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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경제학자의 살아있는 아이디어
토드 부크홀츠 지음, 류현 옮김, 한순구 감수 / 김영사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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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죽은 자는 말이 없다고 한다. 이 말은 경제학에서는 어울리지 않는다. 애덤 스미스가 국부론을 쓰고 200년이 지났음에도 저자의 말은 수많은 경제학자의 입에서 오르내린다. 최초의 경제학책이라고 불리는 국부론은 우리가 빵을 먹을 수 있는 건 탐욕스러운 제빵업자의 욕심 때문이라는 유명한 말로 보이지 않는 손을 설명한다. 수요가 있으면 공급이 생긴다. 이는 하나의 유기체처럼 서로 조화를 이루며 나라의 부를 증가시킨다. 고전 경제학의 기틀은 이렇게 만들어졌다. 이 혁명적인 사상은 현재 신자유주의라는 물결로 탈바꿈해 전 세계에 널리 퍼졌다. 그들은 정부의 역할을 사회적 안전장치로 축소하고자 한다. 모든 건 시장이 알아서 하기 때문이다. 정말 그럴까? 그렇다면 죽은 경제학자의 살아있는 아이디어는 쓸모없는 책으로서 수요 공급 법칙에 따라 이 세상에 빛을 보지 못했을 것이다.

 

애덤 스미스를 포함한 수많은 경제학자는 자기 분야의 일부에만 능통했다. 경제는 정보량의 증가 때문에 뉴턴 열역학 제 2법칙(자연상태에서 엔트로피는 계속해서 커진다)처럼 불확실성이 끝없이 커진다. 과거처럼 일부 경제학자들의 판단으로 모든 상황을 설명하긴 힘들다. 이 책은 세상에 큰 영향을 끼친 경제학자들의 생각과 이론들을 설명함으로써 개인의 시야를 넓히는 데 큰 도움이 된다. 토드 부크홀츠는 사자(死者) 중에 자신이 중요하다 여길만한 학파의 중심학자를 책에서 소개하고 있다.

 

이 책의 학자 중 1명인 맬서스에 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그는 18세기 말에 인구론이란 책을 낸 경제학자로서 인구수의 증가는 곧 재앙으로 이어진다고 경고했다. 논지로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느는 대신 식량은 산술급수적으로 증가한다는 통계를 들었다. 맬서스는 다가올 빈곤을 없애기 위해서 저소득층에 대한 복지를 중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가 생각한 미래는 찾아오지 않았다. 선진국은 경제가 성장함에 따라 인구 증가율이 둔화하였으며 과학발전에 따라 식량 생산도 눈부시게 늘었다. 오늘날 식량은 몇 가지의 구조적 문제만 해결된다면(소고기 1kg을 만드는데 곡물이 100kg 사용된다. 따라서 우리가 육식을 그만두고 모두 채식으로 돌아간다면 아프리카에 있는 빈곤층까지도 모두 먹여 살릴 수 있다) 전 인류를 배부르게 할 수 있다. 다만 문제는 기후변화이다. 지구 온도가 늘어남에 따라 점점 식량을 생산할 수 있는 토지가 줄어들고 있다. 또한 아프리카 같은 저개발 국가를 중심으로 출산율이 늘어남에 따라 지구 인구는 계속해서 증가하고 있다. 이 상황이 계속된다면 맬서스가 말한 최악의 미래가 찾아올 가능성도 적지 않다. 그렇다면 우린 어떡해야 할까? 화력발전을 그만두고 친환경 에너지로 바꾼다면 기후변화를 막을 수 있지 않을까? 사실 이마저도 쉽지 않다. 수요 공급 법칙에 따라 석유 가격이 친환경 에너지를 사용하는 단가보다 비쌀 때까지 전 세계는 화력발전을 계속할 것이다. 우리가 대체에너지로 시야를 옮겼을 때 이미 지구의 변화는 돌이킬 수 없을지도 모른다. 시장에 모든 일을 맡긴다면 최악의 결과가 찾아올 가능성이 있다.

 

케인스주의자들은 시장경제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을 때 정부의 개입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불황이 발생했을 때의 원인으로는 수요량의 감소를 문제 삼았다. 고전 경제학은 세이의 법칙(공급량이 늘어나면 그에 따라 수요량도 늘어난다)을 믿고 공급량에만 신경 쓴 반면 케인스는 수요가 오히려 공급을 창출한다고 보았다. 그는 시민들의 구매역량을 키우기 위해서 정부가 수요 진작 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라고 권고했다. 루스벨트 미 대통령은 1930년대 대공황을 해결하기 위한 해법으로 케인스주의를 꺼내 들었고 큰 효과를 보았다. 다만 1970년대 1, 2차 석유파동을 겪고 난 후 정부의 개입만으로 시장을 활성 하기는 무리라는 생각이 전 세계에 돌기 시작했다. 이후 고전 경제학은 신자유주의로 이름을 바꾸었고 대한민국 역시 IMF 화를 거쳐 시장주의 물결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신자유주의와 케인스주의의 싸움은 현재 진행형이다. 이들은 크게 우파 좌파로 나뉘면서 여러 정책에 영향을 준다. 어느 쪽이 정답이라고 할 수 없다. 하나 확실한 건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날 듯이 두 개의 이론을 적절히 사용할 때 경제는 제대로 돌아간다.

 

많은 사람이 경제를 어려운 학문이라고 여긴다. 나 역시 수학기호와 그래프로 가득한 경제학책을 보면 몸서리를 친다. 하지만 죽은 경제학자의 살아있는 아이디어는 경제학자 개개의 인생 스토리와 비유를 사용한 이론 설명을 사용해 이해를 돋운다. 경제학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초보라도 추천할만하다. 우리는 그들의 유산으로 이 땅에 사는 것과 마찬가지다. 직접 묘비에서 절은 못하더라도 파란만장한 경제학자들의 삶과 생각을 들여다보는 것 정도는 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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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것도 아닌데 예뻐서 - 일상, 그리고 쓰다
박조건형.김비 지음 / 김영사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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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스타인 베블런은 저서 유한계급론에서 자본주의 사회에서 소비는 합리성으로만 설명할 수 없다고 했다. 일반인들은 유한계급(쉽게 말해 부르주아 층)의 과시적 소비를 따라 하길 원하면서 자신을 다른 사람과 구별 지으려고 한다. 일상적인 물품은 그 사람의 사회적 가치를 낮춘다. 쇼미더머니라는 프로그램에서 래퍼들이 swag를 외치면서 비싼 차, 옷 등을 보여주는 것도 베블런이 말한 과시적 소비의 하나이다. 그런 면에서 이 책 별것도 아닌데 예뻐서는 평범한 일상을 재조명한다.

 

다른 사람과 똑같이 밥을 먹고 집안일, 애정표현을 하는 모습을 일상 스케치를 통해 표현하고 있다. 특히나 부인인 김비의 과장된 모습을 담은 그림이 곳곳에서 보인다. 감정의 세밀한 부분을 나타내기 위해 움직이는 근육의 한 마디마디마저 세밀하게 그려놓았다. 남편 박조건형이 부인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기 싫어도 알게 된다(웃음). 서술방식도 특이하다. 남편이 일상드로잉과 짧은 글을 써놓으면 뒤에 부인이 추가 설명을 담는다. 텍스트를 읽다 보면 그 둘의 모습이 아담과 이브가 떨어지기 전처럼 느껴진다.

 

부부는 남들과 똑같은 삶을 보내고 있지만 하나 다른 점이 있다. 둘은 사회의 소수자이다. 박조건형은 만성 우울증을 앓고 있는 현장 노동자이며 부인 김비는 트랜스 젠더이다. 인간은 보통 프레임에 갇혀 살기 때문에 소수자를 슬픈 사람으로 보려 한다(이것은 장애를 불쌍히 여기는 시각이랑도 관련 있다. 장애인의 삶을 살아보지도 않고 그들이 무언가 결핍한 채 태어났다고 생각해 불쌍해 여기거나 결함 품 취급하는 것은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이다) 이 책은 사회의 편견을 정면에서 깨부수고 있다. 특히나 남편 박조건형씨가 그리는 일상드로잉이 큰 역할을 한다. 그의 그림은 아우라가 파괴되었다(발터 벤야민은 기술복제 시대에서는 예술작품 원본에 대한 아우라는 파괴되면서 독자들이 작품에 몰입하는 게 아니라 스스로 생각할 수 있도록 만든다고 한다. 일상드로잉은 일상의 복제를 통해 우리가 생각하는 소수자의 아우라를 파괴함으로써 독자가 새로운 인식의 지평을 열도록 도와준다.) 그림에 그려져 있는 그들의 삶은 누가 프레임 한 인생이 아닌 실존하는 삶이다. 삶이란 스스로가 의미를 만들어 가는 것이다. 자신이 결정한 인생에서 남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슬프게 살 필요도 없으며 과시적 소비로 뽐낼 필요도 없다. 저자들은 일상자체에서 행복을 느끼고 서로를 만난 것에 감사하고 있다.

 

소수자로서 그들이 처한 상황을 부정하지도 않고 있는 그대로 긍정하는 모습에 독자는 희열을 느낀다. 두 명의 사랑이 한데 모인 결과물은 1+1=2가 아니다. 사랑의 시간은 한데 모여 기하급수적으로 커진다. 이 책을 읽고 나서 내 삶의 의미는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희미하게 생각하고 있던 것들이 명확해져 간다. 내 인생의 가치는 남들이 보기엔 별것도 아닐 수 있지만, 그 자체로 예쁘다. 어떤 일상을 살아가는 게 중요한 게 아니다. 어떻게 일상을 보내는가가 더 만족스러운 삶을 만든다. 나는 그들처럼 내 일상을 긍정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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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케일 : 생물.도시.기업의 성장과 죽음에 관한 보편 법칙
제프리 웨스트 지음, 이한음 옮김 / 김영사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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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기속에서 발견한 태초의 끈

빅뱅에서 생겨난 원소들(편의상 제일 작은 단위로 임의 지칭한 단어)은 모여 원자, 분자가 되고 각기 다른 결합 방식을 통해 사물, 식물, 동물 그리고 사람으로 변화하기도 한다. 서로 다른 존재라고 생각되는 물질, 현상들은 우주의 법칙아래 연관되어 있다. 지금은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일인 자연선택, 중력 법칙등의 과학현상이 과거에는 서로 독자적인 영역이나 우연에 의해 발생한 일이라고 여겼다. 학자들은 점점 상이한 현상들을 통섭의 시각으로 바라보면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얼마전에 세상을 떠난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도 '시간의 탄생' 이란 저서에서 "미래에는 하나의 이론으로 모든 현상을 설명할 수 있을것이다."이란 말로 통합 연구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스케일>의 저자 제프리웨스트도 통합적 시각으로 상이해 보이는 여러 현상을 결합해 보았다.


그는 사화와 과학, 미시와 거시를 넘나들고 연구를 진행한다. 가장 재밌는 현상은 생명체의 수명과 심장 박동수의 연관 관계이다. 그래프를 보면 동물들의 평생 심장박동수는 대체로 10의 9승 정도에서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덩치가 아주 큰 대왕고래와 조그마한 쥐의 심장박동수가 크게 차이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사실은 동물에게 10의 9승이라는 심장박동수가 최적화 된 시스템일 수 있다는 의문점으로 다가온다. 이렇게 연관된 고리를 찾아가다보면 모든 현상을 설명할 수 있는 이론을 찾아낼 수도 있지않을까? 제프리 웨스트의 대범한 연구는 그 이론의 시발점이 되기위한 적지않은 원인으로 작용한다.


이 책이 마냥 읽기 편하지만은 않다. 사회의 여러 현상과 생명, 과학간에 연결성을 흥미있게 잡아 내었지만 책 분량의 압박이 접근을 용이하지 못하게 한다. 과학을 잘모르는 사람에게 추천하기에도 어려울 만큼 많은 범위의 내용을 다루고 있다. 다만 호기심 강한 사람에게는 어려운 내용 만큼이나 지적 만족도도 크기 때문에 과감히 도전해보라고 말하고 싶다. 4차 산업혁명이 다가오면서 과학의 중요성과 전문도는 점점 커지고 있지만 일상과는 더 동떨어져 가는게 현실이다. 이는 과학자들이 스스로의 특수성을 더 공고히 하기 위해 전문화된 용어가 가득한 서적, 논문을 선호하는 것 때문이기도 하며 일반인이 개별적인 이론을 알아가기에는 시간도 부족하다. 이 때문에 스티븐 호킹은 통합이론의 필요성을 역설했으며 웨스트 또한 마찬가지이다. 이 점에서 '스케일'은 과학서적의 역사속에서 새로운 패러다임의 방점이라 칭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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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의 충돌 - 세계질서 재편의 핵심 변수는 무엇인가
새뮤얼 헌팅턴 지음, 이희재 옮김 / 김영사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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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말 이데올로기로 무장한 냉전 시대가 끝을 내리고 세계는 평화로운 미래를 꿈꾸고 있었다. 그 꿈대로 우리는 이제 소련의 핵미사일을 두려워하지는 않지만, 테러단체의 공격에 두려워하는 새 시대는 피할 수 없게 되었다. 세계는 IS(이슬람국가)의 위협에 온 신경을 쏟고 있으며 시리나 난민 문제, 수니파와 시아파의 대립(무함마드 사후 후계자 문제로 인해 크게 두 개의 파로 갈라진 이슬람 세력) 등 무시 못 할 분쟁이 현재진행형으로 발발하고 있다. 9.11 사건에서도 보았다시피 주요 테러리스트는 무슬림 성향을 띄고 있다. 테러는 미래를 꿈꿀 수 없는 극빈층의 화풀이가 아니다. 스티븐 대빗, 스티븐 더브너가 공저인 <슈퍼 괴짜 경제학>에서는 이슬람 테러리스트의 70~80% 정도가 고등교육을 받은 중산층임을 통계로 증명했다. 테러 당사자들은 자신들의 믿음과 정체성을 담보로 분쟁을 일으키고 있다. <문명의 충돌>의 저자 새뮤얼 헌팅턴은 문명 충돌의 근간은 종교이며 냉전이 끝나고 새로운 정체성 형성의 작용으로 신앙이 사용된다고 보았다.

 

테러뿐만이 아니라 난민 문제도 문명의 충돌을 일으키고 있다. 피난 당사자와 유입국의 문화 차이가 곧 갈등과 혼란의 시발점이 되기 때문이다. EU, 미국은 오랜 시간 동안 난민 문제로 고통 받고 있다. 서평을 쓰고 있는 지금 세계에서 제일 난민에 관대하다고 여긴 스웨덴마저도 극우 정당이 제3(20%가량)을 차지하게 되었다. 미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는 국경장벽을 세워 멕시코 이민을 봉쇄하자는 주장을 계속해서 이어나가고 있다. 헌팅턴은 문명충돌이 일어나게 된 원인으로 세계적인 서구화 흐름을 예로 들었다. 전 세계적으로 퍼지고 있는 서구적 가치관(개인주의, 보편 인권, 여성 문제)이 문명의 단층선을 건드렸기 때문에 분쟁을 일으키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문명의 단층선은 서로 다른 문명이 충돌하는 접경지, 단체 등을 말하는 것으로 이스라엘과 인근 이슬람 국가 같은 경우를 예시로 들 수 있다. 이스라엘은 성지인 예루살렘으로 돌아가서 유대인 국가를 세우겠다는 시온주의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나라이다. 하지만 예루살렘은 유대인만의 성지가 아니라 이슬람도 마찬가지이다(이는 이슬람과 유대교 그리스도교 모두가 야훼, 하나님의 신앙이기 때문이다. 즉 같은 구약성경을 공유하고 있지만, 신약에서 차이가 난다. 유대교는 예수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으며 유대인만이 유일하게 구원받을 수 있는 존재라고 생각한다. 반면 이슬람은 예수는 수많은 예언자 중 한 명이며 가장 중요하고 마지막으로 온 예언자가 무함마드이기 때문에 그를 신봉한다) 이 때문에 서로의 성지를 탈환하려는 시도가 공연히 벌어지고 있으며 20세기 중반 중동 분쟁의 원인 중 하나로 작용했다. 중앙아시아의 역학관계를 생각해보면 트럼프 대통령이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로 인정한 건 정말이지 위험한 행동이었다.

<문명의 충돌>은 냉전 이후의 혼란 속에서 세계를 새롭게 파악하려는 목적에서 저술된 책이다. 헌팅턴은 다른 책들과는 다르게 아놀드 조셉 토인비의 <역사의 연구>처럼 문명에 집중하는 방식을 사용해서 더 큰 흥미를 끌었다. 또한 토인비는 문명을 크게 23개로 잡고 그 안의 흥망성쇠를 다뤘던 반면 헌팅턴은 현존하는 8개의 문명으로 큰 틀을 잡고 실존하는 세계의 문제를 서술했다(적은 분량도 인기몰이에 한몫했다. 토인비의 역사의 연구는 대한민국에 번역된 동서문화사 책 페이지만 해도 1200쪽 분량에 달한다. 심지어 이게 원전의 1/10 수준이니 문명의 충돌의 상대적으로(?) 적은 분량은 부담이 적은 셈이다) 20년 전에 서술된 책이다 보니 현재 상황과는 맞지 않은 오류도 하나둘 있다. 저자는 2020년가량이 되면 중국이 제1의 패권국이 될 거라 조심스럽게 짐작해보았지만 아직도 미국은 부동의 제1 패권국이다. 또한 일본과 한국은 여전히 미국의 든든한 우방국으로 남아있으며, 남북 분단체제 역시 현재 진행형이다.

 

여러 차이가 있음에도 <문명의 충돌>이 고전으로서 현재까지 읽히고 있는 이유는 다른 책에서 볼 수 없는 탁월한 통찰력 때문이다. 우리는 플라톤의 저서를 읽으면서 이데아를 믿지는 않지만, 철인통치에서 말하는 정치인의 자질에 대해서는 현재에도 생각해볼 만 하다. 이처럼 헌팅턴이 지적한 문명의 단층선 충돌은 아직도 공연히 일어나는 일이며 각자가 고려해 보아야 할 문제이다. 최근 대한민국에서도 난민 문제로 인해 많은 혼란이 생겨났다. 오랫동안 단일민족이라 여겼던 문명의 정체성이 난민의 유입으로 깨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감정적 영역에서는 일어날 소지가 다분한 문제와 희박한 문제를 혼동하게 되고 점점 혐오와 두려움밖에 남지 않는다. 필자는 난민에 대해 찬성하는가 반대하는가에 대해서 말하고자 하는 게 아니다. 다만 각자가 이 문제에 대해 신중히 고려해보고 무엇이 올바르고 민주적인 판단인지를, 또한 민주적인 절차에서도 얼마나 위험한 상황이 벌어질 수 있는지를 판단할 수 있게 되기를 원한다(정말 끔찍한 일이지만 우리가 혐오해마지않던 히틀러는 민주적인 방법으로 정권을 잡았다) <문명의 충돌>은 우리가 문명공동체의 일원이고 그 생각에서 벗어나기가 힘들다는 것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좋은 지식은 개인에게 불편한 경우가 많다. 그렇다고 계속 도망가지는 않았으면 한다. 그 지식이 개인을 성장시키고 더 나은 미래를 선사해줄 것이다. 헤겔의 변증법처럼 서로 다른 생각의 충돌은 새로운 대안과 시각을 만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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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 - 더 나은 오늘은 어떻게 가능한가 인류 3부작 시리즈
유발 하라리 지음, 전병근 옮김 / 김영사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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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레니엄 시대가 도래할 때, 전 세계는 패닉에 빠졌다.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이 현실이 되거나 조지오웰의 ‘1984’ 같은 날이 찾아올 거라 여긴 많은 사람의 두려움 때문이다. 2018년을 사는 현대인은 그때의 공포가 과장된 일이라 생각한다. 정말 그럴까? 오히려 비관적인 전망이 가득한 세상에서 어떻게든 해결책을 마련하고자 한 수많은 사람의 노력 때문에 우리는 최악의 결말을 맞이하지 않은 건 아닐까? 나의 오랜 지론은 세상의 현실과 인간 행동은 비관적으로 보되 미래에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은 이상적으로 생각하라이다. 유발 하라리의 생각도 이와 비슷하다.

 

그의 책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에는 비관적인 전망과 의문이 가득하다. 유럽권 분열의 시대를 넘어 결성된 EU는 브렉시트로 인해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21세기 신 나치, 파시즘으로 변질하고 있는 민족주의 때문이다. 베네딕트 앤더슨이 상상된 공동체에서 말한 긍정적 민족주의는 현대에 보기가 힘들다. 오히려 인종주의적인 것이 민족주의로 느껴질 정도이다. 미 대통령 트럼프는 미국인만을 우선으로 여긴다고 말했다. 그가 말한 미국인에 흑인과 히스패닉, 황인이 들어가 있는지는 의문이다.

 

4차 산업혁명은 기술을 누릴 수 있는 자와 그러지 못한 자로 종을 분화시킨다고 하라리는 경고했다. 부유한 자는 유전자 조작기술로 본인 또는 후손의 생명과 능력을 발전시키는 일에 온 힘을 쏟을지도 모른다. 가난한 자는 지금과 마찬가지인 상황(또는 양극화된 부의 분배로 더 심각해질 수도 있는)을 유지할 것이다. 정보 역시 나날이 증가하고 있다. 엔트로피(정보)가 커지면 불확실성의 증가한다. 미래 사회는 확실한 지식이 자본으로 이어지지만, 인터넷의 홍수 속에서 무엇이 중요한 정보인지 파악하기는 쉽지 않다.

 

아무리 기술이 좋아져도 인간이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건 본연의 성질을 깨닫지 못해서다. 사피엔스의 편향적 성질은 대니얼 카너먼이 생각에 관한 생각에서 말한 것처럼 감정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정서적 반응은 인간이 진화해오면서 최적화된 체계이다. 사피엔스의 동물적 성질을 많은 사람이 간과하고 산다. 유인원과 98%의 유전자 일치하지만, 인간이랑 침팬지는 완전히 다른 존재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합리적이고 이성적으로 밈(문화)을 만들었다고 해도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피엔스는 동물의 한 종일 뿐이다. 논리적으로 타당한 문제라도 감정적으로 불편하면 받아들이기 힘들다. 야식으로 치킨과 맥주를 먹는 행위가 건강에 안 좋고 지갑의 무게를 줄인다고 아무리 이야기해도 우리는 심리적인 효용 가치를 우선해서 치킨을 주문하는 것이지 논리적으로 판단하는 건 아니다.

 

유발 하라리가 대단하다고 생각한 건 사피엔스의 본능적인 영역들에 관해 설명하고자 할 때 철학과 역사, 과학을 넘나드는 탐구를 멈추지 않았다는 점이다. 누구나 생각해봤을 법한 문제에 대해서 탄탄한 근거와 논리로 무장한 그의 글은 성경보다 더 믿을만하다고 여겨질 정도이다. (그는 종교에 대해서 개인의 견해를 밝혔다. 다만 비판적, 긍정적 관점이 동시에 존재한다는 걸 인정했다. 이점을 여기에서 밝히고자 한다) 하라리가 말한 내가 직접 접근할 수 있는 유일한 정신은 나 자신이다.”라는 문장에서는 가히 소크라테스의 너 자신을 알라라는 격언이 떠오를 정도이다. 우리가 자신의 창문으로만 세상을 볼 수 있다는 사실을 하라리는 명상이란 방법을 통해서 이미 체험했고(명상은 여러 방법의 하나일 뿐이다.), 독자들에게 에 대해 아는 것이 21세기의 가장 귀중한 자산이라고 거듭해서 말한다.

 

책을 서평 하다 보면 어떻게든 단점을 찾아내려고 애쓴다. 나는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에서 해결책이 없다는 단점을 만들어냈다. ‘단점을 만들어냈다.’라고 칭한 이유는 이 책은 인문학 서적이지 답을 요구하는 교과서가 아니기 때문이다. 인문학은 사람에게 의문을 던져주는 학문이지 해결을 제시하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인문학에 답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특히나 산업화 시대 결과 지상주의 교육으로 자라난 대한민국 국민에게 해결책 없는 일만큼 답답한 일도 없다. 따라서 이 책에서 유일하게 만들어낼 만한 단점으론 해결책이 없다.’이다. 하지만 우린 반대로 생각해봐야 한다. 21세기는 너무나도 복잡하다. 경제, 교육, 정치, 과학 등 다양한 학문은 독자적인 영역에서 존재하는 게 없다. 서로가 끝없이 영향을 주는 게 현대의 사회(‘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1’ 참고)고 우리는 기저에 깔린 수많은 문제 원인을 알지 못한다(‘지식의 착각이란 책을 참고하면 인간이 얼마나 무지한지를 알 수 있을 거다) 그렇기에 우리는 복잡한 현대에서 섣부르게 답을 내리려고 하지 말아야한다. 끝없이 질문하고 회의해보아도 사회의 행동 양태에 대해 어느 정도 어림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불확실성이 계속해서 증가하는 21세기에서 사피엔스가 먼저 해야 할 행동은 위에서 말했다시피 나에 대한 탐구이다. 자아는 혼자 형성되는 게 아니라 수많은 외적 자극(문화나 언어양태, 개인의 행동이나 공동체의 생각 등)에 의해 만들어진다. ‘나에 한 탐구는 이것들에 대한 본질적인 회의에서 진정한 나 자신을 찾는 행위이다.’ 이 같은 데카르트적 회의로 인해 사피엔스는 21세기를 나아가기 위한 바람직한 생각을 창조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유발 하라리 작가의 신간을 볼 때마다 기대감을 멈추지 못한다. 2018년 동안 하루에 책 1권씩 읽고 있지만 지나갔던 수많은 책에 비해 하라리의 저서에서 더 깊은 감명을 느낀 건 그의 논리와 탐구력 때문이다. 그의 책은 우리에게 새로운 지적 자극을 준다. ‘사피엔스’, ‘호모데우스에 이은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은 인류에 대한 그의 탐구와 걱정 그리고 사랑이 총집합된 성경책과 같다. 부디 유발 하라리가 오랫동안 건강하게 살아 더 많은 지적 자극을 나에게 전달해 주었으면 하는 마음을 금치 못하리라. 그의 제언을 새겨듣고 책장 끝을 접어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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