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의 교토 - 디지털 노마드 번역가의 교토 한 달 살기 일본에서 한 달 살기 시리즈 2
박현아 지음 / 세나북스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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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와비사비 : 와비는 세속적 삶에서 벗어나 단순하고 덜 완벽하며 본질적인 삶을 추구하는 것, 사비는 낡았지만 한적한 삶에서 정취를 느끼는 미의식을 의미 (p.25) ]

벚꽃이 흐드러지게 핀 봄날에 잘 어울리는 책이었다. 책속 곳곳에 숨겨진 교토의 봄날을 눈으로나마 만끽하며 마치 교토를 걷고 있는듯한 느낌을 받았다고나 할까,,, 책 표지부터 눈길을 사로잡은 한 달의 교토는 책장의 마지막장까지 봄날의 기분을 충만하게 해준 책이었다.

교토 한달 여행기보다 먼저 눈길을 사로 잡은 디지털 노마드(Digital Nomad) 일과 주거에 있어 유목민(nomad)처럼 자유롭게 이동하면서 창조적인 사고방식을 갖춘 사람들, 각종 디지털 장비를 활용해 시간과 장소에 구애 받지 않고 일도 하고 자기 생활도 즐는 신인류를 칭하는 말이라고 한다. 출퇴근에 얽매여 자유로운 일상하고는 거리가 먼 직딩에게는 꿈과 같은 말이다. 프리랜서로 활동하는 분들도 나름의 애환이 있겠지만, 확실한 기술과 전문적 지식으로 무장한 디지털 노마드, 프래랜서로 일하고 싶다는 생각은 9 to 6의 직장인들 거의 대부분이 갖고 있는 꿈일런지도 모르겠다.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아이가 있는 엄마들 사이에서 제주도 한달살기가 유행했던 적이 있다. 여러가지 생활은 불편은 물론 경비의 압박을 뒤로하고라도 가장 걸리는 문제가 '시간'인지라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그저 옆에서 부러워만 하던 일이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로 직장에 매여 실행할 수 있을 확률이 거의 없긴 하지만, 언제가는 꼭 제주도가 되었던 한적한 시골 마을이 되었든 꼭 한번 나만을 위한 시간을 가져보고 싶다는 소박한 꿈이 마음 한켠에 자리잡고 있다.

여행을 떠나면 항상 시간단위로 빡빡한 일정을 세우고, 뒤를 쫓기듯 관광지와 맛집을 둘러보고 다니는 편이다. 그곳에 다시는 갈 일이 없는 사람처럼 말이다.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무모하고 무식한 여행이었다. 한곳을 보더라도 오랜시간 기억에 남을 수 있는 추억을 만들고 그곳을 즐기면서 다녔으면 훨씬 좋았을텐데 말이다. 해외여행의 경험이 거의 없지만 일본은 서너번 가봤음에도 불구하고, 심지어 교토나 나라는 두번이나 다녀왔음에도 기억에 남는 장소가 거의 없다. 기껏해야 금각사, 은각사 정도랄까. 얼마나 쫓기듯 다녔으면 여행의 추억이 이리도 빈약할까 싶다.

그런의미에서 '한 달의 교토'는 여유 있는 일상과 여유를 한꺼번에 느낄 수 있는 여행기라서 색다른 느낌으로 나의 감성을 자극한다. 유명한 관광지에 집착하지 않고, 여유있게 둘러보고 예쁜 카페를 찾아다니며 그곳의 정취를 한껏 느낄 수 있는 여행이라니 상상만을도 힐링된다.

"나는 카메라를 들고 사람 구경, 벚꽃 구경, 가게 구경을 하며 걷고 또 걸었다. 교토에 온 지 얼마 안 되었기 때문에 사고 싶은 것, 먹고 싶은 것이 얼마나 많던지! 하지만 내게는 한 달이라는 시간이 있다며 꾹꾹 참았다. 한 달. 그 시간은 모든 것에 여유를 주었다." (p.40)

한 달 살기라는 색다른 여행테마를 차치하고라도 한 달의 교토는 교토의 매력에 흠뻑 빠질 수 있는 여행기였다. 고즈넉하고 조용한 예고성으로만 알고 있던 교토의 다양한 볼거리와 먹거리, 예쁜 카페에 대한 소개만으로도 만족스럽다. 하루하루 일정과 함께 소개된 주요 관광지에 대한 짧은 안내와 미니 일본어 코너는 꼭 한 달 살기가 아닌 교토 여행을 계획하고 있는 독자라면 충분히 좋은 정보가 되어 줄 것이다.

너무 예쁜 교토의 4월을 만끽할 수 있는 한 달 살기도 부러웠지만, 결혼 4개월차, 한 달의 여행을 허락해줄 수 있는 가족도, 일을 놓지 않고 일상을 유지하면서 한 달을 떠날 수 있는 작가님의 직업도 부러워지는 책읽기였다. 지금은 일상을 벗어나 훌쩍 여행을 떠날 수 없지만 언젠가 꼭 나에게 선물 같은 한 달 여행을 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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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처 몰랐던 내 아이 마음 처방전 - 몸과 마음이 크게 자라는 우리 아이 성장 수업
위영만 지음 / 더블북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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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내 아이인데 이렇게 모를까" 딱 나한테 하는 말이다.

아이를 키우면서 가장 힘들었던 일은 아이의 마음을 제대로 읽지 못하고 있다는 죄책감이었다. 지금은 어느정도 아이가 자라서 건강하고 비뚤어지지 않고 자란것만으로도 감사하고 있지만(아직 욕심을 완전히 버리지는 못한 엄마다) 아이가 한참 자라고 있을 때는 아이의 마음과는 별개로 엄마가 원하는 대로 움직이지 않는 아이에게 끊임없이 불평불만을 쏟아내곤 했다. 아이가 상처받고 있다는 생각은 저멀리 던져둔채 말이다.

편협한 지식으로 한의과라고 하면 아이의 성장이나 외과적 치료만 가능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소아청소년 뇌신경질환 치료를 한의학적인 관점에서 서술하고 있는 책이라 새롭다. 외과적인 치료보다는 기의 순환을 다스려주고 마음을 달래주는 것만으로도 개선되는 아이들이 많은 걸 보면 아이들의 문제보다는 힘들다고 소리없이 아우성치고 있는 아이들을 엄마의 욕심으로 모른척하고 있었던건 아닌지하는 하는 마음에 안타깝다.

"아이가 달라졌다고 하기에 앞서 가끔은 그 원인을 부모에게서 찾아야 할 때도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아이만 치료해서는 소용없다고 말합니다. 달라진 아이 때문에 힘들어하는 부모도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아이에게 문제가 있다고 보는 부모 자신이 문제를 안고 있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p.8)

아이들의 문제적 행동 12가지에 대해서 다양한 상담사례와 함께 적용했던 치료법과 문제해결법을 조언한다. 생각보다 다양하게 다뤄진 임상케이스는 아이를 키우면서 빈번하게 겪었던 나의 경험에 적지않게 투영된다. 이런 문제가 있었을땐 아이에게 이런방법으로 다가갔으면 훨씬 좋았을텐데라는 뒤늦은 후회가 밀려온다.

격어봤음직한 다양한 사례들은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이 참고하기 좋은 사례들로 구성되어 있다. 나 또한 아이가 어릴적 다른 아이들보다 오랜시간 함께 잠을 자려고 했던 기억이나, 학교에 가지 않으려고 고집을 부렸던 기억들과 사례들을 연결해 보면서 이럴땐 이렇게 해줬으면 아이가 덜 힘들었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아이가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 이유를 헤아려주지 못한 아쉬운 엄마였다. 워킹맘이라는 핑계로 많이 안주지도 못하고 막무가내로 아이한테 강요했던 기억이 떠올라 아이에게 많이 미안해진다.

지금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상냥하고 착한 아들이지만, 아이가 사춘기였을 즈음에는 어떻게 반응해줘야 하는지를 모를 정도로 많이 힘들게 하곤 했다. 어쩌면 아이의 사춘기 폭주가 엄마의 잦은 스트레스와 무관심 때문이었을 지도 모르겠다. 왜 이유를 나에게서도 찾아보지 않고 아이에게서만 찾으려고 했는지 모르겠다. 아이의 우울증의 한 원인으로 언급된 부모의 기대와 욕심을 내려놓는 일은 해당 사례 뿐만아니라 모든 관계에서의 해법이 아닐까 싶다.

"사실 가장 중요한 첫 번째 솔루션은 엄마, 아빠가 아이에 대한 기대와 욕심을 좀 내려놓는 거예요." (p177)

책을 읽으면서 새로운 사례가 나올때마다 뜨끔뜨끔할 정도로 일상에서 흔하게 겪을 수 있는 사례들이다. 빈번하고 흔하게 겪는 사례들이지만 전문적인 지식없이 대응했던 상황들이 정리되면서 아이와의 관계개선에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정보들이 포함되어 있다. 전문용어들이 포함되어 있어 쉽게 읽히는 책은 아니었지만 아이의 심리적인 문제상황을 빨리 알아보고 도와줄 수 있는 지식을 습득할 수 있는 유용한 정보들이었다. 오늘 저녁에는 퇴근해서 사랑을 가득 담은 따뜻한 밥과 아이가 좋아하는 반찬으로 행복한 저녁시간을 만들어 봐야겠다.

"아이에게는 사랑을 가득 담은 엄마표 집밥이 최고의 보약입니다." (p.2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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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은 놀랄 만큼 당신에게 관심 없다 - 직장인들의 폭풍 공감 에세이
이종훈 지음, JUNO 그림 / 성안당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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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나는 놀랄 만큼 나에게 관심없는 타인의 눈치를 보며 위축된 시간을 보내고 있다. 남들이 나에게 생각보다 관심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타인의 시선에서 신경을 신경을 끄기란 쉽지 않다. 쓸데없는 곳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무한반복 오토리버스 인생을 살고 있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직장, 술, 삶.걱정, 결핍.습관,마음, 건강.독서.행복.부모의 5개 장으로 구성되어, 정제된 언어가 아닌 비속어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넘나들며 가려운 곳을 긁어 주는 듯한 이번 책읽기는 나에게 B급 감성의 통쾌한 웃음을 선물한다. JOB을 원했지 JOB것들을 원하지 않았는데 어쩔 수 없는 JOB것들에 시달리고 있는 직딩의 한사람으로서 나를 비롯한 직딩들을 괴립히고 있는 JOB것들에게 변화무쌍한 랩 한소절을 날리고 싶다. 어쩌면 곳곳에 나열된 한마디 한마디가 주옥 같다. 책을 읽어 내려가는 것 만으로도 스트레스가 해소되는 것 같은 기분을 느낀다. 나만 이런게 아니었어! 모두들 안그런척 새침하게 가족(足) 같은 회사에서 내리까임을 당하면서 월급의 노예가 되어 살고 있는 것이었다. 직딩 공감 백프로다.

"집에서 나오자마자 집에 가고 싶고, 회사 오자마자 퇴근하고 싶고, 일 시작하자마자 술 먹고 싶은 심정이다." (p.20)



화려하고 단정한 문장으로 채워진 책은 아니다. 중2병에 걸린 사춘기 아이들이 내뱉을 법한 문장들이 책장 사이사이를 빼곡하게 채우고 있다. 이렇게 가볍고 공감가는 문장 덕분에 웃픈 공감을 끌어낼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회사가 낭만적인 곳은 아니지만 그래도 속쓰린 위장을 채워주고, 참아 보라고 매달 월급을 주면서 위로까지 해주는 곳이니 조금만 더 버텨보라고, 사표 낼 용기보다 더 큰 남을 용기로 견뎌보라고 토닥여 주기까지 한다. 쉽사리 던질 수 없는 사표가 당연한 것이니 슈퍼 멘탈갑의 마음으로 당당하게 맞서라고 조언한다.

"슈퍼갑 위에 울트라 멘탈갑이 있다. 네가 아무리 갑이라고 해도, 누가 뭐라고 해도, 내 인생의 갑은 나다." (p.42)​



마치 랩을 하듯 쏟아내는 글들과 그에 어울리는 찰떡같은 삽화가 재미를 배가시켜 준다. 직딩의 영원한 친구, 커피 링겔과 소주 수혈! 커피 링겔로 하루하루를 버티고 소주 수혈로 한주한주를 버티는 직딩들의 애환과 마음속 스크래치를 숨기지 않고 보여준다. 타인으로부터 받은 마음속 스크래치를 콤파운드로 밀어보고 싶다. 꼭 행복하지 않아도 평범하게 살아도 된다는 진리를 알게한다.

"행복을 갈구하니 불행한 것이다. 행복은 정복의 대상이 아니다. 평범하게 살아도 된다. 꼭 행복하게 살아야 하는 건가요? 그냥 사는 거지 뭐." (p.248)



학교를 졸업하고, 취직을 하고, 결혼을 하고, 부모가 되고... 어쩌면 주어진 시간을 따라가느라 준비되지 않은 어른이 되어버린건지도 모르겠다. 평범한 을도 아닌 슈퍼을이라고 좌절하면서 말이다. 누구나 처음으로 사는 어른, 꼭 행복하지 않아도 성공하지 않아도 된다는, 누구나 다 알고 있지만 모르는척 하고 있었던 작은 위로가 마음을 다독여 준다. 이제부터라도 내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건 '나'라는 무기를 들고, 다른 사람 눈치보지 말고 내인생의 갑으로 열심히 살아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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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팽이 - 심은영 장편소설
심은영 지음 / 창해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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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사건이 작가의 상상력이 아니라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음에 몸서리쳐진다. 마땅히 보호받아야할 아이들이 가장 안전한 공간이라 여기는 학교와 가정에서 만신창이가 되어가는 모습을 적나라하게 서술하고 있다. 부모의 배경을 등에 업고 무자비하게 벌어지는 학교 폭력과 차별,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는 서슴없이 저질러지는 권력자의 횡포 그리고 따뜻한 가정이라는 가면을 쓴채 행해지는 가정 폭력에 무방비하게 노출되어 있는 아이들이 있다. 언제든 숨어들어갈 수 있는 무거운 집을 짊어지고, 연약한 몸뚱아리를 숨기기 위한 딱딱한 집은 강하다는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달팽이와 같은 아이들이다. 아이들은 살기위해 이기적인 생존본능을 지닌 달팽이와 같은 삶을 살아간다. 끔찍하고 처절하게...

법무부 검찰국장 서용걸은 연호, 연우, 지민 세남매를 홀로 키우고 있는 모범적인 아버지다. 아니, 모범적인 가면을 쓰고 있는 파렴치한이다. 세상에 믿을 사람이라고는 아버지 밖에 없는 아이들을 이유없이 학대하고, 심지어 여리디 여린 딸을 범하기도 한다. 그리고 아이들을 철저하게 사회와 격리시켜 서서히 무너져가는 가정을 감추고 있다. 그 사건이 일어나기 전까지.

"내게도 연우에게도 '가족'이란 가슴 벅차거나 아릿한 감정과는 전혀 상관없는 명사였다. 내가 아프고 힘든 순간에는 당당하게 날 외면하고, 자신들이 필요한 순간에는 가족이길 강요하는, 지극히 이기적이고 순수하게 악랄한 혈연집단을 가리키는 명사. 그게 내가 배운 가족이었다." (p.47)​

뱀처럼 유연하게 여린 아이의 몸을 가로지르는 허리벨트를 첫 기억으로 갖고 있는 연호. 아버지의 폭력에서 연우를 지키기 위해 힘겨운 하루하루를 버틴다. 외줄을 타듯 늘 아슬아슬한 연우와 어느날 그들앞에 나타난 지민. 끝없는 암흑이 이어지는 가정에서 연호와 연우는 지민이 고통없는 세상을 살아갈 수 있기를 꿈꾸지만, 여섯살 어린 나이에 무자비한 성폭행을 당한 지민의 사건을 시작으로 위태롭게 버텨오던 그들의 가족은 무너진다. 어쩌면 좀 더 빨리 무너졌어야 했다. 아이들이 조금이라도 일찍 세상의 빛과 닿을 수 있도록 말이다.

악마같은 아버지로부터 시작된 비극은 극단적인 사건으로 점점 휘말려 들어가고, 그렇게 14년이 흐른 후 어둠속에 감춰진 연호의 가족을 부러워하던 민수와 옳은 교사를 꿈꾸던 연우가 다시 만나는 것으로 비극은 절정을 향해 달려간다. 상상할 수 없는 엄청난 일들이 교직에서 겪었던 일이라는 사실이 놀랍다.

텔레그램 n번방의 이야기로 연일 세상이 시끄럽다. 한순간의 쾌락을 위해 아이들의 성을 착취하고 노리개로 삼아 휘두르고 있다. n번방에 입장했던 많은 사람들이 성폭력을 직접 실행하지 않고, 만들어 놓은 것을 그저 관람하기만 했다는 이유로 처벌에서 벗어나고자 하고 있다. 이같은 파렴치한 범죄에 대해 다시 한번 관대한 처분을 희망하고 있다. 파렴치한 범죄자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이런 생각을 하게 만든 사회 또한 n번방 그들과 같은 공범이다. 이번 사건이 제대로된 처분을 받아 다시는 이런 범죄자들이 생기지 않았으면 한다.

예상을 뒤집는 충격적인 반전과 슬픈 결말이 가슴 아픈 소설이었다.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서 아이들을 지켜주지 못한 것이 미안하고, 성적이면 모든 잘못이 용서되는 이상한 학교를 당연하게 만들어서, 권력이라는 힘앞에 정의가 제대로 작동할 수 없게 만들어서, 파렴치한 어른들의 가면을 벗길 수 없는 무기력함 때문에 아이들에게 다시한번 부끄럽고 미안해진다.

"난 달팽이가 좋아. 낯선 이가 나타나면 집 속으로 숨어들어가는 것도, 언제든 숨기 위해 그 무거운 집을 짊어지고 다니는 것도, 너무나 연약해서 다치기 쉬운 그 몸도, 상처받을까 봐 숨는 건데 모두들 딱딱한 짐만 보고 강하다고 생각하는 것도, 언니랑 닮았잖아. 그래서 달팽이가 좋아." (p.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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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하지 않는 건 있더라고 - 야루 산문집
야루 지음 / 마이마이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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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서 표지 그림을 봤을 때는 뭐지? 하는 느낌으로 자세히 들여다 본다. 어머! 이건 초등학교(나때는 국민학교 였다)앞 문방구에 늘어서 있던 오락기 였다. 50원짜리 동전을 넣으면 그래도 꽤 오랬동안 할 수 있었던, 너무 잘하면 문방구 주인아저씨한테 쫓겨나기도 했던 바로 그 물건이었다. 반가운 마음에 책장을 펼치자 오래전 레트로 감성을 아니 갬성을 느낄 수 있는 차례글 부터 어릴적 즐겨들었던 노래의 제목들이 나를 반긴다. 동창생을 만난것 같은 기분으로 책장을 넘긴다.

사진집을 겸하고 있는 산문집이다. 추억속의 사진첩을 들여다 보듯 그때 그시절 앨범을 넘겨보는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키는 사진들과 함께 곁들어진 짧은 글들이 마음을 촉촉히 적셔준다. 아! 비올때 따뜻한 허브차 한잔과 읽으면 분위기 제대로 잡힐 것 같은 산문집이다. 나중에 봄비가 보슬보슬 내릴때 카페 한켠에서 향기로운 차한잔과 다시 읽어 봐야겠다. 지금과는 완전 색다른 느낌으로 다가올 것 같은 기대감이 솟는다.

오래된 것을 모으는 것을 작가의 소개글 답게 책속에 실린 한컷한컷의 사진들이 오래전 그 어디쯤인가를 거닐 고 있는 느낌을 자아내고 있다. 지금은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색색깔의 플로피 디스켓을 비롯해 낡은 비디오플레이어와 녹음테이프들... 지금처럼 음원이라는 것이 없었던지라, 테이프로 음악을 듣던 시절에는 라디오를 들으며 공들여 한곡 한곡 녹음을 하거나, 레코드가게의 마음 좋은 사장님께서 원하는 곡을 녹음해 주시기도 하셨다. 저작권이라는 개념도 없이 좋아하는 마음을 공테이프에 녹음해서 마구마구 돌려 듣던 시절이었다. 깨끗한 음질도 아니었고 녹음의 시작과 종료를 위한 버튼소리까리 함께 녹음된 곡들이라도 그저 좋았었다. 친구들도 보고싶고 어릴적 엄마에게 혼나면서 몰래 다녔던 오락실에도 다시 가보고 싶고,,, 변하지 않는 것들을 찾아 나서고 싶어진다.

 

살면서 변하지 않는 건 무엇이었는지 가만가만 생각해본다. 다정다감한 애정표현에 익숙하지 않지만 자식들 걱정에 하루도 맘 편할 날이 없는 우리 엄마가 변하지 않고 내 옆에 계시고, 예쁜 날보다 미운 날이 더 많지만 옆에 있는 것만로 든든한 남편이 있고, 하루에도 열두번씩 화를 참고 있지만 나의 심장같은 우리 이쁜 아이들이 변함없이 나의 옆을 지켜주고 있다. 나를 지켜주고 있는 그들처럼 나도 그들을 변함없이 지키고 있다.

"소중한 것들을 소중한 사람들에게 더욱 나누어 주고 싶다. 그것이 되돌아 오지 않는 것은 상관없다. 길가에 핀 코스모스를 바라보고 아름답다 라고 돌아섰을 때 미소를 띠는 것은 코스모스가 아니라 나의 마음이다." (p.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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