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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와 반복 ㅣ 현대사상의 모험 13
질 들뢰즈 지음, 김상환 옮김 / 민음사 / 2004년 3월
평점 :
◇차이와 반복
긍정의 차이와 옷 입은 반복 그리고 각론.결론적인 영원회귀.
놀라운건 차이와 반복을 정의하며 덧붙여지는 이념, 개념, 사유의 논리들이 우리가 직면하는 삶의 의미를 깊이있게 생각하는데 커다란 자극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확신했었고 결론냈던 많은 생각들이 `나에게 너무 쉬웠구나! 쉬웠네~` 라는 회의감을 주었던 책이다. 논리의 풍요로움 속에 각론처럼 주어지는 후반의 내용은 내가 이해할 수 있는 만큼 기억 속에 가져왔다.
서론 반복과 차이
1절
반복은 한 사태에서 다른 한 사태로 이행할 수 있다고 해서 두 사태 간의 본성상의 차이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자연의 환경에서 반복은 하나의 일반성의 질서에서 다른 일반성의 질서로 향하는 이행 안에서만 나타난다. 자연법칙의 반복은 오류가 있다.반복을 가능케할 법칙은 모순없는 반복을 규정하는 도덕적 사유가 있는 도덕법칙의 영역으로 자리를 옮기면 기대할 수 있다. 그러나 양심의 애매성은 도덕법칙을 일반적인 선이라는 완전성과 통합성 아래에 나타나는 일반성에 매몰되어 버린다. 이 일반성이 가진 반복은 언제나 법칙에 종속된 특수자들에 반하여 어떤 독특성을 드러내며, 법칙을 만드는 일반성에 반하여 항상 어떤 보편자를 드러내면서 도덕법칙은 전복될 수 있다.
2절
키에르케고르와 니체는 자신만의 방법으로 반복을 언어와 사유의 어떤 고유한 역량, 파토스, 고등 병리학으로 만들었을 뿐 만아니라 미래 철학의 근본 범주로 만들었다. 이들에게서 모든 형식의 일반성에 대립한다. 거기에는 자연, 도덕, 습관, 기억 등 일반적인 것에 대한 대립이다. 반복되는 모든 것은 역량 안에서 하나로 집약된다. 반복 안에서, 반복을 통해서 자신을 언명하는 무한자, 한 순간을 통해 자신을 언명하는 영원, 의식을 통해 자신을 언명하는 무의식, `n승`의 역량을 의미한다.
이들은 철학의 극복을 말한다. 형이상학이 운동성과 활동성을 띠게 되기를 바란다,운동 자체를 어떠한 중재도 없이 하나의 작품으로 만드는 것, 매개적인 재현들을 직적적인 기호들로 대체하는 것이다. 운동의 본질과 내면성은 대립도 아니고 매개도 아닌 다만 반복일 뿐이다. 반복은 자기 안에 차이들을 포괄하면서 하나의 특이점에서 또 다른 특이점으로 직물처럼 짜여나가는 방식이다.
영원회귀가 지닌 힘은 결코 ` 같음` 일반을 되돌아오게 하는 힘이 아니라 창조하되 선별하고 추방하는 힘, 생산하되 파괴하는 힘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3절
개념 혹은 재현의 관점에서 반복과 일반성의 대립을 명시한다. 개념은 실존하는 특수한 사물의 개념일 수 있고, 그런 한에서 무한한 내포를 갖는다. 중요한 사실은 내포의 무한성이 현실적으로 가정된다는 점이다. 하나의 개념은 항상 규정들 각각의 수준에서, 자신이 내포하는 술어들 각각의 수준에서 봉쇄될 수 있다.규정으로서의 술어는 개념 안에서는 고정되어 있지만 사물 안에서는 얼마든지 다른 것으로 변하는 성질을 지니고 있다. 인위적이든 자연적이든 내포에 대한 봉쇄는 그 개념을 실존 안에서 이행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개념에 부과된 외연은 개념의 관점에서는 동일하지만 실존 안에서 똑같은 독특성에 참여하는 어떤 개체들의 번식이다. 유한한 국면에서의 개념의 차이에서 오는 외연의 분열은 실존 안에서 어떤 참된 반복을 형성한다. 반복, 그것은 이처럼 실존으로 이해하도록 강요되고 유한한 내포를 갖는 개념의 순수한 사실인 것이다. 개념에 대한 의식이 표상을 나에게 연관짓는다면, 이때 나는 어떤 자유로운 인식능력을 갖지만 의식이 앎을 결여하거나 기억내용에 대한 철저한 되새김을 결여할 때, 즉자적 상태의 앎은 대상의 반복에 불과하다.다시 말해서 알ㅇ은 인식되는 대신 반복되고 행동으로 옮겨진다. 반복은 여기서 자유로운 개념의 무의식, 앎이나 기억내용의 무의식, 표상의 무의식으로 드러난다.
4절
반복을 정당화해 준다고 간주되는 것은 개념의 불충분성이자 그 개념의 표상에 동반하는 것들(기억과 자기의식, 재기억과 재인)의 불층분성이다. 이 논변들은 반복을 단지 명목적으로 정의하고 부정적으로 설명하는 데 그칠 뿐이다. 프로이트는 삶의 충동과 죽음의 충동이 대립하면서 혼합되어 섞여 있다고 했다.죽음의 본능은 생명이 있는 모든 존재의 본질이라고 말했다. 이 죽음의 본능은 반복을 설명하는 근원적이고 실증적인 원리의 자리에 오른다. 가면이나 가장복들에 대한 정신적 관계 안에서 이해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반복이란 것읏 그야말로 자신을 구성해 가는 가운데 스스로 위장하는 것, 스스로 위장함으로써만 자신을 구성하는 어떤 것이다. 가면이야말로 반복의 참된 주체이다.억압에 의존하는 현앙으로서의 반복을 멈추기 위해서 개념을 형성하고 표상하는 기억내용이 머물렀던 바로 그 곳에서 기억을 찾고 곧장 과거 안에 자리 잡는 가운데 앎과 저항, 표상과 봉쇄를 생생하게 결합해야 한다. 이 작업 과정을 전이라고 지칭한다. 그렇지만 전이는 여전히 반복이며, 다를 무엇이기 이전에 반복이다. 전이는 하나의 경험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분석적 경험 전체에 근거를 마련해 주는 어떤 원리이다.이런 의미에서 반복은 스스로 우리의 병과 건강, 우리의 타락과 구원을 선별하는 유희로 자신을 구성해간다.
5절
문제는 반복의 본질에 있다. 왜 반복은 개념이나 재현 안의 동일성 형식에 의해서는 설명될 수 없는지, 어떤 의미에서 반복은 우월하고 월등한 어떤 `실증적` 원리를 요구하는지 등을 아는 것이다. 반복은 내적인 차이를 함축하면서 상징의 질서를 예비한다.반복은 다만 어떤 이념이며, 그에 상응하는 어떤 공간 창조적인 순수한 역동성이다. 같음의 재생산처럼 배움은 표상에서 행위로 이어지는 관계 안에서 성립하지 않는다.그것은(다름과 부딪히는 마주침처럼) 기호에서 응답으로 이어지는 관계에서 성립한다.반복은 더이상 같음의 반복이 아니다. 그것은 다름을 포괄하는 반복이고, 하나의 물결과 몸짓에서 또 다른 물결과 몸짓으로 이어지는 차이를 포괄하는 반복, 이 차이를 그렇게 구성된 반복의 공간으로 운반하는 반복이다.똑같은 개념을 지닌 동일한 요소들과 다른 이산적요소들, 이 반복되는 대상들과 구별할 것이 있다.먼저 반복되는 것과 반복하는 것의 두가지 형식을 구별해야 한다.이 두 가지 반복에서 동일성을 띤 요소들이 겉으로 드러내는 반복이 어떻게 필연적으로 어떤 잠복해 있는 주체에 의존하는지, 그리고 이 주체는 어떻게 그 요소들을 통해 스스로 자신을 반복하는 가운데 첫 번째 반복의 심장부에서 `또 다른` 반복을 형성하는 지를 보여준다. 이 새로운 반복이 개념 없는 차이의 본질을 형성하고 매개되지 않는 차이의 본질을 형성하는 것이며, 모든 반복은 여기에서 나온다.
6절
우리는 차이를 어떤 개념적 차이, 내생적으로 개념적인 차이로 파악한다면, 그리고 반복을 어떤 외생적 차이, 하나의 똑같은 개념 아래 재현된 대상들 사이의 차이로 파악한다. 차이와 반복이라는 두 기초개념의 마주침은 반복의 본질로 이어지는 노선과 차이의 이념으로 이어지는 노선이 교차하고 간섭하는 모습을 들여다 볼 때에나 비로소 나타난다.
1 차이 그 자체
1절
차이는 본래적 규정에 대해 말할 수 있는 바로 그런 상태이다. 차이는 일방향적인 구별에 해당하는 이런 규정의 상태이다. 차이는 만드는 어떤 것, 만들어지고 있는 어떤 것이다. 이런 차이 혹은 본래적 규정은 여전히 또한 잔혹성이다. 그것이 규정되는 것은 미규정자와 본질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이 정확한 지점을 가르킨다. 차이가 저주의 상태에서 벗어나 동일성, 대립, 유비, 유사성이라는 재현의 요소로서 규정하고 개념 일반의 요구들에 종속시킬 때 차이를 구원하는 재현이 가능하다.그러므로 차이가 개념과 화해하는 듯한 행복한 국면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2절
유비에 따른 존재 안에서 유적 차이는 대립이다.하나의 개념을 지녔다고 가정된 동일성에서 종차는 가장 크다. 차이개념을 규정한다는 것은 차이를 규정되지 않는 개념의 동일성 안에 기입하는 것이다. 차이는 동일한 개념 혹은 공통의 개념으로 함께 존속한다. 그것이 존재의 개념이다. 이제 유적 차이는 차이를 규정 가능한 가장 일반적인 개념들의 유사-동일성 안에 기입하는 데 만족한다. 차이가 있기 때문에 우리는 각기 동일성을 띤 유들로부터 그 유들이 이지적인 것 안에서 서로 유지하는 유비적 관계들로 이행할 수 있다. 재현은 바로 그런 차이를 통해 유기적 재현이 되는 것이다.
3절
일의성의 본질은 존재가 단 하나의 똑같은 의미에서 언명된다는 점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존재가 단 하나의 같은 의미에서, 하지만 자신의 모든 개체화하는 차이나 내생적 양상들을 통해 언명된다는 점에 있다. 일의적 존재에도 여전히 위계와 분배는 있을 터이고, 이 위계와 분배는 개체화하는 요인들과 그 요인들의 의미 안에서 이루어질 것이다.여기서 존재의 일의성은 또한 존재의 동등성을, 평등을 의미한다. 일의적 존재는 유목적 분배이자 왕관을 쓴 무정부 상태이다.존재의 내생적 양태나 개체화 요인들 안에서 파악하게 되면, 그때부터 존재는 `유비적이지` 않을까? 일의성 안에서 존재하거나 존재해야만 하는 것은 개체화하는 차이들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존재하거나 존재해야만 하는 것은 존재, 본연의 차이인 존재이다.일의성이 정교화되는 과정의 대표적인 인물에는 둔스 스코투스, 스피노자, 니체가 있다. 이들은 일의적 존재는 또한 형상과 속성들을 자신뿐 아니라 강도적 요인들이나 개체화하는 등급들에 관계시킨다. 그리고 이 요인과 등급들은 존재의 양태를 변화시키지만 존재의 본질은 변화시키지 않는다고 했다.니체는 영원회귀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영원회귀는 동일자의 회귀를 의미할 수 없다. 회귀는 존재이다. 하지만 생성의 존재일 뿐이다. 영원회귀는 `같은 것`을 되돌아오게 하지 않는다. 오히려 생성하는 것에 대해 회귀가 그 유일한 같음을 구성하는 것이다. 회귀는 유일한 동일성이다.그것은 차이나는 것을 통해 언명되고 차이나는 것의 둘레를 도는 동일자이다. 차이에 의해 산출되는 이런 동일성은 `반복`으로 규정된다. 그래서 영원회귀의 반복은 또한 차이라는 것으로부터 출발하여 같음을 사유하는 데 있다.
4절
개념 일반의 한계들 사이에서 규정은 동일성을 띤 개념이나 유기적 개념들 안으로 기입되는 한에서 차이가 난다.극단은 큼이나 작음 안의 무한에 의해 정의된다. 자기 자신 안에서 그런 무한을 발견할 때, 재현은 더이상 유기적 재현이 아니라 망아적 재현의 모습을 취한다. 개념은 극단의 끝에서 변신을 취하는 규정을 따르며 규정과 더불어 짝을 이룬다. 그리고 그 규정을 근거의 자리에 놓는 가운데 순수한 차이로 재현한다.근거는 또한 차이가 소멸하는 동시에 생산되는 계기, 사라지는 동시에 나타나는 국면이다.규정을 사유 가능하고 선별 가능한 것으로 만들어주는 것이 바로 무한이다. 따라서 차이는 망아적 재현으로 등장한다. 망아적 재현은 유한한 규정 자체를 통해 무한을 언명할 때만 자신 안에서 무한을 발견할 수 있다. 따라서 무한이 유한을 통해 언명되는 한에서 무한하게 작은 것과 무한하게 큰 것은 새롭게, 그리고 보다 엄격하게 분리된다.
헤겔에 따른 모순은 ` 차이 일반은 이미 모순 그 자체`이다. 사물들은 부정성을 취하고 부정성은 내재적 충동이다. 부정적인 것은 긍정적인 것의 생성이면서 동시에 긍정적인 것의 회귀이다.
라이프니츠는 부수적 속성들이 관계하는 부차모순을 말한다. 아주 작은 차이의 극한은 현실적 실존에서 차이의 소멸이다. 연속성의 법칙과 식별 불가능자들의 원리를 이루는 기초개념 즉 모나드들 각각은 세계의 총체성을 표현한다. 세계 안에 모나드들 자체는 최선의 세계를 선택하는 근거가 된다.
모순의 본성은 실존하는 것 안에 비-모순의 두가지 비를 기입하는 데 있다. 차이를 끝까지 밀고 나아가면 모순으로 나아가는 경우가 있다. 차이가 거기까지 가는 것은 동일성인 한에서만 참일 수 있다. 차이는 부정적인 것으로 환원되고 있으며, 상사성과 유비 안에 갇혀 있다.
5절
차이는어떤 결정적인 경험에 맞물려 있는 다원주의적 차이가 전제된다. 다양체의 특이점과 미분적 요소들은 동일성과 추상적 보편성으로 반영되지만 거기에는 재현되지 않는 어떤 독특성이 항상 있다.
긍정은 차이, 거리를 긍정한다. 부정은 너무나 강하고 너무나 차이나는 긍정의 효과이다. 부정적인 것은 결코 발동 장치가 아니다. 오히려 실증적인 미분적 요소들이 있을 뿐이며, 바로 이것들이 긍정의 발생과 긍정된 차이의 발생을 동시에 규정한다. 영원회귀는 모든 변신들 안에 현전하고 있으며, 자신이 되돌아오게 만드는 것과 동시적이다. 영원회귀가 관계하는 세계에서 차이들을 함축하고 있다. 영원회귀는 차이를 통해 언명되는 일의적 존재이다.
6절
나눔의 방법은 진정한 차이의 철학에 모든 변증술적 역량을 집약하는 기법이다. 나눔은 종적 차이의 구분이 아닌 계통에서의 선별이다. 차이의 순수한 개념에서 나눔의 방법이 지닌 의미는 근거가 되는 일차적인 지망자와 분유하는 경쟁자들이다. 나눔의 목적은 어떤 계열적 변증술의 확립, 수직적 계열이나 계통의 확립에 있다. 변증술에 의해 제기되는 존재의 문제에서 비-존재, 부정적인 것, 모순은 긍정의 성격,긍정 옆에 머물러 있는 차이, 그리고 현상에 소통하는 존재의 그림자이다.
7절
플라톤 주의는 `사물 자체`와 허상들 사이의 어떤 구별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전복은 이미지에 대한 원형의 우위를 부인하고 허상과 반영들의 지배를 찬양한다는 것이다. 영원회귀는 자신을 존재하게 만드는 허상의 존재를 참된 특성 혹은 현상이라고 본다는 것이다. 허상은 차라리 원형이나 특권적 위치라는 생각 자체를 반대하고 전복하는 행위이다. 허상은 즉자적 차이를 포괄하는 심급, 두개 이상의 발산적 계열을 포괄하는 심급이다.
2 대자적 반복
1절
반복은 응시하는 정신 안에서 반복되고 있는 요소나 경우들이 어떤 차이를 통해서 변화하는 것을 말한다.반복의 구성에는 즉자의 층위가 있다. 그 다음 수동적 종합에 따르는 대자의 층위가 있다. 여기에 기초한 반성적 재현의 층위가 있다. 시간의 종합을 이뤄낸 수동적 종합 안에서 반복은 살아 있는 현재로 존재한다. 유기체까지 확장된 반복된 행동은 습관의 문제이다. 습관이 수축이라고 말할 때 언급하는 것은 응시하는 정신 안에서 일어나는 이런 반복의 융합이다. 반복에서 새로운 어떤 것을 훔쳐내고 반복에서 차이를 훔쳐내는 것. 이는 상상의 역할이거나 다양하고 조각난 상태에서 응시하는 정신의 역할이다. 게다가 반복은 본질상 상상적이다. 즉자의 상태에서 끊임없이 와해되는 반복과 재현의 공간 안에서 우리에 대해 펼쳐지고 보존되는 반복 사이, 그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 차이는 두 반복 사이에 있고 시간 안에서 현재를 구성한다. 이 현재는 종, 개체, 유기체, 고려되는 유기체의 부분들에 따라 수명을 다하고 이행하는 현재, 변모하는 현재이다. 살아 있는 현재는, 그리고 이와 더불어 모든 유기체적이고 심리적인 삶은 습관에 의존한다. 따라서 이 수많은 습관들은 수동적 종합들의 기저에 영역을 형성한다. 본연의 수동적 자아는 감각 작용들을 구성하기 전에 이미 유기체 자체를 구성하는 수축하는 응시에 의해 정의된다.
2절
습관은 현재의 삶을 구성하고 기억은 과거의 존재를 구성한다. 과거는 사라진 현재와 현행적 현재 사이에 있다. 현행적 현재는 사라진 현재를 재현하고 또 그 차원 안에서 스스로 자기 자신을 재현한다. 과거를 재구성 할 수 있는 것은 현재가 동시간성, 공존 그리고 선재라는 세가지 관점에서 과거와 관계할 때이다. 과거는 자신이 과거이기 위해 거리를 둔 현재 안에 보존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 안에 보존하며, 이때 현행적 현재는 단지 자신과 공존하는 과거 전체의 최대 수축일 뿐이다.
3절
규정되지 않은 나의 실존은 오로지 시간 안에서만 규정될 수 있다. 단지 수동적 자아의 변용으로만 이해해야 한다. 데카르트는 세계의 지속을 시간의 내면화-사유하는 주체-로 주장한다. 퓌지스의 시간은 순수 과거 안에서 자신의 근거를 찾아야 한다. 시간의 원환 속에서 순수 과거는 여전히 필연적으로 현재의 관점에서 표현되고, 사라진 신화적 현재로서 표현된다. 시간의 텅 빈 형식, 시간의 원환에서 벗어나 스스로 자신을 펼쳐낸다. 여기서 시간은 고유한 근거를 전복한 순서, 집합, 계열에 의해 정의된다. 즉 시간의 정태적 종합에 해당하는 선험적 순서, 이미지 안에서의 규정, 동등하지 않은 분배. 시간의 계열 안에서 모든 것은 반복이다. 과거를 구성하는 양태에 따라 반복하고, 변신의 현재 안에서 반복하고 그리고 영원회귀에 해당하는 미래의 반복이다. 반복되는 원환은ㅇ시간의 순서, 순수하고ㅈ텅 빈 형식으로서의 시간을 통해 와해 되어진다. 그리고 그 계열의 끝에서 다름의 원환을 재형성한다.
4절
쾌락이 획득하는 것은 그 자체가 아니라 원리적 가치이다.습관을 쾌락에 종속시키는 한에서 습관 안의 반복은 이미 획득된 쾌락을 재생하려는 욕망을 통해 설명될 수 있다고 간주 된다. 흥분의 반복의 진정한 목적은 수동적 종합을 쾌락원칙과 그것의 미래 적용이나 과거 적용이 모두 유래하는 어떤 역랑으로까지 끌어올리는 데 있다. 그러므로 습관 안의 반복 혹은 묶기의 수동적인 종합은 쾌락원칙을 `넘어서` 있다. 이것은 쾌락 자체를 끌어 앉게 되는 원칙의 역학이다. 능동적 종합은 수동적 종합을 넘어서 전면적 통합과 총체화 가능한 자기 동일적 대상들의 정립을 향해 나아간다. 잠재적 대상은 과거적이다. 잠재적 대상에 대해 질이나 자격을 부여하는 것은 현재에 선재하는 바로 이런 순수 과거이다. 사라진 현재는 반복되어야 할 사태를 제공하는 것은 물론이고 반복의 과정 전체를 조건짓는 것에 해당할 것이다. 상상력은 사라진 현재의 흔적들을 모으고 사라진 현재를 모델로 새로운 현재를 본뜬다. 현실적인 두 계열 안에서, 곧 두 현재 사이에서 출현하는 이 잠재적 대상을 통해 항들의 형태변화들과 상상적 관계들의 양태변화들이 규정된다. 반복은 무의식의 본성과 관련된 최종적인 귀결이 뒤따른다. 무의식적인 물음과 문제들은 의식 안에서 표현하는 위장과 전치와 관련되어 있다. 문제와 물음들은 무의식에 속한다. 하지만 무의식은 본성상 차이를 만드는가 하면 반복적이며 계열적일 뿐 아니라 문제와 물음을 제기한다. 나르키소스적 자아는 수동적으로 체험하는 양태이고 `이전` 의 결핍의 양태를 통해, 이상적 자아의 양태를 통해, 초자아의 예고를 실현하는 `이후`의 양태를 통해 반복한다. 죽는다는 사실은 어떤 급진적인 전복을 끌어안고 있다. 죽음본능은 이 나르키소스적 리비도가 탈성화된 에너지이다. 시간의 순수한 형식에서 무의식을 구성하는 세가지 종합으로 되돌아가야 한다. 첫째 살아 있는 현재 위에 시간을 정초한다. 둘째 순수 과거를 통해 시간을 근거짓는다. 셋째 미래에 관계된 탈성화이다. 시간의 원환에서 죽음의 얼굴을 대신하는 것은 영원회귀이다. 영원회귀 안의 반복은 (허상, 시뮬라크르에 해당하는) 어떤 과도한 체계들에 관련되어 있다. 이 체계들은 차이나는 것을 차이나는 것에, 다양한 것에 우연한 것을 우연한 것에 묶는다.
5절
영원회귀에 의해 변용되는 체계에서 두가지 명제 유사성과 차이를 말한다. 차이는 차이나는 것을 차이나는 것에 관계짓되 동일한 것, 유사한 것, 유비적이거나 대립적인 것에 의한 어떠한 매개도 없이 관계지어야 한다. 차이가 즉자 존재를 숨기고 변질된 재현을 하는 이 체계는 죽음본능으로 귀결되는 주체들이 있어야 하고 또한 역동성이 있어야 한다. 차이를 일으키는 작인에서 저마다 어두운 전조를 포함한다. 전조에는 계열들 사이의 자기 동일성과 유사성이 있다. 투사된 동일성과 유사성은 전치와 위장의 과정이 있다. 그 크기는 크든 작든 언제나 내적이라는 점이며 체계의 핵심을 형성하고 있다. 영원회귀는 동일한 것과 유사한 것을 돌아오게 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그 자체가 어떤 순수한 차이의 세계에서비롯되고 있을 뿐이다. 만약 차이가 즉자 존재라면, 영원회귀 안의 반복은 차이의 대자 존재이다. 반복은 다자의 유사성이 아닌 것처럼 일자의 항구성도 아니다. 영원회귀의 주체는 같은 것이 아니라 차이나는 것이고 유사한 것이 아니라 유사성을 벗어나는 것이다.
6절
플라톤의 원형, 모상 그리고 허상을 구별짓고 허상은 유사성을 결여하고 있는 이미지라는 관념을 주었다. 허상은 영원회귀의 탈중심화된 중심들을 통과하고 재통과하며, 그런 가운데 자기 자신 위에 발을 디딘 채 기능한다. 이것이 가르키는 것은 카오스와 코스모스의 내재적 동일성, 영원회귀 안의 존재, 유별나고 굴곡이 심한 원환 등이다. 플라톤은 영원회귀를 어떤 규율 안에 가두어놓으려고 무진 애를 썼고 어떤 원형을 모사하도록 만들어버린 것이다. 그러나 모사에서 모사로 이어지는 운동, 그 타락해가는 유사성의 무한한 운동 안에서 우리는 모든 것의 본성이 변질하는 지점에 이른다.
3 사유의 이미지
1절
철학에서 시작의 문제는 언제나 미묘한 것으로 여겨졌다. 모든 사람들 각각이 개념에 의존하지 않고도 자아, 사유, 존재 등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 모든 사람들은 ----임을 알고 있다.` 는 점을 부정한다. 철학의 암묵적 전제는 보편적 본성의 사유에 해당하는 공통감 안에 자리하고, 철학은 이 보편적 본성의 사유에서 출발할 수 있다. 사유가 사유하기 시작할 수 있고 또 언제나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그 선-철학적 이미지와 그 공준들에서 벗어나 자유를 구가할 때뿐이다.
2절
사유한다는 것이 어떤 인식능력의 자연스런 실행이고 이 인식능력은 어떤 선한 본성과 선한 의지를지닌다는 점은 권리적 차원에서 어떤 사유의 이미지를 일으켜 세우기 때문이다. 철학이 권리상 타당성을 주장하는 어떤 사유의 이미지 안에서 자신의 전제를 찾고 있는 이상 그 이미지 안에 함축된 이 초월적 모델을 판단해야 하는 것이다. 재인은 `모든 사람들`에게 인식능력들의 협동이라는 어떤 주관적 원리를 요구하고, 다시 말해서 인식능력들의 조화로운 일치에 해당하는 어떤 공통감을 요구한다. 양식과 공통감, 이 둘은 독사의 두 반쪽을 구성한다. 본성상 사유한다는 것은 사유하는 이미지가 있고 공통감의 순수 요소 그리고 재현의 형식이 있다. 재현은 특정한 요소들에 의해 정의된다. 개념 안의 동일성, 개념의 규정 안에 있는 대립, 판단 안의 유비, 대상 안의 유사성 등이 그 요소들에 해당한다. 차이가 재현의 대상이 되는 것은 그 요소들과 관계 맺을 때이다. 재현의 세계는 차이 그 자체를 사유하는 데는 물론이고 또한 반복을 그 대자적 측면에서 있는 그대로 사유하는데 무능력하다는 특징을 지닌다. 그러므로 재인의 공준의 그보다 훨씬 더 일반적인 어떤 재현의 공준을 향한 첫걸음이었다.
3절
사유는 비자발적인 한에서만 사유일 수 있고, 사유 안에서 강제적으로 야기되는 한에서만 사유일 수 있다. 어떤 지혜를 증오하는 것으로 사유는 출발한다. 대상을 마주침으로 갖는 사유는 감각 속에 감성을 분만하고 영혼을 뒤흔들어 어떤 문제를 설정하도록 강요한다. 감성은 마주침을 통해 감각되고 상기만이 회상하도록 만든다. 플라톤에게 순수사유는 인식능력들에 대한 우월한 사용이나 초월론적 실행을 발견하면서도 이런 사용이나 실행을 감성적인 것 안의 대립 형식, 상기 안의 상사성 형식, 선 안의 유비 형식에 종속시킨다. 이를 통해 그는 재현의 세계를 준비하고 있고, 이 세계의 요소들에 대한 어떤 최초의 분배를 실천하고 있으며, 사유의 실행을 전제하는 동시에 배반하는 어떤 독단적 이미지를 통해 이미 실행 자체를 보이지 않게 만들고 있다. 사유는 오로지 `사유를 야기하는` 것, 사유되어야 할 것에 직면하여 겪게 되는 강제와 강요의 상태에서만 사유할 따름이다. 또 여기서 사유되어야 할 것이란 또한 사유 불가능자 혹은 비- 사유이고, 다시 말해서 `우리는 아직 사유하지 않는다.`라는 영속적인 사실이다. 감성에서 상상력으로, 상상력에서 기억으로, 기억에서 다시 사유로 어떤 이행이 일어날 때 어떤 자유로운 형태의 차이가 매번 인식능력을 일깨우고, 게다가 이 차이의 차이소로서 일깨운다. 사유한다는 것은 창조한다는 것이고 창조한다는 것은 무엇보다 사유 속에 `사유하기` 를 낳는 것이다.
4절
오류는 보편적인 본성의 사유라는 가설 안에서 자연스럽게 개진되는 `부정적인 것`이다. 오류는 사실상의 외적 인과성들에서 비롯되는 효과들을 권리상 모두 수용한다고 간주된다. 오류는 초월론적 차원으로 임의로 확대 적용되고 임의로 투사된 어떤 사실이다. 오류 개념은 비겁함, 잔혹함, 비천함, 어리석음 등는 단순히 어떤 육체적 역량들이나 개인적, 사회적 성격상의 사실들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본연의 사유 자체 속에 자리하고 있는 어떤 구조들이다. 어리석음은 결코 타인의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고유하게 초월론적인 어떤 물음의 대상임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5절
의미는 참의 조건으로 정의된다. 참을 근거 짓는 하나의 명제는 이념적인 사태의 언표와 지칭되는 대상의 차원이 있다. 의미가 하나의 이름을 표현하는 것은 이념적 내용이나 내재적 소여를 간직한 분신을 끌어내는 이분화에 있다. 질문을 통해 의미를 표현하면 질문이란 것이 언제나 어떤 주어질 법한 대답들, 있을 법하거나 가능할 법한 대답들을 기초로 전사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질문이란 것은 상이한 것으로 포착된 해의 경우들에 따라 하나의 문제가 경험 안에서, 그리고 의식에 대해 분해, 환전, 왜곡되는 방식을 표현한다. 의미는 문제 자체 안에 있다. 참과 거짓은 해들과 관련되기는 고사하고 무엇보다 먼저 문제들에 영향을 미친다. 하나의 해가 진리를 지닌다면, 그것은 언제나 자신이 답하는 그 문제에 따라 마땅하게 주어지는 진리이다. `참으로 위대한 문제들은 단지 해결되는 순간에만 정립된다.` 본연의 문제가 지니고 있는 것은 내적인 성격이자 내면적인 명법적 요소이다. 문제들의 한복판에서 진리가 발생하고 사유 안에서 참된 것이 생산되고 있다는 점이다. 보편적인 것은 단지 이념밖에 없고 문제밖에 없다. 문제가 해를 통해 일반성을 띠게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문제를 통해 해가 일반성을 띠게 되는 것이다. 문제들은 무엇보다 먼저 어떤 플라톤적인 이데아들이고 변증법적인 기초개념들 사이의 어떤 이념적 연관들이며, 이런 이데아나 연관들은 `실존하는 것의 돌발 가능한 상황들` 과 관련되어 있다.
6절
앎은 어떤 경험적 형태에 불과하고 경험 속으로 거듭 떨어져 나오는 어떤 단순한 결과에 지나지 않지만, 배움은 어떤 초월론적 구조이다. 이 구조를 통해 차이와 차이, 비유사성과 비유사성이 서로 매개됨 없이 하나로 묶이고 시간은 사유 안으로 도입된다.
공준들의 요약
1. 원리의 공준 혹은 보편적 본성의 사유
2. 이상의 공준 혹은 공통감
3. 모델의 공준 혹은 재인
4. 요소의 공준 혹은 재현
5. 부정적인 것의 공준 혹은 오류의 공준
6. 논리적 기능의 공준 혹은 명제의 공준
7. 양상의 공준 혹은 해들의 공준
8. 목적이나 결과의 공준, 앎의 공준
한번은 자연적 공준이고 다른 한번은 철학적인 공준이다.
4 차이의 이념적 종합
1절
이념들은 참된 문제들을 구성하거나 정당한 근거를 지닌 문제들을 제기한다. 이념의 세가지 계기는 이념적 대상 안의 미규정성, 경험 대상들과 관련하여 성립하는 규정 가능성, 지성과 개념들과 관련하여 성립하는 무한한 규정성.
2절
미분의 철학 일반의 원리는 상징 dx가 나타나는 세 가지 원리가 상응한다. 즉 그 자체로 규정되지 않은 것에는 규정 가능성의 원리가, 실재적으로 규정 가능한 것에는 상호적 규정의 원리가, 현실적으로 규정되어 있는 것에는 완결된 규정의 원리가 상응한다.
3절
미분적인 것은 문제제기적인 것 그 자체의 본성을 표현한다. 해결 가능성은 문제들의 조건들을 규정하고 그 과정을 통해 해를 찾는 것이다.
4절
구조, 이념은 `복합성의 테마`, 어떤 내적인 다양체이다, 다시 말해서 그것은 미분적 요소들 사이에서 성립하는 다양하되 정위 불가능한 연관 체계이고, 이 체계는 실재적인 결합관계들과 현실적인 항들 안에서 구현된다.
5절
이념은 어떤 무한한 `배움`의 요소이다. 이념과 배움은 의식의 재현이 아니라 무의식의 현시인 것이다. 무의식을 정의하는 것은 역설감 안의 이념들이 지닌 명제 외적이고 비현실적인 특성일 수 있다. 이념들은, 초월적 실행에 놓인 능력으로서의 사유를 특징짓는 바로 그 보편적 근거와해와 관계한다. 문제와 물음의 차이를 규정해야 할 때 우리가 모색하는 것은 물음들이 이념 안의 문제들로 개봉되는 절차이고, 이 문제들이 사유 안의 물음들로 봉인하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6절
반복은 이념들이 놓이는 `막-주름운동`의 원천에 있다. 반복의 비범한 역량을 정의하는 것은 독특성들 상호 간의 재취합과 응축이다. 독특성들은 같은 문제나 같은 이념 안에서는 물론, 한 문제에서 다른문제로 이어지면서, 또는 한 이념에서 다른 이념으로 이어지면서 서로를 재취합하고 응축한다.
7절
잠재적인 것은 실재적 대상을 구성하는 어떤 엄정한 부분으로 정의되어 있다. 잠재적인 것은 완결적으로 규정되어 있다. 잠재적인 것이 현실화되는 것은 미분화와 분화라는 원초적 절차를 형성한다. 잠재적인 것은 언제나 차이, 발산 또는 분화를 통해 현실화된다.
8절
현실적 질과 연장들, 현질적 종과 부분들보다 훨씬 더 깊은 곳에는 시공간적 역동성들이 존재한다. 바로 이 역동성들이 현실화의 작인, 분화의 작인들이다.
4장의 요약은 472~473쪽에 있다.
5 감성적인 것의 비대칭적 종합
1절
세계의 조건을 형성하는 것은 바로 결과 속의 불공정, 환원 불가능한 비동등이다. 감성적인 것의 이유, 나타나는 것의 조건은 공간과 시간이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즉자적 비동등 그 자체이다.
2절
차이는 연장 안에서 질 아래에서 스스로 부정되고 소멸하는 경향이 있다. 이성은 동일성으로 기우는 경향, 동일화와 동등화의 절차 등으로 정의되었다. 반면 부조리와 불합리는 이 동일화하는 이성에 맞서는 잡다의 저항으로 정의되었다. 과학과 철학에서 양식은 차이를 인정한다. 미친 차이와 소멸된 사이, 분할 가능자 안의 비동등성과 동등해진 분할 가능자 사이, 비동등한 것의 분배와 분배된 동등성 사이에서 양식은 어쩔 수 없이 어떤 보편적 배당의 규칙으로, 따라서 보편적으로 배당된 것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처지이다. 양식과 공통감의 관계를 한정지으면 공통감은 주관적으로는 모든 인식능력들의 통일성이자 근거에 해당하는 어떤 자아에 대해 가정된 자기동일성으로 정의되었고, 객관적으로는 모든 인식능력들이 관계한다고 간주되는 이러저러한 대상의 자기동일성으로 정의되었다.그럼에도 차이는 소여 자체가 아니다. 차이는 잡다를 창조하는 것으로 사유되어야 한다. 사유가 사유해야 하는 것은 차이, 사유와 절대적으로 차이나는 이 차이다. 철학은 양식을 통해서가 아니라 역설을 통해 드러난다.역설을 통해 객관적으로 부각되는 것은 공통성을 띤 어떤 전체 속으로 총체화되지 않는 요소이고, 또 어떤 양식의 방향 안에서 동등화되거나 소멸되지 않는 차이다.
3절
강도로서의 차이는 연장 안에서 밖-주름운동을 펼치면서 소멸되지만, 그때에도 여전히 자기 자신 안으로 안-주름운동을 일으키고 있다. 주름을 펼치는 것은 깊이다. 그리고 연장은 깊이에서 나온다.즉 깊이는 본질적으로 연장의 지각 안에 함축되어 있는 것처럼 나타난다. 존재 안에서 깊이와 강도는 같은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차이를 통해 언명되는 같음이다. 깊이는 존재의 강도이고, 거꾸로 강도는 깊이의 존재다.
4절
강도는 즉자적 비동등을 포괄하고 이미 즉자적 차이 자체인 강도는 차이를 긍정한다. 깊이만이 질적 대립들을 해소할 수 있다. 우리가 강도 안에서 차이라 부르는 것은 실재적으로 함축하고 봉인하는 것에 해당하고, 거리라 부르는 것은 실재적으로 함축되거나 봉인되는 것에 해당한다. 영원회귀는 동일성도, 유사성도, 동등성도 갖지 않는 것에 대해 언명된다. 영원회귀는 차이나는 것에 대해 언명되는 동일한 것, 순수하고 불균등한 것에 대해 언명되는 유사성, 오로지 비동등한 것에 대해 언명되는 동등한 것, 모든 거리들에 대해 언명되는 가까움이다. 영원회귀는 차이에 대해, 차이를 통해 언명된다. 되돌아 오지 않는 것, 그것은 바로 질이고 연장이다.
5절
강도량과 미분량 그리고 분화의 범주에서 현실화하는 조건은 질의 분화와 연장의 특이점에 의한 분화이다. 개체화는 강도의 활동이다. 이 활동을 통해 미분비들은 현실화되도록 규정되고, 게다가 강도에 의해 창조된 질과 연장 안에서 어떤 분화의 선들을 따라 현실화되도록 규정된다. 우리가 개체화 요인들이라 부르는 것은 봉인하고 봉인되는 이 강도들 전체, 개체화의 장들을 가로질러 서로가 서로의 안으로 침투해 들어간다. 개체성은 통일된 자아의 특징이 아니라 오히려 거꾸로 분열된 자아의 체계를 형성하고 또 양육한다.
6절
체계는 현실화하는 이념의 질서를 통해 개체화된다. 체계는 차이의 점진적 감소에 부합해서 자신의 고유한 현상을 발견하고 내면화한다. 심리적 체계로서 나는 고유하게 심리적인 종별화를 형성하고, 자아는 고유하게 심리적인 유기적 조직화를 형성한다. 안-주름운동의 가치들을 봉인하는 중심에는 나-자아의 체계에 속하는 다른 구조가 구성되는데 이 구조를 타인이라는 이름으로 지칭되어야한다. 타인은 그 어떤 사람이 아니라 -- 두 체계 안에서 성립하는 -- 타자에 대한 자아이자 자아에 대한 타자이다. 이런 타인은 어떤 섬험적 타인이고, 이런 섬험적 타인은 각 체계 안에서 자신의 표현적 가치, 다시 말해서 함축적이고 봉인하는 가치를 통해 정의된다.
결론 차이와 반복
1절
차이는 긍정의 차이고 반복은 헐벗은 반복이다.
2절
본질적으로 애매한 근거짓는다는 것은 재현을 근거지을 때에 규정되지 않는 것을 규정한다는 것이다.
3절
이념은 미분적 요소들, 이 요소들 간의 미분적 관계들, 그리고 이 관계들에 상응하는 독특성들로 구성된 어떤 다양체이다.
4절
표면적 반복 (물리적 반복), 심층적 반복, 존재론적 반복.
5절
존재는 영원회귀 안의 반복에 해당하는 일의성을 실현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