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박의 여름
츠지무라 미즈키 지음, 구수영 옮김 / 내친구의서재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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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박은 나무에서 나온 수액이 굳어져 형성된 광물(보석)로 수액이 굳어져서 호박이 되기까지 대략 1000년 정도의 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그만큼 오랜 시간을 인고한 결과 만들어진다는 의미를 갖고 있음이다. 사실 책의 제목에 대한 궁금증이 생기기는 했지만 처음부터 찾아볼 생각을 하지 않고 있다가, 책장이 넘어갈수록 제목에 숨겨진 의미가 뒤통수를 간지럽히는 것 같아 ‘호박’의 의미를 찾는다. 긴 시간 한 방울씩 떨어져 모인 수액이 굳어져 단단해지기까지의 아이들의 고통을 담고 있다는 생각에 짧지 않은 책을 읽는 동안 내내 마음 한켠이 저리다.

오래전 운영되던 여름학교 터에서 어린 소녀의 것으로 추정되는 백골이 발견되는 것으로 긴 이야기가 시작된다. 어릴 적 여름학교를 잠시 경험했던 변호사 노리코는 노부부로부터 여름학교에서 발견된 백골이 자신들의 손녀인지 확인해 달라는 의뢰를 받고 망설인 끝에 미래학교를 찾게 되고 오래된 기억 속에 남아있던 친구 미카를 만나고 이들이 이야기는 다시 시작되는데,,,

조용하고 수줍은 많은 성격 때문인지 친구가 많지 않은 내성적인 노리코는 어느 여름 친구를 따라 조용한 산속에 자리 잡은 미래학교의 여름캠프에 참여하게 된다. 여름학교에서도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할까 봐 불안한 그녀의 마음을 읽은 것처럼 미래학교의 학생 미카와 친구가 된다. 다른 아이들과는 조금 다른 것 같은 어쩌면 노리코와 비슷할지도 모르는 미카와 마음을 나누게 된 사실에 기쁨을 느끼지만 눈에서 보이지 않으면 마음에서도 멀어지는 법. 여름학교를 그만두게 되면서 노리코의 기억에서 미카는 점점 사라진다.

그리고 오랜 시간이 흘러 노리코는 아이를 키우며 일을 하는 워킹맘 변호사가 되고 아이를 맡아줄 어린이집에 자리가 나지 않아 마음을 졸이고 있다. 지금까지 열심히 했던 일을 그만두고 싶지 않은 변호사 노리코와 엄마의 손길이 절실한 어린아이 아이코를 키우는 엄마 노리코의 심적 갈등은 미래학교 아이들이 맞닥뜨린 환경에 대해 조금 더 깊이 생각할 수 있는 기폭제가 된다.

"하지만 과연 시간의 문제일까. 만약 이 아이와 놀 시간을 만들더라도 노리코는 집중해서 아이와 그저 즐겁게 놀아줄 자신이 그야말로 없었다." (p.533)

따뜻한 부모의 손길이 절실한 어린아이들을 부모와 떨어뜨려 놓은 채, 스스로 생각하는 힘과 자립심을 가진 아이들을 키워내기 위한 미래학교가 평온하고 행복해 보이는 이곳이 진정으로 아이들을 행복하게 할 수 있는 곳이었을까.. 단지 어른들의 욕심을 채우기 위한 또래와 서로 의지하며 자립심을 키운다고 하지만 어린 시절 그들에게는 따뜻한 엄마품 한자락이 더 소중한 기억을 남겨주지 않았을까,,, 정답은 있을 수 없지만 아이를 키워본 엄마의 시각으로 바라보자면 아이들에게 너무나 가혹한 환경이 아닐까 싶다.

"문답에서 무엇을 어떻게 결론 내리게 하는지. 자발적으로 대화하는 것처럼 느끼게 한 뒤, '이것이 옳다'라는 하나의 흐름으로 유도하는 것. 세상에는 정답이 있다고 믿게 하는 것. 정답도, 이것이 절대적이라고 하는 올바름도, 이 세상에는 명확히 존재하지 않을지 모르지만, 그것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누군가에게 유도된 사고방식이라고 미카가 깨달은 것은 언제일까. 미래 학교에서는 언제든 정답이 있는 것처럼 말했다. 그렇게 생각하게끔 만들었다." (p.598)

노리코와 미카의 시선으로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이어지는 진실은 단단한 호박에 봉인되어 있는 것처럼 좀처럼 모습을 들어내지 않는다. 미래학교라는 전재를 두고 이야기하고 있지만 우리는 지금도 아이의 미래를 위한다는 이유로 아이에게서 엄마와 함께할 수 있는 많은 시간을 빼앗고 있는 것은 아닐까,,, 무심코 가볍게 읽을 수 없는 생각이 깊어지게 하는 시간이다. 쉽지 않겠지만 아이와 어른의 시간이 따뜻한 기억으로 연결될 수 있기를 희망해 본다.

"당신은 열한 살이었습니다. 어린아이입니다. 히사노 씨의 죽음에 과실이 있었다고 해도, 아이인 당신에게 법적 책임을 물을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그 아이를 보호할 의무나 책임을 방기한 것은 어른들입니다. 사고였든 살인이었든, 벌어진 일은 미카 씨의 책임이 아닙니다. 사건을 숨긴게 당신과 당신의 미래를 지키기 위해서였다는 건 어른들의 궤변입니다. 당신에게 그렇게 생각하게 했다면, 그것 자체가 학대 와도 같은, 당신의 미래를 얽어매는 사고방식입니다. 책임을 져야만 하는 건 어른들입니다. 당신은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습니다!" (p.608)

[ 네이버카페 몽실북클럽 서평단으로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작성한 주관적인 후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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왁서
정용대 지음 / 델피노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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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거창하게 왁싱,,, 일반인들은 기껏해야 여름을 위한 다리와 겨드랑이를 관리하는 정도이고 모델 등 일부 직업군 종사자들이 이용하던 왁싱이 어느 틈에 일상의 보편적인 이벤트가 되었다. 약간의 부끄러움으로 아직 실행에 옮겨보지는 않았지만 기회가 된다면 한 번쯤 경험(?)해 보고 싶기도 하다.

아무튼, 왁싱 숍에서 벌어진 의문의 살인사건을 소재로 하는 미스터리를 읽으면서 조금은 생소했던 직업의 세계를 알게 된다. 결혼을 앞두고 있었던 세진은 왁싱 숍에서 일어난 의문의 살인사건으로 약혼자 재섭을 잃었다. 범인이 검거되고, 재판을 앞둔 범인 또한 법의 심판을 받기도 전 극단적 선택을 하며 석연치 않은 의문을 남긴 채 사건은 종결된다.

"난 누군가에게 살해당할 수도 있어. 살인자가, 어쩌면 살인자가 아닐 수도 있어. 메시지는 재섭이 남긴 것이 확실했다. 세진에게 너무나도 익숙한 글씨체였고, 왜 그렇게 재섭이 만날 때마다 첫 만남 장소를 끄집어냈는지 이제야 이해됐다. 그 외에도, 그가 남긴 정보는 더 있었다." (p.59)

하지만, 사랑했던 이의 죽음을 이대로 받아들일 수 없었던 세진은 재섭이 살해당한 이유를 찾기 위해 스스로 왁서가 되기로 결심하고 작은 인연도 없던 왁싱의 세계로 뛰어든다. 그 무렵 세진은 재섭의 장례식에 참석했던 사람이 연이어 살해된 사실과 그 또한 왁싱과 관계되어 있음을 알게 된다.

스포츠 기자였던 재섭은 무슨 이유로 왁싱 숍에서 살해당한 것일까,,, 세진의 의심은 점점 확신으로 변해가고 왁싱을 배우기 위해 찾은 학원에서 세진은 또 다른 피해자의 연인 송희를 만나게 된다. 같은 목적이 있음을 알게 된 두 사람은 진실을 밝히기 위해 함께 전문 왁싱 숍을 차리고 거대한 음모의 소용돌이 속으로 성큼성큼 다가간다.

"원래 패밀리라는 건, 일종의 테스트가 필요해. 특히, 우리 패밀리는 말이야. 약간의 잡음은 있었지만 서로 지난 일은 모두 잊어버리자고. 우리가 오늘 해 낸 것을 봐." (p.307)

이익을 위해 무고한 사람의 생명쯤은 아무렇지도 않게 거둬들이는 악마들의 집단. 정정당당하지 못한 승부로 말미암은 검은 돈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는 이들은 점점 더 치밀한 범죄를 계획하기에 이른다. 검은 음모를 밝히고 싶은 이들과 비밀을 지켜야만 하는 이들은 마치 창과 방패의 싸움을 보는 듯하다.

흔하게 다뤄지지 않던 왁서라는 소재와 자주 보던 스포츠 비리가 잘 버무려진 소설이었지만, 개인적으로 뻔한 전개에 쫀쫀한 긴장감을 느끼기에는 살짝 부족한 범죄소설이었다.

[ 네이버카페 문화충전200 서평단으로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작성한 주관적인 후기입니다 ]

#왁서 #왁싱숍 #WAXER #장편소설 #전문왁서 #스릴러소설 #정용대 #소설 #델피노 #문화충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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썸 탈 때 바로 써먹는 심리학 - 호감에서, 스킨십, 섹스까지
안은성 지음 / 센시오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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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누군가에게 어떤 닻을 내리고 있는가?” (p.46)

이 세상에 나와 다른 성이 있다는 사실을 인지한 때부터 죽을 때까지 이성 간의 관계는 아슬아슬한 줄타기의 연속이라 하겠다. 적당한 긴장감은 남성과 여성 이외의 제3의 성이 되어버리지 않기 위해 꼭 필요한 요소임에도 막상 당사자가 되고 나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스트레스가 적지 않다. 오죽하면 화성 남자와 금성여자라는 말이 있겠는가,,, 아무튼 아담과 이브의 선악과로부터 출발한 이성 간의 “썸” 이야말로 영원히 끝나지 않는 숙제다.

반백 가까이 살아온지라 한 집에 사는 그이와는 이미 ‘전우애’로 다져진 사이지만(?) 그럼에도 궁금했던 터라 아주 작은 망설임 – 나이 들어 주책이라고 할까 봐 - 끝에 이성 간의 복잡 미묘한 심리를 유쾌하게 풀어낸 책 ‘썸 탈 때 바로 써먹는 심리학’을 읽어보기로 했다. 연애와 결혼생활에서 겪었던 여러 상황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며 잠깐 망설였던 시간이 무색할 정도로 재미있게 책장이 넘어간다.

저자는 제대로 썸 타고, 연애하고, 섹스하는 법을 모른 채 어른이 된 대한민국 남자 여자에게 이제라도 사랑력을 챙겨주어야겠다는 비장함으로 책을 집필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때문일까, 점잖게 썸으로 시작한 이야기는 서로가 만족할 수 있는 섹스로 이어진다. 많이 개방적으로 변하기는 했지만 여전히 직접 언급하기는 어려운 단어가 아무렇지도 않게 등장한다. 마지막 챕터를 읽을 때쯤 해서는 관성이 생겨서 민망했던 단어와 상황 묘사가 재미있어진다. ^^;;

남자와 여자가 다르다고 생각은 하고 있지만 사실 인정하기는 어렵다. 우리 남편만 해도 하루 종일 힘들었다, 피곤했다고 징징거리면 책에 딱 써진 것처럼 ‘씻고 빨리 자!’라는 피드백이 날아오니 말이다. 왜 힘들었는지 물어봐 주면 좋겠는데 이유 따위는 알 필요도 없고 알고 싶지도 않은 것처럼 ‘얼른 자’가 답이니 더 이상 대화를 이어가고 싶지 않아진다. 반대의 경우도 있겠지만 지극히 주관적인 입장에선 매우 서운한 반응이 아닐 수 없다. 더불어 스킨십의 과정까지,,, 아무래도 우리 남편은 대한민국 표준체이지 싶다.(이번 주말에 정독하시라고 이 책을 남편 두 손에 곱게 쥐어드릴 예정이다. ^^;;)

한참 연애하던 시절 나와 다른 남친의 심리를 알 수 있었다면 훨씬 더 재미있는 연애를 했겠지만 되돌릴 수 없는 일이기도 하고, 이제 와서 누군가와 아슬아슬 썸 탈(?) 일은 생기지 않겠지만. 앞으로 남은 인생같이 사는 남편하고 지루하지 않고 설레는 그린라이트를 이어가고 싶다. 이제 겨우 평균수명의 절반을 살짝 넘긴 시점이니 아직은 조큼 설레고 싶어도 주책은 아니지 않을까 하는 객쩍은 생각과 함께 마지막 장을 넘긴다. 이번 주말에는 남편이랑 아웃랜더의 첫날밤이나 찾아봐야겠다~

“연애 천재가 알려주지 않는 마인드 셋이 존재한다면 이것이다. 스스로에게, 상대방에게 끊임없이 전달해야 하는 메시지를 기억하고 실천한다. ‘그 사람은 나를 사랑한다. 우리는 우리도록 행복하게 사랑할 것이다. 어떤 갈등도 잘 극복할 것이다.’ 연애는 두 사람 사이의 작용이기 때문에 두 배로 더 강력하게 ‘말하는 대로’ 이루어진다. 믿음 소망 사랑 그중에 제일은 믿음이니, 사랑은 믿음 뒤에 살포시 서 있는 일이 많은가 보다. 믿음대로 될지어다.” (p.177)

[ 네이버카페 문화충전200 서평단으로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작성한 주관적인 후기입니다 ]

#섬탈때바로써먹는심리학 #센시오 #스킨쉽 #심리전 #안은성 #문화충전 #서평이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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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A 살인사건
이누즈카 리히토 지음, 김은모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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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넷플릭스에서 종영한 드라마 소년심판의 대사 ‘저는 소년범을 혐오합니다’ 떠오른다.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촉법소년 제도 자체를 반대하는 사람 중 하나다. 단지 범죄라는 인식을 하기에는 이른 나이라는 이유만으로 잔혹한 범죄를 저지르고도 ‘소년’이라는 방패 뒤에 숨어버린다. 그들이 저지른 범죄로 인한 피해자와 피해자의 가족들은 정상적인 일상을 영위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지만 소년이라는 방패 뒤에 숨어 있던 그들은 피해자의 아픔은 잊어버린 채 당연한 듯 일상을 이어간다.

한 기사에 따르면 촉법소년이라는 이유로 번번이 풀려나던 중학생들이 40여 차례 비슷한 범행을 저지른 후 형사 미성년자 연령이 경과한 후에야 검거되어 논란이 있었다고 한다. 촉법소년으로 면책을 받은 모든 아이들에 해당하는 일은 아니겠지만 어리다는 이유로 반성과 갱생의 기회를 부여한 촉법소년이라는 제도가 이들에게 진정한 반성과 갱생의 기회를 줄 수 있는지에 대한 심각한 고민이 필요한 이유이다.

소년A 살인사건은 소년범과 스너프 영상 유포 등 증가 추세에 있는 범죄를 소재로 하고 있다. 20년 전 어린 소녀를 잔인하게 살해하고도 촉법소년이었다는 이유만으로 법의 보호 아래 소년A라 불리던 소년이 촬영한 스너프 영상이 다크 웹을 통해 다시 등장하는 사건으로 이야기는 시작되고, 잔인하다 못해 엽기적이기까지 한 소년A의 고쿠분지 여아 살해 장면으로 말미암아 촉법소년 보호에 대한 논쟁은 또다시 뜨겁게 달궈진다.

한편, 종적을 감추었던 소년A는 자신이 다크웹에 영상을 팔지 않았다는 해명인터뷰를 하게되고, 료마를 비롯한 자경단 멤버들은 반성은 고사하고 빠져나갈 궁리만하는 소년A에게 분노를 느끼며 그의 인적사항을 찾아 공개하기로 마음먹고,,,

"맞아. 소년A는 자기애를 채우기 위해 인터뷰에 응했고, 출판사는 돈을 벌기 위해 기사를 냈고, 독자는 호기심과 구경꾼 기질을 채우기 위해 그 기사를 읽지. 저마다 추한 욕망을 채우는 셈이야." (p.168)

법이 처벌하지 못한다면 직접 처벌하겠다는 의지를 가진 자경단. 우여곡절 끝에 소년A의 정체를 파악하고 세상에 공개하지만 법을 넘어선 사적 처벌에 대한 정당성은 또 다른 문제를 야기한다. 대중의 공분을 사는 범죄라 할지라도 법을 넘어선 처벌에 대한 정당성을 부여받을 수는 없겠지만, 그럼에도 그들을 응원하게 된다.

새로운 소재라고 할 수는 없지만 대중의 공분과 관심을 받고 있는 소재와 잘 짜인 반전 스토리 덕분에 높은 가독성과 몰입감을 맛볼 수 있는 범죄소설이었다.

[ 네이버카페 몽실북클럽 서평단으로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작성한 주관적인 후기입니다 ]

#소년A살인사건#이누즈카리히토#김은모#RHK#소년범#촉범소년#사이버불링#몽실북클럽#몽실서평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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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들의 부엌
김지혜 지음 / 팩토리나인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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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느린 우체통입니다.
츠바키 문구점의 포포와 함께 [자신에게 보내는 편지]를 써봐요.
당신의 편지와 책 <츠바키 문구점>은
올해의 크리스마스이브에 배달됩니다.
(중략)
우체통에 편지를 넣는 순간,
톡 하고 작은 소리가 났다.
잘 다녀오렴.
마치 내 분신을 여행 보내는 기분이었다.
편지는 기다리는 시간도 즐겁다.
부디 큐피에게 무사히 도착하기를." (p.83~86)

책을 고를 때면 원하는 장르를 선택한 후에는 무의식중에 아이가 과자를 고를 때처럼 제목과 표지를 살피곤 한다. 가급적 책을 다 읽기 전에 출판사의 서평에 눈길을 주지 않고, 띠지에 기재된 한두 문장과 제목, 표지 일러스트로 앞으로 읽을 내용을 상상하곤 한다.  그런 면에서  ‘책들의 부엌’은 넓고 넓은 상상의 나래를 펴게 한다.

자연스럽게 연결되지 않던 책과 부엌이라는 소재가 ‘갓 지은 맛있는 책 냄새’로 하나가 된다. 책으로 둘러싸인 공간과 특유의 책 냄새를 떠올리자 긴장되어 있던 신경이 적당히 기분 좋게 늘어진다. 생각만으로 마음의 안식을 선물하는 책 – 강요가 아닌 자발적인 독서인들에게 한한 생각일지라도 – 과 따뜻한 음식... 자연스럽게 연결되지 않는다고 여겼던 나의 오만함(?)을 반성하며 소양리 북스 키친의 문을 두드려본다.

"북스 키친은 말 그대로 책들의 부엌이에요. 음식처럼 마음의 허전한 구석을 채워주는 공간이 되길 바라면서 지었어요. 지난날의 저처럼 번아웃이 온 줄도 모르고 마음을 돌아보지 않은 채 살아가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더라고요. 맛있는 이야기가 솔솔 퍼져 나가서 사람들이 마음의 허기를 느끼고 마음을 채워주는 이야기를 만나게 됐으면 했어요. 그리고 누군가는 마음을 들여다보는 글쓰기를 할 수 있으면 더 좋겠다고 생각했고요." (p.225)

스타트업을 창업하고 지키내기 위해 전력질주하던 유진. 진심을 담아 창업했던 스타트업을 끝내 지켜내지 못하고 마음을 추스르기 위해 찾은 소양리에서 마법에 걸린 것처럼 ‘소양리 북스 키친’을 열게 된다. 소양리를 찾아 방황하던 마음을 위로받았던 유진의 마음이 전해진 걸까,,,

따뜻한 보금자리를 만들어가는 소양리로 힘들고 지친 이들이 북극성을 바라보며 길을 나선 것처럼 유진의 북스 키친을 찾고, 우연히 소양리 북스 키친에 이른 그들은 그곳에서 우연이 아닌 필연을 이어가고, 지치고 힘든 마음을 다독여 멈추지 않고 다시 앞으로 나갈 수 있는 힘을 얻는다.

스타가 되었지만 점점 사라져 가는 자신이 안타까운 다이앤. 그녀의 휴식이 되어주시던 돌아가신 할머니를 그리며 만난 북스 키친에서 아무 조건 없이 그녀를 반기는 사람들과 함께 쏟아져내리는 별을 바라보며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용기를 얻고, 아무런 장애물 없이 성공 가도를 달리던 변호사 소희는 갑자기 자신에게 들이닥친 불행을 꿋꿋하게 이겨낸다.

"수혁은 웃음기 담아 말했지만, 사실 자신에게 놀라는 중이었다. 지난 몇 달간의 자신과 너무 다른 행동을 하고 있었다. 표정 없이, 감정을 숨기고, 필요한 말만 하고 살았는데 여기서는 무채색의 시간에 다시 색이 입혀진 것 같았다." (p.191)

"인생에 급제동이 걸린 거요. 그냥 직진만 하다가 인생의 마지막 페이지가 넘어가는 게 아니라 멈춰 서서 생각할 기회를 가지게 된 거요." (p.117)

진실을 감춘 채 거짓으로 삶을 채워가던 마리와 그녀가 안타까운 지훈, 꿈을 이루지 못한 현재의 삶을 비관하며 죽음을 생각하던 수혁까지 소양리 북스 키친을 찾은 이들은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스스로를 보여줄 수 있는 이곳에서 지친 마음을 위로하고 성장해간다.

매서운 바람을 두려워하지 않고 처음으로 봄기운을 알리는 매화가 반갑게 인사하고, 느린 우체통에 넣은 편지가 무사히 나에게 도착할 수 있는 그곳 소양리 북스 키친은 힘들고 지친 이들이 잃어버렸던 꿈을 다시 꾸게 해주는 유토피아가 되어간다.

"그렇지. 스무 살 때 꿈꾸던 건 유치하고 비현실적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이제야 알겠어. 꿈이란 건 원래 현실적으로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거라서 자신을 더 근사한 사람이 되도록 만드는 에너지라는걸. 인생의 미로에 얽히고설킨 길에서 목적지를 잃어버렸을 때, 가만히 속삭여 주는 목소리 같은 거였어. 꿈이란 게 그런 거였어." (p.75)

내 발길이 닿는 어딘가 그곳에 소양리 북스 키친이 있었으면 하는 작은 바램을 갖게 한다. 아무 조건 없이 위로받고, 온기를 나눠 받으며 책장을 덮는다.

"매화는 말이야, 봄이 오기를 제일 기다리는 아이야. 목을 빼고 기다리다가 언덕 너머로 봄이 올 기미가 보이면 얼씨구나 하고 꽃을 피워내지. 그러다 꽃샘추위에 눈이 평평 내리기라도 하면 꽃잎이 젖어서 가련해 보이기도 하고, 그런데 할미는 그래서 매화가 좋더라. 곁에 두면 봄을 덩달아 기대하게 되거든. 봄이 오는 기척을 누구보다 먼저 눈치채는 꽃이기도 하고. 꽃샘추위 따위는 두렵지 않다는 듯 온 힘을 다해서 꽃을 피워내는 기개가 근사한 아이지." (p.30)

[ 네이버카페 몽실북스 서평단으로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작성한 주관적인 후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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