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전래특급 - 너무나 낯익지만 잔혹한 이야기
박해로 지음 / 북오션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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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특유의 무속신앙과 이색적인 상상력을 더한 스타일리시한 소설' 신 전래 특급에 이만큼 잘 어울리는 설명은 없을 듯하다. 춘향전, 해님달님에 원린자(외계인)을 연결시켜 박해로 작가님의 독특한 필력으로 동심을 파괴(?) 허신다. 춘향전이야 욕심 많은 탐관오리를 단죄하는 전래동화라지만 해님달님은 어쩌면 처음부터 외계인을 등장시키고 싶은 욕망이 있지 않았을까 싶다. ㅋㅋ

 

[ 이몽룡과 겟 아웃 ]

남원 수령으로 부임한 숫총각 변학도가 춘향의 수청을 강요하다가 암행어사로 착각한 사이비교 사해태평교의 교주 이몽룡을 만나 겪는 좌충우돌 벌받기 미션 수행~ 철저하게 변학도의 사악한 사심을 응징하기 위한 벌 받기 미션 수행인 관계로 춘향과 몽룡이 주인공이 아닌 '변학도'가 주인공이다. 더불어, 변학도의 어리바리한 만행을 객관적으로 지켜보기 위한 허생이 조연으로 등장하는 것 또한 관전 포인트. 욕심으로 가득 찬 사악한 인간의 심리를 정확하게 파악한 사이비 교주 이몽룡은 살짝 거들기만 했을 뿐인데 - 슬램덩크의 오른손은 거들 뿐이 생각나는군 - 변학도는 북 치고 장구 치고 스스로의 파멸을 향해 야심 차게 달린다.

 

[ 해와 달이 된 오누이와 우주의 침입자 ]

완전 SF 판타지다. 해님과 달님, 장화와 홍련까지 등장한 해와 달이 된 오누이 편에서는 귀경잡록의 원린자 부분이 본편처럼 등장한다. 손끝이 야문 해님과 월녀의 엄마를 꿀꺽해버린 외계인이 사슴, 호랑이에 이어 사람을 잡아먹고 변해가는 과정이 적나라하게 표현된다. 살짝 끔찍한 모습을 상상하게 된다.

 

"별천지에는 헤아릴 수 없는 원린자가 넘쳐나고, 그들이 항상 인간 세상을 노리려 각축을 벌인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허황되어 보이는 다양한 학설을 다분히 인정하고, 참다운 지혜의 사람들을 신분에 상관없이 쓴다면 조선은 천하제일의 나라가 될 것이다. - 귀경잡록 중" (p.133)

 

[ 심 봉사와 이창 ]

심청전, 흥부전, 혹부리 영감까지 연결되지 않는 전래동화들이 섞여 있어 정신을 바짝 차리고 읽는다. 역쉬나 심청전이 중심이지만 주인공은 심청이가 아니였으~ 꽃다운 효녀 청이보다는 애절한 심정으로 청이를 찾는 아버지 심봉사의 맹활약이 관전 포인트다. 서울로 상경해 심봉사 부양을 위해 열심히 살고 있는 청이는 외로움에 못 이겨 사기꾼 남친을 만나 어마어마한 사채에 허덕이고, 사채업자에게 연민이라도 얻을 수 있을까 하는 마음에 심봉사와 함께 살기로 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청이가 사라지고 마을에는 흡혈과 내장이 사라진 처!녀! 시체들이 늘어난다. 작가는 앞이 안 보이는 심봉사에게 소머즈급 청력을 선물하고 셜록홈즈와 같은 추리력과 소머즈급 청력을 바탕으로 청이의 멋진 아버지 심봉사는 연쇄살인 사건을 해결한다. 제비의 섬뜩한 눈초리 또한 놓치지 말아야 한다.

 

[ 도깨비감투와 X레이 눈의 사나이 ]

오호~ 도깨비감투에 이런 기능을! 투명 인간을 만들어주는 감투가 아니라 X레이처럼 투시할 수 있는 능력을 만들어주는 도깨비감투다! 도깨비감투를 쓰면 사람들이 뼈다귀로 보이고, 땅속이 훤히 보인다. 우연히 저승사자가 떨어뜨린 도깨비감투를 주은 나무꾼은 투시 능력을 이용해 오래전 내부 전쟁에서 희생된 병사들과 함께 묻힌 재물을 찾아 돈을 모으지만 언제 저승사자가 자신을 찾으러 올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떨며 남은 인생을 살아간다. 믿거나 말거나~

 

"네가 죽고 사는 건 너한테 달렸어. 모든 사람이 다 그래. 난 죽은 이를 데려가는 역할을 할 뿐이야. 내가 안 오면 네 혼백이 떠나지 못할 뿐이라 그 말이지." (p.302)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전래동화와 영화가 결합해 새로운 스토리를 만들어낸다. 은혜 갚는 제비가 외계인이 메신저가 되기도 하고, 앞을 못 보는 심봉사가 엄청난 추리능력을 가진 탐정이 되기도 한다. 이미 알고 있던 이야기들이 조각조각 재결합되어 번뜩이는 아이디어로 재생산되는 과정이 사뭇 흥미롭다. 인간의 나약한 심리는 예상하지 못한 곳의 아주아주 작은 자극만으로도 펑 터져버린다는 것을 유쾌하게 풀어낸 너무나 낯익지만 잔혹한 이야기 신 전래 특급이었다.

 

[ 네이버카페 몽실북클럽 서평단으로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작성한 주관적인 후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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