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의 충돌 - 세계질서 재편의 핵심 변수는 무엇인가
새뮤얼 헌팅턴 지음, 이희재 옮김 / 김영사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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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말 이데올로기로 무장한 냉전 시대가 끝을 내리고 세계는 평화로운 미래를 꿈꾸고 있었다. 그 꿈대로 우리는 이제 소련의 핵미사일을 두려워하지는 않지만, 테러단체의 공격에 두려워하는 새 시대는 피할 수 없게 되었다. 세계는 IS(이슬람국가)의 위협에 온 신경을 쏟고 있으며 시리나 난민 문제, 수니파와 시아파의 대립(무함마드 사후 후계자 문제로 인해 크게 두 개의 파로 갈라진 이슬람 세력) 등 무시 못 할 분쟁이 현재진행형으로 발발하고 있다. 9.11 사건에서도 보았다시피 주요 테러리스트는 무슬림 성향을 띄고 있다. 테러는 미래를 꿈꿀 수 없는 극빈층의 화풀이가 아니다. 스티븐 대빗, 스티븐 더브너가 공저인 <슈퍼 괴짜 경제학>에서는 이슬람 테러리스트의 70~80% 정도가 고등교육을 받은 중산층임을 통계로 증명했다. 테러 당사자들은 자신들의 믿음과 정체성을 담보로 분쟁을 일으키고 있다. <문명의 충돌>의 저자 새뮤얼 헌팅턴은 문명 충돌의 근간은 종교이며 냉전이 끝나고 새로운 정체성 형성의 작용으로 신앙이 사용된다고 보았다.

 

테러뿐만이 아니라 난민 문제도 문명의 충돌을 일으키고 있다. 피난 당사자와 유입국의 문화 차이가 곧 갈등과 혼란의 시발점이 되기 때문이다. EU, 미국은 오랜 시간 동안 난민 문제로 고통 받고 있다. 서평을 쓰고 있는 지금 세계에서 제일 난민에 관대하다고 여긴 스웨덴마저도 극우 정당이 제3(20%가량)을 차지하게 되었다. 미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는 국경장벽을 세워 멕시코 이민을 봉쇄하자는 주장을 계속해서 이어나가고 있다. 헌팅턴은 문명충돌이 일어나게 된 원인으로 세계적인 서구화 흐름을 예로 들었다. 전 세계적으로 퍼지고 있는 서구적 가치관(개인주의, 보편 인권, 여성 문제)이 문명의 단층선을 건드렸기 때문에 분쟁을 일으키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문명의 단층선은 서로 다른 문명이 충돌하는 접경지, 단체 등을 말하는 것으로 이스라엘과 인근 이슬람 국가 같은 경우를 예시로 들 수 있다. 이스라엘은 성지인 예루살렘으로 돌아가서 유대인 국가를 세우겠다는 시온주의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나라이다. 하지만 예루살렘은 유대인만의 성지가 아니라 이슬람도 마찬가지이다(이는 이슬람과 유대교 그리스도교 모두가 야훼, 하나님의 신앙이기 때문이다. 즉 같은 구약성경을 공유하고 있지만, 신약에서 차이가 난다. 유대교는 예수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으며 유대인만이 유일하게 구원받을 수 있는 존재라고 생각한다. 반면 이슬람은 예수는 수많은 예언자 중 한 명이며 가장 중요하고 마지막으로 온 예언자가 무함마드이기 때문에 그를 신봉한다) 이 때문에 서로의 성지를 탈환하려는 시도가 공연히 벌어지고 있으며 20세기 중반 중동 분쟁의 원인 중 하나로 작용했다. 중앙아시아의 역학관계를 생각해보면 트럼프 대통령이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로 인정한 건 정말이지 위험한 행동이었다.

<문명의 충돌>은 냉전 이후의 혼란 속에서 세계를 새롭게 파악하려는 목적에서 저술된 책이다. 헌팅턴은 다른 책들과는 다르게 아놀드 조셉 토인비의 <역사의 연구>처럼 문명에 집중하는 방식을 사용해서 더 큰 흥미를 끌었다. 또한 토인비는 문명을 크게 23개로 잡고 그 안의 흥망성쇠를 다뤘던 반면 헌팅턴은 현존하는 8개의 문명으로 큰 틀을 잡고 실존하는 세계의 문제를 서술했다(적은 분량도 인기몰이에 한몫했다. 토인비의 역사의 연구는 대한민국에 번역된 동서문화사 책 페이지만 해도 1200쪽 분량에 달한다. 심지어 이게 원전의 1/10 수준이니 문명의 충돌의 상대적으로(?) 적은 분량은 부담이 적은 셈이다) 20년 전에 서술된 책이다 보니 현재 상황과는 맞지 않은 오류도 하나둘 있다. 저자는 2020년가량이 되면 중국이 제1의 패권국이 될 거라 조심스럽게 짐작해보았지만 아직도 미국은 부동의 제1 패권국이다. 또한 일본과 한국은 여전히 미국의 든든한 우방국으로 남아있으며, 남북 분단체제 역시 현재 진행형이다.

 

여러 차이가 있음에도 <문명의 충돌>이 고전으로서 현재까지 읽히고 있는 이유는 다른 책에서 볼 수 없는 탁월한 통찰력 때문이다. 우리는 플라톤의 저서를 읽으면서 이데아를 믿지는 않지만, 철인통치에서 말하는 정치인의 자질에 대해서는 현재에도 생각해볼 만 하다. 이처럼 헌팅턴이 지적한 문명의 단층선 충돌은 아직도 공연히 일어나는 일이며 각자가 고려해 보아야 할 문제이다. 최근 대한민국에서도 난민 문제로 인해 많은 혼란이 생겨났다. 오랫동안 단일민족이라 여겼던 문명의 정체성이 난민의 유입으로 깨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감정적 영역에서는 일어날 소지가 다분한 문제와 희박한 문제를 혼동하게 되고 점점 혐오와 두려움밖에 남지 않는다. 필자는 난민에 대해 찬성하는가 반대하는가에 대해서 말하고자 하는 게 아니다. 다만 각자가 이 문제에 대해 신중히 고려해보고 무엇이 올바르고 민주적인 판단인지를, 또한 민주적인 절차에서도 얼마나 위험한 상황이 벌어질 수 있는지를 판단할 수 있게 되기를 원한다(정말 끔찍한 일이지만 우리가 혐오해마지않던 히틀러는 민주적인 방법으로 정권을 잡았다) <문명의 충돌>은 우리가 문명공동체의 일원이고 그 생각에서 벗어나기가 힘들다는 것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좋은 지식은 개인에게 불편한 경우가 많다. 그렇다고 계속 도망가지는 않았으면 한다. 그 지식이 개인을 성장시키고 더 나은 미래를 선사해줄 것이다. 헤겔의 변증법처럼 서로 다른 생각의 충돌은 새로운 대안과 시각을 만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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