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도쿄 우에노 스테이션
유미리 지음, 강방화 옮김 / ㈜소미미디어 / 2021년 9월
평점 :
"그날-, 시간은 사라졌다. 시간은 끝났다. 그런데 그때가 쏟아진 압정처럼 곳곳에 흩어져 있다. 그때의 슬픈 시선에서 눈을 돌리지 못하고 그저 괴로워한다-. 시간은 사라지지 않는다. 시간은 끝나지 않는다." (p.116)
알 수 없는 어두운 곳으로 끌려들어 가는 듯한 두려움을 느끼게 하는 어두컴컴한 표지. 책장을 넘기기도 전 침울한 분위기에 압도당한다. 도쿄 우에노 스테이션은 재일한국인 유미리 작가의 작품으로 2020년 전미도서상을 수상했다. 소외받은 사람들의 한 맺힌 절규를 담아낸 탓이었을까,,, 전미도서상 수상을 축하하는 일본 언론을 향해 자신은 일본인이 아니기에 도코 우에노 스테이션의 수상에 대한 일본 문학 성과 보도는 부당하다는 일침을 날렸다고 한다. 한국인에게 흐르는 항일 DNA 때문일까, 일본어로 말을 하고 글을 쓰지만 일본의 성과는 아니라는 그녀의 단호함이 무작정 멋지다.
1964년과 2020년(코로나로 2021년 시행) 도쿄 올림픽과 동일본 대지진 등 일본의 근대화 중심에 서있던 한 노숙자의 시선으로 전개된다.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아도, 나쁜 짓을 저지르지 않아도 가족과 집을 떠나 노숙을 한다는 이유로 전해지는 차별의 시선을 견뎌내야 했던 우에노 역의 노숙인을 화자로 삼아 차별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던 재일한국인 2세로 스스로의 경험담을 한껏 녹여냈으리라.
진입하는 열차에 몸을 던지는 노숙자 가즈.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선택한 타향살이 열심히 평범하게 살고자 했지만 세상은 그에게 결코 호락호락한 일상을 내어주지 않는다. 천황의 아들과 같은 날 태어난 아들 고이치의 급사로부터 시작된 불행은 그의 곁을 지키고 있던 아내의 급사로 이어진다. 천황의 아들처럼 풍족한 삶을 누리기 바라던 아들과 조용히 그의 곁을 지키던 아내의 죽음은 가즈의 일상을 흔들기에 충분하다.
"아침이 되었다. 고이치가 죽고 나서 다섯 번째 아침이었다. 고이치가 죽기 전에는 늘 눈꺼풀 안에서 잠이 깨어 내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고 지금이 언제인지를 인지하고 나서 눈을 떴는데, 고이치가 죽은 이후로는 고이치가 죽었다는 사실이 나를 흔들어 깨웠다." (p.80)
타향살이 노동자로의 고된 삶을 마치고 평화로운 일상을 준비하고 있던 가즈는 가족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세상밖으로 내몰리고 스스로 선택한 노숙자의 삶은 녹녹하지 않다. 버려진 캔과 잡지를 주워 팔고, 일본인임에도 주거불분명으로 재난 보호시설의 입소는 거부당한다. 세상에서 버려진 채 온몸으로 쏟아지는 빗줄기와 바람을 이겨내야하는 것이 노숙자로서의 삶이었다. 공원의 한켠을 지키며 살고 있지만 높은 사람이라도 지나갈 때는 번호표 한장을 의지한 채 강제철거를 당해야하는 존재일 뿐이다.
소외받는 노숙인의 삶을 써내려가기 위한 저자의 노력과 섬세한 시선이 놀랍다. 주인공 가즈의 리점으로 서술된 사회적 약자의 현실, 가족을 부양하기 위한 고된 노동자의 삶에서 가족을 잃은 공허함을 이기지 못한 노숙자의 삶으로 이어지는 고독한 삶은 표지가 전한 암울함을 여운으로 남긴다. 달리는 기차역으로 뛰어들만큼 힘들기만한 소외받는, 외면받는 삶을 살아냈지만 그들 또한 항상 밝은 빛을 그리워하고 있음을...
"그저 술기운에 슬픈 감정 쪽으로 흘러가지 않도록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다. 버릴 수 없는 지나간 추억은 모두 상자에 담아 잠갔다. 상자에 봉인을 한 건 시간이었다. 시간으로 봉인된 상자를 열어서는 안 된다. 열자마자 과거로 굴러떨어지고 말 테니까." (p112)
[ 네이버카페 컬처블룸 서평단으로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작성한 주관적인 후기입니다 ]
#도쿄우에노스테이션#유미리#소미미디어#컬처블룸#컬처블룸서평단#노숙자#재일한국인#전미도서상수상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