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미국사에 던지는 질문 - 인디언, 황야, 프런티어, 그리고 국가의 영혼 ㅣ 세미나리움 총서 7
프레더릭 E. 혹시, 피터 아이버스 엮음 | 유시주 옮김 / 영림카디널 / 2000년 1월
평점 :
품절
우리가 알고 있는 '아메리카 원주민'의 모습은 '깃털모자를 쓰고 알록달록하게 물감으로 얼굴을 칠한 뒤 괴상한(?) 소리를 지르며 말을 달리는 미개인'이다.
최근 이런 인식이 많이 고쳐지고는 있지만, 아직도 원주민은 '이상할 정도로 미개하게 산 착한 야만인'이나, '19세기 이래로 사라져 버린 별 볼일 없는 것들'로 여겨지고 있다.(그래서 최근까지 우리나라에 나온 '원주민 관계 서적'도 대부분 19세기에 일어난 일만 다루며, 그들이 '알쏭달쏭하고 알아들을 수 없는' 자연친화적인 말만 하는 '착한 바보'들이었거나, 그 반대로 멍청한 야만인이었다고 말하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이런 인식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는 우리네 역사만 보더라도 쉽게 알 수 있다.
미 원주민을 '예나 지금이나 자연만 사랑하며 현대문명을 뿌리치고 사냥과 채집만 하고 사는 사람들'로 여긴다면, 한국(과 흔히 우리가 이북以北이라고 부르는 '조선') 사람들도 '21세기인 지금도 농사만 짓고 흙으로 만든 초갓집에서 살며 가족주의와 유교만 받든 채 절대로 바뀌지 않는 족속'이라고 불러야 할 테니 말이다.
이 책은 바로 이런 잘못된 인식을 바로잡아 주고, 그동안 '잘 모르는 영역'으로 남아있던 '20세기의 원주민 역사'(이자 서구 문명과 갈등하며 스스로를 바꿔왔던 우리와 비슷한 사라들의 이야기)를 꾸미지 않고, 솔직하게(!) 가르쳐 주는 보고서이다.
이 책에서는 주문을 외우며 괴성을 지르는 '족장'이나, 가죽옷을 입고 도끼를 든 원주민 전사나, 말 타고 사냥하는 원주민은 찾아볼 수 없다. 단지 - 다른 인종이나 민족보다 탐욕스럽지도, 그렇다고 특별히 깨끗하지도 않은 - '보통 사람'들이 자신들의 빼앗긴 땅을 변호사와 접촉해서 되찾으려고 하고, 잃어버린 옛 문화와 현대 문명을 어떻게든 접붙이려고 하며, 언론과 영화를 통해 잘못 알려진 인상을 고치려고 하는 이야기가 나올 뿐이다.
아울러 그들 사회가 외부인(WASP, 멕시코계, 미국 흑인)과 접촉하면서 어떻게 갈등했는지, 그들 가운데 전통과 현대로 갈라져 싸운 사람들은 '왜' 싸웠는지, 그들은 어떻게 농사짓고 집을 지으며 물고기를 잡고 살아갔는지(서부영화나 '초기 청교도를 다룬 영화'[:예 - <주홍 글씨>, <포카혼타스>]에서 이런 원주민을 만난 적이 있는 사람 손들어 보세요) 그들 사회에서 세대간의 갈등이나 백인에 대한 열등 의식이 어떻게 일어났는지, '정신적인 야만인'으로 알려지기만 한(!) 그들의 물질생활은 어떠했는지를 이 책만큼 깔끔하게(!) 설명해 준 작품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이 책은 바로 이 때문에 오리엔탈리즘에서 벗어나 있으며, 무조건 미화하는 복고주의와도 거리가 있다. '솔직 담백하게' 문제점을 짚어내면서 환상과 인식의 '거품'을 걷어내고 있는 것이다.
'인도'하면 - 컴퓨터 산업을 제쳐놓고 - 무작정 '정신과 요가'만 떠올리는, '아랍'하면 - 컴퓨터 기사나 교수, 학자[:예 - 에드워드 사이드]를 배출하고 '알 자지라' 같은 방송국을 만드는 '저항'을 제쳐놓고 - '광신과 무지함'만을 떠올리는, '아프리카'하면 - 20세기에 스스로의 힘으로 이루어낸 독립과 민주화[:예 - 넬슨 만델라와 anc가 이끌어낸 민주화], 중세에 유럽 못지 않게 발전한 왕국[:가나, 말리, 아비니시아, 베닌]을 무시하고 - 동물이 뛰노는 공원이나 '미개인'들, 가난만 떠올리는 우리에게,
이 책은 '환상'을 깨뜨리고 현실을 바로 알 수 있는(!) 능력을 키워주는 길라잡이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이다.(아울러 '미 원주민'하면 '야만'과 '착한 현자'라는 극단적인 두 공식만 지니고 있는 인식에도 이 책은 '약'이 되어줄 것이다!)
미 원주민 뿐 아니라 다른 원주민들(예 : 폴리네시아 원주민이나 대만 원주민, 남미 원주민, 아프리카의 수렵민족들)을 다룬 책에도 이런 걸작이 나오기를 바라마지 않는다.(아, 그리고 이 책은 '선동'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침략 사실'만을 '담담하게' 말한다. 그래서 더 무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