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탈 - 게일 루빈 선집
게일 루빈 지음, 임옥희 외 옮김 / 현실문화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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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탈



다양한 섹슈얼리티가 형성된 역사적 사회적 구성을 보여준다. 또한 성적 일탈을 심정적으로 이해하게 한다.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지 자문해 보면 왠지 자신이 없다. 그래도 치열하게 바꾸고 싶다. 안되면 그들이 애쓰는 모습을 무심하게(?) 바라보고 싶다.


‘섹스/젠더 체계‘는 한 사회가 생물학적 섹슈얼리티를 인간 행위의 산물로 번형시키고, 그와같이 변형된 성적 욕구를 충족시키는 일련의 제도이다.
국가 형성 이전 사회에서 친족이란 성적 행위뿐만 아니라 경제적, 정치적, 의례적 행위까지도 조직하는 사회적 상호작용이라는 상용어이다.
‘여성 교환‘은 문화적 정의도 아니고 그 자체로 본질적이고 자연적인 체계는 아니다. 여성 교환 개념은 섹스/젠더라는 사회관계들의 특정한 측면들을 예리하고 압축적으로 이해한 것일 따름이다.
거세는 (상징적)팔루스를 갖지 않은 것이다. 거세는 실재적인 ‘결여‘가 아니라 여성 생식기에 부여된 하나의 의미이다.
어떤 의미에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는가족 내 교환에서는 팔루스 순환의 표현이며, 가족 간 교환에서는 여성 순환의 전도이다.
레비스트로스는 여성 교환의 시작이 사회의 기원을 형성한다고 주장함으로써 근친상간 금기를 생물학과 문화의 경계에 위치시킨다. 이런 의미에서 근친상간 금기와 여성 교환은 최초의 사회계약 내용이다.
궁극적으로철저한 페미니즘 혁명은 단지 여성을 해방하는 것 이상일 것이다. 그것은 성적 표현의 형태들을 해방할 것이며, 인간의 인격을 젠더라는 구속복으로부터 해방할 것이다.
결혼 체계는 수많은 방식과 관련될 수 있다. 말하자면 부의 축적과 정치적, 경제적 자원에의 차별적 접근성의 유지, 동맹의 형성, 동족결혼으로 인한 고위층들의 단일하고 폐쇄적인 친족 계층 안으로의 합병 등 수많은 방식과 관련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들이 내미는 수치는 엄밀한 조사라고 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어떤 수치는 희박한 분위기에서 뽑아낸 짐작일 뿐이고 나머지 수치도 극소량의 자료로 어림잡은 추정일 뿐이다. 포르노그래피, 동성애, 아동 실종, 그리고 인신매매 등 많은 사례가 있다. 여기서 제시하는 크기와 범위의 광대한 추정치는 근거가 불확실하다. 그런데도 그런 수치가 일단 제시되면 끝없이 유포되고 되풀이되면서 신뢰를 얻는다. 빈번한 반복은 문제의 규모에 대한 일종의 사실적 평가로 간주되는데, 이렇게 되면 개념에 결함이 있고 근거가 불확실하고 완전히 터무니없는 추정치는 신중한 정밀조사로도 입증하기 힘들어진다. (p170)
골드먼은 매춘을 결혼과 별개인 도덕적 국면에 놓지 않고 그 연장선상에 놓았다. 그녀는 말한다. ˝도덕주의자들에게 매춘은, 육체를 판다는 사실 자체보다 결혼제도 밖에서 육체를 판다는 사실이더 문제가 된다. 그것은 금전적인 대가를 노리고 하는 결혼이 완벽히 합법적이며 법과 여론으로 합리화되는 사실로써 입증된다.˝ 골드먼은 또한 여성들이 성 정보에 집근할 기회가 없다고 규탄했다. ˝여성은 성 상품으로 사육되고 있지만, 정작 성행위가 어떤 의미인지, 그것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서는 완전히 무지하다. 이 주제와 관련된 모든 것은 억압되고, 이 끔찍한 어둠에 빛을 비추려는 사람들은 박해받고 투옥된다.˝ (p178)

모든 섹슈얼리티에서 그렇다시피, 사람들이 서로를 대하는 방식에는 편차가 있다. 최선에서 최악에 이르기까지, 다른 섹슈얼리티에 등급을 매기는 것은 특수한 상황을 판단 행위로 단순히 대체해버린 것이다. (p260)
모든 사람이 다 같은 성행위를 하는 것은 아니며, 성적다양성이 존재한다. 남들과 다른 성적 취향을 가졌다고 하여 그들이 병들고 멍청하고 뒤틀리고 세뇌되었거나, 협박을 받았거나, 가부장제의 호구이거나, 부르조아 퇴폐의 산물이거나, 나쁜 양육 습관으로 인해 피난민이 된 것은 아니다. 성적 다양성을 억압해놓고 그것을 설명으로 해결하려는 습관은 깨져야 한다. (p272)

근대 서구 사회는 성행위를 성적 가치의 위계질서에 따라 평가한다. (p300)
성행위에 관한 가장 고질적인 생각은 최상의 유일한 성교 방식이 있으며 모든 사람이 그 방식을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p309)
성법은 성적 계층화와 성애적 박해의 가장 견고한 도구이다. (p317)
서구 사회에서 섹슈얼리티는 심각한 혼돈에 빠져 있어서, 섹슈얼리티를 둘러싼 전쟁은 대체로 불안정한 싸움이 되고, 허위 표적에 조준되고, 부적절한 열정에 이끌리고, 매우 강렰안 상징이 되고 만자. 성적 행위들은 대개 아무런 내재적 관련성이 없는 개인적이고 사회적인 불안을 표상하는 기표로 기능한다. 도덕적 공항에 빠져 있을 때 그러한 공포는 억세게 운 나쁜 어떤 성행위나 성적 인구집단에 부착된다. 언론은 분노로 치를 떨고, 대중은 과격한 폭도처럼 달려 들고, 경찰은 활동을 전격 개시하몆 주정부는 새로운 법과 규제를 제정한다. 격노 어린 폭풍이 흽쓸고 지나가면, 무구한 성애 집단은 대거 훼손되고, 주정부는 성애의 새로운 영역에까지 권력의 마수를 뻗치게 된다. (p332)
페미니즘의 젠더 위계질서에 대한 비판은 급진적 성 이론에 통합되어야 하고, 성 억압에 대한 비판은 페미니즘을 풍성하게 해야 한다. 그러나 섹슈얼 리티 특유의 자체 이론과 정치는 새로이 개발되어야 한다. (p352)

나는 미래를 위한 우리의 최선의 정치적 희망은 상호 존중과 차이에 대한 공감에 근거해 연대를 형성하고 공통 근거를 찾는 데 있으며, 최선의 지적 연구는 복잡성을 수용하고, 뉘망스를 소중히 여기며, 교조와 지나친 단순화의 유혹에 저항하는 것이라고 계속해서 믿고 있다.

개인들은 포스트모던 시대에 삶의 가능성, 복잡성, 어려움을 거치며 각자가 갈 길의 방향을 찾을 수 있어야 한다. 어떤 것도 완벽하지 않고, 어떤 것도 모든 시대, 모든 이에게 작동하지 않는다. (p486)
범주는 중요하다. 우리는 그런 범주들 없이는 사회적 삶, 정치적 운동, 혹은 우리 개인의 정체성과 욕망을 조직할 수 없다. 어떤 범주든 새어나갈 수 있는틈새가 있기 마련이며, 따라서 그와 관련된 ‘존재하는 사물들‘을 전부 다 담을 수는 없다고 해서, 그런 범주 자체가 쓸모없는 것은 아니다. (p487)
우리는 범주를 사용하고, 범주는 우리를 사용한다. 우리는 범주를 의미 있는 삶을 구성하기 위해 사용하고, 범주는 우리를 역사적으로 특정힐 형식의 인간성으로 본뜨기 위해 사용한다. 오점 하나 없는 분류법과 투과되지 않는 경계를 만들기 위해 싸우는 대신, 다양성을 선물로 이해하고, 변칙을 소중한 것으로 보고, 모든 기본적 원칙을 회의주의라는 센 약으로 다루는 공동체가 되게 하자. (p488)

페미니즘은 포르노와 싸우는 대신 검열에 반대하고, 매춘의 비범죄화를 지지하고, 모든 외설법의 폐지를 요청하고, 성 노동자들의 권리와 성 산업에서 관리직에 있는 여성들, 성적으로 노골적인 매체의 가능성, 젊은이들에 대한 성교육을 지지하고, 성적 소수자의 권리와 성적 다양성의 정당성에 동의해야 한다. (p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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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읽기와 삶 읽기 2 - 탈식민지 시대 지식인의
조혜정 지음 / 또하나의문화 / 199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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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읽기와 삶 읽기 <2>


저자는 90년대에 우리 사회의 타자성과 타자화된 존재로서의 모습과 세계관을 걱정했다. 그리고 주체적인 의식의 고양과 적극적인 실천을 기대했다.
그러나 이 책을 읽고 있는 2019년 이 시대에, 어쩌면 더 경직된 사회를 살고 있는게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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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읽기와 삶 읽기 1 - 탈식민지 시대 지식인의, 바로 여기 교실에서
조한혜정 지음 / 또하나의문화 / 199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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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읽기와 삶 읽기 <1>

‘책을 어떤 식으로 읽어내는가에 대한 탐구 작업은 우리의 삶 읽기 방식을 이해하는 아주 좋은 시작이 될 것이다.‘ (p18)
글을 읽으면 거기에서 의미를 찾는다. 각자 다른 경험에서 빚어진 생각은 여러 갈래로 나눠진다.
그것은 조금 깊을 수도 때론 편향적이기도 할 것이다.
스스로 확실하다 결론짓기 보다는 사람들의 다양한 생각이 나와 다르다는 사실을 흔쾌히 받아들인다면 언제 바뀔지 모르는 새로운 생각, 다른 이의 많은 의견을 긍정적으로 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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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정과 실재 - 유기체적 세계관의 구상 현대사상의 모험 12
알프레드 화이트헤드 지음, 오영환 옮김 / 민음사 / 200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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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정과 실재


첫장을 펼치고 나서 완독하는 데 걸리는 기간이 두 달 남짓이다. 길다 싶지만 책에 눈이 가는대로 쉬엄쉬엄 읽었다. 단숨에 읽으려 애쓰지도, 멀리 두어 포기하지도 않았다. 다행히 완독을 할 수 있게 만드는 책의 흡입력은 최고였다. 더구나 화이트 헤드 특유의 철학 개념어는 일상적인 단어를 일부 사용하였기에 그 의미를 가늠하기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너무 어려운 내용이므로 해석하기 힘들었고 그럴 때면 참고할 만한 자료를 찾아서 네이버를 뒤적이기도 했다.
여기, 어떤 이는 ‘화이트 헤드가 <과정과 실재>에서 전개된 연역적인 사유체계는 경험론적인 사유로부터 온축된 귀납적인 결론을 전제로 한 것이다‘ 라고 했다.
책 전반에 걸쳐 확립하는 형이상학적 철학적 입장을 표현했다고 생각했다.

1부 사변적 구조

1장 사변철학

사변철학이란 우리의 경험의 모든 요소를 해석해 낼 수 있는, 일반적 관념들의 정합적이고 논리적이며 필연적인 체계를 축조하려는 시도이다.

논의의 결론은 특수한 논제에서 출발하여 그것을 일반화시키고, 일반화된 것을 도식화한다는 복잡한 과정에 의해서, 그리고 결국 이 상상된 도식을 그것이 적용되어야 할 직접 경험과 다시 비교해 봄으로써 사고의 발전적인 자기 정당화가 경험적으로 달성되어 왔다는 주장이다.
궁극적으로 철학은 우리들이 실제로 경험하고 있는 것에 대한 일반적 의식에 호소한다.

2장 범주의 도식

유기체 철학을 구성하는 근본 개념들에 대한 예비적 개요.

3장 몇 개의 파생적 개념들

원초적으로 창조된 사실은 영원한 객체의 다양성 전체에 대한 무제약적인 개념적 가치 평가이다.
가치 평가라는 비시간적 행위는 창조성에 의한 피조물인 동시에 창조성을 위한 조건이 되고 있다.
우주론의 도식에 있어서는 철학의 전통이 갖는 하나의 묵시적인 가정이 거부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 가정이란, 경험의 기본적인 요소가 의식, 사고, 감각 지각이라는 세가지 요인 가운데 하나 또는 그 전부에 의해서 기술되어야 한다고 보는 것을 말한다.
유기체 철학에 따르면 이 세 가지 구성 요소는, 물리적인 경험에서이건 정신적인 경험에서이건 간에 비본질적인 요소들이다.

2부 논의와 적용

1장 사실과 형상

어떤 근거의 탐구는 항상 그 근거의 담지자인 어떤 현실적 사실에 대한 탐구이다.
존재론적 원리는 모든 결단이 하나의 혹은 그 이상의 현실적 존재와 관계될 수 있다.
영원한 객체는 항상 현실적 존재들을 위한 가능태이다.
각 개별적인 현실적 존재의 합생이 내적으로는 결정되어 있지만 외적으로는 자유롭다.
영원한 객체의 한 가지 역할은 그것이, 하나의 현실적 존재가 어떻게 해서 다른 현실적 존재들의 종합에 의해 구성되는가, 그리고 어떻게 그 현실적 존재가 원초적인 소여적 위상에서, 그 개체적인 향유와 욕구를 포함하는 그 자신의 개체적인 현실적 현존재로 발전하는가를 표현하는 요소가 된다는 데에 있다.
로크는 마음이란 여러 관념들을 하나의 구체적인 사물로 능동적으로 파악하는 데서 생기는 통일체라는 것을 발견했던 것이다.
힘의 개념에서 로크는 존재론적 원리와, 한 현실적 존재가 다른 현실적 존재에 작용하는 <힘>이란 단지 전자가 후자의 구조 속에서 객체화되는 방식에 지나지 않는다는 원리의 윤곽을 예시해 주고 있다.

2장 연장적 연속체

세계의 <연장적> 관계의 지각 양태는 <현시적 직접성>이라 불린다.
<현시적 직접성>은 두 형이상학적 가정을 전제로 하고 있다.
첫째. 현실 세계가, 정착되어 있고 현실적이며 이미 생성된 존재들의 공동체인 한, 그것은 자신을 넘어서는 창조를 위한 가능태를 제약하고 한정한다는 것이다.
둘째. 모든 입각점에 상대적인 실재적 가능태들은 하나의 연장적 연속체의 다양한 규정들로서 등위에 놓여 있다는 것이다.
모든 현실적 존재는 연속체의 규정에 따라 관계를 맺는다. 그리고 미래의 모든 가능적인 현실적 존재는 기존의 현실 세계와의 연관에서 이러한 규정을 예증하지 않으면 안 된다.
현실적인 과거와 가능적인 미래를 포괄하는 체계적 도식은 각 현실적 존재의 적극적 경험에서 파악된다.
<유기체>의 이론에 있어서는, 오직 한 유형의 시간적인 현실적 존재만이 존재하며 그와 같은 현실적 존재는 저마다 연장적이고, 임의의 한 현실적 존재의 관점에서 볼 때, <주어진> 현실 세계는, 연장적 도식의 가능태를 현실적 계기들의 충만으로 변형시키고 있는 현실적 존재들의 결합체이며, 이 충만에 있어 운동은 어느 현실적 계기에도 의미 있는 것으로 귀속될 수 없고, 이 충만은 그것이 생겨나온 가능태와 관련하여 연속적이지만, 각 현실적 존재는 원자적이며, <현실적 계기>라는 용어는 <현실적 존재>와 동의어로 사용되긴 하지만, 주로 그것의 연장선이라는 특성 이 문제의 논의와 다소간 직접적으로 관련되는 경우에 사용된다.
유기체 철학에 있어 현실적 존재는 완결될 때 <소멸한다>. 그 정태적인 생존을 구성하는 현실적 존재의 실용적인 용도는 미래에 있다. 피조물은 사라지지만 또한 불멸한다. 이 피조물 다음에 오는 현실적 존재들은 <그것[이 피조물]은 나의 것이다>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의 소유는 그것에의 순응을 요구한다.

3장 자연의 질서

질서의 네 가지 근거
* 현실 세계의 질서는 어떤 목표 달성을 위한 적응을 도입하고 있다는 점에서 단순한 <소여성>과 구별된다는 것.
* 이 목표는 현실적 존재들의 만족도의 단계적 변화와 관계되며, 그 현실적 존재들의 형상적 구조 속에서 문제의 결합체가 객관화된다는 것.
* 강도의 상승은, 그 결합체의 다수의 구성 요소들이 대비로서 명백한 느낌 속에 들어갈 수 있게 되는 그런 질서, 그리고 그것들이 양립 불가능한 것으로서 부정적 파악으로 추방되지 않게 되는 그런 질서에서 생겨난다는 것.
* 자기초월적 주체의 형상적 구조에 있어서의 강도는, 자기초월체로서의 그 객체적인 기능에 있어서의 <욕구>를 내포하고 있다는 것.

4장 유기체와 환경

현실적 존재의 성격은 궁극적으로 그 여건에 의해 좌우된다. 합생에서 생겨나는 느낌의 자유가 어떤 성격의 것이든 간에, 현실적 존재는 그 여건에 내재하는 잠재 능력의 한계를 벗어날 수 없다. 여건은 제한하면서 동시에 제공한다. 바로 이러한 학설로부터, 유기체의 성격은 그 환경의 성격에 달려 있게 된다는 결론이 나온다.
현실적 존재는 그것의 <만족>과 관련하여 분류되어야 한다. 만족은 그 <과정>을 구성하는 여러 작용에 의해 그 여건으로부터 생겨난다. 만족은 사소성, 모호성, 협소성, 광범성에 비추어 분류될 수 있다.
사소성은 양립 불가능한 차별화의 과잉에서 생겨난다.
모호성은 동일화의 과잉에서 비롯된다.
가장 단순한 등급의 현실적 계기들은 최소한의 패턴화된 대비를 갖는 약간의 감각 여건을 경험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여기서 감각 여건은 정서적으로 경험되고 특수한 느낌들을 구성한다. 그리고 이 느낌들의 강도의 총화는 만족의 통일이 된다. 그러한 계기에 있어서 과정은 그 최고의 위상에 있어 결함이 있는 것으로, 여건에 예속되어 있다. 거기에는 순응적 느낌의 개체화하는 위상이 있긴 하지만, 보완적이며 개념적인 느낌의 독창적인 위상들은 무시될 수 있다.
형이상학에 있어서의 <여건>은 물리학에서의 벡터 이론의 기초이며, 형이상학에 있어서의 양적 만족은 물리학에서의 스칼라적 국지화의 기초이다. 그리고 형이상학에서의<감각 여건>은 에너지가 그 자체를 감싸고 있는 다양하고도 특수한 형식들의 기초이다.
유기체 철학이 이끌어내는 결론은, 인간 경험에 있어서의 지각의 근본적인 사실은 이러저러한 경험을 갖는 인간 신체의 선행하는 부분의 객체화를 여건 속에 포함하고 있다는 것이다.
근원적 의미에서 볼 때 지각은 여러 느낌의 색조에 의해 구성되는 것으로서의, 그리고 이러한 느낌의 색조를 통해 효과를 낳는 것으로서의 과거의 정착된 세계에 대한 지각이다. 우리는 이러한 의미의 지각을 <인과적 효과성의 양태에 있어서의 지각>이라 부를 것이다.
단지 감각 여건에 의해, 어떤 동시적 공간 영역을, 그것의 공간적 형태 및 지각자로부터의 그것의 공간적 전망과 관련하여 모호성으로부터 구출해 내는 데 그치는 지각을, <현시적 직접성의 양태에 있어서의 지각>이라 부르기로 하겠다.
동시적인 우주 안에 있는 현실적 존재들은 그것들이 현시적 직접성에 의해 드러나는 한 인과적으로 상호 독립해 있다는 것이다.
감각 지각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은 실재적인 연장적 연속체이며, 이 연속체에 의해 그 동시적 사건들은 그들 자신의 경험을 질적으로 규정하게 된다.
유기체 철학의 목적은 <체계>, <과정>, <새로움을 향한 창조적 전진>, <진정한 사물>, <굽힐 수 없는 엄연한 사실>, <경험의 개체적 통일성>, <느낌>, <끊임없이 소멸해 가는 것으로서의 시간>, <재창조로서의 존속>, <목적>, <한정의 형식으로서의 보편자>, <굽힐 수 없는 엄연한 사실의 궁극적 작인으로서의 개체들 -- 즉 진정한 사물> 등과 같은 여러 개념에 기초를 둔 정합적인우주론을 표현하는 데에 있다.
유기체 철학에 있어 <유기체>란 개념은, 서로 연결되어 있지만 이해의 차원에서는 분리될 수 있는 두 가지 의미, 즉 미시적 의미와 거시적 의미를 갖고 있는 것으로 간주된다. 미시적 의미는, 경험의 개체적 통일성을 실현하는 과정으로서 고찰된 현실적 계기의 형상적 구조와 관계된다. 거시적 의미는, 이 현실적 계기를 위해 기회를 제공하는 동시에 제한하기도 하는, 굽힐 수 없는 엄연한 사실로서 고찰된 현실 세계의 소여성과 관계된다.

5장 로크와 흄

실제로 마음에 나타나는 것은 마음의 지각, 즉 인상과 관념 외에는 아무 것도 없으며, 외적 사물은 다만 그 외적 사물이 마음에 야기하는 지각에 의해 우리에게 알려질 뿐이다.
흄의 철학은 두 가지 탐구에 전념하고 있다. 첫째는 다수의 단순한 것들이 하나의 복합 인상을 이루게 되는 접합의 방식에 관한 탐구이며, 둘째는 관념의 산출을 비판적으로 검토하기 위한 타당성의 기준에 관한 탐구이다.
흄이 발견할 수 있는 오직 하나의 타당성의 기준은 곧 반복이다.
대상들 사이의 결합 내지 관계 가운데서 기억이나 감관의 직접적인 인상 너머로 우리를 이끌어갈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원인과 결과의 관계뿐이다.
<인과>에 관한 흄의 난점은 그것이 <기억이나 감관의 직접적인 인상 너머에>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이 결합의 방식은 어떠한 인상으로도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경험>으로부터 <반복>을 떼어놓는다면 거기에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게 될 것이다. 느낌은 반복을 압도한다. 그리고 거기에는 직접 손에 넣은 사실이 들어 있다. 이 사실은 느낌의 직접적인 복합적 통일에 있어서의 현실 세계이다.
경험은 생성을 포함하며, 생성은 어떤 것이 생성한다는 것을 의미하며, 생성하는 것은 새로운 직접성으로 변형된 반복을 포함한다는 것이다.
실체 - 속성의 형이상학이 배타적인 지배력을 쟁취하게 된 것은 데카르트의 학설에서였다.
유기체 철학에서는, 주어 - 술어 형식의 명제란 고도의 추상화를 표현하는 것으로 간주되고 있다.
로크의 원리는 많은 현실적 존재자가 있다는 것, 그리고 어떤 현실적 존재자는 어떤 의미에서 다른 현실적 존재자 속에서 반복되며, 따라서 전자에 <한정된> 구성 요소가 후자의 분석에서 발견될 수 있다는 것이다. 유기체 철학은 이 원리를 <파악>과 <객체화>의 학설로 표현한다.
흄과 로크는 철학자들 사이에 널리 유행하고 있는 과도한 주지주의적 편견을 가지고, 정서적 느낌들이란 반드시 감각으로부터 파생되는 것이라고 가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이 그렇지 않다는 것은 너무나 명백하다. 정서적 느낌과 감각 간의 상관관계는 대체로 보아 부차적인 산물이다.

6장 데카르트로부터 칸트에게로

유기체 철학은 경험을, <다자 속의 일자로 있다는, 또는 다자의 구조에서 생기는 일자로서 있다는 자기 향유>를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한다. 그런데 데카르트는 경험을, <개체적 실체가 관념에 의해 규정되는 자기 자신을 향유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개별적 존재자에 대한 관념들은, 정신의 기능이 비교, 강조, 추상을 수반하는 일정한 흡수 과정을 통해 하나의 통일성으로 결합시키는 기본 여건들을 이루는 것이라고 본다는 것이다. 개별적 존재자의 구조는, 다른 개별적 존재자의 <힘>에 의해 조건지어지는 <능력들>을 나타내도록 기술되어야 한다고 보고 있다. 시간의 추이라는 로크의 개념은 어떤 것이 <끊임없이 소멸하고 있다>는 것을 말한다.
유기체 철학에서는 현실적 존재가 합성적인 것으로 상정되어 있다. <현실태>는 합성의 기본적인 표본이다.
어떤 특정한 현실적 존재로부터 추상된 하나의 영원한 객체는, 여러 현실적 존재로 진입할 수 있는 하나의 가능태이다.
유기체의 작용은 <자기 초월체>로서의 유기체에 경주하고 있는 것이지, <주체>로서의 유기체로부터 경주되고 있는 것이 아니다.
흄과 칸트 및 유기체 철학은, 비판적 이성의 과제가 여러 구성물에 대한 분석이며 <구성 작용>은 <과정>이라고 보는 점에서 서로 일치하고 있다.
유기체 철학은 <개별적인 존재자들>이 보편적인 것을 떠나서 파악된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들은 보편적인 것을 매개로 하여 파악된다고 주장한다.
합생이 해결할 문제는, 객체적 내용의 많은 구성 요소들을 어떻게 복합적인 주체적 형식을 갖는 하나의 느껴진 내용으로 통합시켜 갈 것인가 하는 것이다.
과정은, 많은 느낌의 주체적 형식 속에 흡수됨으로써 이와 같은 통합을 낳는 영원한 객체들을 받아들이든가 아니면 거부하든가 한다.
칸트에 있어 경험을 성립시키는 과정은 주관성으로부터 현상적인 객관성으로의 과정이다. 유기체 철학은 이러한 분석을 역전시킨다. 그래서 과정을, 객체성으로부터 주체성에로, 즉 외적 세계를 여건으로 만드는 객체성으로부터 하나의 개체적 경험을 성립시키는 주체성에로 나아가고 있는 것으로 설명한다.

7장 주관주의적 원리

주관주의적 원리란, 경험의 행위에서의 여건은 보편적인 것들만으로 충분히 분석될 수 있다는 것을 말한다.
흄은 <회색의 감각에 대한 앎>을 추출하고, 그것을 경험의 이러한 요소에 있어서의 궁극적 여건으로서 제기하고 있는 것이다.
흄과는 대조적으로 유기체 철학은 <회색으로서의 이 돌>을 문제의 경험에 있어서의 여건 속에 존속시킨다. 사실상 그것은 합생의 후기 단계에 있어서의 파생적 유형에 속하는 어떤 물리적 느낌의 <객체적 여건>이다. <회색으로서의 이 돌>이라는 개념은 파생적인 추상물이다. 그것은 근본적인 경험적 느낌을 기술하는 데 있어서의 한 요소로서는 사실상 필요하지만, 형이상학적 출발점으로서는 그릇된 것이다. 이 파생적 추상은 <객체화>라 불린다.
우리 -- 인격적 질서를 갖는 존속하는 객체로서 -- 는 독자적인 완결성을 갖는 우리 자신의 과거의 계기들을 우리의 직접적인 현재에 있어서 객체화시킨다.
유기체 철학은, 의식이란 다만 복잡한 통합의 후기에 속하는 파생적 위상에서 나타나는 것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요약하면, 의식은 합생의 보다 높은 위상에서 생기는 주체적 형식이다. 의식은 기본적으로 그 자신이 생겨나는 보다 높은 위상을 조명하며, 초기의 위상들을 파생적인 방식으로만, 즉 그것들이 보다 높은 위상에 있어서의 구성 요소로서 남아 있을 때에만 조명된다. 따라서 의식 안에 명석판명하게 나타나는 순서는 타당한 형이상학적 우선성에 따르는 순서가 아니다.
신체적 경험의 근원적 형태는 정서적이다. 경험은 증강된 주체적 강조를 수반한다. 인간의 경험에 있어, 심지어 동물의 경험에 있어서조차도 정서는 순수한 정서가 아니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그것은 해석되고 통합된 정서이며, 보다 높은 범주의 느낌으로 변형된 정서이다.
영원한 객체는 그 주체적 진입의 오느 한 방식에 있어, 과거로부터의 객체적 여건과 만나는 주체적 새로움으로서 기능하고 있다.
영원한 객체가 현실적 존재의 구조에 진입하는 기능에는 네 가지의 양태가 있다. 즉 여격적 진입으로서, 순응적인 물리적느낌에 있어서, 개념적 느낌에 있어서, 비교적 느낌에 있어서가 그것이다.
궁극적 달성은 <만족>이다. 이는 하나의 현실적 존재가 갖는 느낌의 통일성을 최종적으로 특징짓는 것으로서, 흔히 <주체>라고 불리는 <자기초월체>이다.
우주는 다수의 진정한 사물들인 동시에 그것들의 연대이기도 하다. 이 연대는 그 자체가 거시적인 진정한 사물의 효과이다. 이 진정한 사물은, 끊임없는 유동을 통해 새로움을 획득하는 무한한 영속성의 원리를 구현하고 있다. 이 다수성은 미시적인 진정한 사물들로 이루어지고 있으며, 이 진정한 사물들은 각기 <항구적인> 영속성을 획득하는 유한한 유동의 원리를 구현하고 있다.

8장 상징적 연관

순수한 양태의 현시적 직접성은 과거나 미래에 관해서 아무런 정보도 제공하지 않는다. 그것은 단지 현재화된 지속의 예시된 부분을 보여줄 따름이다. 지각의 이러한 혼합된 양태를 여기에서는 <상징적 연관>이라고 부른다.
상징적 연관을 설명하는 제1의 원리는, 그러한 연관에는 <공통의 기반>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공통의 기반>이 필요하다는 것은, 각기의 순수한 지각 양태에 있어 동일한 것으로서 직접 인지되는 구성 요소가 경험 속에 있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현재화된 장소는 상징적 연관을 위한 공통의 기반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현시적 직접성에 있어서 직접적으로 판명하게 지각되고, 인과적 효과성에 있어서 불분명하게 간접적으로 지각되기 때문이다.
인과적 효과성의 이러한 기하학적 불분명성에는 여너 예외가 있다. 신체적 직각에 있어서 두 양태는 최대한의 상징적 연관을 달성하며, 동일한 영역을 지시하는 느낌들을 공동으로 비축하고 있다.
상징적 연관의 둘째 <기반>은 두 지각 양태에 공통으로 구성 요소가 되고 있는 영원한 객체의 동일성에 의해 이루어지는 두 양태간의 결합이다.
<현시적 직접성>이 <인과적 효과성>이 다루는 것과 동일한 여건을 다룬다는 이러한 사실은 <상징적 연관>을 위한 공통 <기반>이 존재하게 되는 궁극적 근거가 된다. 언어는 거의 전적으로 상징적 연관에 의해 해석된 것으로서의 현시적 직접성에만 관계한다.
인과 관계의 개념이 생기는 까닭은, 인류가 인과적 효과성의 양태에 있어서의 경험 가운데 살고 있기 때문이다.
외부 세계와의 인과적 관계에 대한 막연한 느낌, 즉 성질과 관련하여 막연히 한정되고 또 그 위치와 관련해서 막연히 한정된 어떤 강도를 갖는 그런 느낌이 그들에게도 있다는 징표는 많이 있다.
그러나 유기체 철학은 <느낌>을 현실 세계의 도처에 있는 것으로 상정한다. 유기체 철학은 이 학설의 기초를, <느낌>은 우리가 가장 잘 관찰할 수 있는 현실적 존재의 <형상적> 현존을 구성하는 기지의 요소로서 살아 움직이고 있다는, 직접적으로 관찰된 사실에 두고 있다.
우리가 경험을 깊이 헤아려본다면, 즉 직접적 현시의 지각 양태는 보다 근원적인 인과적 효과성의 양태에 있어서의 지각 대상에 관한 정보를 제공한다.
우리는 효과성의 양태에 있어서 우리의 지각 대상에 복종하며, 직접성의 양태에 있어서는 우리의 지각 대상을 조절한다. 그러나 사실상 통합된 경험을 성취하기 위한 자기 구성의 과정은 하나의 새로운 산물을 산출하게 되는데, 이 산물에서는 한쪽 양태의 지각 대상과 다른 쪽 양태의 지각 대상이 하나의 주체적 느낌으로 종합된다.
상징 작용의 필수적인 요건은 두 종의 지각 대상이 있다는 것, 그리고 한쪽의 잔 지각 대상은 다른쪽의 한 지각 대상과 어떤 공통의 <근거>를 가지고 있으며, 따라서 두 지각 대상 간의 상관관계가 확립되어 있다는 것이다.

9장 명제

이론의 원초적 기능은 느낌을 위한 유혹이며, 이를 통해서 향유와 목적의 직접성을 제공한다.
<느낌을 위한 유혹>은 여러 느낌의 합생을 유도하는 목적인이다. 이 합생을 통해, 최초의 위상의 잡다한 여건들을 느낌의 최종적 만족의 통일성으로 모여들게 된다. <객체적 유혹>은, 문제되는 합생의 여건을 형성하고 있는 현실적 계기들의 실재적인 내부 구조에 의해 우주 속으로 도입된 시간적 계기들에 대한 식별이다.
<단칭> 명제는 일정한 한 조의 현실적 존재를, 일정한 한조의 영원한 객체의 가설적인 진입을 수반하는 반작용들의 결합체 속에 포함시키고 있는 현실 세계의 가능태이다.
포함되어 있는 일정한 한 조의 현실적 존재는 <명제의 논리적 주어>라고 불리며, 포함되어 있는 일정한 한 조의 영원한 객체는 <명제의 술어>라고 불린다. 술어는 주어에 대하여 관계성의 가능태를 한정한다. 술어는 하나의 복합적인 영원한 객체를 형성한다. 이것이 <복합적 술어>이다.
한편에 있는 개체적 경험의 구성 요소와 다른 한편에 있는 외적 세계의 구성 요소와의 괴리를 인정하는 모든 형이상학적 이론은, 명제의 참과 거짓 및 판단의 근거에 관한 여러 난점에 빠지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개체적 경험 속에는 구성 요소의 공재성이 있다. 이 <공재성>은 <경험 속의 공재성>이라는 특수하고도 독특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유기체 철학은 주관주의적 학설을 인정한다. 그러나 감각주의적 학설은 거부한다. 이로부터 하나의 현실적 계기가 다른 현실적 계기의 경험 속에서 객체화된다는 학설이 성립하게 된다. 각 현실적 계기는 그 작용 범위 내의 현실 세계를 포함하는 경험의 약동이다. 작용인과 인식의 문제는 현실적 계기의 조직과 관련될 때 공통적으로 설명된다. 유기체 철학에서의 이론은, <대응>설로서나 <정합>설로서나 똑같이 잘 기술될 수 있다. 우선 그것은 대응설이라 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것은 판단을, 명제와 객체화된 결합체에 대한 순응적 내지 비순응적인 통합적 파악이 갖는 주체적 형식으로서 기술하기 때문이다. 이때의 파악은 두 가지 파악, 즉 물리적인 파악과 정신적인 파악의 종합에서 생긴다. 물리적 파악은 객체화된 현실적 계기의 결합체에 대한 파악이다. 정신적인 파악은 명제에 대한 파악이다.
판단이 보다 단순한 느낌들의 통합에서 생기는 하나의 불순한 느낌의 주체적 형식과 관계된다는 사실을 고려하면서, 우리는 판단이 두 종류로 나눌 수 있달 데에 주목한다. 즉 주체적 판단과 파생적 판단이 그것이다.
이제 현실 세계가 어떤 체계적인 측면에서 각 명제 속에 개입할 때의 의미를 검토하는 문제가 남았다.
계기들 간의 <관계>는, 그 계기들이 그것에 의해 결합체를 구성하고 있는 그런 상호적인 파악들의 복합체로 예시되는 하나의 영원한 객체이다.
한 사례의 실현은 그 영원한 객체를 한 사례로 하고 있는 일반 원리의 실현이기도 하다.
명제는 모두 지시적인 관계적 체계를 갖는 어떤 일반적 결합체를 전제한다.
명제는 일정한 성질 및 관계를 통한, 어떤 가정된 현실적 존재의 객체화의 가능태이며, 그 객체화는 어떤 불특정의 주체 -- 이 현실적 존재들을 가정하는 것이 그의 직접 경험에서 의미를 갖는 그런 주체 -- 에 대해서 이루어진다. 판단은 개별적 주체 -- 그 감정이 타당하게 되는 주체 -- 가 내리는 의식적 단언, 즉 그 가능태가 그에게 있어 실현되어 있다든가, 아니면 실현되지 않고 있다고 하는 의식적 단언이다.
명제는 영원한 객체에 비해 현실적 계기의 구체적 특수성을 분유하고 있으며, 현실적 계기에 비해 영원한 객체의 추상적 일반성을 분유하고 있다.
형이상학적 명제란 다음과 같은 명제를 가리킨다. 즉 그것을 품고 있는 주체로서의 임의의 현실적 계기에게 의미가 있는 명제, 그 술어가 술어 패턴에 적당한 수의 논리적 주어를 제공하면서, 현실적 계기들의 임의의 집합과 모든 집합을 잠재적으로 관계시킨다는 의미에서 <일반적인> 명제, 그 형식과 범위로 말미암아, 그 진리치가 술어의 적용을 논리적 주어의 임의의 한 집합에 제한함으로써 얻어지는 단칭 명제의 진리치와 동일해진다는 의미에서 <불변의> 진리치를 갖는 명제이다.
<하나의 존재와 또 하나의 존재를 합하면 두 개의 존재가 된다>라는 명제는 대개 다음과 같은 의미로 해석되고 있다. 즉 두 개의 존속하는 객체가 주어질 때, 하나의 현실적 계기를 두 역사적 경로 각각으로부터 의식적으로 이해하는 모든 주의 집중의 행위는, 필연적으로 그 두 경로 각각으로부터 하나씩, 두 개의 현실적 계기를 발견하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하나의 형이상학적 물음, 즉 사물의 본성에는 귀납적 추론이라든지 일반적 진리의 판단이 <옳다>거나 <옳지 않다>고 말할 때 이를 의미있게 하는 무엇이 들어 있는가라는 물음을 던져보기로 하자.
유기체 철학에서 현실적 계기는 개별적인 만족을 달성하는 과정에 있어서의 우주 전체를 말한다. 브래들리의 현실태에 관한 학설은 이와 정반대의 입장에 서 있다. 최종적인 현실태는 만족의 개별적 달성을 수반하는 개별적 과정이다.
이 학설을 염두에 두고, 확률이 현실적 존재에 있어 긍정적인 사실이 될 수 있다고 할 때의 의미를 논해 보기로 하자.
첫째로, 확률은 항상 증거에 비례한다. 둘째로, 통계적 확률에 알밎는 <근거>를 위한 첫째의 필요조건 그 자체가 확률에 호소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섯째로, <근거>를 위한 또 하나의 필요조건은 그것이 포함하는 사례의 수가 유한해야 한다는 것이다. 넷째로, <표본 추출>의 방법은 두 가지 반론을 비켜간다고 공언한다. <근거>에있어서의 사례의 수가 무한할 때 그 이론 전체가 붕괴된다는 것이다. 또 하나의 반론은 문제의 사례가 사실상 새로운 것이어서, 실제로 음미되고 있는 <근거>에는 속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귀납적으로 정당화된 판단의 논리적 주어인 특정한 미래는, 배정된 경험을 향유하는 어떤 동시적 주체와 밀접한 유사성을 갖는 현실태들을 포함할 것이라는 사실이다.
귀납이 관심을 갖는 것은, 언제나 직접적 환경의 안정성을 위해 중요한 현실적 존재들의 사회인 것이다.
임의의 한 계기를 위한 관련적 여건을 형성하는 관련된 객체화는, 그 환경이 들어 있는 현실적 계기들의 유한한 표본과 관계된다는 결론이 나온다.
확률 판단의 비통계적 도출은 경험의 원초적인 물리적 여건에 대하여 영원한 객체가 <등급화된 강도를 갖는 관련성>을 지닌다는 원리는, 배정된 환경에서 생기는 생기는 새로운 계기들에 대하여 선정된 영원한 객체가 우선적으로적응하는 것에 관한 실재적인 사실을 표현하고 있다.
이 원리는 신의 원초적 본성을 구성하는 여러 욕구의 누적적인 질서를 모든 피조물이 파악한다는 사실을 표현하고 있다. 따라서 전제된 상황에서 귀결되는 어떤 일정한 산물의 본질적 적합성에 대한 직관이 있은 수 있다. 이러한 적합성에는 통계적인 것이 하나도 없게 될 것이다. 그것은 사물의 근저에 있으면서 모든 이행의 미결정을 해결하는, 욕구의 근본적인 등급화에 의존하고 있는 것이다.

10장 과정

<모든 사물은 흐른다>는 것은, 체계화되지 못한 채 가까스로 분석된 인간의 직관이 낳은 최초의 막연한 일반화이다.
여기서 우리는 <모든 사물은 흐른다>라는 말은 <사물의 유동>이라는 말로 변형시켰다.
17세기와 18세기의 일군의 철학자들이 두 종류의 유동성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 하나는 로크의 말을 빌린다면, <개별적인 존재자>의 <실재적인 내적 구조>인 합생이다. 다른 하나는 개별적인 존재자로부터 개별적인 존재자로의 이행이다. 이 이행은 다시 로크의 말을 빌린다면, 시간 관념의 한 측면으로서의 <끊임없는 소멸>을 말하며, 이 이행은 다른 측면으로서는 과거의 <힘>에의 순응에서 기인하는 현재의 출현을 말한다.
합생이란 다수의 사물들로 구성된 우주가, 그 <다자>의 각 항을 새로운 <일자>의 구조 속에 결정적으로 종속시킴으로써 개체적 통일성을 획득하게 되는 그런 과정을 일컫는 말이다.
상대적인 완결된 현실 세계를 사물의 본성에 따라 새로운 합생을 위한 여건으로 만들어가는 창조성은 <이행>이라고 불린다.
우리는 하나의 현실적 계기란 느낌의 과정에 의해 이루어지는 합생이라고 말한다.
합생 자체에서 생겨나는 존재들을 포함하여 우주 내의 많은 존재들은, 이 최종적 통일성에 있어서제각기 그 나름의 역할을 지니게 된다. 이러한 최종적 통일성은 <만족>이라고 불린다.
현실적 계기는 합생의 개별 사례에 귀속될 수 있는 통일성 이외의 다른 것이 아니다. 따라서 이 합생은 문제되는 현실적 계기의 <실재적인 내적 구조>에 불과한 것이다.
로크의 <개별적인 관념>은, 문제의 현실적 존재가 지니는 <실재하는 내적 구조>의 원초적 위상인 <이행>에다 자기 자신의 특수성을 주입하는 기능을 행사하는, 선행하는 현실적 존재에 지나지 않는다.
보완이라는 두 번째 위상은 종속적인 두 위상으로 다시 구분된다.
감성적 보완에는, 한 현실적 계기의 합생에 있어서 객체적 내용의 통합에 내재하는 대비와 율동에 대한 정서적 평가가 들어 있다.
추상적 가능성 속에 있는 몇몇 영원한 객체들이 현실적 사실에 관련된 것으로서 실현될 경우, 지성적 작용을 수반하는 현실적 계기가 있게 된다. 그러한 지성적 작용의 복합체는 때때로 그 현실적 계기의 <정신>이라 불리고, 또 그 현실적 계기는 <의식적>이라고 불린다.
요약하자면 과정에는 두 종류, 즉 거시적 과정과 미시적 과정이 있다. 거시적 과정은 성취된 현실태로부터 성취 중에 있는 현실태로의 이행인 반면 미시적 과정은 단순히 실재적일 뿐인 조건들을 결정적인 현실태로 전환시키는 것이다.

3부 파악의 이론

1장 느낌의 이론

현실적 존재의 특이성은, 그것이 <객체적으로>도 고찰될 수 있고 <형상적으로>도 고찰될 수 있다는 것이다. <객체적> 측면은 그 현실적 존재에 관한 한 형태론적이다.
긍정적 파악이 <느낌>이라고 불린다. 합생의 과정은 많은 느낌들이 있게 되는 최초의 단계와, 전기의 보다 단순한 느낌들을 통합하여 느낌의 복합적인 하나의 통일성인 만족에 이르기까지 보다 복합적인 느낌들이 있게 되는, 후속하는 위상들의 연속으로 구분될 수 있다. 이것이 만족에 대한 <발생적> 분석이다.
느낌은 모든 점에서 결정되어 있다. 즉 결정된 주체, 결정된 최초의 여건, 결정된 부정적 파악, 결정된 객체적 여건, 결정된 주체적 형식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느낌은 그것을 품고 있는 현실적 존재로부터 추상될 수 없다. 이 현실적 존재는 느낌의 <주체>라고 불린다.
자기초월적 주체는 느낌들을 창시하는 과정의 목적이다.
현실적 존재의 과정에 있어서 주체의 구성 요소로서의 느낌은 통합되어 간다.
느낌이 스스로를 구성하면서 나아가는 과정은 또한 통합적 느낌의 주체적 형식 속에 기록된다. 부정적 파악은 그 과정에 기여하는 자기 자신의 주체적 형식을 가지고 있다.
합생의 바로 핵심을 이루고 있는 통합의 과정은 주체적 통일성, 객체적 동일성, 객체적 다양성이라는 세 범주에 의해 우주의 합생적 통일성에 부과되는 충동이다. 우주의 일자성, 그리고 우주 내의 각 요소의 일자성은 피조물로부터 피조물로의 창조적 전진에 있어 세상이 끝날 때까지 되풀이된다. 그리고 이들 각 피조물은 저마다 역사 전체를 자신 속에 포함하고 있으며, 사물들의 자기 동일성 및 그들 상호 간의 다양성을 예증하고 있다.
완결된 종합은 그 한 쌍의 관계항이 결합하여 빚어내는 특수성들을 표현할 뿐이며, 그 밖의 다른 어떠한 것도 관계시키지 못한다.
<대비>라는 용어의 한 가지 용법은, 영원한 객체들의 실현된 공재성에서 생겨나는, 결합적 통일의 개별성을 의미한다.
광범하고도 거대한 인식의 사례에 관한 한, 문제의 개별적인 현실태들 간의 개별적인 결합체는 우리가 의식하고 있는 물리적 느낌과의 구성적 연관에 의해서만 지적될 수 있다는 것이다.
느낌의 분석에 있어, 사물에 앞서는 것으로 나타나는 것은 모두 여건이며, 독점적으로 그 사물 속에 있는 것으로 나타나는 것은 모두 주체적 형식이고, 그 사물 속에 그리고 사물의 뒤에 나타나는 것은 모두 <자기 초월적 주체>이다. 느낌에 관한 이러한 학설은 현실적 존재의 생성에 관한 중심적인 학설이다.
만족에 있어서의 최종적인 구체적 구성 요소는 자신의 주체와 자신의 여건 및 최종적으로 완결된 것으로서 자신의 정서적 패턴을 수반하고 있는 청취이다. 그것은 그 요소들 가운데 어느 것과도 떼어놓을 수 없는 개별적인 하나의 사실이다.
피악의 주체적 형식들 간의 관계는, 그 파악들의 형성을 향도하는 하나의 주체적 지향에 의해서 구성되어 있다. 주체적 형식들의 이러한 상관관계는 파악들의 <상호 감수성>이라고 불린다. 현실태란 구체적 통일성으로 향해 가는 합생의 과정에 있어서 주체적 통일성을 갖는 파악들의 총체를 말한다.

2장 최초의 느낌

어떤 한 주체가 품고 있는 <단순한 물리적 느낌>은 단일의 현실적 존재를 그 최초의 여건으로 하면서, 이 후자의 현실적 존재가 품고 있는 별개의 느끔을 그 객체적 여건으로 하고 있는 그런 느낌이다.
최초의 여건인 현실적 존재는 지각되는 현실적 존재이고, 객체적 여건은 그 현실적 존재가 지각되는 <전망>이며, 단순한 물리적 느낌의 주체는 지각이다.
단순한 물리적 느낌은 자연의 재생적 성격과 과거의 객체적 불멸성을 구현하고 있다. 이러한 느낌에 힘입어 시간은 과거에 대한 직접적 현재의 순응이 된다. 이와 같은 느낌이 <순응적> 느낌이다.
개념적 느낌이란 영원한 객체를 <객체>라는 원초적인 형이상학적 성격에 있어서 느끼는 것, 즉 과정의 실현된 결정자가 될 수 있는 영원한 객체의 능력을 느끼는 것을 말한다.
개념적 느낌이란 그 <여건>이 영원한 객체인 느낌을 말한다.
개념적 느낌의 주체적 성격은 <가치 평가>라는 성격을 갖고 있다.
개념적 느낌의 가치 평가가 <평가 절상>되느냐, <평가 절하>되느냐에 따라, 통합된 느낌에서 느껴진 것으로서의 영원한 객체의 중요서을 고양되기도 하고 감소되기도 한다.
의심은 느낌의 주체적 형식과 관계된다.
의식이 생겨나는 것은 종합하는 느낌이 물리적 느낌과 개념적 느낌을 통합하는 경우이다.
한정성, 긍정, 부정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의식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3장 느낌의 전달

현실 세계로부터 그 세계와 상관적인 새로운 합생으로서의 창조성의 이행을 조건짓는 것은 신의 전 포괄적인 개념적 가치 평가와, 현실 세계로부터 전달되는 특정한 가능태들과의 관련성 및 이 현실 세계와 최초의 느낌에 있어 이용될 수 있는 최초의 주체적 형식의 여러 가능태들과의 관련성이다.
<혼성적 물리적 느낌>에 있어, 여건을 이루는 현실적 존재는 그 자신의 여러 개념적 느낌들 가운데 하나에 의해 객체화된다.
적극적으로 파악되는 신의 느낌에 대한 혼성적 느낌들은, 시간적 세계로부터 전달된 물리적 느낌과 대비나 동일성을 갖는 데서 성립하는 양립 가능성을 수반되는 혼성적 느낌들이다.
각각의 물리적 느낌으로부터, 물리적으로 느껴진 현실적 존재의 존재의 한정성 내지 결합체의 한정성에 있어 예증된 영원한 객체를 여건으로 하는 하나의 순수한 개념적 느낌이 파생되어 나온다.
정신적 극의 최초의 위상은 개념적인 재생이며, 제2의 위상은 개념적인 역전의 위상이다.
역전은 선행하는 위상의 여러 느낌에 있어서의 요소와 동일한 요소를 필연적으로 포함함으로써 항상 제한된다. 모든 느낌의 발생은최종적인 종합을 위해 주체가 부과하는 적성에 의해서 통제되고 있다. 그리고 객체적 통일성의 범주에 의해 그 적성은 언제나, 자기 동일적인 요소들이 지니는 두 측면의 기능에 그 근거를 가지고 있다.
여러 현실적 존재의 유사한 단순 물리적 느낌들로부터, 파악하는 주체에 의해 동일한 개념적 느낌이 공평하게 도출되는 경우, 이 파생적인 개념적 느낌과 그 단순한 물리적 느낌들이 통합되는 후속하는 위상에 있어서, 이 파악하는 주체는 이러한 개념적 느낌의 여건을 그 파악된 현실적 존재들의 결합체와의 대비나 혹은 그 결합체의 어떤 부분과의 대비로 변환시킬 수 있다. 그래서 이렇게 질적으로 규정되는 결합체는 이 파악 주체가 품는 느낌의 객체적 여건이다.
임의의 결합체가 품고 있는 개념적 느낌들은, 물리적인 객체적 여건으로서의 그 결합체의 미래의 역할을 수정한다. 하나의 현실적 존재의 개념적 느낌으로부터 그 존재의 후속하는 위상에 있어서의 물리적 느낌이나, 그 존재 다음에 오는 현실적 존재의 물리적 느낌으로의 이행을 지배하고 있다.

4장 명제와 느낌

명제는 현실태에 있어서의 그 실현이 결정되어 있지 않은, 현실태를 위한 한정적인 가능태라는 점에서 영원한 객체와 마찬가지로 미결정성이라는 성격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양자는 영원한 객체가 절대적인 일반성을 가지고 현실태와 관계하는 반면, 명제는 지시된 논리적 주어와 관계된다는 점에서 다르다.
명제는 느낌의 개별성이나 결합체의 실재성을 갖지 않는다.
명제적 느낌은 그 가장 단순한 사례에서 볼 때, 의식적 느낌이 아니다. 통합적인 명제적 느낌의 역사에 있어서 항상 하나의 구성 요소가 되는 물리적 느낌이 문제의 명제와 아무런 특이한 관계도 갖지 않으며, 또한 이 명제를 파악하는 주체인 그 느낌의 주체도 그 명제와 아무런 특유의 관계를 갖지 않는다는 것이다.
명제적 느낌은 <지시적 느낌>과 <술어적 느낌>과의 통합이 이루어지는 후기의 위상에서 생겨난다.
동일한 명제를 여건으로 갖는, 상이한 파악 주체들에 있어서의 상이한 명제적 느낌들은 각기 <지각적 느낌>과 <상상적 느낌>이라 불리는 두 가지 주요 유형으로 분류될 수 있다. 이 양자의 차이는 논리적 주어를 파생시키는 <지시적 느낌>과, 그 술어적 패턴을 파생시키는 <물리적 인지> 간의 비교에 기초를 두고 있다.
상상적 느낌은 지시적 느낌과 물리적 인지가 상이한 일반적 사례에 속한다.
명제적 느낌의 주체적 형식은 의식에 의해서보다는 오히려 가치 평가에 의해서 지배된다.
그 느낌은 지각적이고, 근거 있으며, 직접적이어야 한다.

5장 경험의 보다 고차적인 위상

<비교적 느낌>은 아직 고찰되지 않은 통합의 성과이다.
두 가지 단순한 유형의 비교적 느낌은 지성적 느낌과 물리적 목적이다.
지성적 느낌에 있어서의 여건은 현실적 존재들의 결합체와 그 결합체의 성원들을 논리적 주어로 삼는 명제와의 유적인 대비이다.
어떤 느낌의 여건이 명제일 때, 그리고 그 주체적 형식이 그 정서적 패턴에 있어서 한정하는 요소로서 어떤 단계적인 강도와 결부된 어떤 형상 내지 영원한 객체를 포함하고 있을 때, 그 느낌은 <신념>이라고 불리거나 아니면 <신념>의 요소를 포함하고 있다고 한다.
신념의 비교적인 견고성이란 객관적 증거에 의해 정당화될 수 있고 되지 않을 수도 있는 심리적인 사실에 속한다. 이 신념 특성은 다양한 유형의 지적 느낌들에서 파생되는 의식과 융합하여 다양한 형식을 취한다.
의식적 자각은 지각적 느낌과 이 원초적인 물리적 느낌과의 통합에서 생기는 비교적인 느낌이다.
물리적 세계에 있어서의 새로움 및 근거 있는 지각적 느낌에 따르는 오류가 역전의 범주에 따라 개념적 기능에 의해서 생겨나고 있다는 것이다.
직관적 판단에 있어 비교적 느낌은 어떤 결합체에 대한 물리적 느낌과, 그 결합체의 현실적 존재들을 논리적 주어로 하고 있는 명제적 느낌과의 통합이다.
지각적 느낌의 경우, 정서적 패턴은 성립 과정 전체에 걸친 술어와 논리적 주어와의 긴밀한 결합을 반영하고 있다. 상상적 느낌의 경우, 이 정서적 패턴은 술어와 논리적 주어가 최초에 분 리되어 있었음을 반영한다.
물리적 느낌은 실재적인 사실을 느끼고 있으며, 개념적 느낌은추상적 가능성을 평가하고 있다.
물리적 목적의 항구성은 자연 질서의 영속성, 특히 <존속하는 객체>의 영속성을 설명해 주고 있다.
합생 중에 있는 경험의 양극적 성격은, 그 물리적 극에 있어서는 외적 현실계로부터 파생되는 경험의 객체적 측면에 이바지하고, 정신적 극에 있어서는 물리적 느낌들에 연관된 주체적인 개념적 가치 평가로부터 파생되는 경험의 주체적 측면에 이바지한다.
물리적 목적의 제2종은 정신적 극에서의 역전의 발생에 기인한다. 역전은 경험의 강도를 위한 조건으로서의 대비의 유혹으로 말미암아 생겨나는 개념 작용이다.
새로운 형상은 우선 개념적 경험으로서 긍정적으로 실현되고, 이어서 물리적 경험으로 변환된다는 원리가 부가되었다.


4부 연장의 이론

1장 등위적 분할

현실적 존재의 만족을 그것을 구성하고 있는 느낌으로 <분할하는> 데는 두 가지의 상이한 방식, 즉 발생적인 것과 등위적인 것이 있다.
현실적 존재는 물리적 시간의 일정한 양자를 향유한다.
합생을 지배하고 있는 과제는 전체로서의 양자의 현실화이다.
양자에는 시간적 요소뿐만 아니라 공간적 요소가 있다. 따라서 양자는 연장적 영역이다.
등위적 분할은 현실적 세계에 대한 그 하위 영역의 입각점으로부터의 통일된 느낌이라는 성격을 갖는, 만족의 구성 요소를 표현하고 있다. 정신적 극의 창시적 에너지는, 그 개념적 파악이 주체적 형식을 조절하거나 재조정하여, <만족>으로 귀착되는 통합의 특수 양태를 결정하는 충동을 구성하고 있다.
원자적인 현실적 존재는 우주의 발생적 통일성을 개별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원자의 다수성에 의해 표현되는 세계의 원자적 통일성은 이제 연장적 연속체의 연대성으로 대체된다. 선행하는 현실태 A의 선택적인 객체화가 후속하는 현실태 B의 구조 속으로 간접적으로 수용되는 다양한 전달 경로의 그와 같은 질서정연한 배열은 다양한 현실적 존재들 간의 연장적 관계성의 기초가 된다. 그러나 외적인 연장적 관계의 이러한 도식 자체는, 여러 현실적 존재에 있어 내적인, 내적 분할의 도식들과 연결되어 있다.
연장적 관계들은 모든 현실적 계기가 그것으로부터 생기는 그런 실재적 가능태에 포함된 체계적 도식을 대변한다.
우리의 우주 시대에 있어, 다양한 특질을 갖는 연장적 결합은, 물리적 세계를 하나의 공동체로서 적절하게 기술할 수 있게 해주는 근본적인 유기적 관계성이다.
시간과 공간은 연장의 도식을 전제로 하는 자연의 특질이라는 것이다.
<파악> 이론은 자연을 <이분화>하는 데 대한 항의를 구현하고 있다.
사물의 공공성과 관련시켜 고찰된 현실적 존재는 <자기초월체>이다.
사물의 사사성과 관련시켜 고찰된 현실적 존재는 <주체>이다.
영원한 객체는 현실적 존재의 합생에 있어 다음의 세 방식 중 하나로 기능할 수 있을 뿐이다.그것은 느낌의 여건인 어떤 객체화된 결합체나 어떤 단일의 현실적 존재를 한정하는 요소일 수 있다. 그것은 어떤 느낌의 주체적 형식의 한정성의 요소일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은 개념적 내지 명제적 느낌의 여건에 있어서의 요소일 수 있다.
우주 시대에 편재해 있는 자연의 질서는, 객체적 종의 영원한 객체를 포함하고 있는 형태론적 도식으로서 나타난다.
발생적 분할은 그 합생적 직접성이라는 성격에 있어서의 현실적 계기와 관계된다. 등위적 분할은 그 구체적 객체의 성격에 있어서의 현실적 계기와 관계된다.

2장 연장적 결합

<연장적 결합>이라는 물리적 관계의 개념 용어.
‘매개적으로, 포함한다, 중첩된다, 분해, 교차 부분, 외적으로, 접선적으로, 추상적 집합, 망라한다, 동치, 연합한, 일어난다, 점,소, 점적, 끝점, 선분적, 용적, 표면, 선형 신장‘

3장 평탄한 장소

하나의 주체에 있어서의 파악은 후속하는 주체의 파악에게 객체적 여건이 되고, 또 그래서 선행하는 주체는 후속하는 주체에 대하여 객체화된다. 파악들 간의 상호 결학의 이러한 두 유형은 그들 스스로 하나의 공통된 구도, 즉 연장의 관계성 속에서 결합된다.

4장 변형

여건 속에 예증된 형식이 곧고 평탄한 기하학적 장소와 관계하고 있는 그런 느낌은 <변형>이라고 불린다.
기하학적 요소에 의해 침투되어 있는 연장적 영역은, 보다 단순한 느낌에서 파생되는 성질이나 기하학적 관계에 의해서 객체화된다. 이런 유형의 객체화는 성질과 일정한 기하학적 관계와의 긴밀한 연합으로 특징지어진다.
현시적 직접성은 감각 기관에 의한 동시적 세계의 지각이다. 그것은 물리적 느낌이다. 그러나 그것은 복합적 유형의 물리적 느낌이다. 그것의 형성을 위해서, 개념적 느낌과 보다 근원적인 물리적 느낌 및 변환이 통합 과정의 한복판에서 각기 자기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그 객체적 여건은 일정한 성질과 관계를 분명하게 예시하고 있는, 동시적 사건들의 결합체이다. 이러한 성질과 관계는 근원적인 물리적 느낌에서 파생된 주체적 형식을 통해 파악되며, 우리는 <사적인> 감각이 된다. 마지막으로 모든 물리적 느낌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이 복합적이며 파생적인 물리적 느낌은, 어떤 유형의 경험으로서 그 개념적 실현에 내속하는 가치 평가와의 통합을 획득한다.
고등 유기체의 특징은 부정적 파악에 의해서 그 환경 내의 무관련적인 우유성을 제거하고, 체계적 질서의 온갖 다양성에로 광범위한 주의를 끌고 가는 데에 있다.
경험의 깊이는 환경의 체계적인 구조적 조직을 집중적으로 강조함으로써, 그리고 개개의 변화를 버림으로써 얻어진다.
변형의 장소란 지각하는 계기의 여러 변형의 느낌에 의해 철저하게 기하학화되는 장소를 말한다.
지속은 <생성의 일치> 속에 있든가, 아니면 <합생적 일치> 속에 있는 현실적 계기들의 완결된 장소이다.

5장 측정

변형의 장소에 대한 정의는 문제의 경험 주체를 포함하고 있는 결합체의 객체화에 있어서의 기하학적 형식의 요소인 기하학적 요소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다.
<변형의 장소>는 현시적 직접성의 양태에 있어서의 지각을 위한 본질적인 구성 요소로서 생겨난다.
현시적 직접성은 변형의 느낌과 <물리적 목적>의 통합에서 생긴다. 따라서 변환의 범주에 의해, <물리적 목적>에 포함된 감각 여건은 투사자에 의해 한정된 어떤 외적인 초점적 영역 위에 투사된다.
현시적 직접성은 동시적인 현실태를 포함하지만 그것들을 연장적 관계에 의해 제약된 것으로서만 객체화시킨다.
외부 세계에 대한 우리의 경험은 문제의 파악에 있어서의 <상념적 실재>에 대한 내관을 포함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 파악을 넘어서는 경험 전체를 활동케 하는 <판단>도 포함하고 있다.
현시적 직접성의 기원을 추적하면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정신적 작용이 감각 여건의 기능을 변환시켜, 인과적 파악의 관여자였던 감각 여건을 현시적 파악의 관여자로 전이시킨다는 것이다.
모든 검사는 영속성에 대한 직접적인 직관에 기초를 두고 있다는 것이 당장 분명해진다. 이 <영속성>이란 사용되는 여러 기구, 즉 야드 자나, 광학 기구 내지 이와 유사한 기구에 있어서의 <합동에 관한 영속성>을 의미한다.
변형의 장소는 그 내부의 어떤 유한한 영역에 침투해 있는 <투사자>에 의해서 한정된다. 이러한 장소는 그것을 원자화시킬 수도 있는 현실태들과는 독립된, 체계적인 전체이다. 이 점에서 그것은 그것의 물리적 내용에 의존하는 <지속>과 구뱔되어야 한다. 변형의 장소는 단지 그것의 기하학적 내용에 의존하고 있을 뿐이다.
직선의 관련된 특징들은, 그것이 완결적이라는 것, 그것이 점을 포함한다는 것, 포함된 점의 임의의 쌍에 의해 그것이 일의적으로 정의된다는 것, 그것이 단일의 점에서 서로 교차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체적 형상>을 표현하면,
현실적 계기는 움직이지 않으며, 따라서 동일한 위치를 점한다는 학설은 무의미하다.
외연량은 논리적 구성물로서, 중복되지 않고, 해당 결합체를 망라하는 합동 단위의 수를 표현하고 있다.
합동은 합동하는 양쪽의 요소를 포괄하는 체계적 복합체에 있어서의 기능의 일정한 유사성으로서만 정의될 수 있다.
모든 실험상의 측정은 사용되는 기구의 초기와 후기의 상태 간의 합동에 대한 궁극적 직관을 포함한다는 것.
모든 정밀한 관찰은 현시적 직접성의 양태에 있어서의 지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
이러한 지각이 단지 사적인 심리적 장과 관계될 뿐이라면, 과학은 아무런 공공적 의미도 갖지 않는, 한 개인의 백일몽이 되고 만다는 것.
현시적 직접성의 양태에 있어서 지각은 오로지 <신체>를 <가지고 있음>에 의거하고 있으며, 그 외적인 동시적 세계를, <신체>에 대한 체계적인 기하학적 관계에 있어서만 나타낸다는 것.


5부 최종적 해석

1장 이념적으로 대립하는 것들

철학에 주요 위험이 되는 것은 증거를 선택하는 데 있어서의 협소성이다. 이러한 협소성은 특정한 저자의, 특정의 사회 집단의, 특정의 사상 학파의, 문명사에 있어서의 특정 시대의 개성이나 소심함에서 생겨난다. 준거로 삼는 증거는 개개인의 기질, 집단의 편협성, 사유 구도의 한계에 의해 제멋대로 편중된다.
이념들은 영속성과 유동성이라는 두 관념을 둘러싸고 형성된다. 피할 수 없는 유동 속에는 무엇인가 머무르는 것이 있고, 압도적인 영속성 속에는 유동성으로 빠져나가는 요소가 있다.
과거에 있어 지배적이었던 것은, 체계와 신선함 간의 복잡미묘한 대조로부터 강도를 얻고 있는 새로운 느낌들을 산출할 수 있는 확고한 토대로 전환되어야 한다.
세계는 새로움을 갈망하고 있으면서도, 친숙했던 것들과 사랑했던 것들을 동반하고 있는 과거를 상실하게 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한시도 떨쳐 버리지 못하고 있다는 역설에 직면해 있다.
시간 세계에 있어서 시간의 과정이 상실을 수반한다는 것은 경험적인 사실이다.
우리가 우주론을 구성함에 있어, 우리에게 남아 있는 것은 기쁨과 슬픔, 선과 악, 이접과 연접, 유동과 영속성, 위대성과 사소성, 자연과 필연, 신과 세계라는 궁극적인 대립자들이다.

2장 신과 세계

<탁월하게 실재적인> 것으로서의 신의 관념은 기독교 신학의 애호하는 학설이다. 이 두 관념이 결합되어, 근원적이며 탁월하게 실재적인 초월적 창조자, 즉 그의 명령으로 세계가 존재하게 되고 그가 강요하는 의지에 그 세계가 복종하는 그런 초월적 창조자라는 관념이 된 것은, 기독교와 이슬람교의 역사에 비극을 야기해 온 오류이기도 하다.
신은 모든 창조에 앞서 있는 것이 아니고, 모든 창조와 더불어 있다.
신의 개념적 현실성은 범주적 조건을 예증하는 동시에 확립시킨다. 신의 원초적 본성을 구성하는 개념적 느낌들은 그들의 주체적 형식에 있어서, 상호적인 감수성과 주체적 지향의 주체적 통일성을 예증한다. 이 주체적 형식들은 현실태의 각 계기에 있어서의 영원한 객체들의 상대적 관련을 결정하는 가치 평가이다.
신은 모든 다른 창조적 행위와의 생성의 일치 가운데 있는 개념적 작용의 전제된 현실태이다.
시간적 세계의 현실적 존재는, 최초에 신으로부터 파생된 결과적인 개념적 경험에 의해 유발되는 완결의 과정을 수반하고 있는 물리적 경험에 의해 창출되는 것으로 간주되어야 한다. 신은, 최초의 시간적 세계에서 파생된 결과적인 물리적 경험에 의해 유발되는 완결의 과정을 수반한 개념적 경험에 의해 창출되는 것으로 간주되어야 한다.
신은 진ᆞ선ᆞ미에 관한 자신의 비전에 의해 세계를 이끌어가는 애정 어린 인내심을 갖고 있는, 세계의 시인이다.
신은 유한한 사실들이 가지는 개개의 유동하는 만족에 의해 완결되고, 시간적 계기는 궁극적인 절대적 <지혜>인 영원한 질서에 순응하게 되는 변형된 자기와의 영속적인 합일에 의해서 완결된다.
신과 세계는 대비된 대립자이며, 이 대립자에 의해서 창조성은 대립 속에 다양성을 갖는 이접적인 다수성을, 대비 속에 다양성을 갖는 합생적 통일로 변형시키는 그 최상의 임무를 수행한다.
신은 모든 정신성의 무한한 근거이며, 물리적 다양성을 추구하는 비전의 통일이다. 세계는 완성된 통일을 추구하는 유한한 것들, 곧 현실태들의 다양성이다.
신의 결과적 본성이란 현실태의 다양한 자유를 신 자신의 현실화의 조화로 수용함으로써 신 자신의 경험을 성취하는 것을 말한다. 그것은 신의 순수한 개념적 현실태에 따르는 결여성을 보완하여 완전한 것이 되게 하는, 실재적으로 현실적인 것으로서의 신이다.
우주가 자신의 현실태를 완성시키는 데는 네 가지 창조적 위상이 있다. 첫째로 개념적 창시, 둘째로 물리적 창시의 시간적 위상, 셋째로 완성된 현실태의 위상, 넷째로 창조적 행위의 위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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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과 굴뚝청소부
이진경 지음 / 새길아카데미 / 2001년 7월
평점 :
절판


◇ 철학과 굴뚝청소부

철학 책을 읽게 되면.
내가 철학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를 제외하고서 다른 사람에게서 그 이유를 찾는다면 아마도 삶, 주체,인식 정도 일 것이다. 그렇지만 복잡다단한 개념과 논리에 부딪히면 금새 싫증을 내게 된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재미있고 명쾌하다. 스스로 입문이라 생각한다면 진입하기 더할나위 없이 좋고 엉켜있는 실타래처럼 정리되지 않는 생각들이 난무한다면 다시 접근하기에 깔끔한 책이다.
나는 철학의 이해하기 어려운 개념과 논리 속에 빠져 들어 갈피를 못잡다가 일상의 잡다한 일들로 생각이 흘러 들면 이렇게 저렇게 상황을 정리하게 된다.
어찌 보면 이런 이유로 철학 책에서 손을 떼지 못하는게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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