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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에 여유가 없다고 느껴질 때
최태정 지음 / 경향BP / 2020년 5월
평점 :
마음이란 것이 참으로 신기한 세계인지라, 나의 일부분임에도 불구하고 내 마음대로 제어가 되지 않는 영역이다. 소란스럽지 않게 평온함을 유지하고 싶어도 시끌시끌 머릿속을 혼란스럽게 하기도 하고, 상처받지 않은척하고 있으면서도 실은 상처투성이가 되어 가고 있다.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내 마음을 온전히 토닥이기란 쉽지 않지만 한 번도 제대로 돌봐주지 않고 내던져 두고 있으면서 상처를 말하고 있는 것도 참 아이러니하다. 이제는 오롯이 내 마음을 들여다보고 상처 입은 그곳에 반창고라도 붙여줘야겠다.
서른이 넘어서야 시럽을 넣지 않은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인생의 쓴맛을 알아가고 있다는 저자의 글은 뭐랄까 살금살금 다가와서 어지러운 마음을 살살 어루만져 주는 듯한 글이다. 가볍게 툭툭, 늘 만나는 친구에게 일상을 이야기하듯 글을 써 내려가고 있다. 무심히 대하는 이들 때문에 상처받기도 하고, 모든 걸 제쳐두고 만나주는 이들 덕분에 위로받기도 한다면서 말이다.
일상에서의 만남이 늘 어렵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라는 명제를 신념으로 여기고 '혼자' 남겨지는 일에는 도대체 무뎌지지 않는 일상이 이어진다. 덕분에 어렵지만 만남을 포기하지 않고 만남의 테두리 안에서 벗어나지 않으려고 무던히도 애쓰는 삶을 살고 있다.
4가지 일상의 이야기는 소소한 글들이 담백하다. 편견이긴 하지만 삼겹살에 소주를 마시고, 담배를 피우는 작가의 모습이 상상되지 않는다. 정갈하게 차려진 다기와 함께 하거나 은은한 향으로 지루함을 밀어내는 한낮의 아메리카노와 함께하는 모습이 더 어울릴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조금 더 너그러운 어른이 되지 못한 것에 대한 반성, 시간이 많으면 돈이 없고, 돈이 많으면 시간이 없어서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없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 서로 다른 생각을 품고 있는 일상의 만남, 그럼에도 불구하고 함께하는 술 한 잔에 모든 걸 훌훌 털어버릴 수 있는 친구가 있어 평범한 일상이 평범하지 않은 나만의 일상으로 채워지고 있음을 이야기하는 글들이 마음에 닿는다.
"요즘 유행이야? 밑도 끝도 없이 잘될 거라고 하는 거?" (영화 엑시트, p.15)
"먹고 살기 위해 버는 돈. 하지만 그 돈으로 제대로 먹고, 제대로 살고 있는 건 아닌 것 같은 기분." (p.118)
"그렇게 나는 겉으로만 멀쩡하게 지내는 사람이 되기를 자처했다." (p.122)
"우리 모두 어쩌면 각자 하는 일 때문에 자신의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건 아닐까." (p.132)
"사람들을 만나 안 좋은 일이 있으면 안 좋은 일이 있었다고, 걱정이 있으면 걱정이 있다고 털어놓게 됐다. 그제서야 나는 스스로 가장 나다운 모습을 만나게 됐다." (p.154)
아무것도 아닌 일에 흥분하고, 상처받고 하나하나 반응하면서 상처받고 있을까... 다른 사람보다 스스로에게 강박에 가까울 정도로 빡빡하게 굴고 있는 내 모습이 서글프다. 가끔은 무심히 지나가도 될 텐데 말이다. 관계에 지쳐하지 말고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관계도, 완벽하지 않은 내 모습도 인정하는 용기가 필요한 때다. 마음에 여유가 없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마음에 여유를 없애고 있는 건 아닌지 나를 뒤돌아 보게 된다.
밥 잘 못하면 어떤가, 라면 잘 끓일 수 있으면 되는 거고, 라면도 못 끓이면 사발면에 물 부어 먹으면 된다! 사소한 일에 목숨걸지 말고 마음에 소란함을 흥겨운 소리로 만들어 버리면 되는 거다. 인생 뭐 있나! 이런게 인생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