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의 쌍곡선
니시무라 교타로 지음, 이연승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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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 연휴, 아름다운 설경 속의 스키를 즐기기 위해 초대된 여섯 명의 사람들, 그리고 그들을 서서히 조여오는 살인의 공포... 이곳 관설장에 초대된 이들의 공통점은 무엇인가? 시작하자마자 고립된 설원을 배경으로 벌어지는 살인사건은 남겨진 사람들을 극도의 공포로 몰아간다. 새롭다고 할 수 있는 설정은 아니지만 곳곳에 마련된 추리소설 특유의 트릭과 다른 듯 이어져 있는 두 가지 사건의 연결성으로 독자의 궁금증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한공간에 살인자와 함께 하고 있는 클로즈드 서클 기법과 당당히 밝히고 시작하는 쌍둥이를 주제로 하고 있는 추리극은 마지막에 닿을 때까지 살인의 이유를 미루어 짐작할 수 없는 궁금증을 선사한다. 범인의 시선을 놓치지 않고 쫓고 있다고 자부하고 있었지만 마지막 장을 덮을 때까지 완벽한 트릭을 알아낼 수 없다.

다른 사건 같은 두 개의 사건이 하나로 이어지면서 극은 긴장의 고조를 이룬다. 어쩌면 끝내 진실을 파헤치지 못하고 사건은 종지부를 찍는다. 도호쿠의 설원 그 어디쯤 눈 속에 묻혀버린 그가 모든 것을 품고 사건을 마무리한다. 영화 나이브스아웃도 재미있게 봤던 관객에게 추천하는 글이 어울린다. 나 역시 나이브스아웃을 재미있게 봤던 터라 묘하게 닮은 듯 다른 살인의 쌍곡선 또한 흥미롭게 책장을 넘길 수 있었다. 무엇 때문에 죽어가는지 스스로 알 수 없지만, 보이지 않는 누군가가 그들에게 전지전능한 심판의 저울을 들이대며 '나는 네가 죽어야 하는 이유를 알고 있다'라고 말하고 있다.

평범한 회사원 그리고 그의 약혼녀, 마시지 전문점 종업원, 철강회사에 다니는 청년, 범죄학을 연구하는 대학원생 마지막으로 택시 운전기사 살인의 이유가 밝혀지기 전까지 이들의 공통점을 예측할 수 없다. 철저하게 베일에 싸인 채 하나씩 하나씩 죽어가는 사람들 그리고 사라지는 볼링핀. 아름다운 설원에 무덤이 하나씩 늘어날 때마다 조여오는 살인의 공포가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어디선가 본듯한 기호, 기억에 남아 있지 않지만 처음 보는 기호가 아니다. 기호에 대한 트릭은 주변에 무심한 사람들에게 경종을 울리는 장치가 아닐까 싶다. 기억하지 못하지만 낯설지 않은... 살인의 발단이 되는 무심한 한 장면을 연상시키기 위한 복선으로 부족함이 없다.

범인을 알고서도 잡을 수 없는 도난 사건 그리고 설원의 살인사건 평행선을 달리던 두 개의 사건은 익명의 편지와 가까스로 연결된 한 통의 전화를 계기로 이어진다. 살인이 벌어질 때마다 하나씩 사라지는 볼링핀, 어디선가 본듯한 복선이지만 볼링핀의 숫자는 독자에게 끝까지 추리의 긴장감을 놓지 않게 한다. 마지막 하나는 어디로 사라졌을까... 사라진 볼링핀에 사건 해결의 실마리가 숨어있는 것은 아닐까?

무관심으로 포장되어 있지만 약자를 배려하지도 돕지도 않는 각박한 사회상에 정면으로 반감을 드러낸다. 무심코, 바빠서, 내일이 아니라서, 나와 상관없어서 수많은 이유와 핑계 속에 가려진 무관심은 아무렇지도 않게 부조리한 모습을 정당화시키고 있다.

약간은 뻔한 클리셰가 당당히 장치되어 있지만 몰입할 수 있는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반드시 만족할 만한 책이다~

 

그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중략)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게 죄라는 말인가?

죄죠. 그러니 저희는 복수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살인의 쌍곡선 p.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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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명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권남희 옮김 / ㈜소미미디어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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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명은 1993년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이다. 명불허전의 히가시노 게이고 작품답게 첫 장부터 마지막 장까지 엄청난 흡인력으로 독자를 끌어들인다. 살짝 늘어지는 전반부 탓에 백야행이나 환야 보다는 부족한 몰입감을 선사하지만 간결한 문장과 잠시도 눈을 뗄 수 없는 흥미진진한 스토리는 역시 히가시노 게이고라는 감탄을 불러일으킨다.

신의 장난처럼 이어진 유사쿠, 아키히코, 미사코 세 남녀를 중심으로 엮인 운명의 실타래를 풀어가듯 이야기가 펼쳐진다. 한적한 시골마을 아이들의 놀이터로 허락된 벽돌 병원에는 천사 같은 누나 시나에가 있다. 평범한 어른들과 다른 시나에가 왜 병원에 있는지 아이들은 아무도 몰랐지만, 그녀의 천사 같은 웃음과 간식은 그녀의 평범하지 않음을 잊어버리고 아이들이 그녀를 따르게 한다. 유사쿠 역시 벽돌 병원의 시나에 누나를 좋아한다. 그리고 그 가을 시나에게 죽었다. 유사쿠의 머릿속에 각인된 죽음이었지만 죽음의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리고 그렇게 세월이 흘러 유사쿠는 운명처럼 다시금 시나에의 죽음을 마주하게 된다.

"어쩌면, 하고 미사코는 생각한다. 말하자면, 보이지 않는 실이 아닐까. 그 실이 아직 존재하고 있어서 지금도 내 인생을 조종하는 게 아닐까..." (p.36)

일본에서도 손꼽히는 전기기기 제조업체 UR 전산의 대표 우류 나오아키의 임종을 시작으로 그들의 운명의 실타래가 풀리기 시작한다. 나오아키는 대부분의 유산을 가업을 잇는 대신 도와대학의 뇌의학을 전공한 장남 아키히코에게 남긴다. 재혼한 젊은 부인도 어린 남매도 돌보지 않은 채 말이다. 가업을 마다하고 뇌의학을 전공한 의사가 된 장남 그리고 그에게 모든 유산을 남겨준 나오아키 이들은 무슨 비밀을 감추고 있는 것일까.

나오아키의 막대한 재산을 물려받은 아키히코는 물욕에 눈이 먼 친척들에게 아버지가 남긴 유품을 나눠주기로 하고, 금고안 깊숙이 보관되어 있는 오래된 파일만을 남겨두기로 한다. UR 전산의 새로운 대표 마사키오는 나오아키의 와병 중 비서와 부적절한 관계를 맺고 있는 나오아키의 미망인 아야코를 속이고 아키히코가 남겨둔 금고안에 보관된 의문의 파일을 가져가고, 이어서 벌어진 석궁 살인! 아키히코를 운명의 숙적으로 여기는 유사쿠는 모든 추리의 화살을 아키히코에게 맞춰간다.

각기 다른 매력의 뛰어난 능력을 지닌 아키히코와 유사쿠 두 사람의 운명 같은 경쟁을 지켜보는 재미가 추리소설 속의 색다른 재미를 선사한다. 기업의 무분별한 욕심에 의해 자행된 생체실험의 비극적 결말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극적 결말을 바로잡고자 하는 의지를 내보이는 아키히코의 우직함이 돋보인다. 그러나, 그의 우직함은 자칫 베일에 싸인 또 하나의 범죄를 연상하게 하지만, 내보이지 못하는 상처에 둘러싸인 또 다른 피해자의 모습으로 다가온다.

"나 이외의 사람이 내 인생을 정하는 건 딱 질색이야. 나는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싶은 대로 할 뿐이야." (p.221)

우류 가의 많은 등장인물들이 각자의 역할에 충실하다 싶을 정도의 욕심을 여과 없이 보여준다. 욕심을 버리지 못하는 사람들에 의해 자행되는 많은 악행 속에서 버티듯 자신의 길을 걷고 있는 아키히코가 이상해 보일 정도로 그들의 욕심은 자연스럽다. 세사람의 운명의 실타래를 숙명이라는 묵직한 주제로 이야기하고 있지만, 어쩌면 운명을 가장한 숙명보다는 과학의 발전, 발견이라는 미명하에 자행되는 기업의 폭력성을 보여주고 싶었던 글이 아니었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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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에 여유가 없다고 느껴질 때
최태정 지음 / 경향BP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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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란 것이 참으로 신기한 세계인지라, 나의 일부분임에도 불구하고 내 마음대로 제어가 되지 않는 영역이다. 소란스럽지 않게 평온함을 유지하고 싶어도 시끌시끌 머릿속을 혼란스럽게 하기도 하고, 상처받지 않은척하고 있으면서도 실은 상처투성이가 되어 가고 있다.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내 마음을 온전히 토닥이기란 쉽지 않지만 한 번도 제대로 돌봐주지 않고 내던져 두고 있으면서 상처를 말하고 있는 것도 참 아이러니하다. 이제는 오롯이 내 마음을 들여다보고 상처 입은 그곳에 반창고라도 붙여줘야겠다.

서른이 넘어서야 시럽을 넣지 않은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인생의 쓴맛을 알아가고 있다는 저자의 글은 뭐랄까 살금살금 다가와서 어지러운 마음을 살살 어루만져 주는 듯한 글이다. 가볍게 툭툭, 늘 만나는 친구에게 일상을 이야기하듯 글을 써 내려가고 있다. 무심히 대하는 이들 때문에 상처받기도 하고, 모든 걸 제쳐두고 만나주는 이들 덕분에 위로받기도 한다면서 말이다.

일상에서의 만남이 늘 어렵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라는 명제를 신념으로 여기고 '혼자' 남겨지는 일에는 도대체 무뎌지지 않는 일상이 이어진다. 덕분에 어렵지만 만남을 포기하지 않고 만남의 테두리 안에서 벗어나지 않으려고 무던히도 애쓰는 삶을 살고 있다.

4가지 일상의 이야기는 소소한 글들이 담백하다. 편견이긴 하지만 삼겹살에 소주를 마시고, 담배를 피우는 작가의 모습이 상상되지 않는다. 정갈하게 차려진 다기와 함께 하거나 은은한 향으로 지루함을 밀어내는 한낮의 아메리카노와 함께하는 모습이 더 어울릴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조금 더 너그러운 어른이 되지 못한 것에 대한 반성, 시간이 많으면 돈이 없고, 돈이 많으면 시간이 없어서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없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 서로 다른 생각을 품고 있는 일상의 만남, 그럼에도 불구하고 함께하는 술 한 잔에 모든 걸 훌훌 털어버릴 수 있는 친구가 있어 평범한 일상이 평범하지 않은 나만의 일상으로 채워지고 있음을 이야기하는 글들이 마음에 닿는다.

"요즘 유행이야? 밑도 끝도 없이 잘될 거라고 하는 거?" (영화 엑시트, p.15)

"먹고 살기 위해 버는 돈. 하지만 그 돈으로 제대로 먹고, 제대로 살고 있는 건 아닌 것 같은 기분." (p.118)

"그렇게 나는 겉으로만 멀쩡하게 지내는 사람이 되기를 자처했다." (p.122)

"우리 모두 어쩌면 각자 하는 일 때문에 자신의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건 아닐까." (p.132)

"사람들을 만나 안 좋은 일이 있으면 안 좋은 일이 있었다고, 걱정이 있으면 걱정이 있다고 털어놓게 됐다. 그제서야 나는 스스로 가장 나다운 모습을 만나게 됐다." (p.154)

아무것도 아닌 일에 흥분하고, 상처받고 하나하나 반응하면서 상처받고 있을까... 다른 사람보다 스스로에게 강박에 가까울 정도로 빡빡하게 굴고 있는 내 모습이 서글프다. 가끔은 무심히 지나가도 될 텐데 말이다. 관계에 지쳐하지 말고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관계도, 완벽하지 않은 내 모습도 인정하는 용기가 필요한 때다. 마음에 여유가 없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마음에 여유를 없애고 있는 건 아닌지 나를 뒤돌아 보게 된다.

밥 잘 못하면 어떤가, 라면 잘 끓일 수 있으면 되는 거고, 라면도 못 끓이면 사발면에 물 부어 먹으면 된다! 사소한 일에 목숨걸지 말고 마음에 소란함을 흥겨운 소리로 만들어 버리면 되는 거다. 인생 뭐 있나! 이런게 인생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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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만 더 일찍 당신을 만났다면 - 당신의 빈자리와 함께 살아가는 우리 가족 이야기
김수려 지음 / 대경북스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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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부모가 되려면 먼저 좋은 부부가 되어야 한다." (p.22)

좋은 부부가 되겠다는 마음을 먹었던 적은 거의 없었다. 그저 다른 사람들 눈에 적당히 좋은 부부면 됐고, 나의 전부이기 보다는 조각이 딱 맞는 퍼즐의 한조각쯤으로 여기고 있었을 지도 모르겠다.

저자의 애틋한 사랑을 듬뿍 받고 있는 그분과 마찬가지로 우리집 그분도 나의 애틋한 사랑에 목말라하고 있을 지도 모르는데, 나의 그분은 남편, 남의 편, 시어머니 아들, 아이 아빠, 정으로 사는... 가족 구성원중 한사람일 뿐이라고 여기고 있었다.

나에게 사랑하고 애틋한 느낌보다는 정으로 사는 우리 집 그분을 '아, 생각만 해도 참 좋은 당신'이라고 여겼던 날은 기억도 나지 않는 저멀리 오래전 어디쯤에서 멈춰 있다. 백년해로(百年偕老)를 생각하며 사랑하는 엄마 아빠 품을 떠나 그분의 손을 잡았지만, 시간이 쌓여 갈수록 백년해로보다는 졸혼에 더 관심이 많아지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이 드는 나에게 대체 얼마나 사랑하면 '생각만 해도 참 좋은 당신'이라고 여기는 저자의 애틋함이 괜한 심술에 시기, 질투 비슷한 궁금증을 불러일으킨다.

나 또한 행복하고 즐거움만 가득한 우리 집을 꿈꾸며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살고 있지만 사랑이 쌓이기보다는 미움이 쌓이는 보편적인 가정을 꾸려가고 있다. 남편과는 항상 아웅다웅하기를 멈추지 않고, 아이에게는 내가 하고 싶은 말만을 끊임없이 전달하고 있다. 남편도 아이들도 그리고 나도 건강하고 무탈한 것만으로도 감사하고 행복한 일임에도 만족하지 못하고 말이다. 얼마나 좋으면 미리 만나지 못한 시간을 아쉬워할까 하는 삐딱한 시선으로 읽기 시작한 글들은 책장이 넘어갈수록 나의 모습을 반성하게 한다.

"부모가 되면 부모의 입장에서 아이들을 보려고만 한다. '너를 위해서'라는 핑계를 대면서. 이미 최선을 다해 열심히 하고 있는 아이들에게 엄지손가락으로 검지손가락끝을 살짝 누르면서 '조금만 더'를 요구한다." (p.67)

틀린 것이 아니라 서로가 다름을 인정한다면 지금보다 훨씬 더 만족스러운 삶을 살 수 있을 텐데 말이다. 서로가 서로의 버팀목임을 모르고 서운해하기만 하면서 아쉬운 시간을 흘려보내고 있었다. 아쉽다. 오래 보아야 예쁜, 자세히 보아야 예쁜 그분들을 오늘부터라도 오래 자세히 보아야겠다.

"존중받고 싶다면 먼저 존중하자. 사랑받고 싶다면 먼저 사랑하자. 더 큰 존중과 사랑으로 반드시 돌아온다." (p.90)

따뜻한 느낌의 표지 첫인상만큼, 그 안의 글들도 따뜻하고 애틋하다. 우연히 읽게 된 책으로 우리 가족에 대해 찬찬히 생각해 볼 수 있는 고마운 시간을 갖게 해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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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이사이드 클럽 스토리콜렉터 83
레이철 헹 지음, 김은영 옮김 / 북로드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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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강탈당하면 삶도 강탈당하게 됩니다. (중략) 우리는 선택권을 빼앗겼습니다." (p.14)

넓은 어깨의 각이 딱 떨어지게 재단된 검은색 턱시도를 입은 한 남자가 화염에 휩싸여 죽어가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지금의 삶은 죽음을 강탈당한 것이 아니라, 생명의 선택권을 빼앗긴 채 살아가고 있다고 주장하며 스스로 붉은 화염에 휩싸여 죽어간다. 스스로 삶을 저버린 것이다. 

인구감소와 의료기술의 발달로 선택된 유전자를 가진 일부의 사람들이 평균 수명 300살을 유지하고 있는 도시 그들은 곧 새로운 변화를 맞아 영생을 누릴 수 있기를 꿈꾸고 있다. 축복받은 유전자와 관리 덕분에 탄력적인 피부와 건강을 유지하며 도시의 삶을 누리고 있는 라이퍼들 그리고 그들과 달리 늘어가는 주름과 처진 뱃살과 함께 어두운 뒷골목의 삶을 살아가는 비라이퍼들의 이야기를 대조적으로 보여준다. 실리콘 피부와 기계음이 들리는 심장을 품고 코르티솔 수치가 두려워 스테이크 한 조각 조차 허락하지 않는 무미건조한 라이퍼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모두가 비슷한 체격과 비슷한 나이의 외양을 하고 있는 인형 같은 삶이다.

레아 또한 성공적인 라이퍼의 삶을 영위하며, 누구보다 빠른 승진과 새로운 변화 제3의 물결에 합류하게 될 날만을 기다리고 있다. 그런 그녀 앞에 88년 만에 사라졌던 아버지 가이토가 나타나고 라이퍼 레아의 윤택한 삶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다. 성공적인 라이퍼를 자부하던 그녀가 감시 대상으로 분류되고, 영생으로 이어지는 제3의 물결에 합류할 수 없게 된다.

라이퍼의 삶을 부정하며 죽음을 선택하려는 기리노의 계획을 알게 된 레아는 성공한 라이퍼의 삶을 되찾기 위해 그리고 아버지 기리노를 죽음의 선택으로부터 분리하기 위해  금지된 음식을 먹고, 금지된 음악을 들으며 라이퍼를 부정하는 그들 '수이사이드 클럽'을 쫓는다. 과연 레아는 수이사이드 클럽의 비밀을 찾고 다시 그들의 세계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인가! 색다른 소재지만 멀지 않은 미래에 일어날 수도 있겠다는 끔찍한 상상에 몸서리치게 된다.

"문득 아빠가 정말로 죽으려 한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도시로 돌아와서 클럽에 들어갈 때만 해도 아빠는 죽을 생각이 아니었다. 어쨌거나 아빠는 죽으려 하고 있었다. 이제야 아빠가 진정 무엇을 찾고 있는지 알았다." (p.366)

때가 되면 언젠가 세상에서의 삶을 접고, 사라질 수 있기 때문에 나의 삶이 더 소중한 것이 아닐까. 백 살 남짓 삶의 끈을 부여잡고 있는 것도 지루하다는 생각을 종종 하는데 영생의 삶을 누려야 한다면 그것을 과연 축복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인가. 각자의 삶에 대한 가치관이 다르기 때문에 나의 생각이 정답이라고 할 수 없지만, 장기를 바꾸고 몸 안에 흐르는 피를 바꿔가면서 영생을 누리라고 한다면 나의 대답은 No 일 것이라고 확신한다. 삶과 죽음의 무게에 대해 가볍지 않은 고민을 남기는 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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