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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크 라캉 세미나 11 - 정신분석의 네 가지 근본 개념 ㅣ 자크 라캉 세미나 11
자크 라캉 지음, 맹정현.이수련 옮김 / 새물결 / 2008년 12월
평점 :
◇자크 라캉 세미나 11
책을 읽으며 처음부터 떠오르는 생각. 얼만큼 이해해야 하나? 이해할 수 있나? 보통은 흥미를 잃어 책을 덮지 않으면 완독을 하려고 한다. 그러나 중간에 포기하는 때가 있다. 너무 어렵거나 아님 그럭저럭 읽어 가는 과정에서 앞의 내용을 정리하는 글을 접할 때에 많은 부분이 이해되지 않거나 기억나지 않으면 읽기를 포기한다. 읽기에 집중하고 참고할 글을 찾고 정리된 글로 이해를 더하면서 책을 읽다보면 진도가 너무 늦다. 그래서 역량껏 이해하거나 더 읽기를 포기하고 덮는 한계에 대한 균형이 필요하다. 또 정신 분석에 대한 용어를 파악하지 않으면 이해의 실마리를 놓치기 쉬운 책이다. 많은 부분이 스스로 정리가 안됐다고 판단하지만 우격다짐으로 마무리했다. 아쉬워서 다음에 라캉의 다른 책을 읽어야지! 하지만 선뜻 펼칠것 같지 않다. 재미는 그럭저럭.
함축된 대상 a 의 의미를 처음 시작 할 때와 달리 지금은 이해하는데 조금 나아진 것으로 위안을 삼는다.
무의식과 반복
2. 프로이트의 무의식과 우리의 무의식
프로이트는 어떤 헛디딤이란 양상아래 발생한다는 점이고, 저자는 결여의 개념으로서 결정되지 않는 것으로서의 주체인 것이다.
3. 확실성의 주체에 관하여
무의식은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닌, 실현되지 않은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프로이트는 인간의 제한된 가능성 속에 쾌락을 넘어서 한계에 맞닥뜨린 욕망을 유지되지만 그 열망은 환영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무의식은 짧은 순간에 드러내다 사라집니다.그에게 활력을 불어 넣는 진리를 갈망하는 열정은 무의식의 위상이 무엇을 확신할 수 있느냐는 의심의 점에서 데카르트적입니다. 그 의심이 바로 프로이트에게 확실성의 근거입니다. 의심은 무언가 지켜야할 것이 있음을 뜻하고 또한 드러나야 할 무엇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의심으로부터 확실성을 부여하는진리의 토대를 보증할 수 있는 것을 타자입니다.그렇지만 타자에 의한 평가가 확실한 것인가 아닌가의 척도에서 자유로울 수있는 것은 약간의 암시만으로도 주체와 관련된 흔적과 동등한 가치를 부여해야 합니다. 주체의 문제와 관련해 욕망을 해결하는 방법은 `인간의 욕망은 타자의 욕망이다` 입니다.
4.시니피앙의 그물망에 관하여
무의식의 기능은 단절 기능을 말하고 주체와 관계를 맺고 있다.사유에서 비롯된 언표 행위를 통해서 시니피앙을 제공하고 이것을 근거로 확실성을 정립한다.시니피앙의 그물망이 충만하고 완벽한 장소 다시말해 주체를 가르킨다.주체가 무의식 속에 형성되는 꿈은 망각되는 지각의 흔적들이 시니피앙의 공시태에서 형성되고 통시태를 통해 도입되는 은유를 구성하는 데서 기능을 하는 대비와 유사의 기능들을 발견한다. 프로이트의 개념을 이해하려면 주체라는 토대에서 출발하는데 이 주체의 토대인 기억하기는 일상의 구어적인 언어들의 시니피앙적 구조에서 유래한다.
반복은 재생이 아닌 주체가 자신의 집으로 되돌아가는 것, 자신의 전력을 회상해내는것, 이 모든 것은 실재라 불리는 어떤 일정한 한계에 도달하기 직전까지만 진행된다.
5. 투케와 오토마톤
실재를 우리는 어디서 만나게 될까요? 정신분석이 발견한 것 속에서 문제의 핵심은 실제로 만남, 어떤 본질적인 만남입니다.투케-실재와의 만남- 가 항상 오토마톤 뒤편에 자리 잡고 있는 것으로, 그것이 프로이트의 연구 전반에 걸쳐 주된 관심사를 이룬다. 투케는 항상 어긋남의 만남으로서의 실재의 기능은 트라우마의 형태입니다.1차 과정을 의식속에서 포착되는 표면적인 표상이라고 한다면 불쑥불쑥 출연하는 표상된 현실이 무엇때문인지 깨어남을 구성하는 현상, 거리, 간극 그 자체를 포착한다면 우리는 문제의 핵심을 잘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꿈은 본질적으로 어긋난 현실, 즉 아무리 긴 시간이 흘러도 결코 도달할 수 없는 깨어남 속에서 무한히 반복됨으로써만 이뤄질 수 있는 현실에 바치는 오마주라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잠에서 깨어났다는 것은 실제로 일어난 일, 즉 막아야만 했던 현실 속의 유감스러운 사고에 대한 표상 속에서 주체의 의식이 깨어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우리가 실재를 찾아야 하는 것은 바로 꿈의 저편, 즉 하나의 대리자만을 갖는 표상의 결여 뒤에서 꿈이 우리에게 감싸 숨기고 있는 어떤 것 속에서 입니다.
반복은 욕구의 반복이 아니고 주체가 남아있는 결여된 대상을 가지고 새롭게 사유하는 것입니다.
대상 a로서의 응시에 관하여
6. 눈과 응시의 분열
주체가 전의식적으로 은폐되는 부분이 깨어남으로 현실을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깨어나도 여전히 분열은 계속된다. 주체의 여정에서 현상학적으로 우리는 누군가가 보고 있다는 점에 의존한다. 존재적으로 나르시시즘은 우리가 세계의 광경 속에서 응시되고 있는 존재들이다. 우리를 의식하고 있는 존재로 만드는 것은 동시에 우리를 세계의 거울로 위치시킨다. 그러한 응시에 의해 우리는 응시되는 것에서 만족을 느끼는 게 아닐까요?
7. 왜상
나를 바라보고 무화시키는 응시는 그것이 나의 관점들과 역선을 변화시키고, 내가 자리 잡고 있는 무의 지점으로분터 유기체들의 방사형 그물망을 통해 나의 세계를 질서 짓는다. 응시는 가시화된다. 불시에 수치심에 빠뜨리는 응시는 왜상으로 의미를 감춘다.아님 응시가 왜상일까?
8. 선과 빛
외양너머에는 사물 자체가 아니라 응시가 있습니다. 내 앞에 펼쳐지는 빛의 공간 속에서 응시는 언제나 일종의 빛과 불투명성의 유희입니다. 일반적으로 응시와 우리가 보고 싶어하는 것의 관계는 미혹의 관계입니다. 주체는 자신이 아닌 다른 것으로 나타나며 그에게 보라고 주어지는 것은 그가 보고 싶어하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이를 통해 눈은 대상 a 로, 다시 말해 결여의 수준에서 기능할 수 있는 것이지요.
9. 그림이란 무엇인가
욕망의 결여가 의태라는 현상으로 사물로부터 응시된 것을 제스처한 행위일까?
전이와 충동
10. 분석가의 현존
무의식에서 전이라는 개념을 원인에서부터 분석하는 것은 전이가 분석 상황 바깥의 어떤 가능성을 제시하기에 그 안에서의 분석가의 현존은 무의식이라는 개념과 통합될 수 밖에 없다.
11.분석의 진리 혹은 무의식의 닫힘
주체는 본질적으로 오류를 범하는 속성이 있다.주체가 시니피앙에 의해 규정되는 것은 하나의 표지로서 정의된다. 현실과의 관계에 있어 곤궁에 빠진 주체가 전이로서 무의식의 현실을 현행화한다.
12. 시니피앙들의 행렬 속에서의 성욕.
종족보존을 보장하기 위해서 사회는 그 구조에서 성적현실의 통합이 필요하다. 조합을 위한 시니피앙이 도입된 이유이기도 하다. 무의식을 사유와 성적 현실 사이의 시원적 접합의 잔류 효과로 간주해야 하는 물음은 그 결절점이 욕망이라는 욕망의 요구에 의존하고 있다는 것이다.성적으로 욕망하는 주체의 현존이 주체에게 시니피앙을 낳게 한다.
13. 충동의 분해
경험의 근원적 소여를 일컫는 충동 개념은 추동력, 원천, 대상, 목표라는 네가지 항목으로 구분한다. 추동력은 자극이라는 사태에 의해 발생하는데 실재로 충동은 자아를 유지시키는 프로그램되고 객체화된 주체라는 성격을 가지고 있다. 본질적으로 충동자극에 의한 포텐셜 에너지의 영역으로 진입하는 추동력은 항구성을 지니고 있다. 충동의 만족이란 목표에 도달하는 것이다. 목표는 금제 되어 있기에 도달하기보단 승화된다고 할 수있다. 만족하는 `스스로` 라는 것이다.쾌락원칙의 기능이 환각을 통해 만족을 얻는 것이라는 개념은 충동에 있어 대상은 전혀 중요하지 않고 무관하다는 것이다. 원천적으로 충동은 욕구의 가두리 구조로서 확인된다.
14. 부분 충동과 그 회로
성욕의 생물학적 목적상 충동은 부분 충동이라는 것이다.항상성을 유지하는 체계의 현실 때문에 부분 충동의 형태로 기능한다. 충동은 구조의 측면에서 양쪽 끝은 시니피앙들의 기능과 욕망이라는 해석으로 정의된다. 충동을 구조화시키는 왕복 운동은 주체가 타자의 수준에서 나타날 때 순환적인 회귀가 이루어진다.타자의 등장 덕분에 충동의 구조가 나타난다면, 즉 한쪽 끝에서 다른 쪽 극으로의 전회가 일어나는 순간 타자가 개입하고 주체가 스스로를 충동의 끝, 종착점으로 간주되는 순간이다.이 순간에 고통이 개입하기 시작하는데, 이는 주체가 타자를 통해 느끼게 되는 고통이다.
15. 사랑에서 리비도로
무의식의 주체에게서 우리는 부분 충동을 포착한다. 생식기적 충동에서 생식기를 제외한 주체에게 사랑에 대해 말한다면 사랑은 구조적인 면에서 본질적으로 성적 열정에 지나지 않으며 실재적 나가 구성되고 불쾌의 장, 잔여물과 이물체로서의 대상의 장이 구성된다. 또한 주체는 사랑으로서 수동적이고 자신의 충동을 경유해서만 능동성을 갖는다.
유성 생식의 주기로 인해 상실된 대상 a 는 삶에 대한 리비도적 본능이다.
타자의 장, 그리고 전이로의 회귀
16. 주체와 타자 --- 소외
주체와 타자의 장 사이의 분할을 말하면 모든 충동은 어떤 충동도 성충동의 전체성을 표상할 수 없다.성욕은 결여라는 통로를 통해 주체의 장에 자리 잡는다. 그 결여는 타자와의 관계를 통해 자신의 고유한 존재에 도달하게 만드는 변증법이 작용하는데에 결함이 있고 다른 결여는 생명체가 재생산되면서 게체로서의 죽음과 관련되어 있다는 것이다.
모든 것이 시니피앙의 구조로부터 출연한다. 주체와 타자와의 관계는 전적으로 간극의 과정 속에서 발생한다. 여기서 과정은 주체와 타자 사이에서 순환적으로 분절 되어야 한다.타자의 장에서 생겨나는 시니피앙은 과정 중에 있는 주체를 하나의 시니피앙으로 환원시킴으로써 이다. 주체가 굳어지는 닫힘이 설정된다.
주체가 타자의 장에서 탄생한다는 측면에서 주체를 이해해본다면, 무의식의 주체의 특성은 그 주체가 그물망, 연쇄, 이야기 등을 전개하는 시니피앙 아래에 있으면서 어떤 비결정된 자리에 놓인다는 것이다. 소외는 오로지 주체가 타자의 장에서 출현하지 않기에 주체로 하여금 어떤 분열 속에서만 나타나도록 운명짓는 벨(선택) 속에 있다.소외를 야기하는 이 `벨` 은 언어 속에 존재한다.
17. 주체와 타자 ---- 아파니시스
이항적 시니피앙이 주체의 아파니시스 효과를 가져 주체가 분열되어 원환되는 것에 분리라는 이름을 붙인다. 주체가 자유로워지려면, 그 이항적 시니피앙의 아파니시스 효과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한다.
18. 알고 있다고 가정된 주체, 최초의 이항체, 선에 대하여
전이는 주체와 정신분석가 모두가 포함되어 있는 현상이다.알고 있다고 가정된 주체가 어딘가에 존재하는 순간부터 전이가 존재한다. 주체의 욕망이 타자의 욕망의 수준에서 작용하는 끊임없는 연쇄가 드러남은 그 주체의 자리에 분석가의 욕망도 해당되는 것이다. 시니피앙들을 잇는 틈새 속에 위치한 결여로서 출연한 것, 다시 말해 타자의 욕망으로 이루어진 주체는 시니피앙의 분절에서 그 기능을 파악하게 된다.상실의 대상 a 는 자아에게 쾌와 불쾌라는 주체의 분열 혹은 소외라 부른 것의 작용을 확실하게 구성할 수 있게 한다.
19. 해석에서 전이로
실재 내에서 자아는 쾌락의 효과에 의해 항상성으로 회귀하는 것으로서 자신의 장에 반영된 부분만을 특권화한다.
어떤 시니피앙이 어떤 다른 시니피앙을 대체함으로써 은유 효과가 창출된다. 주체의 삶이 각 단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면서, 그때마다 이 본원적 시니피앙에 의해 구성된 결정적인 지표값을 다시 수정하게 된다는 시실이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바로 주체의 욕망이 타자의 욕망에 의해 구성된다고 하는 변증법적 원리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동일시의 주요 계기들인 이상화, 자아이상이 시작되는 것은 바로 타자의 장을 통해서이다. 자아이상의 영향력의 본질적 원동력은 바로 이러한 교차, 즉 단항적 시니피앙을 쾌락의 장 속에서, 다시 말해 나르시시즘적인 일차적 동일시의 장 속에서 가능하도록 만드는 교차 속에 있다. 분리 과정에 의해 도입되는 대상 a 는 충동 속에서 인간의 삶에 성의 의미를 등장시키는 것이 바로 시니피앙의 작용이라는 사실을 통해 규정되고 명시되는 부분을 지탱한다.
결론지어야 할 나머지
20. 네 안의, 너 이상의 것을
주체는 타자로 하여금 자신이 사랑스러운 존재임을 자신에게 확신시키게끔 거울상적인 동일시로 이끈다. 주체가 자신을 사랑받을 만한 존재로 바라보는 지점과 주체가 자신을 a에 의해 초래된 결여로서 바라보는 지점, 그러면 주체의 시원적 분열로써 구성된 간극을 a가 틀어막고 있는 지점 사이의 거리를 유지시켜야 한다.이것이 분석 작업의 원동력이고 이렇게 동일시라는 국면을 뛰어 넘는 것이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