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것도 아닌데 예뻐서 - 일상, 그리고 쓰다
박조건형.김비 지음 / 김영사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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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스타인 베블런은 저서 유한계급론에서 자본주의 사회에서 소비는 합리성으로만 설명할 수 없다고 했다. 일반인들은 유한계급(쉽게 말해 부르주아 층)의 과시적 소비를 따라 하길 원하면서 자신을 다른 사람과 구별 지으려고 한다. 일상적인 물품은 그 사람의 사회적 가치를 낮춘다. 쇼미더머니라는 프로그램에서 래퍼들이 swag를 외치면서 비싼 차, 옷 등을 보여주는 것도 베블런이 말한 과시적 소비의 하나이다. 그런 면에서 이 책 별것도 아닌데 예뻐서는 평범한 일상을 재조명한다.

 

다른 사람과 똑같이 밥을 먹고 집안일, 애정표현을 하는 모습을 일상 스케치를 통해 표현하고 있다. 특히나 부인인 김비의 과장된 모습을 담은 그림이 곳곳에서 보인다. 감정의 세밀한 부분을 나타내기 위해 움직이는 근육의 한 마디마디마저 세밀하게 그려놓았다. 남편 박조건형이 부인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기 싫어도 알게 된다(웃음). 서술방식도 특이하다. 남편이 일상드로잉과 짧은 글을 써놓으면 뒤에 부인이 추가 설명을 담는다. 텍스트를 읽다 보면 그 둘의 모습이 아담과 이브가 떨어지기 전처럼 느껴진다.

 

부부는 남들과 똑같은 삶을 보내고 있지만 하나 다른 점이 있다. 둘은 사회의 소수자이다. 박조건형은 만성 우울증을 앓고 있는 현장 노동자이며 부인 김비는 트랜스 젠더이다. 인간은 보통 프레임에 갇혀 살기 때문에 소수자를 슬픈 사람으로 보려 한다(이것은 장애를 불쌍히 여기는 시각이랑도 관련 있다. 장애인의 삶을 살아보지도 않고 그들이 무언가 결핍한 채 태어났다고 생각해 불쌍해 여기거나 결함 품 취급하는 것은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이다) 이 책은 사회의 편견을 정면에서 깨부수고 있다. 특히나 남편 박조건형씨가 그리는 일상드로잉이 큰 역할을 한다. 그의 그림은 아우라가 파괴되었다(발터 벤야민은 기술복제 시대에서는 예술작품 원본에 대한 아우라는 파괴되면서 독자들이 작품에 몰입하는 게 아니라 스스로 생각할 수 있도록 만든다고 한다. 일상드로잉은 일상의 복제를 통해 우리가 생각하는 소수자의 아우라를 파괴함으로써 독자가 새로운 인식의 지평을 열도록 도와준다.) 그림에 그려져 있는 그들의 삶은 누가 프레임 한 인생이 아닌 실존하는 삶이다. 삶이란 스스로가 의미를 만들어 가는 것이다. 자신이 결정한 인생에서 남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슬프게 살 필요도 없으며 과시적 소비로 뽐낼 필요도 없다. 저자들은 일상자체에서 행복을 느끼고 서로를 만난 것에 감사하고 있다.

 

소수자로서 그들이 처한 상황을 부정하지도 않고 있는 그대로 긍정하는 모습에 독자는 희열을 느낀다. 두 명의 사랑이 한데 모인 결과물은 1+1=2가 아니다. 사랑의 시간은 한데 모여 기하급수적으로 커진다. 이 책을 읽고 나서 내 삶의 의미는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희미하게 생각하고 있던 것들이 명확해져 간다. 내 인생의 가치는 남들이 보기엔 별것도 아닐 수 있지만, 그 자체로 예쁘다. 어떤 일상을 살아가는 게 중요한 게 아니다. 어떻게 일상을 보내는가가 더 만족스러운 삶을 만든다. 나는 그들처럼 내 일상을 긍정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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