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강의 소용돌이에서 살아남기 - 박노자, 허동현의 지상격론
박노자, 허동현 지음 / 푸른역사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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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자,허동현 두명의 저자가 조선의 개화기 당시의 모습인 열강의 소용돌이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모습의 조선에 대하여서 그 당시의 열강들의 모습과 조선의 움직임을 주제에 대하여서 자신의 의견을 들려줍니다.

 

1. 미국편 천사또는 악마

자신들의 안마당이라고 할 수가 있는 중남미에 대하여서 어느 정도의 정리가 완결이 되어지고 식민지 각축전이 벌어지고 있던 중국에 대하여서 숟가락을 걸치기 위하여서 등장을 하였던 미국의 모습이 거대한 보물창고인 중국에 비하여서 상대적으로 왜소한 모습을 가지고 있는 조선에 대한 관심의 정도가 다른 열강에 비하여서 적었다는 사실과 그 당시에 조선으로 들어온 선교사들이 조선에 건립을 하였던 병원과 학교와 같은 공공시설에 준하는 시설의 설립으로 인하여서 상당한 인망을 얻었지만 실제의 속마음은 다른 열강과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는 사실에는 저자들의 의견이 동일하고 그러한 사실에 대하여서 조선의 지식인들이 가지고 있었던 대응법에 대한 차이점을 알려줍니다.

 

개화기의 미국의 모습은 현재와 같은 유일한 강대국의 위치에서 모든 것을 내려보는 입장이 아니라 신흥열강의 처지에서 자신보다 강력한 국가들의 전쟁을 뒤에서 구경을 하면서 자신에게 돌아오는 먹이를 노리는 사냥꾼의 모습과 자신의 안마당이라고 할 수가 있는 중남미에 대하여서 최대한의 이익을 사수하기 위하여서 노력을 하는 과정이었기 때문에 조선에 대하여서 관심이 적었지만 같은 대양을 관할을 한다고 볼수가 있는 일본에 대하여서 적극적인 우대로 인하여서 문제를 키우는 역할을 하였다는 사실을 볼수가 있습니다.

 

2. 러시아 거인이지만 부실한 하체

자신들의 조국이 엄청난 영토를 영위를 하고 있지만 그 당시에는 석유를 개발을 하여서 부를 이룬다는 생각을 못하고 있던 시기였기 때문에 자신들의 영토에서 겨울에도 움직일수가 있는 얼지않는 항구를 찾기 위하여서 동서로 진출을 하고 있던 시기의 국가이고 내부적인 문제가 산재를 하였지만 그러한 사실에 대하여서 워낙 거대한 군대를 유지를 하였기 때문에 겁을 먹고 있는 국가가 많았던 실력에 문제가 있는 국가로 등장을 하고 있는데 그러한 일면은 현재도 비슷한 모습이라고 할 수가 있는 것 같습니다.

 

항구를 위하여서 찾은 조선에서 목적을 이룰수가 있는 항구를 발견을 하지만 일본의 공격과 중국에서 얻은 항구로 인하여서 자신들의 목적을 달성을 하고 뒤로 빠지면서 조선의 조정에서 생각을 하였던 위력을 행사를 못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3. 청나라 빈사의 거인

자신들의 영토에서 벌어지고 있는 수많은 문제의 해결책을 구하기 위하여서 상대적으로 만만한 상대인 조선을 고르고 있었지만 일본으로 인하여서 문제를 더욱 심화를 시키는 실정을 저지르는 상대국으로 과거의 자신의 영역에 만족을 하면서 살아가고 있던 모습이 아닌 이제는 무조건적인 힘의 정치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자국의 힘을 들어내기 위하여서 노력을 하는 모습입니다.

 

4. 일본 환골탈태

자신들이 열강의 먹이가 되는 것 보다는 주변에 있는 약한 국가를 먹이로 삼아서 열강의 주구로 자처를 하기 위하여서 열심히 노력을 하였던 국가이면서 상대적으로 아시아에서 가장 선진화가 되었던 국가의 모습으로 많은 인원이 일본을 배우기 위하여서 노력을 하던 우등생의 모습을 보였지만 열강의 모습에 대하여서 감명을 받고 침략적인 본성을 들어내고 있는 국가의 과정을 보입니다.

 

두명의 저자가 하나의 문제에 대하여서 서로 상반이 되어지는 의견을 들려주고 그러한 의견에 대하여서 문의 사항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위하여서 자신들의 의견을 알려주고 있는데 대략적인 문제는 우리나라의 위치가 과거의 조선의 시기에는 상대적으로 중국에 비하여서 작은 국가의 모습을 보이면서 관심은 있지만 행동을 하기에는 모자라는 국가로 보였지만 이제는 그러한 모습을 버리고 상대적으로 맛있는 음식으로 변모를 하였다는 사실과 열강들이 모두 자국의 이익을 위하여서 생각을 하고 움직이고 있고 그들의 면모는 자국의 이익을 위하여서는 약소국의 피해에 대하여서는 눈을 감아버리는 과정을 보이고 있다는 공통점을 알려주고 약소국의 입장에 있던 조선이 자신의 형편에 대하여서 각종의 방법을 동원을 하여서 벗어나기 위하여서 노력을 하였지만 정보의 부족과 자립을 위하여서 노력을 하는 것 보다는 이웃에 있는 열강을 동원을 하여서 이웃의 열강에게서 자신을 지키기 위하여서 호가호위를 하는 과정을 벌였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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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덩이의 재발견 - 문화와 예술로 읽는 엉덩이의 역사
장 뤽 엔니그 지음, 이세진 옮김 / 예담 / 200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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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부터 내려오는 인류의 터부에 속하는 신체부위에서 중요한 부분중의 하나인 엉덩이에 대하여서 예술가들이 표현을 하여온 작품의 세계를 통하여서 각각의 중요도를 알아보고 엉덩이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생각을 통하여서 보여지고 있는지와 그러한 치부에 속하는 부위에 대하여서 사람들의 인식이 변화를 하는 과정을 보여준다고 할 수가 있는 책입니다.

 

고대의 시대에는 인간과 신의 모습에 동일성이 존재를 하였고 신과 동일한 육체를 가지고 있는 인간이 자신의 육체를 신에게 근접하게 만들기 위하여서 누드로 활동을 하는 경우가 많았고 많은 예술작품을 통하여서 자신의 신체를 들어내는 것을 좋아하였지만 기독교가 자리를 잡으면서 과거의 종교에서 다가오는 정체성과 차이를 두기 위하여서 육체에 대하여서 가지고 있는 인식을 바꾸었고 그러한 인식의 과정으로 인하여서 상당한 기간을 두면서 사람들의 머리에서 누드라는 단어가 사라지는 모습을 보였지만 계속하여서 남아있던 욕구는 다른 부분을 통하여서 들어나는 모습을 보였고 그러한 각종의 묘사들이 책의 중요한 부분으로 남아있습니다.

 

동물의 모습에서 직립보행을 하면서 없었던 신체부위인 엉덩이가 인간에게 주어졌다는 사실이 고대인들인 남긴 작품을 통하여서 들어나고 있는데 실제의 모습과는 다르게 엄청난 부피를 가지고 있는 엉덩이의 크기와 그러한 모습을 통하여서 파악을 할 수가 있는 부분은 직립보행을 하는 인간만이 엉덩이를 가지고 있고 그것을 통하여서 자신들의 존재가치를 파악을 할 수가 있던 인류가 더욱 풍만한 엉덩이를 통하여서 존재를 들어내고 있다고 볼수가 있는 부분인 것 같습니다.

 

몸을 들어내는 것에 대하여서 거부감이 없던 로마와 그리스시대에 만들어진 작품들을 통하여서 보여주고 있는 인간의 육체미에 대한 생각과 그들의 저술에서 들어나고 있는 엉덩이에 대한 탐욕의 모습이 같은 부분에 대하여서 관심을 들어내고 있지만 그것을 행동으로 보여주는 부분에서 차이가 발생을 한다는 사실과 차이점으로 인하여서 인간의 가치가 결정이 되어진다는 사실을 알려주면서 남성들이 사랑을 하는 엉덩이와 여성들이 자랑을 하는 엉덩이에 대하여서 차이점이 발생을 할수도 있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작품을 통하여서 들어나고 있는 것 들은 누드에 대한 관심의 하나로 정면에서 바라보는 과정이 아직은 인식의 차이로 인하여서 문제가 발생을 하고 있고 그러한 부분을 감지를 하여서 들어나고 있는 사실은 감추어진 부분이면서 돌출을 하여서 더욱 많은 시선을 모으고 있는 엉덩이에 대하여서 보여주는 관점의 차이를 알려주고 왜 사람들이 엉덩이에 대하여서 그러한 관심의 가지고 있는지와 책에서 들어나고 있는 엉덩이를 활용을 하는 각종의 고상하면서도 문제가 상당한 방법에 대하여서 보여주고 있는데 고대에 유행을 하였던 동성애의 방법의 하나로 사용이 되었던 엉덩이 애호가 하나의 방법이 다양한 방법을 통하여서 들어나고 있다는 사실과 시간이 흐르면서 변화를 거듭을 하고 있는 사람들의 시선의 차이점에 대한 생각을 보여주는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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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코르 - 인간이 만든 신의 나라
차장섭 지음 / 역사공간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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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국명인 캄보디아의 땅에 위치한 고대 문명인 앙코르문명이 남긴 유적지들인 앙코르 사원들이 그동안에는 밀림에 가려져서 사람들의 눈을 비하고 있다가 현재에는 많은 관광객을 불러 들이는 나라의 중요한 사원이 되었는데 그러한 앙코르 사원들을 분류를 하고 곳곳에 위치한 사원들을 둘러보고 사진과 함께 설명을 하고 있는 여행기 또는 답사기라고 부를수가 있는 책인것 같다.

 

캄보디아의 역사에 남긴 앙코르의 흔적은 ?

캄보디아의 국기에 들어가는 건물의 모습이 바로 앙코르와트 사원인데 공업이 발달을 하지못한 국가의 모습에서 관광과 농업으로 생존을 하기에는 조상들이 물려준 유적의 힘이 많은 부분을 차지를 한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는것 같다.

 

캄보디아가 자랑을 하는 호수인 톤레삽호수를 거슬러 올라가면 나오는 앙코르는 농업을 중시하는 국체에 맞게 건기와 우기로 나뉘는 환경에 맞추어서 물을 저장을 하는 저수지를 만들어서 백성들의 생활에 많은 도움을 주었던 옛황실의 흔적들이 남아있는데 저수지의 가운데에 인공섬을 만들고 물을 지배를 하는 신을 모신 사원을 만들어서 물을 관리를 하던 모습을 남기고 있다

과거의 흔적인 저수지는 많은 부분들이 오랜 시간을 거치면서 관리가 안되어서 평야로 변하고 말았는데 과거의 모습을 간직한 사원의 유적이 남아서 과거의 모습을 알려준다.

 

앙코르 문명의 쇠퇴 ?

앙코르 문명의 전성기에는 동남아를 지배를 하는 거대한 제국의 모습을 유지를 하였지만 제국을 유지를 하는데 필수인 교통로를 만들고 관리를 하는데 과거의 로마와는 다르게 우기와 건기의 구분이 많은 돈을 들어가게 만들었고 밀림에 자리를 하고있는 수도의 특성상 전성기에는 상관이 없던 문제들이 제국의 위력이 약화 되면서 많은 문제를 야기를 하였고 그러한 제국의 약체가 타국의 침략으로 수도가 파괴가 되면서 사람들이 도시를 버리고 다른곳으로 이전을 하면서 기억속에서 잊혀진 문명이 되었던 앙코르가 다시 사람들의 시선속으로 들어 오면서 현대인들에게 많은 수입을 주는 곳으로 변화가 되었다.

 

사원들의 변화

과거 앙코르의 시작에는 발전된 문명을 자랑을 하던 인도인들의 영향을 많이 받았는데 그들과 원주민들과의 관계는 침략이 아닌 공존으로 맺어 지면서 전설속에서도 공존을 그리고 있는데 인도인들의 영향으로 그들의 종교인 힌두교가 들어와서 최초의 모습은 힌두사원의 모습을 간직을 하고 있었고 나중에 황실의 영향으로 불교로 변화가 되면서 많은 사원들이 불교사원으로 변화가 되었다.

 

사람들을 한곳으로 모으는 종교의 힘은 강력한데 아무리 강력한 종교의 힘이라고 하여도 그것을 믿는 사람들이 변화를 하면 종교는 쇠퇴를 하고 새로운 모습으로 변화가 되는데 불교의 모습도 초기에는 대승불교의 모습을 유지를 하다가 태국의 침략으로 앙코르가 패망을 하면서 태국의 불교인 소승불교로 변화가 되었다.

 

힌두사원이 불교사원으로 변화가 되는 모습과 사원들을 건축을 하면서 변화되는 건축술을 보는 재미도 있는 책인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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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리의 지구사 식탁 위의 글로벌 히스토리
콜린 테일러 센 지음, 강경이 옮김, 주영하 감수 / 휴머니스트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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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에서 유래를 하였다고 알려진 우리나라에서 사용을 하는 단어로는 카레 만국 공통의 단어로는 커리에 대하여서 과거에는 인도의 향신료를 사용을 하여서 만들어지는 수많은 음식에 대하여서 단일하게 그것도 자국의 언어가 아닌 다른 국가의 언어로 합일을 하여서 사용을 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생각을 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이제는 커리에 대하여서 일종의 고유한 음식문화로 인정을 하면서 많은 국가에서 커리를 사용을 하면서 하나의 인식으로 굳어가고 있는 현상을 보여줍니다.

 

커리 : 카레 다양한 향을 가지고 있는 식물을 사용을 하여서 만들어진 향신료의 하나로 그것을 베이스로 하여서 만들어진 음식을 통칭을 하는 단어로 사용이 됩니다.

카레는 커리가 일본에 들어가면서 일본어로 변형이 되었던 카레가 한국에 들어와서 고유의 단어로 취급이 되고 있지만 커리와는 상당한 부분에서 차이가 발생을 하는 음식입니다.

 

인도를 영국이 지배를 하면서 처음에는 영국인들이 인도에 들어와서 인도인의 생활상과 음식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문화가 형성이 되었고 인도 들어온 많은 영국인들을 통하여서 본토로 커리의 문화가 전하여지는 통로가 형성이 되었고 영국이 지배를 하였던 수많은 식민지에 노동력을 공급을 하기 위하여서 인도인을 데리고 가면서 현지에 들어간 인도인들이 자신들의 식문화를 현지에 전하면서 커리의 다양성이 무궁무진하게 넓혀지는 계기가 되었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다양한 향신료가 재배가 되는 지역이면서 이웃에 있는 향신료들이 들어와서 중계가 되어지는 중계지의 역할을 하였던 인도에서 다양한 향신료를 사용을 하여서 음식을 만들어 먹는 문화가 형성이 되었고 그러한 그들의 문화는 여러 국가로 일을 하기 위하여서 이동을 하면서 현지에서 재배가 되어지는 향신료를 사용을 하여서 고국의 음식을 만들어 먹는 문화가 전하여지고 현지에 있던 사람들도 같이 먹으면서 다양한 곳에서 고유의 문화로 형성이 되어지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인도에서는 커리잎이 들어가기 때문에 커리라고 불리던 음식이 다른 고장에서는 커리잎의 생산이 안되기 때문에 안들어가는 경우도 많은데 그러한 경우에도 커리라는 이름으로 불리면서 다양한 음식이 만들어 졌고 그러한 음식에 대하여서 기존의 방법과는 다른 음식이는 생각과 남성들에게 상당히 유용하게 작용을 한다는 사실을 강조를 하는 상인들의 접근법으로 인하여서 더욱 많은 사랑을 받는 음식으로 자리를 잡았다는 것이 정설인 것 같습니다.

 

세계에서 통용이 되어지고 있는 커리를 만들어 먹는 다양한 방법에 대하여서 소개를 하면서 일본에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카레가 왜 일본인들이 기존에 먹었던 음식과는 상반이 되어지는 성격을 가지고 있는데도 많은 사랑을 받는지에 대하여서 보여주는 일면은 메이지 유신을 거치면서 서양의 문물에 대하여서 가지고 있던 일본인들의 호기심과 다양한 음식을 먹어서 왜소한 체격을 서양인과 비슷하게 만들기 위하여서 노력을 하였던 정부의 방침이 결합을 하면서 만들어진 음식이라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본서에는 없는 부분이지만 부록으로 삽입이 되어있는 우리나라에서 등장을 하는 카레의 모습은 식민지 시절에 들어온 서구의 음식이라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고 간단하게 먹을수가 있으면서 다양한 영양소를 골고루 포함을 하고 있다는 사실로 인하여서 사랑을 받았고 분식에 대한 강제력이 동원이 되었던 시기에도 카레에 대하여서는 상당한 부분에서 혜택을 주었다는 사실이 카레가 한국인의 입맛에 맞는 음식으로 자리를 잡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일본에서 들어온 카레의 영향으로 인도 전통의 방식으로 만들어지는 커리와는 상당한 차이점이 있지만 여행의 자유화로 인하여서 인도에서 직접 경험을 하였던 음식에 대한 생각으로 한국에서도 인도 음식점이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과 함께 커리와 카레라는 단어를 사용을 하여서 인도음식에 대하여서 가지는 고정관념에 대한 거부감이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도 함께 보여주고 있는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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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왜곡하는 한국인 - 엉터리 국사교과서를 비판한다
김병훈 지음 / 반디출판사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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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에 대하여서 상당한 부분이 진실이 아니고 왜곡이 가하여지고 있다는 사실에 대하여서 깊이있게 논하고 있는 책입니다.

 

우리나라와 옆에 있는 가까운 이웃이면서 많은 악감정이 남아있는 일본에 대하여서 교과서에서 가르치고 있는 부분이 얼마나 많은 부분에서 일본을 지우고 있는지에 대하여서 설명을 합니다.

 

고대의 경우에 들어나는 각국의 교류관계에 대하여서 일본과의 관계에는 일방적으로 삼국에서 문화를 전수를 하고 일본에서 들어오는 부분은 없었다는 의미를 두고 있는데 그러한 관계에서 들어나는 일본군의 백제부흥군에 대한 전폭적인 지원의 문제나 아니면 백제왕자들의 일본 체류와 같은 사연 신라를 침입을 하였던 왜,왜구,왜왕이라고 칭하고 있는 일본과 관련이 있는 부분에 대하여서 아무런 이야기가 없는데 그러한 부분에 대하여서 찾아보면 일본에 건너갔다고 하는 문화적인 부분들도 우리나라도 중국을 거치면서 받아들였던 문화이고 그것을 상대적으로 거리가 있는 일본으로 전파를 하면서 함께 교류를 하였다고 보는 것이 진실인 것 같지만 일본의 식민시대를 거치면서 왜색을 벗어나기 위하여서 노력을 하였던 사학계의 역할로 인하여서 이웃을 하고 많은 교류가 있었다고 생각이 되어지는 일본에 대하여서 아무런 이야기가 없는 반쪽자리 교과서를 만들어서 학생들에게 교육을 하는 것은 문제라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우리나라에서 전하고 있는 일본의 이미지는 왜구라는 단어를 사용을 하면서 우리에 비하여서 상대적으로 문화가 저열한 야만인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우리에게 스승의 역할을 할 수가 있는 국가는 오직 중국만이 유일하다는 생각을 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지만 반도에서 벗어나지 못한 시점에서 면적과 인구에서 일본에 밀려버린 현실을 잊고 일본에서 고유의 방법으로 발전을 하고 있던 실상을 잊어버리고 해안가에 면하여서 많은 공격을 하였던 해적집단의 모습만을 정형화 하여서 일본을 낮추어서 생각을 하는 사상이 만연을 하였다는 것을 알려주면서 고대에 기록이 되어있는 삼국과 일본과의 교류가 들어나는 일본의 고사기와 일본서기에 등장을 하는 부분들과 삼국사기에 등장을 하는 부분들을 보면서 집합을 한다면 상당한 교류가 있었고 그러한 부분에서 백제가 차지를 하는 부분이 많았고 고구려와 신라는 상대적으로 적은 관계를 유지를 하였다는 사실을 볼수가 있습니다.

 

초기에는 일본이 중앙집권을 하는 정권이 발생을 하는 시기가 우리나라에 비하여서 늦었고 일본의 전토를 영유를 하는 세력의 등장이 늦었지만 일본이 나름의 방법으로 발전을 거듭을 하면서 그들만의 고유한 역사와 문화를 만들어가고 있던 시기에 우리나라는 통일을 하는 신라부터 시작을 하여서 중국의 문화에 대하여서 숭배를 하고 우리고유의 문화에 대하여서 버리는 행위를 하면서 차이점이 발생을 하였다는 사실을 보여주면서 일본에서 만들어진 그들만의 문화와 중국을 본받아서 모든 것을 중국과 비슷하게 하였던 우리나라의 현실에 대한 차이점을 설파를 하면서 우리와 비슷한 레벨로 생각을 하는 일본이 상대적으로 자신들만의 문화를 발전을 시키었던 문명국이고 지금의 모습에서는 차이점이 많이 발생을 하였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일본에 대하여서 극일의 감정을 가지고 바라보는 것이 현재에 벌어지고 있는 진실에 대하여서 눈을 감고 상대방에 대하여서 진실성을 가지고 보는것에 비하여서 문제가 많다는 사실과 그러한 문제로 인하여서 서로 같은 동류의 취급을 받는 것 보다는 진실은 인정을 하고 고칠 것은 고치는 것이 좋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대부분의 지면이 일본과 관련이 있는 부분을 다루고 있지만 우리의 역사에서 아직은 많은 사람들이 직접 경험을 하면서 살아있는 역사로 남아있는 6.25동란의 현장과 민주화의 과정에서 벌어졌던 많은 인명살상의 사건들이 어느새 지워지고 있는 현실에 대하여서 그러한 아픔도 들어내고 교육을 하여서 진실을 찾아가는 것이 올바른 길이라는 것을 강조를 하는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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