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이 상처가 되기 전에 - 타인의 말, 행동, 기분으로부터 내 마음을 지키는 법
충페이충 지음, 이신혜 옮김 / 유노북스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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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우리는 각자 다른 사람이라는 걸 인정하고 다시 나만의 세계로 돌아 가면, 날 훌륭하다고 생각하고 좋아해 주는 사람도 여전히 많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다. 나는 남들이 날 싫어하는 걸 무서워하지 않는다. 날 좋아해 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모든 사람이 날 싫어하는 것도 아닌데 무슨 상관인가?" (p.85)

감정이라는 괴물에 사로잡혀 일상을 제대로 지켜내지 못하는 경우가 갈수록 늘어난다. 그것도 나의 감정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감정에,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느라 스스로를 지켜내지 못한다. 감정에 철갑을 두르고 강철멘탈을 장착하고 싶어도 어느 순간 강철멘탈은 고사하고 홀딱 벗겨진채 허허벌판에 내던져지기 일쑤다. 감정으로부터 스스로를 지켜내는 방법을 찾아야하는 이유다.

책장을 열자마자 '분노의 흐름'이 나를 기다린다. 그저 분노란 강한 사람이 약한 사람에게 쏟아내는 질타 정도로 이해하고 있는 나에게 강자가 힘이 더 강한 사람이 - 직장에서는 상사 - 아닐 때도 있다는 설명이 충격으로 다가온다. 스스로가 강자라고 확신할 수 없기 때문에 쏟아내는 분노, 안전하다고 여기는 대상에게만 표현되는 분노는 얼핏 보기에는 강자의 약자에 대한 횡포로 비춰질 수 있으나, 분노를 쏟아내는 강자는 직위 등 단순한 물리적인 힘이 아니라 잠재의식 속에 위치한 서열의 발현이라고 한다. 그마져도 필요의 상하관계에 따른 분노의 표출이라하니, 내가 타인에게 분노를 보이는 순간 나는 이미 패자인 것이다.

분노로 표현될만큼 타인에게 묶여 있는 것이니 말이다. 근간에 나를 흔들어 놓는 분노가 사실은 분노의 대상에 대한 의지의 발현이라니,,, 부모자식간에도 조건이 붙는 세상에 생판 남과 순수한 관계를 원하는 것 자체가 모순이 아닐까 싶다. 강철멘탈이 되지 못할 바에는 차라리 유리멘탈로 살면서 관계를 끊어내고 싶다는 생각까지 하게된다. 바보같은 생각에 왠지 씁쓸해진다.

내가 아무리 완벽을 추구한다할지라도 나의 의지와 무관하게 좋은 결과를 얻게 되는 경우가 왕왕있다. 워낙 어릴때부터 길들여진 탓에 '남탓'을 하면 큰일이라도 날 것처럼, 나에게 주어진 조력자와 환경에 대한 불합리한 점은 조금도 고려하지 않은 채로 모든 결과에 '내탓이로 소이다!'를 외친다.

"우선 세 가지 요소를 바꿔 보자. 자신을 바꾸고, 타인을 바꾸고, 상황을 바꿔 보는 것이다. 시스템 내 모멘텀에도 변화를 일으켜 상황을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 갈수 있다." (p.67)

힘들겠지만 스스로를 믿어 보기로 한다. 세상사람 모두가 나를 사랑하지 않듯이 나 또한 세상사람 모두를 사랑할 필요는 없다. 나는 나! 남은 남! 어줍지않은 착한아이 컴플렉스는 이제 그만 내려놓자.

[네이버카페 책과콩나무 서평단으로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작성한 주관적인 후기입니다]

#책과콩나무#서평단#감정이상처가되기전에#충페이충#이신혜#유노북스#심리상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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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 포티, X세대가 돌아온다 - 밀레니얼, 90년생보다 지금 그들을 주목해야 하는 이유
이선미 지음 / 앤의서재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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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포티(young forty)

젊게 살고 싶어 하는 40대로 1972년을 전후해서 태어나 새로운 중년의 삶을 살아가는 세대를 말한다.

- 네이버 지식백과

세대차이, 세대갈등이 새로운 이슈는 아니지만 세대차이와 세대갈등을 핫한 이슈로 만들고, 수면위로 끌어올렸던 대표적인 세대가 바로 X세대다. 서태지와 아이들 그리고 개인용컴퓨터(PC)의 보급, 인터넷통신이 폭발적으로 확장되던 변화의 물결 중심에 있던 세대가 바로 우리 세대다. 한껏 치솟은 대학진학률은 대학졸업 = 멀쩡한(?) 대기업 취직이었던 공식이 깨지기 시작했고, 본격적인 직딩의 세계로 들어설즈음 시작된 IMF 한파를 온몸으로 겪었다.

그리고, 이제 40대 중년이 되었다. X세대가 어렸을 적 40대는 뒷방 노인으로 취급될 정도로 생동감을 잃어가는 정적인 세대였으나, 요즘 40대는 비록 낀세대, 라떼라는 부정적인 이미지도 있지만 여전히 왕성한 사회활동의 중심축으로 또다시 급부상했다. MZ세대들이 다이소에서 천원짜리 탕진잼 놀이를 즐길때, X세대는 임영웅 굿즈를 받기위해 꼭 필요하지 않은 시계와 건강식품을 사들이는 플렉스를 마다하지 않는다.

새로운 중년, X세대의 특징부터 라이프스타일, 일하는 방식, 돈 쓰는 방법까지 담고 있는 '영 포티, X세대가 돌아온다'는 미쳐 내가 느끼지 못했던 X세대의 특징들을 조목조목 짚고 있다. 다른 세대의 시선으로 바라본 나의 세대는 바로 이런 느낌이구나 싶다. 어쩌다가 주위와 연대하기 어려워하는 '난 나야'로 대표되는 세대가 되었을까 싶다가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집으로 똘똘뭉친 라떼세대와 자유분방한 MZ세대에서 이만큼 낀세대의 역할을 훌륭히 소화하는 세대도 없었을 꺼라는 나름의 공감과 만족을 얻는다.

아나로그와 디지털이 절묘하게 교차되는 시기를 지나왔고, 어렵지만 내 집을 마련할 수 있었으며 비혼과 딩크를 주장할 수 있는 첫 세대가 되어 오늘날의 대한민국을 이끈다. 30년간 한국의 평균, 기성세대와 MZ세대를 동시에 이해할 수 있는 낀세대. X세대를 대표하는 아이템들이 끝이 없이 등장한다. 대한민국의 평균으로 살고 있는 X세대의 원동력이 무엇일까. 넘치는 개인주의과 나름의 경제력이 그 원천이 되지 않을까 싶다. 특히, '나이들기를 거부하는 X세대'를 다룬 챕터를 읽으면서 스스로를 반추해본다. 어른이라는 외계어를 만들고, 나이답게가 아닌 나답게를 외치며 중심에서 이탈하기를 강력히 거부하는 스스로를 말이다.

"이전까지는 50세 이상의 인생을 '여생'으로 보는 시각이 강했다. 말 그대로 '남아있는 생'이다. 지금까지 살아온 삶이 주연의 삶이었다면 50 세 이상의 삶은 조연의 삶으로 인식했다. 그러나 이제는 다르다. 50세까지는 누군가의 부모로, 누군가의 남편 아내로 살아왔지만 50세부터는 '진짜 내 삶'이 시작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p.315)

[ 네이버카페 책과콩나무 서평단으로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작성한 주관적인 후기 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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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와 수다
전김해 지음 / 지식과감성#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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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그건 기쁨을 쌓는 일이야. 하루하루 쌓는 기쁨은 일 년 이 년 그리고 수십 년으로 이어져 너의 몸에 배일 거고 결국 변치 않는 너의 천성이 될 거야. 그 천성은 백 년, 천 년으로 이어져 영원한 운명을 결정짓지." ​

사자와 수다라,,, 왠지 과묵함으로 무장하고 있을 것 같은 동물의 왕 사자와 시끌벅적 가벼움의 극치를 나타내는 수다를 함께 역어둔 제목이 범상치않다. 제목의 특별함을 곱씹기도 전에 맞닥뜨리는 일러스트는 소설이라는 장르를 무색하게 한다. 어린아이가 삐뚤빼뚤하게 써놓은 것 같은 글자들과 거칠게 그려진 일러스트들은 마법에 홀린 것처럼 책장을 넘기게 한다.

당당한 위엄으로 무장하고 있는 사자를 보며 지루한 쓸쓸함과 삶의 권태, 허무를 읽는 다는 저자는 수다를 가장한 가볍지만 결코 가볍지않은 문장들과 함께 묵직한 위로를 전한다.

타인의 시선과 불공정한 잣대로 자신의 가치를 깍아 내린다. 스스로를 귀하여 여기고, 예뻐해줘야 타인의 눈에도 귀하고 예쁘게 보일텐데... 우리는 너무나 쉽게 자신을 냉냉한 시선으로 바라보곤 한다.

하늘로 높이 높이 곧게 뻗어나간 소나무는 궁궐을 받치는 대들보 밖에 될 수 없지만 - 물론 대들보의 역할도 중요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 바위 틈새로 힘겹게 뿌리를 내리고, 비록 살기위해 한자락의 햇빛을 쫓아 구불구불 곧게 자라지 못한 소나무는 승리의 나무가 되어 그간의 여정을 칭송받기도 한다. 세상만사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 곧은 소나무도 굴곡진 소나무도 모두 자기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자신의 삶을 살아내고 있다.

모두가 부러워하는 동물의 왕이지만 ~걸과 ~라면의 탄식에서 헤어나오지 못한채 코끼리의 커다란 몸집과 굵고 커다란 발을 의미없이 부러워하기도 한다. 도대체 왜?! 어흥~하는 포효한번으로 모두를 꿇어 앉힐 수 있는 최고의 위치에 있는 사자가 '무리지어 다니며, 망설임없는 짓밟음'으로 보이는 코끼리를 갈망한다. 최고임에도, 나머지 부족함을 욕심내고 갈망한다. 인간의 끝없는 이기심과 닮았다.

다소 어설픈 사자의 모습과 늘 만족하지 못하고 불평불만을 늘어놓는 내 모습이 투영된다. 나도 사지처럼 근진엄의 가면을 쓰고있는건 아닌지,,, 이제라도 조금은 나를 내려놓고 설렁설렁 대충대충 살아보고 싶어진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작성한 주관적인 후기 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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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온한 잠 - 살인곰 서점의 사건파일 하무라 아키라 시리즈
와카타케 나나미 지음, 문승준 옮김 / 내친구의서재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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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하무라 아키라. 국적은 일본, 성별은 여자. 기치조지 주택가에 있는 미스터리 전문서점 '살인곰 서점 MERDER BEAR BOOKSHOP'의 아르바이트 점원이자, 이 서점이 부업으로 시작한 '백곰 탐정사'에 소속된 유일무이한 탐정이다." (p.10)


와카타케 나나미의 살인곰 시리즈는 생계형 탐정 하무라 아키라의 활약상을 다룬다. 고단한 생계형 탐정을 테마로 하고 있는 탓인지 추리소설, 탐정소설에서 느낄 수 있는 쫄깃한 긴장감은 다소 부족한 감이 없지 않지만, 굉장히 편안하게 읽힌다. 백곰탐정사의 유일한 탐정 아키라는 자신을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탐정이라고 여기지만, 막상 사건을 의뢰받으면 최선을 다해 의뢰인의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열혈탐정이다.


이번에 읽은 살인곰 시리즈 중 하나인 '불온한 잠'은 네 가지 단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네 가지 단편이 모두 고독한 일상을 살아가던 이들을 다루고 있는 것과 분위기를 맞추려는 듯, 다른 살인곰 시리즈에 비해 유난히 아키라가 생계형 탐정이라는 점과 의뢰자들에게 정으로 이끌리는 인간적인 탐정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때문에 이전 시리즈에서 눈에 띄지 않았던 아키라의 나이가 40대 중후반, 내 또래라는 것을 알게 된다. 소설 속의 주인공이지만 또래라는 공통점 때문에 왠지 더 정감이 간다는 실없는 생각을 해본다.


말기암으로 시한부 선고를 받은 의뢰인이 교도소 출소를 앞두고 있는 수양딸을 데려다 달라고 - 사설탐정에게 의뢰하기에는 다소 부적절한 사건 - 의뢰하기도 하고, 모두가 즐거운 연말 흉흉한 괴담으로 을씨년스럽기만한 빈건물의 야간 경비를 의뢰받기도 한다. 탐정을 필요로하지 않는 의뢰인것도 억울한데 - 물론 결국 아키라가 사건을 해결하긴 하지만 -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탐정임을 상기시키듯 동행을 부탁받은 교도소 출소자가 도망가기도 하고, 의뢰인으로부터 받은 난로의 가스가 아키라를 희롱하듯 금새 떨어져버려 혹한의 추위와 사투를 벌이기도 한다. 이쯤되면, 불행이라는 그림자가 일부러 따라다니는건 아닌가 할 정도로 어이없는 사건이 이어진다.


그러던중 살인곰 서점 지배인 도야마에게 낚여, 힘들게 준비한 살인곰 서점 이벤트 '철도 미스터리 페어'에서는 손님의 관심을 끌기 위해 전시했던 ABC 철도 안내서를 눈앞에서 도난당하기도 하고 물론, 반드시 되갚아 준다는 의지와 명탐정의 기지로 도난당한 책을 찾지만, 기가막히는 반전이 그녀를 기다리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오래전 사망한 불쌍한 여인의 지인을 찾아 유품을 전달해 달라는 사건을 의뢰받은 아키라. 탐정으로서 사건을 열심히 해결하고자 하지만 작은 단서도 없이 그녀를 기억하는 사람을 찾는 것이 어렵기만 하다. 심지어 토사에 깔릴 뻔한 위기를 맞기도 하는 마지막 편 불온한 잠에서는 탐정으로서의 활약보다는 외롭게 생을 마감한 여인을 기리는 아키라의 연민을 진하게 느낄 수 있었다. 미스터리면서도 미스터리답지 않게 만드는 아키라의 인간적인 면이 살인곰 시리즈의 매력이 아닐까 싶다.


사실, 살인곰 시리즈가 편안하게 쭉쭉 읽혀서 좋아하긴 하지만, 이번에 읽은 불온한 잠은 이전 편들에 비해 개인적으로는 몰입도가 살짝 떨어진다. 아마도 코지미스터리, 하드보일드라 하기엔 다소 가벼운 소재를 다룬 탓이리라. 아키라가 살인곰 서점의 아르바이트와 백곰탐정사의 유일한 탐정 역할을 병행하고 있지만 흥신소에서도 처리할 수 있는 가벼운 의뢰보다, 조금은 긴장감 있는 사건을 해결하는 - 생계형이지만 명탐정으로의 활약이 돋보이는 - 의뢰가 없었다는 점이 아주 조금 아쉽지만 유쾌하고 가독성 좋은 살인곰 시리즈의 장점 또한 충분히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 네이버카페 몽실북클럽 서평단으로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작성한 주관적인 후기 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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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카의 여행
헤더 모리스 지음, 김은영 옮김 / 북로드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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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부터 마지막장까지 너무나 먹먹해지는 글이다. 힘없는 나라의 국민이라는 이유로,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살기위해 살아남기 위해 할 수 밖에 없었던 행동들을 비난 받아내면서 굳굳이 버텨내고 있는 그녀의 용기에 더할 수 없는 찬사를 보내고 싶어진다. 우리나라 또한 여전히 풀리지 않는 숙제로 안고 있는 위안부 할머님들의 애환과 겹쳐지며 공감의 깊이가 달라짐을 느끼게 된다.

눈앞에서 가족의 죽음을 목도하고, 생면부지의 낯선이들에게 살기위햐 겁탈당하며, 수용자들을 죽음의 길로 인도하는 일을 묵묵히 견뎌내야 했던 열여섯 어린 소녀 실카 클라인. 살아남기 위해 그녀는 마치 인형이 되어가는 듯 하다. 감정이 소거된 인형이 되어 살아남은 체코슬로바키아 출신 유대인 소녀 실카는 지옥같은 아우슈비츠에서 풀려나지만, 살아남기 위해 버텨낸 적군의 상습적인 강간을 매춘으로 탈바꿈시킨 채 그녀를 다시 크라크푸의 감옥으로 보내진다. 숨을 쉬고 있는 이상 그녀에게 자유를 허용할 수 없는 것처럼 세상은 모질기만 하다.

"따뜻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실카는 꽁꽁 얼어붙는다. 몸이 떨리기 시작한다. 한나에게 설명하고 싶다. 나는 열여섯 살이었어! 내가 선택한게 아니었어, 그 어떤 것도. 나는 그저 살아남았을 뿐이야. 하지만 그 어떤 말도 나오지 않는다."(p.158)

원치않는 강간을 당했음에도 적과의 동침이라는 죄명으로 15년형을 선고받은 실카는 지구상에서 가장 추운 곳이라 여겨지는 보르구타 굴라크로 보내진다. 하지만 그녀에게 주어진 환경은 이전 아우슈비츠와 조금도 다르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 보다는 주변 친구들을 보살핀다. 어쩔 수 없는 적과의 동침이었으며, 어쩔 수 없는 25구역의 지킴이 였음에도 속죄의 마음이 담긴 행동이지 않았을까 싶다.

"저는 그저 살고 싶었어요. 매일 아침 잠에서 깰 때마다 가족들은 그러지 못했는데 나만 살아남았다는 고통을 느껴야 했어요. 그 고통은 살아남은 것에 대한 벌이고 저는 그 고통을 느끼며 살아야 해요." (p.310)

아우슈비츠에서는 수동적인 수용자였다면, 보르쿠타에서의 실카는 이전보다는 훨씬더 강해진다. 자신의 과거를 숨긴 채 수용자로서의 삶을 받아 들이고 있지만, 그녀의 근성을 한눈에 알아본 수용소의 의사 옐레나 게오르기예브나 덕분에 실카는 수용자로서의 삶에 안주하지 않고 용기를 내서 한발 한발 세상으로 나간다. 아우슈비츠 25구역의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기까지의 지독하게 처절하고, 치열한 그녀의 일생이 그려진다.

"실카, 계속 살아남으라는 말 말고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매일 아침 일어나 숨을 쉬어. 너는 이곳에서 커다란 변화를 만들어내고 있어. 그리고 구급차에서 일하게 된다면 환자들을 살리는 데 큰 역할을 할 거야. 진심으로 나는 네가 그 일을 잘해내리라고 믿어." (p.310)

그녀에 대한 평가가 양분된다고는 하지만, 나의 주관적인 생각으로만 본다면 그 시절 실카를 만난 모든 사람이 그녀에게는 가해자였으며, 아무도 그녀의 행동을 비판할 수 없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싶다. 열여섯 어린 소녀를 유대인이라는 단 한가지 이유로 지키지 못했으며, 갈갈이 찢기는 고통속에 놓여진 그녀를 아무도 보듬지 못한 모든 사람이 가해자다.

모진 역사 속에 약자가 될 수 밖에 없는 여성들의 굴곡진 삶이 우리네 역사속의 그녀들과 다르지 않음에 마음이 아프다. 철저하게 유린당한 피해자임에도 '환향녀'라는 굴레를 씌워 스스로 세상을 등지게 만들었던 우리들과 다르지 않음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극복할 수 있었던 그녀의 용기에 먹먹함이 남는다.

[네이버카페 몽실북클럽 서평단으로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작성한 주관적인 후기입니다]

#실카의여행#헤더모리스#북로드#몽실북클럽#몽실서평단#장편소설#아우슈비츠#강제노동수용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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