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탁빈관 - 대한제국판 스파이 액숀
정명섭 지음 / 인디페이퍼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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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인생의 목숨은 초로와 같고
이씨조선 오백년 양양하도다.
이 몸이 죽어서 나라가 산다면
아! 이슬같이 기꺼이 죽겠노라!" (p.226)

역사소설은 부담스럽다는 생각에 잘 읽지 않는 편이지만, 이번에 읽게된 '손탁 빈관'은 '대한제국판 스파이 액숀활극'이라는 살짝 코믹스러운 한 줄에 반해 읽기 시작했다. 대한제국판 킹스맨이 시작된 곳을 독일의 여성 손탁이 운영하던 서양식 호텔 '손탁빈관(손탁호텔)'을 배경으로 한 팩션소설로 일제 강점기에 있었던 그 시절 일본의 무례함에 굴하지 않고 저항하던 이들의 활약상을 대한제국의 비밀정보기관 제국익문사와 함께 그려낸다.

일본군의 뻔뻔한 행동들에 몸서리를 치고 있던 한성과 궁궐을 지키는 애국심 충만한 시위대 한정혁은 열심히 훈련하고 있는 대한제국의 시위대를 비웃는 일본장교의 무례함을 참지 못하고 그를 공격하기에 이르고, 이 사건으로 말미암아 한정혁은 곤경에 처하고 박승환 참령은 아끼는 군인 한정혁을 구하기 위해서 그를 시위대에서 해고 한다. 시위대에서 해고된 한정혁은 참령의 도움을 받아, 그를 부를때 언제든지 복귀할 수 있다는 다짐과 함께 시위대가 보이는 손탁 빈관의 보이로 취업한다.

대한제국을 지키고자하는 한정혁의 의지를 이어주기 위한 것일까... 그즈음 비밀 첩보기관 제국익문사 요원이 암살당하고, 업친데 덥친격으로 제국익문사의 수뇌부가 몰상당하는 사건이 이어진다. 연이은 사건으로인해 한 순간도 안심할 수 없지만 마지막 남은 요원 갑급 통신원 17호는 동료들을 배신한 요원과 일본의 부당함을 알리고 대한제국의 독립을 도와줄 이웃 열강을 찾기 위한 위험하고 비밀스러운 임무를 수행할 사람을 찾기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시시각각 다가오는 일본의 눈길을 피하기 어렵다.

위험하고 위태로운 갑급 통신원 17호에 눈에 띈 한사람이 있었으니 그가 바로 어울리지 않는 호텔보이 손탁 빈관에 몸담고 있는 한정혁이었다. 까닭모를 시선과 알 수없는 크고 작은 일들에 휘말리는 보이 한정혁. 비록 스스로 비밀스러운 업무에 참여한 것은 아니지만 대한제국의 독립과 우리나라를 휘젓고 다니늠 파렴치한 일본군을 쫓아내기 위한 그의 활약은 갑급 통신원 못지 않다.

일제강점기 마지막 주군 고종황제와 나라를 지키기 위한 한 사람 한 사람의 크고 작은 노력들이, 나라를 위해 이름을 버리고 아깝지 않게 목숨을 내어 놓는 그들의 감동스러운 이야기가 역사적 사실과 약간의 허구가 더해져 흥미롭게 이어진다. 그 시절 그 분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지금의 대한민국이 있다는 사실에 뭉클해진다고나 할까...

"일본에 저항하는 게 아니라 일본의 부당한 권력과 간섭에 저항하는 걸세. 나는 원칙대로 석방자 명단을 만들었지만 법부대신 이하영과 통감부에서는 자신들에게 저항했던 죄인들을 명단에서 제외했지." (p.137)

"나라고 왜 고민이 없었겠나. 하지만 내가 부서져 원칙이 세워진 다면 기꺼이 나를 부수겠네." (p.136)

마지막에 더해진 시대적 사건정리까지, 부담스러운 역사를 팩션소설로 흥미롭게 접할 수 있는 의미있는 시간이었다.

[ 네이버카페 책과콩나무 서평단으로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작성한 주관적인 후기입니다 ]

#손탁빈관#정명섭#인디페이퍼#대한제국#헤이그밀사#치열한첩보전#책과콩나무#독립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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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모자를 쓴 여자 새소설 9
권정현 지음 / 자음과모음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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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민은 그날 보았던 검은 모자를 똑똑히 기억한다."

검은 모자를 쓴 여자의 알 수 없는 눈길이 나를 쫓고 있다. 신경과민이라 여기고 있었으나 어느 날 새벽 우연히 내다 본 창밖의 풍경은 의심의 깊이를 더해 간다. 검의 모자를 쓴 여인의 시선을 의식하는 아이를 잃은 여자 ‘민’의 시선은 혼란스럽기만 하다.

4년간의 공무원 수험생활의 종지부를 찍으며 같은 수험생이었던 남자친구와 결혼한 민. 이유없는 무심함으로 무료한 수험생활을 이어가던 그녀에게 살갑게 다가온 남편과 결혼하고 짧지 않은 기다림 끝에 아이를 얻었지만 불의의 사건으로 아이를 잃는다. 불행은 또 다른 불행을 동행하는 건지... 아이를 잃고 다시금 평범한 일상을 이어가고 있다고 여기던 그녀에게 또 다른 불행이 문을 두드린다. 검은 빛으로 가득찬 첫 인상처럼 그녀의 고통의 깊이를 공감할 수 없다.

"민은 지금도 사람에게는 저마다 운명의 궤도 같은 것이 있어서 발버둥 치려 해도 기어이 그 궤도 속으로 끌려 들어가는 게 인생이라고 믿고 있다." (p.56)
 
어느 날 갑자기 그녀의 가족이 된 입양한 아이 동수와 검은 고양이. 아이와 고양이는 마치 형제처럼 의지하며 그녀의 곁에 머물고 있다. 진실을 알 수 없는 의문의 사건들이 이어지는 그녀는 진실과 환상 사이를 넘나들듯 혼란의 소용돌이 속에서 헤어나올 수 없다. 어쩔 수 없는 사고였을까,,, 보이지 않는 어떤 것에 휘말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인간의 나약한 심성에 기반한 미스터리가 끝없이 이어진다.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 세살박이 아들 은수에게 일어난 알 수 없는 비극이 단지 사고였을 뿐일까. 다정하기만 했던 그녀의 남편은 흔치않은 사건을 서둘러 마무리 하려고 했을까. 평온함을 되찾을 무렵 입양된 그레이트 데인 무지의 실명, 홀로 여행을 떠나있던 기간중 기다렸다는 듯이 발생한 화재와 침정엄마의 질식사 그리고 모든 사건의 끝에는 은수를 잃은 뒤 가족으로 맞이한 아들 동수와 검은 고양이 까망이가 연결된다.

그녀를 조롱하듯 일어나는 크고 작은 사건들에 대한 의심은 어느새 합리적인 이유를 만들며 그녀를 불신의 깊은 늪으로 이끈다. 극도의 예민함이 불러일으킨 불안과 망상일까... 현실과 상상을 오가던 의심은 남편의 차에게 발견된 노트 한 권을 통해 현실이 되어간다. 현실과 망상을 이어가던 민의 불안은 결국 아이를 잃은 엄마의 상실감으로 귀결된다.

"형체 없는 얼굴에 죽은 은수의 얼굴이 겹쳤다. 죽은 자의 얼굴 위에 수의가 놓이고 관이 놓이고 상여 소리가 지나갔다. 죽음이 저희끼리 다투며 반복해서 산 자들을 위협하고 있었다. 타다닥, 날갯짓 소리. 민은 눈을 크게 떴다. 나비 떼였다. 송장나비가 날갯짓하고 있었다. 민은 눈을 가리며 무릎을 꿇었다. 수천수만 마리의 흰나비들이 군무를 추듯 민을 중심으로 소용돌이쳤다." (p.172)

아이를 잃은 엄마의 심리상태가 검은 모자를 쓴 여인으로 투영되어, 망상과 불안으로 섬세하게 묘사된다. 마치 자신의 꼬리를 물고 있는 우로보로스 처럼.

[ 네이버카페 책과 콩나무 서평단으로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작성한 주관적인 후기입니다 ]

#검은모자를쓴여자#권정현#자음과모음#새소설09#미스터리심리환상극#책과콩나무#서평단#심리스릴러#우로보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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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 뷰티 (완역판)
애나 슈얼 지음, 이미영 옮김 / 레인보우퍼블릭북스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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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 뷰티' 날렵하고 잘빠진 명마에 어울리는 이름이다. 애나 슈얼의 블랙 뷰티는 말의 시선으로 그들을 대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14살때 심하게 다쳐 거동이 불편한 그에게 평생 다리가 되어 주었던 '말'들의 이야기를 따뜻한 시선으로 전한다. 다정하고 사랑스러운 말이 간혹 거칠게 변하는 건 그들의 잘못이 아닌 전적으로 인간의 욕심 때문이라는 것을....

좋은 환경에서 태어나 잘 자라 선한 사람들과 말로서의 첫 발을 내딪었지만 모두다 그러하듯 굴곡진 생을 살아냈던 블랙 뷰티라는 말이 화자가 되어 자신의 인생을 회고한다. 사람들의 욕심으로 갇힌 채 - 먹이와 안전한 잠자리를 제공한다고는 하지만 - 그들이 원하는 대로 살아야 하는 말들 - 동물들의 삶 - 의 삶을 가만히 드려다본다. 모든 사람들이 첫 번째 주인 고든 만큼 선하지 않고, 모든 마부들이 존처럼 그들을 이해하지 않는다.

거친 매질과 불편한 마구를 통해 그들의 자유를 빼앗고 고통으로 몰아간다. 그들의 시선에서는 그들을 이용하는 인간들에게 생명을 지닌 무엇인가로의 대우를 바라는 건 사치일 뿐이었다. 그들 또한 살기위해 반항하고, 살기위해 거칠어질 수 밖에 없었다.

"어느덧 길들이기를 해야 할 때가 왔어. 내게는 썩 좋지 않은 시간이었지. 남자들 여러 명이 나를 붙잡으러왔어. 마침내 나를 초원 구석으로 몰아넣은 다음 한 사람이 내 앞갈기를 잡고 또 다른 사람이 내 코를 잡았어. 너무 꽉 붙들어서 숨도 쉴 수 없을 지경이었지. 그런 다음 또 다른 사람이 억센 손으로 내 아래턱을 잡고 내 입을 비틀어 벌렸어. 그렇게 강제로 내 입에 고삐를 채우고 재갈을 물린 다음 한 사람이 고삐로 나를 끌고, 또 다른 사람은 뒤에서 채찍으로 때렸지. 이게 사람의 친절함에 대해 내가 얻은 첫 경험이었어. 모든 게 완력으로 이루어졌지." (p.39)

말이 주요 교통수단이었던 그 시절을 살아보지 않았던지라 언급되는 마구들이 낯설다. 원하는 곳을 볼 수 없으니 불안에 떨 수 밖에 없을 것으로 예상되는 오로지 앞만 바라보게 눈을 가리는 마구나, 말들에게 처한 상황은 조금도 고려하지 않은 채 꼿꼿하게 머리를 들어야하는 제지고삐, 미용을 위해 잘린 꼬리 등 인간의 잔혹한 욕심을 그럼에도 받아들이고자 노력했던 그의 과거를, 담담히 회고한다.

동물들을 인간의 욕심에 맞춰 재단하고 있는 건 그때나 지금이나 별반 다르지 않았나보다. 지금도 여전히 그들의 건강은 무시한 채 더더더 작은 강아지로 개량하기 위해 노력하고, 몽글몽글한 꼬리를 만들기 위해 서슴없이 꼬리를 잘라버리고 있으니... 반려강아지를 키우면서 나 또한 우리 강아지에게 중성화를 시작으로 부족한 산책과 인위적인 미용 등 수없이 많은 못된짓을 하고 있으니 그들을 비판할 자격도 없다.

엄마와 함께 살던 푸른 초원 다키로 불리우던 시절의 막연한 행복을 지나 당당하게 어른이 되어 고든 가에서 훌륭한 명마로써의 자존감 충만한 청년기를 지나 자유를 빼앗긴 요크 거에서는 고된 삶 그리고 다시 블랙 뷰티로 조이에게 돌아오기까지... 그에게 상처를 준 것도, 위로를 건낸 것도 인간이었다.

말의 시선으로 쓰여진 어른들을 위한 동화라는 설명이 멋지게 어울리는 책이다. 말 못하는 동물이라는 이유로 그들에게 얼마나 많은 잘못을 서슴없이 저지르고 있는지 반성하는 시간을 갖게 된다.

"선생님 말씀이 맞아. 사랑이 없는 종교는 없어. 사람들은 자신의 종교에 대해 마음껏 말해도 되지만, 사람과 짐승을 선하고 친절하게 대하라고 가르치지 않는다면 그런 종교는 모두 엉터리란다. 제임스. 상황이 뒤집히면 그런 종교가 설 자리는 없을 거야." (p.81)

[ 네이버카페 몽실서평단으로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작성한 주관적인 후기입니다 ]

#블랙뷰티#애나슈얼#이미영#레인보우퍼블릭북스#감성동화#동물관점소설#몽실북클럽#몽실서평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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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엄호텔 프랑스 여성작가 소설 2
마리 르도네 지음, 이재룡 옮김 / 열림원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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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페이지가 채 못 되는 얇은 두께와 단조로운 표지는 짧은 시간 가벼운 독서를 기대하게 했으나 나의 완벽한 오판이었다. 베르나르 베르베르나 기욤 뮈소의 경험으로 개인적인 성향으로 읽기 어려워하는 소설이 프랑스 소설인 걸 알고 있었음에도,,, 사실 요즘 베르나르 베르베르 작품이 한결 편해진 덕분에 용기 있게 선택했지만 역시 나에게 프랑스 소설은 좀 어렵다. ^^;;

할머니가 유산으로 남긴 늪지대에 위치한 낡은 장엄호텔을 지키고 있는 '나'를 화자로 장엄호텔과 함께 남겨진 두 언니 아델과 아다와 함께하는 일상을 전한다. 생각만으로도 꿉꿉해지는 늪지대에 위치한 낡은 호텔이지만 그녀는 매일 밤 네온사인을 밝힌 채 장엄호텔을 찾는 손님을 기다린다.

오래되고 낡은 장엄호텔이 무너지듯 정체불명의 전염병으로 할머니와 언니들의 죽음을 맞이하고 오로지 '나'만 무너져가는 장엄호텔에서 살아남는다. 세월로 말미암아 성한 곳이 남아있지 않은 그곳을 고치고 메우며 지켜낸다. 무너져내리는 그곳을 떠나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 생각한다. 어쩌면 머지않아 나에게도 닥칠 수 있는 세월의 무게감일지도 모르겠다.

지팡이를 짚고 꼿꼿이 장엄호텔을 지키던 할머니와 늪지대의 그곳을 몸서리치며 거부하던 엄마. 엄마는 왜 그토록 싫어하던 그곳에 오로지 그녀만 남겨두고 떠났을까... 장엄호텔만큼이나 외로웠을 그녀가 안타깝다. 어두운 밤 네온사인을 밝히고 그곳을 지키듯 그녀가 살아가는 이유가 장엄호텔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막힌 배관을 뚫고, 물이 새는 지붕을 고치고, 이제는 낡아서 끊어질 것만 같은 커튼을 세탁하면서 장엄호텔을 지키며 그녀의 삶을 살아낸다. 오래되고 낡은 그곳을 Splendid라 부르는 건 끝까지 그곳을 지켜내는 그녀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짧은 단문으로 이어지는 글줄이 머리솟을 멤돌며 좀 처럼 속도를 내지 못하는 것이 살짝 아쉬웠지만 프랑스 소설 특유의 정서를 충분히 만끽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할머니와 언니들은 늪의 일부가 되었다. 장엄은 밤낮으로 열려 있다. 손님은 언제나 환영이다. 호텔로 오는 길목에 눈이 쌓였다. 장엄에 서는 늪이 잘 보인다. 눈에 덮여도 늪은 늪이다. 할머니의 사업가다운 정신 덕분에 이 고장의 늪 중에서 호텔이 있는 유일한 늪이다. 늪지대 어디에서도 장엄이 잘 보인다. 밤이면 네온사인이 빛나 아주 멀리서도 잘 보인다. 하늘과 눈 위에 두 점이 있다. 그건 장엄의 네온사인이 반사된 빛이다." (p.170)

[ 네이버카페 컬처블룸 서평단으로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작성한 주관적인 후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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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우에노 스테이션
유미리 지음, 강방화 옮김 / ㈜소미미디어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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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시간은 사라졌다. 시간은 끝났다. 그런데 그때가 쏟아진 압정처럼 곳곳에 흩어져 있다. 그때의 슬픈 시선에서 눈을 돌리지 못하고 그저 괴로워한다-. 시간은 사라지지 않는다. 시간은 끝나지 않는다." (p.116)


알 수 없는 어두운 곳으로 끌려들어 가는 듯한 두려움을 느끼게 하는 어두컴컴한 표지. 책장을 넘기기도 전 침울한 분위기에 압도당한다. 도쿄 우에노 스테이션은 재일한국인 유미리 작가의 작품으로 2020년 전미도서상을 수상했다. 소외받은 사람들의 한 맺힌 절규를 담아낸 탓이었을까,,, 전미도서상 수상을 축하하는 일본 언론을 향해 자신은 일본인이 아니기에 도코 우에노 스테이션의 수상에 대한 일본 문학 성과 보도는 부당하다는 일침을 날렸다고 한다. 한국인에게 흐르는 항일 DNA 때문일까, 일본어로 말을 하고 글을 쓰지만 일본의 성과는 아니라는 그녀의 단호함이 무작정 멋지다.


1964년과 2020년(코로나로 2021년 시행) 도쿄 올림픽과 동일본 대지진 등 일본의 근대화 중심에 서있던 한 노숙자의 시선으로 전개된다.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아도, 나쁜 짓을 저지르지 않아도 가족과 집을 떠나 노숙을 한다는 이유로 전해지는 차별의 시선을 견뎌내야 했던 우에노 역의 노숙인을 화자로 삼아 차별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던 재일한국인 2세로 스스로의 경험담을 한껏 녹여냈으리라.


진입하는 열차에 몸을 던지는 노숙자 가즈.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선택한 타향살이 열심히 평범하게 살고자 했지만 세상은 그에게 결코 호락호락한 일상을 내어주지 않는다. 천황의 아들과 같은 날 태어난 아들 고이치의 급사로부터 시작된 불행은 그의 곁을 지키고 있던 아내의 급사로 이어진다. 천황의 아들처럼 풍족한 삶을 누리기 바라던 아들과 조용히 그의 곁을 지키던 아내의 죽음은 가즈의 일상을 흔들기에 충분하다.


"아침이 되었다. 고이치가 죽고 나서 다섯 번째 아침이었다. 고이치가 죽기 전에는 늘 눈꺼풀 안에서 잠이 깨어 내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고 지금이 언제인지를 인지하고 나서 눈을 떴는데, 고이치가 죽은 이후로는 고이치가 죽었다는 사실이 나를 흔들어 깨웠다." (p.80)


타향살이 노동자로의 고된 삶을 마치고 평화로운 일상을 준비하고 있던 가즈는 가족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세상밖으로 내몰리고 스스로 선택한 노숙자의 삶은 녹녹하지 않다. 버려진 캔과 잡지를 주워 팔고, 일본인임에도 주거불분명으로 재난 보호시설의 입소는 거부당한다. 세상에서 버려진 채 온몸으로 쏟아지는 빗줄기와 바람을 이겨내야하는 것이 노숙자로서의 삶이었다. 공원의 한켠을 지키며 살고 있지만 높은 사람이라도 지나갈 때는 번호표 한장을 의지한 채 강제철거를 당해야하는 존재일 뿐이다.


소외받는 노숙인의 삶을 써내려가기 위한 저자의 노력과 섬세한 시선이 놀랍다. 주인공 가즈의 리점으로 서술된 사회적 약자의 현실, 가족을 부양하기 위한 고된 노동자의 삶에서 가족을 잃은 공허함을 이기지 못한 노숙자의 삶으로 이어지는 고독한 삶은 표지가 전한 암울함을 여운으로 남긴다. 달리는 기차역으로 뛰어들만큼 힘들기만한 소외받는, 외면받는 삶을 살아냈지만 그들 또한 항상 밝은 빛을 그리워하고 있음을...


"그저 술기운에 슬픈 감정 쪽으로 흘러가지 않도록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다. 버릴 수 없는 지나간 추억은 모두 상자에 담아 잠갔다. 상자에 봉인을 한 건 시간이었다. 시간으로 봉인된 상자를 열어서는 안 된다. 열자마자 과거로 굴러떨어지고 말 테니까." (p112)

[ 네이버카페 컬처블룸 서평단으로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작성한 주관적인 후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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