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한 사람들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윤성원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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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번 히가시노 게이고의 책을 만날 때마다 하는 생각이지만 어쩜 이렇게 맛깔스러운 문장을 만들어 내는지 장편은 장편대로 단편은 단편대로 그 나름의 매력의 늪에서 헤어 나올 수가 없다. 게이고의 초기 초기 단편집이 재출간된 '수상한 사람들'은 쫄깃한 긴장감을 느낄 수 있는 미스터리는 아니었지만 그만의 독특한 시각으로 그려진 다양한 심리를 엿볼 수 있는 작품이었다.

7개의 단편으로 구성된 수상한 사람들은 각 단편마다 등장하는 주인공들의 독특한 심리를 관찰하면서, 언어의 마술사라 불리는 히가시노의 매력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단편이지만 다음 편이 궁금해지는,,,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어야 한다는 의무감에 불타는 사람들의 모습으로 재해석된 표지와 함께 이어지는 단편들은 한편인 듯 이어지며 군더더기 없는 히가시노 게이고 단편의 매력 뿜어낸다.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을 읽고 난 후 히가시노 게이고의 팬이 되고, 그 후 여러 차례 그의 작품을 읽으면서 매번 느끼는 거지만 추리소설을 비롯한 다양한 영역에서 발휘되는 이질감 없는 필력이 대단하다. 동화 같은 스토리와 유혈이 낭자한 사건 없이도 치밀한 구성력이 돋보이는 추리소설까지 조금도 어울리지 않는 영역에서도 그의 매력이 조금도 줄어들지 않으니 말이다.

우연한 기회에 동료의 데이트 장소로 아파트를 빌려주던 남자는 어느 날 여느 때와 같이 데이트가 있는 직장동료에게 집을 빌려주지만,,, 직장동료의 데이트 상대로 추정되는 미지의 여인은 그에게 자신과 밤을 보낸 상대를 찾아달라는 억지를 부리고 예상치 않은 불청객을 내보내기 위해 그녀의 데이트 상대를 찾던 남자는 뜻밖의 비밀을 발견하고,,,

불의의 교통사고로 사랑하는 아내를 잃고 어린 딸을 혼자 키우고 있던 남자는 또다시 불의의 사고로 아이를 잃고 만다. 딸에게 좋은 엄마를 만들어주기 위해 재혼을 결심했지만 좀처럼 곁을 내주지 않는 딸아이로 고민하고 있던 중 일어난 사고 때문인지 그는 합리적 의심에 이르고 복수를 위해 재혼을 감행하지만,,,

"상대방을 생각해서 한 행동을 상대방은 이해하지 못해 톱 니바퀴가 거꾸로 돌고 마는 거지요. 그 톱니바퀴를 제자리로 돌리기란 어려워요. 왜냐하면 그러려면 상대방에게 상처를 줄수밖에 없기 때문이지요." (달콤해야 하는데 p.153)

고교시절 마지막 기회를 잃어버린 판정에 의심을 품은 채 스스로의 일상을 망가뜨리는 청년, 완벽에 완벽을 기하는 업무태도는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것도 부족해 급기야 살인을 부르고, 서로를 지배하려는 잘못된 승부욕은 친구를 궁지에 몰아넣고 둘만 아는 비밀을 만들기에 이른다.

"죽인 사람도 물론 나쁘지만 살해된 쪽에도 문제는 있어. 일을 열심히 하는 거야 좋지만 거기에 정신이 팔려 남의 마음 을 헤아리지 못하면 끝장이라고." (죽으면 일도 못 해 p.121)

"나는늘 그러니까. 중요한순간에 방심하고마음을 놓는다. 그래서 이번에도 잡힌 것이다." (판정콜을 다시 한 번! p.85)

짧은 호흡으로 읽히는 단편은 읽고 난 후 여운을 남기기 어려운데 히가시노의 단편은 그의 탁월한 심리묘사 덕분인지 그의 작품을 선호하는 나의 편견 때문인지 묘하게 이어진 느낌으로 남는다. 이번 단편집은 특히 표지가 인상적이다. 스스로도 범죄라 여기고 있지만, 이유 있는 행동이었다며 이미 벌어진 일련의 사건들을 변명하고 싶은 그들의 욕망이 전해진다.


[ 네이버카페 컬처블룸 서평단으로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작성한 주관적인 후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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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쌤의 일대일 커피 수업
구대회 지음 / 황소걸음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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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라도 커피없이 못사는 흔한 직딩이다. 꼭 직딩이라야만 커피를 애호하는 건 아니지만, 특별히 직딩이라 표현한 이유는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직딩들에게 커피는 마치 전투식량(?)과 같은 의미를 갖기 때문이다. 그런데 말입니다~ 전투식량 같기만 헸던 커피가 이제는 인생의 베프가 되어 - 조금 거창하게 말하면 - 나의 희노애락을 함께하고 있다.

둘둘둘의 조제커피를 지나 - 한국인 회귀 본능이 있다는 - 노랭이 맥심 봉지커피를 넘어, 공유 오빠의 환한 미소에 반해 마시기 시작한 카누를 뒤로하고 요즘은 원두커피에 푹 빠져 있다. 가끔 마시던 별다방 커피가 일상이 되고, 쥐뿔도 모르면서 사무실 북카페 원두 품평을 해대며 출근 후 첫 일과가 원두를 곱게 갈아 핸드드립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같은 원두로 핸드드립을 해도 매일 아침 커피맛이 달라지는 똥손이라 제대로 된 핸드드립을 배우고 싶지만 월급 시간에 묶인 직장인이라 그마져도 쉽지않다. 아쉬운대로 유투브 영상을 종종 보지만 늘 제대로된 2프로가 아쉽다고 생각하던즈음 '별걸 다 가르쳐주는 구쌤의 일대일 커피수업'을 만났다. 바리스타 보다는 핸드드립을 제대로 하고 싶은 나에게는 다소 무거운 내용일수도 있지만 이론부터 실천까지 어렵지 않은 대화방식으로 차근차근 설명하고 있는 교재라 어렵지 않게 읽힌다. 원두와 생두부터 구별하는 이론으로 충분히 무장하고 난 후 유투브로 실전을 연습하면 나도 조금은 괜찮은 홈카페 바리스타가 되어 있지 않을까하는 기대감도 가져본다.

원두와 생두를 구분하지 못한건 아니었지만 원두 못지 않게 중요한 부분이 머신과 그라인더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에소 머신에는 등급이 있을 거라는 건 막연하게나마 생각했다면 사실 그라인더는 용량의 차이만 있을 뿐이라고 생각했었는데,,, 분쇄기에 따라서도 영향을 받는다니 커피가 예민한 식재료였다는걸 다시 한번 느끼게 된다. 전동과 수동으로만 구분하던 좁디 좁았던 그라인더에 대한 지식이 확장된다. 퇴직 후 예쁜 커피숍을 하고 싶다는 작은 소망이 조금 더 단단해 진다. ^^;;

구쌤 커피수업 6개의 장이 모두 재미있지만, 역시 핸드드립을 강의하고 있는 3장에 긴 시간 머물게 된다. 머신처럼 빠르고 일관된 맛을 유지할 수는 없지만 커피감성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건 역시 핸드드립이라 하겠다. 원두를 갈 때부터 쫘악 퍼져주는 향기에 휩싸이고 짧지만 영원같은 3분 내외의 시간을 지나 내려진 커피를 한 모금 딱~ 넘길 때의 기분이란! 모든 시름을 잊게하니 말이다.

바리스타 자격증 공부를 하고 있지 않아서 4장 부터는 조금 더 가볍게 읽었지만, 좋아하는 커피와 훨씬 더 가까워진 기분을 가질 수 있는 시간이었다.

"에스프레소 솔로는 '설탕보다 작고 밀가루보다 크게 분쇄한 원두 약 8g을 9기압과 93℃ 물로 20~30초 동안 추출한 커피 원액 20~30ml'입니다." (p.57)

[ 네이버카페 책과 콩나무 서평단으로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작성한 주관적인 후기입니다 ]



#구쌤의일대일커피수업 #구대회 #황소걸음 #책과콩나무 #서평단 #바리스타 #핸드드립 #바리스타시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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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체스트넛맨
쇠렌 스바이스트루프 지음, 이은선 옮김 / 문학동네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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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스트넛맨 어서 들어와요,
체스트넛맨 어서 들어와요.
오늘은 나를 위해 들고 온 밤... "

일단 두꺼운 벽돌책, 깨알 같은 글씨 사이즈, 살짝 어두운 표지,,, 전형적인 북유럽 스릴러의 특징(?)을 가지고 있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원작소설. 깨알 같은 글씨의 벽돌책이지만 막힘없는 가독성을 보여준다. 끝까지 예측하기 어려운 범인과 아닌 듯 이어진 연쇄살인 그리고 한 발 앞선 범인. 월요일부터 읽기 시작했지만 책을 읽을 수 있는 시간이 다소 부족했던 탓에 오늘에서야 끝냈지만,,, 완전 취향저격 범죄스릴러였다.

1989년 10월의 마지막 날. 농장을 탈출한 가축들이 이웃의 밭을 망치고 있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한 마리우스는 일가족이 무참하게 살해당한 현장을 발견하고 그곳에 남겨진 위탁아동을 구하고자 했지만 마리우스 또한 그곳에서 허무하게 목숨을 잃는다. 순식간에 일가족과 경찰을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끔찍하게 살해한 범인은 누굴까? 작은 단서도 없는 범죄현장은 무대의 전환을 알리는 것처럼 암전되고,,,

그로부터 30년 후 NC3로 부서를 옮기고 싶은 최연소 살인수사과 형사 싱글맘 툴린과 5년전 불의의 사고를 겪은 후 반쯤 정신을 놓은 채 근무태만을 이유로 유로풀에서 좌천된 형사 헤스를 주인공으로 '더 체스트 맨'이라 불리우는 연쇄살인범을 쫓는 추격전이 시작된다. 사건 해결을 위해서는 끈질기다 못해 집요한 두 형사 툴린과 헤스는 살인사건 현장에 놓여진 밤 인형을 매개로 다시 시작된 연쇄살인범을 찾아 나선다. 다시 시작된 것일까,,, 아니면 지금껏 놓치고 있었던 것일까,,, 예측할 수 없는 단서들은 지금까지의 수사를 조롱하는 것처럼 엉뚱한 곳을 가르키며 점점 안개속으로 사라져가는 채스트 맨.

"겐스가 들보 아래로 손을 뻗어서 그것이 앞뒤로 자유롭게 왔다갔다 할 수 있도록 엉킨 실을 푼다. 고동색 밤 두 개가 위 아래로 겹쳐져 있는데 위쪽이 작고 아래쪽이 크다. 작은 쪽 밤에 구멍을 두 개 새겨서 눈을 만들어놓았다. 큰 쪽 밤에는 성냥개비를 꽂아 팔과 다리를 만들었다. 두 개의 동그라미와 네 개의 막대로 이루어진 인형에 불과하지만, 잠깐 알 수 없는 이유로 툴린의 심장이 멎는다." (p.53)

코펜하겐의 외곽 주택 놀이터에서 한 손이 잘린 채 살해당한 여성이 발견되는 것으로 시작된다. 무참한 폭력을 당한 이후 손까지 잘린 채 살해당한 라우라는 자폐진단을 받은 아들과 남자친구 하우게와 동거중이다. 퍼즐이 들어맞듯 라우라가 살해당한 날 밤 출장을 갔던 하우게의 알리바이는 석연치 않고 무슨 이유에서인지 라우라는 현관 열쇠를 바꿨다. 단순히 싫증난 연인사이에서 우발적으로 벌어진 사건일까,,, 살해된 라우라를 본뜬 것처럼 한쪽 팔이 잘린 채 살해현장에 놓여진 밤 인형. 앞으로 이어질 연쇄살인을 예고하듯 비밀을 품고 있다.

"한 인형은 머리와 몸통으로 이루어져 있어요. 머리에는 송곳이 나 다른 날카로운 도구로 새겨놓은 눈이 있고 몸통에는 팔다리로 보이는 네 개의 성냥개비가 꽂혀 있어요. 하지만 한 인형에는 손이 없어요. 발도 없고요." (p.193)

밤 인형은 그둘에게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걸까? 흔하게 볼 수 있는 밤 인형은 일년 전 사랑하는 딸 크리스티네 실종의 충격으로 휴직했던 사회부 장관 로사가 복직하는 날, 크리스티네와 관련된 비밀과 함께 등장했다. 더군다나 라우라의 죽음은 시작에 불과하다는 듯 연이어지는 살인. 언제나 한 발 먼저 사건을 지휘하는 범인과 그곳에 남겨진 밤 인형은 툴린과 헤스를 결속시키고,,,

소설속에서는 크게 다뤄지지는 않았지만, 평범하게 성장할 수 있었던 한 사람을 연쇄살인범 체스트넛맨이 되도록 만든 이유가 다름아닌 아동학대였다. 얼마전 정인이 사건으로 크게 관심을 끌었지만 여전히 개선되지 않고 있는 현실에 무거운 마음이 된다.

예상하지 못했던 곳에서 등장하는 깨알같은 단서들과 번번히 예상을 빗나가는 범인. 툴린과 헤스를 제외한 여느 등장인물들의 심리를 좌지우지하는 범인의 치밀함 그리고 체스트넛 맨에게 범죄의 판을 깔아주기 위해 스스로 살인자가 되는 사이코패스 등 선명한 색을 가진 캐릭터들이 조화된 범죄스릴러의 진수를 보여준다. 역쉬나~ 믿고보는 네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원작이었다.

[ 네이버카페 몽실북클럽 서평단으로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작성한 주관적인 후기입니다 ]

#더체스트넛맨#쇠렌스바이스트루프#이은선#문학동네#노르딕누아르#스릴러소설#몽실북클럽#몽실서평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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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네 산부인과
고다 도모 지음, 김해용 옮김 / 현대문학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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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다 도모의 오네 산부인과를 읽으면서 성적 소수자를 가리키는 LGBT(레즈비언, 게이, 양성애자, 트랜스젠더)를 처음으로 접했다. 성적 소수자들에게 특별한 거부감도 없지만, 그들에 대한 부당한 대우를 비판하는 목소리에 힘을 보태는 입장도 아니었기 때문이리라. 여성과 남성이라는 생물학적 성을 넘어 요즈음에는 사회적 문화적 성을 의미하는 '젠더'를 사용하고 있지만 여전히 성적 소수자들에게는 커밍아웃이 힘든 세상이다.

굉장히 가부장적이고 폐쇄적인 우리 사회에서 성적 소수자가 등장하기 시작한 건 얼마 되지 않았다. 2000년 활발하게 활동하던 방송인 홍석천이 스스로 게이 커밍아웃을 하고, 2001년 트랜스젠더 하리수가 화장품 모델로 등장하면서부터이지 싶다. 소재로 회자되는 것조차 금기시했던 게이, 트랜스젠더 등 성적 소수자들을 다루기 시작했으니 이것만으로도 의미 있는 시작이었을 것이다. 오네 산부인과는 그럼에도 여전히 다수의 사람들이 불편하게 여기는 LGBT를 유쾌하게 다뤄내고 있다. 한 발자국쯤 여느 사람들과 틀리지 않은 조금 다른 그들에게 다가선 느낌이라고나 할까,,,

"다치바나 선생님, '언니 산부인과'에 잘 오셨어요." (p.44)

태아의 목소리를 듣는 산부인과 의사와 의료진과 스텝이 모두 LGBT로 구성된 독특한 산부인과를 배경으로 조금 다르지만 따뜻한 출산기를 이야기한다. 예상하지 못했던 산후우울증 환자의 자살 사건으로 더 이상 산부인과 의사로서의 일상을 이어가기 어려웠던 다치바나 쓰구오. 사랑하는 아들이 일상에서 멀어지고 있는 것이 안타까웠던 쓰구오의 엄마는 오래전 알고 지내던 선배 야나기가 운영하는 특별한 산부인과를 소개한다.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작은 도시의 언덕에 위치한 '언니 산부인과'. 아주 특별한 이곳에서 쓰구오는 함께할 수 있는 파이팅 넘치는 위로와 따뜻함을 배운다.

"우리는 되도록 낳고 싶은 방법으로 낳게 해주고 있어요. 그게 '행복한 출산'과 '행복한 양육으로 연결되거든요." (p.12)

서핑 USA를 틀어둔 채 서핑보드에 올라탄 남편과 함께 아이를 낳고 있는 특별한 부부의 출산을 시작으로 쓰구오는 여느 병원과 사뭇 다른, 프렌들리 하지만 비밀스러운 언니 산부인과만의 특별함을 마주한다. 아이를 낳아 본 산모든 아이를 낳아 보지 않은 초산부든 모두에게 출산은 경이로운 미래이자 예측할 수 없는 두려운 미래다. 쓰구오를 비롯한 언니 산부인과의 특별한 사람들은 새 식구를 맏이 하는 행복보다 두려움이 앞서는 사람들에게 그들만의 따뜻함을 전한다.

쌍둥이 아이 중 한 아이를 잃었던 엄마가 스스로의 책임이라 자책하며, 산후우울증의 두려움에 다시 찾아온 아이를 반갑게 맞이하지 못하는 임산부에게 무작정 아이를 낳도록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열 수 있도록 진심을 다해 돕고, 양육시설에서 자란 어린 부부에게는 아이를 충분히 잘 키울 수 있다는 용기를 북돋는다. 치열하게 생각하고 스스로 선택할 수 있도록 말이다.

"이제야······· 제 이름이 좋다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저는 늘 '가업을 이어받아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했거든요. 하지만······ '태어난 생명을 계속 이어 가게 하고 싶다', 그런 바람이 담겨 있는 게 아닌가 싶어서." (p.353)

당당하게 스스로가 조금 특별한 LGBT 임을 커밍아웃할 수 있고, 남들과 다르다는 이유로 깊숙이 숨겨두었던 태아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경이로운 능력을 걱정 없이 밝힐 수 있는 곳, 다름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는 곳, 서로가 격려하며 함께 성장할 수 있는 곳 그곳이 바로 오네 산부인과가 아닐까 싶다. 이제는 기억도 가물가물해진 두 번의 출산을 떠올리며, 가볍지만 가볍지 않은 여운을 얻을 수 있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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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네산부인과#고다도모#김해용#현대문학#메티컬판타지소설#메디컬소설#몽실북클럽#몽실서평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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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전래특급 - 너무나 낯익지만 잔혹한 이야기
박해로 지음 / 북오션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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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특유의 무속신앙과 이색적인 상상력을 더한 스타일리시한 소설' 신 전래 특급에 이만큼 잘 어울리는 설명은 없을 듯하다. 춘향전, 해님달님에 원린자(외계인)을 연결시켜 박해로 작가님의 독특한 필력으로 동심을 파괴(?) 허신다. 춘향전이야 욕심 많은 탐관오리를 단죄하는 전래동화라지만 해님달님은 어쩌면 처음부터 외계인을 등장시키고 싶은 욕망이 있지 않았을까 싶다. ㅋㅋ

 

[ 이몽룡과 겟 아웃 ]

남원 수령으로 부임한 숫총각 변학도가 춘향의 수청을 강요하다가 암행어사로 착각한 사이비교 사해태평교의 교주 이몽룡을 만나 겪는 좌충우돌 벌받기 미션 수행~ 철저하게 변학도의 사악한 사심을 응징하기 위한 벌 받기 미션 수행인 관계로 춘향과 몽룡이 주인공이 아닌 '변학도'가 주인공이다. 더불어, 변학도의 어리바리한 만행을 객관적으로 지켜보기 위한 허생이 조연으로 등장하는 것 또한 관전 포인트. 욕심으로 가득 찬 사악한 인간의 심리를 정확하게 파악한 사이비 교주 이몽룡은 살짝 거들기만 했을 뿐인데 - 슬램덩크의 오른손은 거들 뿐이 생각나는군 - 변학도는 북 치고 장구 치고 스스로의 파멸을 향해 야심 차게 달린다.

 

[ 해와 달이 된 오누이와 우주의 침입자 ]

완전 SF 판타지다. 해님과 달님, 장화와 홍련까지 등장한 해와 달이 된 오누이 편에서는 귀경잡록의 원린자 부분이 본편처럼 등장한다. 손끝이 야문 해님과 월녀의 엄마를 꿀꺽해버린 외계인이 사슴, 호랑이에 이어 사람을 잡아먹고 변해가는 과정이 적나라하게 표현된다. 살짝 끔찍한 모습을 상상하게 된다.

 

"별천지에는 헤아릴 수 없는 원린자가 넘쳐나고, 그들이 항상 인간 세상을 노리려 각축을 벌인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허황되어 보이는 다양한 학설을 다분히 인정하고, 참다운 지혜의 사람들을 신분에 상관없이 쓴다면 조선은 천하제일의 나라가 될 것이다. - 귀경잡록 중" (p.133)

 

[ 심 봉사와 이창 ]

심청전, 흥부전, 혹부리 영감까지 연결되지 않는 전래동화들이 섞여 있어 정신을 바짝 차리고 읽는다. 역쉬나 심청전이 중심이지만 주인공은 심청이가 아니였으~ 꽃다운 효녀 청이보다는 애절한 심정으로 청이를 찾는 아버지 심봉사의 맹활약이 관전 포인트다. 서울로 상경해 심봉사 부양을 위해 열심히 살고 있는 청이는 외로움에 못 이겨 사기꾼 남친을 만나 어마어마한 사채에 허덕이고, 사채업자에게 연민이라도 얻을 수 있을까 하는 마음에 심봉사와 함께 살기로 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청이가 사라지고 마을에는 흡혈과 내장이 사라진 처!녀! 시체들이 늘어난다. 작가는 앞이 안 보이는 심봉사에게 소머즈급 청력을 선물하고 셜록홈즈와 같은 추리력과 소머즈급 청력을 바탕으로 청이의 멋진 아버지 심봉사는 연쇄살인 사건을 해결한다. 제비의 섬뜩한 눈초리 또한 놓치지 말아야 한다.

 

[ 도깨비감투와 X레이 눈의 사나이 ]

오호~ 도깨비감투에 이런 기능을! 투명 인간을 만들어주는 감투가 아니라 X레이처럼 투시할 수 있는 능력을 만들어주는 도깨비감투다! 도깨비감투를 쓰면 사람들이 뼈다귀로 보이고, 땅속이 훤히 보인다. 우연히 저승사자가 떨어뜨린 도깨비감투를 주은 나무꾼은 투시 능력을 이용해 오래전 내부 전쟁에서 희생된 병사들과 함께 묻힌 재물을 찾아 돈을 모으지만 언제 저승사자가 자신을 찾으러 올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떨며 남은 인생을 살아간다. 믿거나 말거나~

 

"네가 죽고 사는 건 너한테 달렸어. 모든 사람이 다 그래. 난 죽은 이를 데려가는 역할을 할 뿐이야. 내가 안 오면 네 혼백이 떠나지 못할 뿐이라 그 말이지." (p.302)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전래동화와 영화가 결합해 새로운 스토리를 만들어낸다. 은혜 갚는 제비가 외계인이 메신저가 되기도 하고, 앞을 못 보는 심봉사가 엄청난 추리능력을 가진 탐정이 되기도 한다. 이미 알고 있던 이야기들이 조각조각 재결합되어 번뜩이는 아이디어로 재생산되는 과정이 사뭇 흥미롭다. 인간의 나약한 심리는 예상하지 못한 곳의 아주아주 작은 자극만으로도 펑 터져버린다는 것을 유쾌하게 풀어낸 너무나 낯익지만 잔혹한 이야기 신 전래 특급이었다.

 

[ 네이버카페 몽실북클럽 서평단으로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작성한 주관적인 후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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