내 내면으로 받아들이고 싶은 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