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밀레니얼은 왜 가난한가 - 불평등에 분노하는 밀레니얼, 사회주의에 열광하다
헬렌 레이저 지음, 강은지 옮김 / 아날로그(글담) / 2020년 1월
평점 :
[게토_Ghetto] 중세 이후의 유럽 각 지역에서 유대인을 강제 격리하기 위해 설정한 유대인 거주 지역 (네이버 지식백과)
강렬한 눈빛을 쏘아대고 있는 검은 고양이와 강아지의 눈빛을 마주하고, 게토의 의미를 제대로 알지 못한 채 읽기 시작했다. 끝을 알 수 없는 인간의 잔인함의 민낯에 몸서리치게 된다. 버려진 반려견의 안타까운 생존의지로부터 시작한 글은 높은 벽으로 둘러싸여 바깥 세계와 격리되어 사라져가는 장면으로 마무리된다. 치열하게 살아가고자 몸부림치는 동물들의 생존기를 포르노를 보듯 희열을 느끼는 사람까지... 인간은 그들과 공존하기 위한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잔인한 사냥꾼에 불과했다.
반려동물을 기르는 가구가 천만 가구를 훌쩍 넘어가고 있다. 가난한 집의 사람으로 태어나기보다는 부잣집의 반려동물로 다시 태어나고 싶다는 우스갯소리를 할 정도로 귀하게 여겨지는 반려동물들도 많다. 하지만, 인간의 이기심은 동물들의 본능을 고려하지 않은 채 스스로의 욕심을 따라 그들과 함께 한다. 아기 때의 귀여움이 없어졌다거나, 생각보다 덩치가 크다거나, 시끄럽다거나, 털이 많이 빠진다거나,,, 동물들이 선택할 수 없는 어쩔 수 없는 이유로 인연을 끊어버리는 파렴치한 짓을 서슴없이 저지르면서 말이다.
강아지 공장에서 태어나 동물보호소를 거쳐 자신을 무한하게 사랑해 줄 것 같은 부부에게 입양되었으나 덕근은 '기다려'라는 말과 함께 차디찬 공원의 벤치 아래에 버려진다. 버려졌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 채 주인을 기다리는 덕근. 검은 길고양이 칠백을 만나 자신이 버려졌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고 인간과 공존할 수 있다는 믿음과 함께 천천히 길에서의 삶에 적응해간다.
"하지만 그들은 덕근을 버렸다. 양쪽 모두가 욕구를 충족시킬 도구를 잃었다. 주인은 더 이상 덕근을 귀여워하지 않았고, 덕근은 더 이상 충성할 대상이 없었다. 관계는 끝난 것이다. 그런데도 덕근의 마음은 끝내지 못하고 있다. 길들여진다는 것은 그런 것이었다." (p.77)
그러나 잔인한 인간들은 덕진의 희망을 무참히 밟아 버리고, 이를 계기로 덕근과 칠백은 서로 다른 생각으로 인간과의 공존을 계획한다. 인간과의 상생을 꿈꾸는 칠백과 인간에게 두려움을 안겨주고 싶은 덕진 그들은 서로 다른 생각의 합일점을 찾지 못하고 헤어지게 되고 덕근은 뜻을 함께하는 친구들과 인간에 대한 복수를 계획한다. 자신들의 야생성으로 인간에게 두려움을 안겨주고 그들만의 터전을 만들고 싶다. 덕근은 인간에 대한 복수를 성공할 수 있을 것인가...
"철장 안의 삶은 즉, 죽기 위한 삶이다. 오늘 그곳을 빠져나온 이상 우리는 살기 위한 삶을 산다." (p.180)
덕근과 칠백의 시선으로 전개되는 글은 인간에 대한 복수를 꿈꿀 수밖에 없는 이유를 인간의 터전을 빼앗을 수밖에 없는 그들의 계획을 응원하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한다. 나 역시 반려견을 키우고 있다. 그리고 강아지가 아주 아기였을 때 키우기가 편해진다는 이유로 서슴없이 중성화 수술을 했다. 백 프로 나의 입장을 반영한 행동이었다. 강아지의 본능은 조금도 생각하지 않은 채 집안에서 키우기 좋은 생명체를 만들어 가고 있는 나를 뒤돌아 보게 한다. 과연, 반려견을 입양하고 무지개다리를 건널 때까지 함께 하는 것만으로 나의 책임을 다한다고 할 수 있는 것인지 마음이 무거워진다. 나 역시 우리 강아지를 게토에 가두고 있는지도 모르겠다.