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성 1 동서문화사 세계사상전집 94
시몬 드 보부아르 지음, 이희영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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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2의 성 1

두 권으로 나눠진 책 중에서 첫 번째 책을 읽고 느낀 간단한 소감은, 비본질적인 타자로서의 여자가 겪는 삶에 남자가 비겁하지 말라는 것이다.
힘의 우위와 권력에의 의지를 다지기 위해 여자에게 자유로움을 빼앗지 말라는 것이다.
스스로 주체가 되기 위해 여자가 노력을 하는데 너무 많은 힘을 쏟게 하지 말라는 것이다.
보통의 남자들은 매우 정의롭고 윤리적이지만 위기에 처할 때, 위험에 빠질 때, 생존이 절박할 때, 아주 충분히 비겁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거기에 여자의 희생이 따른다면, 여자는 주체가 되기 위한 어려운 싸움이 뒤따르게 된다.

제 1 부
사실과 신화

프롤로그
주체와 타자는 상호적이고 타자는 주체로 변화한다. 그런데 타자가 주체로 변화하기 위해 주체는 다른 자유를 향한 부단한 자기초월에 의해서만 자기의 자유를 완성한다. 여자는 개인의 가능성을 문제삼으면서 그것을 행복이라는 관점이 아니라 자유의 관점에서 정의를 내리려고 한다.

제1편 운명

제1장 생물학적 조건
생물학적으로 여자의 일이란, 이미 완전하게 형태를 갖춘 능동적인 생명요소를 살찌게 하는 데 한정된다 라고 19세기까지 논쟁되어 왔다.
생리학적 약함이 아닌 ‘약함‘은 인간이 스스로 정한 목표나 사용하는 기구, 그리고 스스로에게 부과하는 법칙에 비추어서만 비로소 약함으로써 나타난다. ‘약함‘의 관념을 구체적으로 규정하려면 실존적ᆞ경제적ᆞ도덕적 가치 기준이 필요하다.
한 사회 안에서 육체는 행위를 통해서 의식에 받아들여질 때 비로소 현실성을 갖는다. 생물학은 ˝왜 여자가 타자인가?˝ 하는 우리의 답변에 질문을 줄 수 없다. 역사의 흐름 속에서 여자의 자연적인 본질이 어떻게 파악되어 왔는가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 또 인류가 여자를 어떤 존재로 만들었는가를 알아야 한다.

제2장 정신분석적 견해
남성을 기준으로 한 사회에서 여성이라는 의식을 가지고, 좌절과 소외됨을 거부하고 자기 초월을 실현하는 것이다.
새로운 도구가 발명됨에 따라 남자의 생산 노동이 강조되면서 남자의 지배가 보장되었다.
여자의 육체적 연약함과 도구와의 관계에서 나타난 구체적인 열등함으로 드러난 여성 노동력의 한계, 성적인 압박 및 경제적 실체 만을 보는 유물사관의 경계를 지우면 안된다.

제3장 유물사관의 입장
우리는 여자를 연구해 가는 과정에서 생물학ᆞ정신분석학ᆞ유물사관의 여러 공로들을 거부하지 않는다. 그러나 육체ᆞ성생활ᆞ기술 등은 인간 존재의 총체적 전망 속에서 파악될 때에만 인간에게 구체적 의미를 지닌다고 생각한다. 완력ᆞ음경ᆞ도구의 가치는 하나의 가치 체계에서만 정의될 수 있다. 즉 가치는 실존하는 인간이 존재를 향해 자기를 초월하는, 기본적 투기 현상에 의해 결정된다.

제2편 역사

제1장 유목민들
남자는 실존자로서 자기를 실현하고 유지하기 위하여 창조한다.
이처럼 실존주의적 견해는 원시 유목민의 생물학적ᆞ경제적 상황이 어떻게 남성들의 우위를 가져왔는가를 밝혀 주었다. 여자 앞에서 남자가 지배자로 군림한 것은 인간이 자기 존재에 의문을 품고, 생명 그 자체보다 삶의 이유를 선택하기 때문이다. 인간의 계획은 시간 속에서 자기를 반복하는 데 있지 않고, 그 순간을 지배하고 미래를 형성해 나아가는 데 있다.

제2장 토지의 경작인들
남자는 조금씩 경험을 수단으로 삼게 되고, 남성적 원리가 그의 실제 생활과 상징에서 승리하게 되었다. ‘정신‘이 ‘생명‘을 이기고, 초월이 내재성을, 기술이 마술을, 이성이 미신을 이긴 것이다. 남자는 자연으로부터 해방될 때 여자의 세력으로부터 벗어난다.

제3편 신화

제1장 꿈과 불안 그리고 우상
인간은 존재를 포기하고 자기실존을 짊어지고 살아갈 때, 비로소 진정한 도덕적 태도에 도달한다는 뜻이다. 남자는 혼자서는 자기를 이룰 수가 없고, 또 같은 인간과의 관계에서도 끊임없는 위험에 직면한다. 그의 일생이란 결코 성공이 보장되지 않은 어려운 계획이다.
그는 모순되게도 생명과 휴식, 실존과 존재를 동시에 갈망한다. 남자의 이 꿈이 구현된 것이 바로 여자이다. 여자를 통해서 남자는, 자유의 상호성 속에 그 근원이 있는 주인과 노예의 가차 없는 변증법에서 빠져 나올 한 가지 수단을 부여받는다.
여자는 ‘타자‘처럼 보이지만 동시에 남자가 본질적으로 느끼는 실존의 허무와는 다르게 하나의 충실한 존재로 보이는 것이다. ‘타자‘는 주체의 눈에 객체처럼 보임으로써 존재로 인정받는다. 실존자가 자기 마음 속에 품는 욕구불만이 여자라는 존재의 부재로 구체화되므로, 남자는 여자를 통하여 자기합일을 이루려고 노력함으로써 자기를 실현하려고 한다.
남자는 자기의 개별적 실존을 확립하고 자기의 ‘본질적인 차이‘에 자랑스럽게 안주하고 싶어한다. 또한 남자는 자아의 장벽을 깨뜨리고 물과 대지와 밤과 ‘허무‘와 ‘전체‘에 융합하고 싶어한다. 여자는 남자를 유한성에 가두지만, 남자가 그 본래의 한계를 초월하게도 한다. 여자의 모호한 마력도 실은 여기에서 나오는 것이다.
어떤 사회든지 오늘날까지 여자는 아직 남자에게 공포심을 불어넣고 있다. 이는 남자가 여자에게 투사하는 그의 육체적 우연성(또는 비본질성)에 대한 공포이다.
여자는 남자가 육체적으로 소유할 수 있는 타인의 모습을 빌린, 자신의 신격화된 모습 그 자체이기 때문에, 남자에게 있어서는 더할 나위 없는 보상이다. 남자가 스스로 ‘세계‘의 중심이 되어, 자기의 가치와 법칙을 강요하는 존재를 품에 껴안았을 때, 그가 포옹하고 있는 것은 ‘유례 없는 괴물‘, 즉 자기 자신이다. 그리하여 남자는 자기의 것으로 만든 이 타자와 합일함으로써 자신에게 도달하기를 소망한다.

제2장 다섯 사람 작가로 보는 여성신화
그들 각자에게 이상적인 여자는 자기에게서 바로 그 자신을 뚜렷이 드러내 줄 수 있는, ‘타자‘를 정확히 구현하는 여성이다.

제3장 신화와 진실
신화를 의미의 파악과 혼동해서는 안 된다. 의미는 대상에 내재적이다. 그 의미는 생생한 체험 속에서 의식에 반영되는 것이다. 그런데 신화란 의식이 아무리 도달하려 해도 끝까지 달아나는 초월적 이념이다.
신화의 대다수는 남자가 자기의 실존과 사회에 대하여 취하는 자발적인 태도 속에 뿌리를 박고 있다. 그러나 생활 체험을 ‘초월적 이념‘으로 높인 것은 가부장제 사회가 자기정당화의 목적으로 행한 것이다.
신화는 상식적이며 사려를 가장한 정신이 분별없이 뛰어들어 빠져 버리는 허위적 객관성의 함정이다.
여자에게서 한 인간적 존재를 인정한다 해서 남자의 생활경험을 빈약하게 만들진 않는다. 그것이 주체와 주체의 서로 주고 받는 관계에서 이루어진다면 그 다양성, 풍요성, 강인성도 무엇 하나 잃는 것이 없다. 신화를 거부하는 것은 남녀간의 모든 극적관계를 깨뜨려 버리는 것도 아니고, 여자라는 현실을 통하여 남자가 올바르게 발견하는 의의를 부정하는 것도 결코 아니다. 그것은 시와 사랑과 모험과 행복과 꿈을 잃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단지, 행동ᆞ감정ᆞ열정이 진리 속에 존재하기를 요구하는 것뿐이다.

제2부
현대 여성의 삶

프롤로그
남성의 위신은 아직 빛을 잃지 않았다. 그것은 여전히 경제적ᆞ사회적으로 공고한 기초 위에 서 있다. 따라서 여자의 전통적인 운명을 주의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여자는 어떤 식으로 그 신분을 합습하는가? 그것을 스스로 어떻게 체험하는가? 어떤 세계에 갇혀 있는가? 여자에게 어떤 탈출방법이 허용되는가?

제1편 형성

제1장 유년기
여자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
여자의 경우에는 처음부터 ‘자기‘의 자주적 존재와 ‘타자‘라는 존재 사이에 충돌이 있다. 그녀는 남의 마음에 들기 위해서 노력해야 하고 자신을 객체로 만들어야 한다는 가르침을 받는다. 그 결과 자율성이 부정된다.
자기를 하나의 주체로, 자율성ᆞ절대성ᆞ초월성을 갖춘 존재로 느끼는 개인에게, 자기 안에서 열등성을 선천적 본질로서 발견하게 되는 것은 기묘한 경험이다. ‘일자‘로서 스스로 자기 자신을 설정하는 사람이, 자기 자신을 또한 스스로 타자로서 바라보는 것도 특이한 경험이다. 인생수업을 쌓아 가는 과정에서 자기 자신을 여자로서 자각했을 때, 소녀 내부에서 일어나는 현상이 바로 이런 것이다. 그녀가 속해 있는 환경은 남자의 세계에 의해 사방이 막혀 있고 제한되며, 지배되고 있다. 여자가 제아무리 높이 뛰어오르고 멀리 밀고 나아가더라도, 언제나 그녀의 머리 위에는 천장이 있고, 앞길을 가로막는 벽이 있다. 남자가 받드는 신들은 저 멀리 하는 위쪽에 있기 때문에 실제로는 없는 거나 마찬가지지만, 여자아이는 인간의 얼굴을 한 신들 한가운데서 살고 있는 것이다.

제2장 젊은 처녀
남자에게 ‘타자‘는 여자 속에 구체적으로 나타나 있는 것처럼, 여자의 눈에는 ‘타자‘가 남자 속에 구체적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이 ‘타자‘는 본질적인 모습으로 그녀에게 나타나고, 그녀는 그 앞에서 자기를 비본질로 파악한다. 그녀는 부모의 가정에서, 어머니의 지배에서 해방될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이제 능동적인 정복을 통해서가 아니라 새로운 주인의 손에서 다시 수동적ᆞ순종적으로 자신의 미래를 개척한다.
남자는 끊임없이 세계에 의문을 품고 그때그때 주어진 조건에 저항할 수 있으므로, 그가 그 세계에 받아들일 때는 능동적으로 확인한다는 인상을 갖는다. 여자는 그저 받아들이고 견뎌 낼 뿐이다. 세계는 여자 없이도 규정되고 불변한다.
젊은 처녀는 자연과 사회가 자기에게 부여하는 운명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렇다고 그것을 적극적으로 거부하지도 않는다. 이처럼 그녀는 세계와의 투쟁을 시작하기에는 내적으로 너무도 분열되어 있다. 현실을 도피하거나 형식적으로 현실을 부인하는 데 그친다. 그녀의 온갖 욕망의 이면에는 어떤 불안이 겹쳐 있다. 자기 뜻대로 미래를 소유하기를 갈망하지만, 과거와 단절되는 것을 두려원한다. 한 남자를 ‘갖고‘ 싶지만 그의 먹이가 되는 것은 싫다. 여러 공포들의 뒤에는 언제나 욕망이 숨어 있다. 성폭행은 그녀를 소름끼치게 하지만 수동적이 되는 것은 즐겁고 기쁘다. 그래서 기만과 책략을 쓰지 않을 수 없다. 그녀는 온갖 부정적 강박관념으로 향하는 경향이 있다. 그것은 욕망과 불안의 양면성으로 나타난다.
젊은 처녀의 태도는 대개 자기 기만이라는 불안한 그림자 속에서 그녀가 세계와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임과 동시에 거부하는 몸짓을 나타낸다는 사실을 통해 설명된다.

제3장 성 입문
성적 성숙이란 연애ᆞ애정ᆞ관능 추구속에서 여성이 자기의 수동성을 성공적으로 극복하고, 상대 남성과 대등관계를 수립한다는 것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남자가 여자의 자유를 충분히 인정하면서 그녀의 육체를 원한다면, 그녀는 객체가 되는 순간에 자기를 본질로서 재발견하고, 스스로 선택한 복종 속에서 자유로이 머물 수 있다.
여자를 불태우는 부동의 정염, 여자는 남성의 거친 격정 속에서 그 정염의 전도된 모습을 본다. 남성의 위력은 곧 그녀가 남성에게 가하는 힘이다. 이 생명으로 팽창된 남성의 성기는, 남성에게 쾌락을 주는 여성의 미소가 남성의 소유인 것처럼 그녀의 것이다. 남녀가 지닌 모든 부는 서로에게 전해지고 서로를 통해 재확인되며, 동적이고 황홀한 결합을 이룬다. 이와 같은 조화에 필요한 것은 세련된 기교가 아니라, 오히려 직접적인 성적 매력에 바탕을 두고 육체와 정신 두 영역에서 서로 주고 받는 관용이다.

제4장 레즈비언
여자의 동성애는 여자의 자주성과 육체의 수동성을 조화시키려는 하나의 시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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