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들의 부엌
김지혜 지음 / 팩토리나인 / 2022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는 느린 우체통입니다.
츠바키 문구점의 포포와 함께 [자신에게 보내는 편지]를 써봐요.
당신의 편지와 책 <츠바키 문구점>은
올해의 크리스마스이브에 배달됩니다.
(중략)
우체통에 편지를 넣는 순간,
톡 하고 작은 소리가 났다.
잘 다녀오렴.
마치 내 분신을 여행 보내는 기분이었다.
편지는 기다리는 시간도 즐겁다.
부디 큐피에게 무사히 도착하기를." (p.83~86)

책을 고를 때면 원하는 장르를 선택한 후에는 무의식중에 아이가 과자를 고를 때처럼 제목과 표지를 살피곤 한다. 가급적 책을 다 읽기 전에 출판사의 서평에 눈길을 주지 않고, 띠지에 기재된 한두 문장과 제목, 표지 일러스트로 앞으로 읽을 내용을 상상하곤 한다.  그런 면에서  ‘책들의 부엌’은 넓고 넓은 상상의 나래를 펴게 한다.

자연스럽게 연결되지 않던 책과 부엌이라는 소재가 ‘갓 지은 맛있는 책 냄새’로 하나가 된다. 책으로 둘러싸인 공간과 특유의 책 냄새를 떠올리자 긴장되어 있던 신경이 적당히 기분 좋게 늘어진다. 생각만으로 마음의 안식을 선물하는 책 – 강요가 아닌 자발적인 독서인들에게 한한 생각일지라도 – 과 따뜻한 음식... 자연스럽게 연결되지 않는다고 여겼던 나의 오만함(?)을 반성하며 소양리 북스 키친의 문을 두드려본다.

"북스 키친은 말 그대로 책들의 부엌이에요. 음식처럼 마음의 허전한 구석을 채워주는 공간이 되길 바라면서 지었어요. 지난날의 저처럼 번아웃이 온 줄도 모르고 마음을 돌아보지 않은 채 살아가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더라고요. 맛있는 이야기가 솔솔 퍼져 나가서 사람들이 마음의 허기를 느끼고 마음을 채워주는 이야기를 만나게 됐으면 했어요. 그리고 누군가는 마음을 들여다보는 글쓰기를 할 수 있으면 더 좋겠다고 생각했고요." (p.225)

스타트업을 창업하고 지키내기 위해 전력질주하던 유진. 진심을 담아 창업했던 스타트업을 끝내 지켜내지 못하고 마음을 추스르기 위해 찾은 소양리에서 마법에 걸린 것처럼 ‘소양리 북스 키친’을 열게 된다. 소양리를 찾아 방황하던 마음을 위로받았던 유진의 마음이 전해진 걸까,,,

따뜻한 보금자리를 만들어가는 소양리로 힘들고 지친 이들이 북극성을 바라보며 길을 나선 것처럼 유진의 북스 키친을 찾고, 우연히 소양리 북스 키친에 이른 그들은 그곳에서 우연이 아닌 필연을 이어가고, 지치고 힘든 마음을 다독여 멈추지 않고 다시 앞으로 나갈 수 있는 힘을 얻는다.

스타가 되었지만 점점 사라져 가는 자신이 안타까운 다이앤. 그녀의 휴식이 되어주시던 돌아가신 할머니를 그리며 만난 북스 키친에서 아무 조건 없이 그녀를 반기는 사람들과 함께 쏟아져내리는 별을 바라보며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용기를 얻고, 아무런 장애물 없이 성공 가도를 달리던 변호사 소희는 갑자기 자신에게 들이닥친 불행을 꿋꿋하게 이겨낸다.

"수혁은 웃음기 담아 말했지만, 사실 자신에게 놀라는 중이었다. 지난 몇 달간의 자신과 너무 다른 행동을 하고 있었다. 표정 없이, 감정을 숨기고, 필요한 말만 하고 살았는데 여기서는 무채색의 시간에 다시 색이 입혀진 것 같았다." (p.191)

"인생에 급제동이 걸린 거요. 그냥 직진만 하다가 인생의 마지막 페이지가 넘어가는 게 아니라 멈춰 서서 생각할 기회를 가지게 된 거요." (p.117)

진실을 감춘 채 거짓으로 삶을 채워가던 마리와 그녀가 안타까운 지훈, 꿈을 이루지 못한 현재의 삶을 비관하며 죽음을 생각하던 수혁까지 소양리 북스 키친을 찾은 이들은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스스로를 보여줄 수 있는 이곳에서 지친 마음을 위로하고 성장해간다.

매서운 바람을 두려워하지 않고 처음으로 봄기운을 알리는 매화가 반갑게 인사하고, 느린 우체통에 넣은 편지가 무사히 나에게 도착할 수 있는 그곳 소양리 북스 키친은 힘들고 지친 이들이 잃어버렸던 꿈을 다시 꾸게 해주는 유토피아가 되어간다.

"그렇지. 스무 살 때 꿈꾸던 건 유치하고 비현실적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이제야 알겠어. 꿈이란 건 원래 현실적으로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거라서 자신을 더 근사한 사람이 되도록 만드는 에너지라는걸. 인생의 미로에 얽히고설킨 길에서 목적지를 잃어버렸을 때, 가만히 속삭여 주는 목소리 같은 거였어. 꿈이란 게 그런 거였어." (p.75)

내 발길이 닿는 어딘가 그곳에 소양리 북스 키친이 있었으면 하는 작은 바램을 갖게 한다. 아무 조건 없이 위로받고, 온기를 나눠 받으며 책장을 덮는다.

"매화는 말이야, 봄이 오기를 제일 기다리는 아이야. 목을 빼고 기다리다가 언덕 너머로 봄이 올 기미가 보이면 얼씨구나 하고 꽃을 피워내지. 그러다 꽃샘추위에 눈이 평평 내리기라도 하면 꽃잎이 젖어서 가련해 보이기도 하고, 그런데 할미는 그래서 매화가 좋더라. 곁에 두면 봄을 덩달아 기대하게 되거든. 봄이 오는 기척을 누구보다 먼저 눈치채는 꽃이기도 하고. 꽃샘추위 따위는 두렵지 않다는 듯 온 힘을 다해서 꽃을 피워내는 기개가 근사한 아이지." (p.30)

[ 네이버카페 몽실북스 서평단으로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작성한 주관적인 후기입니다 ]

#책들의부엌#김지혜#팩토리나인#힐링소설#소양리북스키친#일상의쉼표#몽실북클럽#몽실서평단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